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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모든 방황에 종지부를 찍다! 아아, 마침내 생(生)의 모든 헤매임에 종지부를 찍다! 이 얼마나 기막힌 말이며, 이 얼마나 꿈같은 일인가! 얼마나 많은 세월을 나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내면의 갈증에 시달리며 그로 인하여 고통받으며 살아왔던가. 얼마나 아프도록 자유하고 싶었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찾아 얼마나 자주 먼 길을 떠나야만 했던가. 아아,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끝났다. 마침내 나는 쉼을 얻은 것이다!
스무살을 넘기면서부터 시작된 나의 방황은 늘 '떠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떠남'은 언제나 느닷없이 찾아오는 내면의 갈증과 고통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 고통이 휘몰아쳐 올 때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만사(萬事)를 제쳐두고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었다. 그렇게 '이번에는, 이번에는……'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그 무엇을 찾아 떠나고 또 떠나본 세월이 10여년.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더 척박해진 가슴과 더 허전해진 발걸음만을 끌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아아, 나의 이 고통을 덜어줄 이는 없는가, 나의 이 갈증을 풀어줄 이는 없는가……. 언제나 알 수 없는 형태로 다가왔던 그 고통과 갈증은 내가 스물여덟살이 되던 해 어느 날엔가도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그때 나는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참으로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를 몰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한 친구와 그 문제를 두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렇게 얘기를 나누던 그 어느 한 순간 예의 그 고통과 갈증이 찾아와 또다시 나를 사로잡아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바로 그 다음날부터 탄광에 들어가기 위해 벽보를 훑고 있었고…….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의 어느 날엔가도 그랬다. 그때도 한 학우와 인생과 인간에 대해서 텅 빈 강의실에 앉아 서로 열변을 토한 적이 있었는데, 얘기를 마치고 그 친구와 헤어지면서 문득 나를 사로잡아버린 그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아픔에 나는 곧바로 휴학계를 쓴 것이다. 그리고는 감포로 내려가 그 해가 다 가도록 공사판의 막일을 하며 스스로를 짐스러워 했었다. 탄광에 들어가려던 계획은 그러나 뜻하지 않게도 나를 대관령 목장으로 데려다 주었고, 거기에서 나는 1년여를 젖소와 함께 살았다. 새벽 4시부터 시작된 그곳에서의 생활은 무척 고되고 힘들었지만, 끝없이 펼쳐진 초지(草地)와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순박한 소들의 모습에 깊이 감동하며 산 나날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감동들은 나의 궁극에의 갈증을 적셔주었던가? 무언가 썩지 않는 삶의 보람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대구에서 연락이 왔다. 모 사립여고에서 국민윤리 교사를 채용한다는 것이었다. '아아, 이야말로 참으로 보람있는 일이 아닌가! 아직 순수한 아이들에게 인간과 인생과 [느낄 수 있는 가슴]에 대해서 얘기해줄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며 서둘러 대관령을 내려와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교사생활.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이것 만큼 나를 고통스럽게 한 일도 없었다. 나 자신이 너무나 많은 방황 속에서 살아왔기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교사생활 만큼은 정말 잘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 속에서 아이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인간으로 사는 보람을 배울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그러나 그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자신 속에는 기껏해야 몇몇 경험들과 읽은 책들과 주워들은 한 줌의 지식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와 함께 정작 아이들에게 말해줘야 할 '그 무엇'에 대해서는 티끌 만큼도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아, 이 자각 만큼 나를 절망케 한 것은 없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또다시 사표를 내고 지리산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지리산에서의 고독한 7개월은 인생을 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려는 다짐과,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나를 지치게 했던 그 알 수 없는 갈증과 고통을 해결해 보려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인생과 진리에 관한 책이면 무엇이든 찾아 읽었고, 나름대로 도(道)를 깨달았다는 사람들을 찾아 밤새워 얘기도 나누었다. 그들이 얘기해 주는 방법으로 수행(修行)을 해보기도 하고, 그것도 부족하면 문득 지리산의 그 크낙한 가슴에 안겨 울부짖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자신(自身)과 인생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에 대해 알게도 되었고……. 그러나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유하지 못했고, 갈증 또한 여전했다. 그리하여 나의 그 '떠남'은 계속되어야 했다. 지리산에서 내려온 나는 곧바로 경기도 포천에 있는 한 수도원으로 삭발수행을 하기 위해 떠났다. '진리를 얻을 수만 있다면, 영원히 변치 않는 그 무엇을 얻을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아까우랴…….' 삭발을 담당한 수도원의 한 형제에게 머리를 내놓으면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나의 어지러운 방황은 계속돼 경산에서의 자취생활과 속리산 자락의 자그마한 암자에서의 단식, 그리고 수도원 토굴에서의 금식기도 등으로 이어졌고, 급기야는 아무도 몰래 배를 타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나는 결혼도 했고 수차례의 막노동도 해보았지만, 그 어느 것도 나의 그 느닷없는 고통과 갈증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제주도와 추자도, 홍도 근해를 오르내리며 계속된 나의 선원생활은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것이었다. 처음 한 동안은 멀미 때문에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었고, 고기가 많이 잡히는 날이면 이틀이고 사흘이고 먹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한 채 일을 계속해야 했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칠 때면 이번에는 삼킬 듯이 달려드는 파도와도 싸워야 했다. 아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그 망망대해는 나에게 또 얼마만한 고독감을 안겨주었던가……. 그러던 어느날 아내로부터 걸려온 뜻밖의 전화 한 통화로 나는 항해 도중에 배를 내렸고, 동대구역으로 마중나온 아내는 나보다도 더 지쳐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 타는 듯한 갈증이 해소되기 전에는 나는 결코 쉴 수가 없는 것을……. 자,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도대체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끝날 줄을 모르는가. 내게 있어 직장은 아무래도 좋았다.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건 배를 타건 그밖의 무슨 일을 하건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그 무엇' 뿐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찾은 곳이 빵공장 ― 그 무렵 나는 주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 그리고 몸의 움직임 등을 '단지 바라보기만 하는' 수행법을 행하고 있었는데, 모든 의식을 다만 내부로만 향해 있었기에 하루 12시간씩 격주 2교대의 그곳에서의 고된 일들도 내겐 다만 좋은 공부거리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모든 생산라인이 자동화 되어 있어 일하는 자신도 온전히 기계가 되어야 하는 속에서도 항상 깨어있으려 노력했고, 어떻게든 확연한 공부의 진척에만 마음을 쏟고 있었다. 그렇게 생활하던 것이 2개월여. 그러다가 문득 일자리를 옮긴 곳이 이번에는 신문사였다. 편집국 교열부 기자 ― 참 별걸 다 해본다 싶었지만,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이제 더 이상의 밖으로의 방황은 하지 않게 되었다. 우선 신문사의 일 자체가 내겐 일이라는 느낌보다는 도시락을 싸들고 매일매일 도서관엘 가는 기분이었고, 더구나 근무시간 후엔 지금까지의 자신을 돌아보며 고요히 명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퇴근만 하면 때로는 조용한 교회나 성당을 찾아 앉아있기도 하고, 또 때로는 신문사에서 가까운 법당을 찾아 고요히 자신을 관(觀)하기도 했으며, 거기에서도 무언가 미흡함을 느끼면 이번에는 근교의 산을 찾아 밤이 맞도록 명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틈만 나면 공부에 있어 몇몇 성취를 이루었다는 사람들을 찾아 타는 목마름으로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아, 그러나 그럴수록 나에게는 무언가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견딜 수 없는 갈증만 더해갔고, 그것은 올해로 접어들면서 절정에 달했다. 급기야 나는 50일 단식을 계획했다. 내가 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 뿐이었는데 그 하나가 없으니 도무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고, 그 '하나'에 대한 열망만으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으니 어찌하겠는가, 또다시 떠날밖에……. 마침내 나는 사표를 내고 주위의 만류도 뿌리친 채 이제는 마지막이 될 '떠남'을 실행했다. 그랬던 것이 지난 94년 4월30일이었고, 떠나간 곳은 상주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였다. 오직 진리에 대한 열망만으로 온 몸이 불타는 듯 했고, 더구나 그 '하나'만을 위해 직장과 처자식마저 버려두고 떠나왔기에 이것 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곧바로 단식에 들어갔고, 떠나올 때의 그 일념(一念)으로 그저 단식하며 고요히 명상하기만 하면 진리는 저절로 그 찬란한 모습을 내 앞에 나타낼 줄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위로부터 내리는 능력을 입고, 살아있는 동안 마땅히 해야할 일 곧 진리를 증거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더욱 더 산만해져 갔고, 나중에는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도무지 단 한 순간도 마음을 집중할 수가 없게 돼버렸다. 급기야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음식을 먹으면서, 일어나는 생각과 마음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고, 그 고통 속에서 나는 다시 단식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마저 오래지 않아 실패하기에 이르렀고, 도(道)를 이루기 위한 자신의 실제적인 수행력의 부족함 앞에 절망했다. 아아, 진리(眞理)를 얻기 위한 무한대의 수고와 책임은 다만 그것을 얻고자 하는 자만의 몫인가……. '자, 이제는 여기에서 죽자. 이제는 정녕 달리 더 어떻게 해 볼 방법도 기력도 없고, 더구나 진리없이 평생을 고통하며 사느니 차라리 이렇게 단식하다 죽는 것이 나으리라……. 천지의 주재(主宰)시여, 은혜를 베푸소서.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당신 뿐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여, 은혜를 베푸소서…….' 이렇게 죽기를 각오하고 나는 세번째 단식을 준비해 갔다. 이번에는 앞서의 두번의 실패를 거울 삼아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히 모든 것을 준비해 갔다. 호주머니에 남아있던 몇 푼의 돈도 버려버렸고, 얼마 남지 않은 쌀과 회복식(回復食)을 위해 남겨두었던 약간의 음식도 버려나갔다. 그러면서 마음으로는 이렇게 거듭 거듭 다짐하고 있었다. '죽으면 죽으리라…….' 그러나 보라! 일은 전혀 뜻밖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나는 이미 진리 안에 있었다! 아니,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모든 존재가 이미 진리 안에 있었고, 단 한 순간도 그것을 떠난 적이 없었다!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아다닌 진리는 저만치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것을 얻기 위해 그토록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도 나는 이미 처음부터 진리 안에 있었고, 그랬기에 이렇듯 무언가 애쓰고 노력하여 진리를 얻으려던 나의 일체의 시도 자체는 처음부터 불가능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며, 그것은 이미 진리 안에 있으면서 진리를 찾으려는 어리석음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럴수가! 아니,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무엇과도 비견될 수 없는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하며, 심지어 목숨마저 내놓을 각오로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고 믿고서 그렇게 달려왔고, 그러면서도 일체 경계(境界)가 사라진 밝은 깨달음의 경지가 쉽게 나타나 주질 않아 자신의 수행력의 부족함 앞에 몇 번이나 절망하며 안타까워 했었는데, 더구나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서 달려들었다가 두번씩이나 단식에 실패한 참담한 마음이었는데, 아아 이렇듯 지치고 일그러진 이 모습 이대로가 이미 완전하다니! 이 모습 이대로가 이미 진리라니! 아니, 이젠 이 말도 합당치가 않다. 완전이니 진리니 하는 이 말도 설 수가 없구나! 여긴 그 어떤 이름(名)도 붙여질 수 없는 자리가 아닌가! 그냥 있는 그대로일 뿐 아무것도 아니질 않는가! 아아, 이럴수가! 언어이전(言語以前)의 세계는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고 난 이후에 그 깨달음 속에서나 나타나는 무엇이 아니라 깨달음과는 무관한, 깨달음과 수행과 체험 이전의 지금 이대로가 아닌가! 그냥, 어쩔 수 없이, 이름하여 번뇌(煩惱)요 이름하여 보리(菩提)였지 번뇌도 보리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가 아닌가! 아아,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였다! 새로이 깨달을 무엇도, 얻을 무엇도 없는!!!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나의 모든 방황에 종지부를 찍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이젠 이 말도 성립되지 않는구나!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단 한 순간도 방황한 적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어디에다 종지부를 찍는단 말인가? 허허,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