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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現存)의 힘 ㅡ 신심명 16

작성일 14-05-0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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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조회 6,4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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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아이들과 함께 ‘겨울 왕국’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영화관엘 찾았기에 참 기분이 좋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Let it go'라는 노래가 참 좋았고, 숲 속의 장면 장면들이 정말 실물처럼 잘 그렸다는 생각은 했지만, 영화 안에 담긴 메시지는 뚜렷하게 다가오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이런저런 영화의 장면들이 다시 떠오르는데, 특히 영화 속 언니인 엘사의 영혼의 상처와, 그 상처로 인해 스스로 얼음 성을 만들어 그 안에 갇혔던 일, 그리고 그 상처와 외로움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되는 과정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한 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감상합니다. 스크린에 온갖 영상과 장면들이 비치면 우리는 그것을 보며 때론 웃으면서 행복해하기도 하고, 때론 슬픔에 젖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또 때로는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벌벌 떨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 다시 불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각자의 상기된 표정으로 한마디씩 하며 영화관을 빠져나가고 나면, 스크린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처음의 말간 표정 그대로 무대 위에 하얗게 펼쳐져 있습니다. 스크린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또 우리가 웃고 울고 소리 질렀던 그 모든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은 그 어느 것에도 조금도 물들지 않았습니다. 스크린은 그냥 스크린일 뿐이니까요.
 
    우리의 삶 속에도 이와 같은 스크린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일이 일어나지만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그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하얀 스크린 같은 것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순간입니다. 우리의 안팎의 모든 삶은 바로 ‘지금’이라는 이 순간 속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또 사라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매 순간의 ‘지금’ 은 언제나 처음처럼 새로우며, 우리가 웃고 울고 괴로움에 몸부림친 그 모든 삶의 내용과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라는 이 순간은 그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습니다. 단 한 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 바로 매 순간의 ‘지금’이니까요.
 
    우리의 마음이 만약 매 순간의 ‘지금’ 에 존재할 수 있다면 삶의 모든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을 낱낱이 경험하면서도 우리는 그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언제나 처음처럼, 자유롭게,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은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니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쉽게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 스스로 거기에 매여 버리거나, 그 곳에 얼음 성을 짓고 홀로 외로워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누구나 ‘지금’ 속에 살고 있지만 진정 ‘지금’에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지극히 드문 것입니다. 그 아이러니가 참 놀랍습니다. 
 
    64.
    宗非促延 一念萬年
    종비촉연 일념만년
    근본은 빠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아 한 순간이 곧 만년이다.
 
    ‘근본’이라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도(道), 진리, 깨달음, 불법(佛法), 참나[眞我], 근원, 모든 것의 궁극, 영원히 변치 않는 것, 부동(不動)…….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지 이름일 뿐 실상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근본’이란 다름 아닌 바로 ‘지금’을 가리킵니다. ‘지금’은 매 순간순간의 현재를 가리키는 것이니, 승찬 스님의 말씀처럼, 빠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지요. 빠르다, 늦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감정 혹은 분별이 만들어내는 것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매 순간의 ‘지금’에 존재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그와 같은 모든 이원적(二元的)이고도 허구적인 분별로부터 놓여나게 됨과 동시에 ‘시간’이라는 관념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되어 진정 자유롭게,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영원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 모두는 이미 매 순간의 ‘지금’ 속에서 말하고 침묵하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으니, 우리는 근본을 떠나 있지 않으며, 우리 자신이 곧 근본입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 느낌, 생각들도 낱낱이 근본입니다. 우울도 근본이요 불안도 근본이며 잡생각과 망상도 근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이 이미 이대로 부처요 진리라는 말이지요.
 
   다만 한 가지, 승찬 스님이 이 신심명의 맨 처음에 하신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가려서 택하는 것만 그쳐라. 단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감정, 느낌, 생각들 가운데 어떤 것은) 싫어하고 (어떤 것은) 좋아하지만 않으면 막힘없이 밝고 분명하리라.”는 말씀처럼, 우리 안의 것들을 우리 스스로가 가려서 택하거나 버리는 일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스크린이 자신 위에서 펼쳐지는 온갖 장면들을 다만 있는 그대로 비추기만 할 뿐이듯이 말입니다. 즉, 우리도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지요. 단지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단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는 ‘근본’으로 돌아와 그것이 가지는 영원한 힘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습니다.
 
    65.
    無在不在 十方目前
    무재부재 시방목전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 온 세상이 바로 눈앞이다.
 
    진리 혹은 실상은 있다, 없다는 분별 속에 있지 않습니다. ‘있다’도 실상이요 ‘없다’도 실상입니다. 생멸법(生滅法)이 그대로 불법(佛法)이라는 말처럼, 일어남도 진리요 사라짐도 진리입니다. 강박과 긴장과 경직과 수치심과 불안과 잡생각 등등이 어느 순간 예고 없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 우리를 사로잡음도 진리요 불법이니, 그것에 저항하며 없애려고 하거나 극복하려고 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일체의 몸짓을 정지하고, 다만 그 순간에 존재하며 그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경험하라는 말입니다. 또 어느 순간 우리를 가득 채우는 편안함과 기쁨과 즐거움과 이완과 더할 나위 없는 행복도 다만 감사하며 누릴 뿐 그것을 잡아두려고 하거나 쌓아두려고 하거나 오랫동안 지속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단지 그 순간에 존재하며 그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경험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듯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할 때, 모든 것을 경험하지만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으니 우리는 언제나 새롭게, 처음처럼, 자유롭게, 평화롭게, 진정 행복하게 ‘지금’ 속에서 영원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대로 온 세상이 바로 눈앞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66.
    極小同大 忘絶境界
    극소동대 망절경계
    지극히 작은 것이 곧 큰 것과 같으니, 상대적인 경계를 모두 잊고 끊는다.
 
   그런 마음 안에서는 작다, 크다는 분별도, 아니 모든 상대적인 경계가 무의미해집니다. 작다 하든 크다 하든 그것은 단지 말에 불과하고 모든 것은 다만 있는 그대로일 뿐임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 속에서 일체 모든 분별을 잊고서 살아가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또한 모든 것을 분별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분별의 안과 밖의 경계마저 끊어져, 일체를 분별하되 그 어떤 것도 분별하지 않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萬緣俱絶(만연구절, 만 가지 인연이 다 끊어졌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안과 밖의 온갖 인연 속에 뒤범벅이 되어 살아가면서도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67.
    極大同小 不見邊表
    극대동소 불견변표
    지극히 큰 것이 작은 것과 같으니, 그 가장자리를 보지 못한다.
 
   또 이렇게도 말해볼 수 있습니다. ‘지극히 큰 것’은 도, 진리, 깨달음, 불법, 진아, 궁극, 근본, 근원, 무한 등을 뜻하고, ‘작은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 안에서 올라오는 소소한 감정, 느낌, 생각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둘은 정확히 같은 것이어서 그 경계선이 없다는 말입니다.
 
    68.
    有卽是無 無卽是有
    유즉시무 무즉시유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안에서 올라와 우리를 사로잡아버리는 강박과 불안과 긴장과 수치심은 분명히 ‘있는’ 것이지만,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온전히 그것에 자신을 내맡겨버리면 그것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곧 사라져버립니다. 사실은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모양으로 힘들고 괴로운 우리의 안팎의 삶 속에서 이런 순간을 단 한 번만이라도 경험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 마음 안에서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비약이 일어나, 있음과 없음에도 매이지 않고, 얻음과 잃음에도 구속되지 않으며, 삶과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됩니다. 단 한 순간 온전히 ‘지금’ 속에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이 만들어내는 모든 허구적인 분별로부터 영원히 놓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 곧 현존(現存)은 그토록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답니다.
 
    69.
    若不如此 必不須守
    약불여차 필불수수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반드시 지키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지금’으로 돌아와 보면, 모든 것은 다만 있는 그대로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취하고 버릴 것이 본래 없었고, 새롭게 얻거나 알아야 할 것도 없었으며, 그렇게 발버둥 치며 도달해야 할 곳도 아예 처음부터 없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한바탕 꿈을 꾼 것입니다. 오직 우리 마음 안에서 이원의 분별심 하나가 내려지는 것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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