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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거든 ㅡ 신심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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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5,971회 작성일 13-05-0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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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다.”라는 말로써 지극한 도(道)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안에서 올라오는 바로 ‘이것’임을 가리켰던 승찬 스님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4.
   欲得現前 莫存順逆
   욕득현전 막존순역
   도가 앞에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따라가지도 말고 거스르지도 말라.
 
   “도가 앞에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승찬 스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사실은 도란 이미 우리 앞에 나타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 안에서 올라오는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게으름이든 외로움이든 강박이든 불안이든 잡생각이든 망상이든 미움이든 우울이든 말더듬이든 대인공포든 무엇이든, 그 번뇌가 바로 보리요 중생의 모습 이대로가 바로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따로 찾을 것도 구할 것도 없는 것이지요. 지금 이대로의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가 찾고자 하고 구하고자 하는 ‘그것’―진리, 깨달음, 도, 해탈, 자유―이니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스스로 못견뎌하고 괴로워하며, 어떻게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달아나려고 몸부림칩니다. 우리가 얻고 싶어 하고 누리고 싶어 하는 자유나 깨달음 혹은 마음의 완전한 평화 같은 것은 지금 내 안에는 없고, 어딘가 다른 곳에 다른 모습으로 있을 것 같이만 생각되기 때문이지요. 이것을 미망(迷妄) 혹은 무명(無明)이라고도 합니다만, 어쨌든 우리는 그 미망을 따라 끊임없이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거부하고 저항하며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함으로써 도를 버리고 도를 구하며 진리를 버리고 진리를 찾는 어리석음과 괴로움을 되풀이 합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그 몸부림의 끝 어디에선가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리라고 철석같이 믿고서 말입니다. 이런 우리의 어리석음을 두고 자업자득이니 자승자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옛적에 연야달다(演若達多)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얼굴이 빼어나게 잘 생긴 사람이었는데,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얼굴을 잠시도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거울 앞에 앉아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잘 생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없이 행복해 하다가, 어느 순간 그만 미쳐 버립니다. 그리곤 ‘내 머리가 없어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리는데, 그때부터 그는 괴로움에 울부짖으며 온 거리를 떠돌면서 자신의 머리를 찾아다닙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는 자신의 머리를 못 봤냐고, 자신의 머리를 좀 찾아달라고 절규하다가, 어떤 스님으로부터 “네 머리는 너에게 있다.”는 말을 듣고는, 문득 ‘찾는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자 본래 아무 일도 없었음을 깨닫고는 편안히 자신의 길을 갑니다.
 
   이 이야기는 『임제록』에도 인용되어 “찾고 구하는 마음이 쉬어지니 아무 일도 없어졌다.”라는 유명한 말로 회자됩니다만, 사실은 본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내 머리가 없어졌다.”는 생각 하나가 자신을 사로잡자 그만 미친 듯이 ‘없는 머리’를 찾아 그토록이나 괴로워하며 떠돌아다니게 된 것입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안에는 자유도, 깨달음도, 도도 없다.”는 생각 하나가 우리를 사로잡자 끊임없이 목말라 하고 괴로워하면서 ‘없는 자유’를 찾아다니고 ‘없는 깨달음’을 구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아닙니다. 지금 이대로의 우리 자신이 이미 ‘그것’입니다. 그렇기에 찾고 구하는 그 마음만 내려놓으면 본래 아무 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려놓을까요? 다만 따라가지도 말고 거스르지도 않으면 됩니다. 무얼 따라가지 말라는 것일까요?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구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거스르지 말라는 것일까요?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이것’을 피하거나 외면하거나 저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라는 것이지요. 그때, 우리 눈앞에 본래 나타나 있었으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던 도가 비로소 우리 마음에 확연히 드러나게 되어 모든 목마름과 방황이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5.
   違順相爭 是爲心病
   위순상쟁 시위심병
   거스름과 따라감이 서로 다투는 것
   이것이 마음의 병이다.
  
   그래서 『달마어록』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맡기지 않고 사물ㅡ이때의 사물은 우리 내면의 사물, 곧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감정, 느낌, 생각을 가리킵니다ㅡ에 맡기기 때문에 취함과 버림이 없으며 거스름과 순응함도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물에 맡기지 않고 자신에게 맡기기 때문에 취함과 버림이 있으며 거스름과 순응함이 있다. 만약 마음을 열고 사물에 맡길 수만 있다면 이것이 이행(易行)이며, 저항하여 사물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 난행(難行)이다. 사물이 오면 오는 대로 맡겨 거스르지 말며, 떠나가면 가는 대로 좇지 말라. 이를 두고 도를 행한다 한다.”
   또 이런 선시(禪詩)도 있습니다.
 
   生時的的不隨生
   생시적적불수생
   死去堂堂不隨死
   사거당당불수사
   生死去來不干涉
   생사거래불간섭
   正體堂堂在目前
   정체당당재목전
 
   내 안에서 어떤 번뇌 망상이 일어날 지라도 적실히 그 일어남을 따라가지 않고
   그것들이 사라져 갈 때에도 당당히 그 사라짐을 좇지 않는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오고 감에 도무지 간섭하지 않으니
   정체(正體)가 당당히 눈앞에 있구나!
 
   6.
   不識玄旨 徒勞念靜
   불식현지 도로염정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헛되이 생각만 고요히 하려 애쓴다.
 
   그렇듯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이것’이 바로 도요 깨달음이요 자유요 해탈인 줄은 알지 못하고, 헛되이 ‘없는 도’를 찾고 ‘없는 깨달음’을 구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다만 찾고 구하는 그 마음만 내려놓으면 될 것을…….
 
   사실 우리 안에서 시시로 때때로 올라와 우리를 사로잡아 버리는 강박이나 불안, 우울, 외로움, 망상, 말더듬, 수치심, 대인공포 등은 우리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기 위해서 올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 어릴 적부터 받았던 모든 마음의 상처로부터 진정으로 치유해 주고 싶어서, 그리하여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사는 가운데 삶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아름답고 영원한 것들을 마음껏 누리게 해주고 싶어서 올라오는 ‘하늘의 메시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이것’의 실상입니다. 겉은 그렇게 초라하고 볼품없기 짝이 없지만 속에는 그와 같은 눈부신 보물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매 순간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 겉모습만을 보고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달아나고 저항하고 못견뎌하며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그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가 몹시도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외면하지 않고 껴안을 수만 있다면, 그 겉모습은 곧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그 안의 눈부신 보물들이 온통 우리를 감싸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모든 영혼의 목마름과 방황은 끝이 나고 깊은 평화가 우리를 가득 채울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이것’과의 단 한 번의 진실된 맞닥뜨림과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넉넉히 이와 같은 기적과 비약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 진실을 먼저 안 승찬 스님도 애틋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7.
   圓同太虛 無欠無餘
   원동태허 무흠무여
   원만하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건만,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이것’이 사실은 모자라는 것도 아니요 남음이 있는 것도 아니며, 초라한 것도 아니요 충만한 것도 아니며, 나쁜 것도 아니요 좋은 것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것일 뿐이건만
 
   8.
   良由取捨 所以不如
   양유취사 소이불여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본래 그대로 한결같지 못하다.
 
   어떤 것은 좋다, 마음에 든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따라 끊임없이 취하려 하고, 어떤 것은 나쁘다, 마음에 안 든다, 추하다는 분별을 따라 끊임없이 버리려고 함으로써 우리 안에 본래 가지고 있던 모든 아름답고 충만한 보물들을 다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곤 다시 목마름에 괴로워하며 ‘없는 보물’을 찾아다니고…….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온 ‘이것’이 바로 보물입니다. 우리 자신이 이미 보물입니다. 이 소중한 보물들을 스스로 버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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