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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ㅡ 신심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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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3,979회 작성일 13-04-0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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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심명은 전체 73수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 각각의 표현이 모두 다를 뿐 내용은 오직 ‘하나’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인 진실을 여러 측면에서 말하고 있을 뿐인 것이지요. 그 ‘하나’란 무엇일까요? 신심명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3.
   毫釐有差 天地懸隔
   호리유차 천지현격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다.
 
   몇 해 전 어느 날 지인의 소개를 받았다고 하면서 대구 모 대학 행정실에 근무하는 어떤 분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따로 도덕경 강의를 듣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 인사도 나누고 강의 시간과 장소에 관한 구체적인 얘기도 할 겸 한 번 만나기로 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며칠 후 만나기로 약속한 전통찻집에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막 자리에 앉는데, 그 분은 자신도 뜻밖이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근데 아까 학교를 나오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여교수님 한 분이 어딜 가느냐고 묻기에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자기도 가면 안 되느냐고 해서 얼떨결에 그냥 그러라고 했는데, 그 분이 와도 괜찮으시겠어요? 조금 이따가 여기 오기로 했거든요.”
   “그래요? 괜찮습니다.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웃으며 대답하고는, 강의를 듣고 싶어 하는 그 마음에 감사해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윽고 그 여교수님이 우리 자리로 다가 왔습니다. 그래서 일어나서 목례를 하면서 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 그 교수님께 잠깐 양해를 구하고는 하던 얘기를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맞은편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제 얘기를 듣고 있던 그 교수님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면서 절규하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만 하세요! 그만……하세요……!”
   갑작스런 상황에 깜짝 놀라며 하던 말을 멈추고 있는데, 그 분은 마치 봇물이 터진 듯 오래 쌓였던 자신의 감정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보고 젊어서 일찍 교수가 되었다고 부러워들 하지만, 저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차 안에서 울고 퇴근하면서도 차 안에서 혼자 얼마나 우는지 모릅니다. 사는 게 지옥이에요……. 제가 미국에 공부하러 갈 때에도 사실은 원해서 간 게 아니었어요. 교수하라고 떼밀리듯 갔고, 돌아와서도 모든 일에 모든 순간에 떼밀리듯 살고 있어요. 아, 돌이켜보면 제 인생 전체가 떼밀리듯 산 인생이에요! 이제는 지쳤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제 마음이 어떤지 아세요? 이 하루를, 이 아득하기만 한 24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숨이 컥컥 막혀 와서 눈 뜨기가 두려워요. 차라리 눈뜨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잠든 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앞으로의 내 인생도 계속 이럴 것만 같아서 죽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구요. 아, 선생님! 정말이지 사는 게 너무나 지긋지긋해요…….”
   말을 마치고서도 그 분은 한동안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윽고 조금 마음을 추슬렀을 때 제가 말했습니다.
   “교수님도 함께 공부하십시다. 도덕경을 공부한다지만 사실은 우리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할 텐데, 그렇게 공부를 해나가다 보면 어쩌면 교수님의 마음에 치유와 평화가 올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지역에서 먼 길 오시는 한 분과 함께 세 사람이 그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매주 한 번씩 두 시간에 걸쳐 저의 도덕경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두 달쯤 지날 무렵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던 어느 여름 날, 실제로 그 교수님의 마음에 근본적인 치유와 평화가 임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세 분을 앞에 두고 한창 도덕경 강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교수님이 제 말을 자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데요, 선생님. 제 삶에서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만 해결되면 제 삶은 정말 자유롭고 행복할 것 같아요. 모든 순간을 진정 나답게 살 것 같구요. 아, 이것만 해결되면……!”
   “그게 뭔데요?”
   “게으름이요…….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가 싶게 살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아무리 결심하고 다짐해도 한 순간 게으름 앞에 무너지는 나를 보면 정말 한심하고 절망스러워요. 오죽하면, 저는 밤에 잘 때 불을 못 꺼요. 눈이 감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책을 보다가 잠이 들어야 그나마 하루를 의미 있게 살았다는 실오라기 같은 느낌이라도 부여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그 분의 영혼은 정말이지 그 간절함으로 입술이 타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교수님이 힘들어하시는 그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그러자 그 분은 반색을 하면서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습니다.
   “정녕 그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어요!”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해보십시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단 한 번만 제대로 게을러 보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교수님은 자신을 게으르다 말씀하셨지만, 제가 보기에 교수님은 단 한 번도 진정으로 게을러 본 적이 없고, 그렇기에 게으름이 뭔지도 모르는 분 같습니다. 왜냐하면, 게으름이 찾아올라 치면 대번에 그것을 못견뎌하면서 언제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달아나고 극복하려고만 했지, 단 한 번도 게으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 한 순간도 게으름을 받아들여본 적이 없고 언제나 저항하고 거부하면서 그 바깥에서만 살려고 했던 분이 어떻게 게으름을 알겠으며, 어떻게 게으르다 하겠습니까. 그러니 이제 그 마음을 내려놓고, 게으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모든 노력을 정지하고, 스스로의 수고와 몸부림으로써 자유와 행복을 얻으려는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단 한 번만이라도 게으름을 받아들여 진정으로 게을러 보십시오. 그리하면 영원토록 교수님의 삶 속에서 게으름을 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않고 뚫어져라 바라보며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던 교수님은 마른 침을 한번 삼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사람이 성실해지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대번에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는 그 마음만은 놓아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그 마음마저 놓아버리면……그건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일이니까요!”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실제로 그 마음을 놓아보는 뜻밖의 경험을 교수님은 그 며칠 뒤에 하게 됩니다. 마침 그 주에 나흘간의 휴가를 받았는데,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감당할 길이 없어 어디 멀리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죽여야 그 지긋지긋한 게으름과의 만남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것이지요. 그래서 오랜만에 조금 들뜬 마음으로 배낭에 물이랑 가벼운 간식거리도 넣고 책도 한 권 넣고 그리곤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출발하려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이런! 하필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더랍니다. 어떡하나……이 비를 뚫고 어디를 가기도 그렇고……그렇다고 여기 이렇게 죽치고 있기도 그렇고……하는 순간에, ‘진정으로 한번 게을러 보라’는 저의 말이 생각나더랍니다. 그래서 ‘좋다, 기왕에 이렇게 된 것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도로 닫고는, 나흘 동안 정말로 아무 것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답니다. 인생 처음으로 제대로 빈둥거려 보고 제대로 게을러 보고 제대로 답답해본 것이지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교수님의 인생에서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는 그 마음을 진실로 내려놓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답니다.
 
   그렇게 시작하긴 했지만, 처음 이틀 동안은 너무 답답해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답니다. 조금의 시간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부여잡고서 늘 무언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들로 하루하루를 채우려고 몸부림치며 살아오다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 아득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다가 사흘째가 되니까 극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하는데, 온갖 생각이 다 들고, 이러다가 정말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신의 모든 것이 다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오더랍니다. 그런데도 그 분은 그것으로부터 달아나지 않았고, 또다시 예전처럼 쫓기듯 공허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잡지 않고 그냥 그 순간들을 받아들이며 그 속에 있었답니다. 참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그 분은 정말 잘 해주었습니다. 
 
   나흘째 되는 날 저녁에야 비로소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무더운 날씨 속에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무더움에 한참 짜증을 내다가, 수건을 몇 장 적셔서 냉동실에 잠시 넣어뒀다가 어깨랑 팔에 덮으면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렇게 했더니, 며칠 동안 켜켜이 쌓였던 무더위와 함께 무겁고 답답했던 마음들도 조금씩 사라지더랍니다. 그리곤 나흘간의 휴가가 끝나는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고, 괜스레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더랍니다.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언제나 끔찍이도 싫었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해서는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뤄놨던 일들을 자신도 미처 자각하지 못한 완전한 몰두 속에서 일사천리로 끝내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학교를 나오는데, 아! 얼마 만에 맛보는 존재의 상쾌함인지! 설명할 수 없는 희열 같은 것이 자신의 온 마음을 가득 채우더랍니다.
 
   그리곤 오래지 않아 그 분의 삶은 완전히 바뀝니다. 하루하루 눈부시게 달라져가는 자신의 마음과 삶의 얘기들을 강의 때마다 스스로도 놀라워하면서 말씀하실 때의 그 분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남들에게 먼저 편한 사람이 되어주면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편하게 대해 주겠지 라고 생각하고는 늘 편안한 사람이 되려고 안달했지만 외려 한없는 무거움과 힘겨움만 더해 갔었는데, 어느새 참 편한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고는 스스로 감동했던 일, 아침에 일어나기가 죽기보다도 싫고 출근할 때마다 차 안에서 울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부신 햇살과 차창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살아 있음과 세상의 모든 광경에 감사하며 전율하던 일,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칠 때마다 미국에서 같이 들어와 서울의 모 대학에 가있는 동료교수에게 전화를 해서는 몇 시간이고 한없이 쏟아놓던 하소연과 불평불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일, 더구나 자신이 마음 가는 대로 하지 못하고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남들을 신경 쓰며 거울 앞에서 오랜 시간 화장을 하거나 옷매무새를 살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싫고 귀찮았었는데, 이젠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이 기쁘고, 자신의 얼굴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화장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도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하던 그 환한 모습은 지금도 제 가슴 속에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을 힘들게 하던 그 문제와 단 한 번 마주하고 받아들인 것으로 그 교수님의 삶의 전부가 변한 것이지요.
 
   승찬 스님은 말합니다.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다.”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가 뭐냐 하면, 지극한 도가 뭐냐 하면,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안에서 올라온 ‘이것’입니다. 지금 이것! 바로 이것! 그것이 게으름이든 외로움이든 강박이든 불안이든 초라함이든 미움이든 우울이든 말더듬이든 공허든 대인공포든 무엇이든, 그 번뇌가 바로 보리요 그 구속이 바로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의 ‘이것’을 떠나지 마십시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이것’에 대한 모든 저항을 내려놓고, 다만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십시오.
 
   ‘이것’을 껴안는다는 것은 곧 자유를 껴안는다는 것이며,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영원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참된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속에서만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 진실을 먼저 안 승찬 스님이 우리에게 애틋하게 말합니다.
 
   “지금 ‘이것’을 떠나 다른 것을 구한다면, 지금 ‘이것’과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우리가 얻고자 하고 되고자 하는 ‘그것’과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다. 왜냐하면, 지금 ‘이것’ 안에 우리가 원하는 ‘그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 ‘이것’이 곧 ‘그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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