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 신심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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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5,405회 작성일 13-02-02 09:49본문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참 드물어요. 왜 그럴까요? 어떻게 하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이 가능할까요? 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라면 그것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우리는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인간의 궁극적인 의문 혹은 갈증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런 물음들을 가지고 이번부터는 중국 선종의 3대 조사인 승찬(僧璨) 스님이 쓰신 『신심명(信心銘)』을 함께 읽어 나가고자 합니다. 신심명은 146구 584자로 이루어진 사언절구(四言絶句)의 시문(詩文)인데, 선(禪)의 요체가 잘 나타나 있어서 중국에 불법(佛法)이 전래된 이후로 ‘문자로서는 최고의 문자’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글입니다. 진리란 시간을 뛰어 넘어 영원한 현재에 흐르는 것이어서, 1400여 년 전 수(隋)나라 때 쓰여진 이 글이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밝히는 밝은 등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승찬 스님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중풍―혹자는 그가 문둥병을 앓았다고도 말합니다―에 걸려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대 조사인 혜가(慧可)의 가르침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는 스님을 찾아가 절박하게 엎드리며 말합니다.
“스님, 저는 벌써 십수 년째 중풍을 앓고 있습니다. 전생에 제가 무슨 죄를 많이 지었는지 모르지만, 사는 게 너무나 괴롭습니다. 저의 죄를 씻어 주십시오.”
이에 혜가가 말합니다.
“좋다. 그 죄를 나에게 가져 오너라. 너의 죄를 씻어 주겠다.”
승찬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대답합니다.
“죄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게 없어졌나 보군! 너의 죄를 다 씻어 주었다. 이제 됐느냐?”
이 말에 승찬은 문득 깨달음을 얻습니다.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일까요? 깨달음이란 무엇일까요? 어쨌든 이날 이후로 승찬의 병은 점차 나아졌고, 몇 년 후에는 혜가로부터 법통을 이어받아 중국 선종의 3대 조사가 됩니다. 승찬은 은둔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그가 남긴 이 신심명은 지금도 영원한 행복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밝은 빛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至道無難 唯嫌揀擇
지도무난 유혐간택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가려서 택하는 마음만 내려놓아라.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곧 도를 깨닫기란 어렵지 않다, 영원한 행복에 이르기란 어렵지가 않다…… 신심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도가 무엇이기에 어렵지 않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도를 깨닫게 되면 (승찬 스님에게서 보듯) 우리의 마음은 모든 구속과 굴레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것은 곧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도가 무엇일까요? 노자는 『도덕경』1장에서 “도를 도라고 말하면 참된 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전혀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굳이 말로 표현해 보자면, 도란 ‘매 순간의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현재는 늘 변화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모든 사람들은 이미 현재에 존재하고 있고, 현재 이외에는 다른 어떤 순간에서도 존재할 수 없기에, 모든 사람들은 이미 도 안에 있고 도 자체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곧 모든 사람들이 이미 도를 깨달아 있다는 것이며, 이미 영원한 행복 속에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따로 도나 행복을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멀리 있지 않으며, 그것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행복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는 것, 아무런 불편함 없이 눈을 깜박이며 말을 할 수 있고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환한 햇살을 볼 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그들과 함께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출근하거나 학교에 가면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가로수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고, 새들의 날갯짓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꽃과 나무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피부를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고, 그 속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일을 할 수 있고, 아주 가끔씩이지만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다는 것, 밤이 되면 예쁘게 미소 짓는 환한 달을 볼 수 있고, 바로 그 곁에서 항상 함께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또 잠이라는 신비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곤 아침이 되면 다시 눈을 뜰 수 있다는 것!
그렇듯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속에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어떤 조건이나 상태에 속한 것이 아니며, 그것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속에 존재하기만 하면 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행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존재’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며, 따라서 삶에는 온통 행복할 것들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멋진 인생입니까.
또 살다 보면 외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아프기도 하고 그래서 울 수 있다는 것,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무슨 말을 할까 괜스레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다는 것, 때로 찾아오는 불안에 마음 스산해 하며 안절부절못할 수 있다는 것, 한없이 약해질 수도 있고 이런저런 강박에 사로잡혀 몹시도 힘들어할 수 있다는 것, 사랑하는 가족하고도 가끔씩 얼굴을 찌푸리며 싸울 수 있고,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며 그것 때문에 여러 날 괴로워할 수도 있다는 것, 문득 느껴진 자신의 초라함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한 순간 말을 많이 해버렸음에 몹시도 허허로운 가슴이 되어 씁쓸해 하기도 한다는 것, 또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몹시 우울해지기도 하며, 너무 많은 생각들 때문에 불면의 밤을 하얗게 보내기도 한다는 것!
이 모든 일들 또한 우리가 살아 있기에 경험하게 되는 존재의 다양한 모습들이요 에너지들이며 소중한 순간들입니다. 그것 하나하나가 오직 지금 이 순간의 현재 속에서 일어나고 있기에 도 아님이 없는 것이구요. 그러니 지극한 도란 얼마나 쉽습니까. 우리가 이미 그 순간 속에 살고 있고, 매 순간 그것을 호흡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따로 찾거나 구하거나 얻으려고 애쓸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중용』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도야자, 불가수유리야. 가리, 비도야.
도라는 것은 잠시 잠깐이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단 한 순간도 현재를 떠나 있지 않고, 도를 떠나 있지 않으며, 그렇기에 영원한 행복 속에 이미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참으로 드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오직 간택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저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만 하면 될 뿐인데, 우리는 그 순간을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간택하며 무언가를 이루려고만 합니다.
살다 보면 사무치게 외로울 때도 있고 우울할 때도 있으며 마음이 참 힘들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그냥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좀 사무치게 외롭고 우울하며 힘들면 될 것을, 우리는 그것을 못 견뎌 하며 끊임없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달아나려고만 한다는 것이지요. 그 순간에 일어난 그 외로움이 바로 도(道)요, 우울이 바로 불법(佛法)이며, 그렇기에 진실로 그 힘겨움을 받아들일 때 오히려 그것에 물들지 않는 전혀 새로운 힘을 그 안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은 그저 그런 것들을 버리려고만 한답니다. 또 불안이 밀려와 안절부절못하게 될 때에는 그냥 좀 불안해 보세요. 안절부절못하면 어때요. 쩔쩔매는 것도 삶에 있어서 소중한 경험이랍니다. 사람이 언제나 당당해야 하나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무한대의 괴로움을 불러온답니다. 불안도 ‘나’의 소중한 일부인 걸요. 비단 불안뿐이겠습니까.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못나 보인다구요?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듬으며 사랑해 줄 수는 없나요? 왜 꼭 잘나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래야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또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뇨, 오히려 정반대랍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보듬어줄 때 남들도 더 없이 진실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오게 된답니다.
또 나약한 자신이 싫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긴장하고 경직되어 말꼬리를 흐리는 자신이 부끄러우며, 남모르는 강박 때문에 많이 힘들 뿐만 아니라 그것이 들킬까봐 두렵다구요?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세요.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은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순간을 거부하고 저항하면서 다른 것을 구하는 바로 그 마음 곧 간택하는 마음 때문에 밀려온답니다. 그 마음을 내려놓고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되어 보세요. 그러면 그토록 갈구하던 마음의 평화와 자유가 우리 안을 가득히 채우게 된답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아요.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란 정말 어렵지가 않습니다. 다만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만 하면 됩니다.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이 이미 도(道)요, 영원한 행복 또한 바로 지금 이 순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요.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간택한다는 것인데, 그렇듯 간택함을 통하여 무언가를 이루려는 그 마음만 내려놓으면 존재 전체가 자유요 행복이랍니다. 그렇기에 승찬 스님도 애틋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오직 간택하는 그 마음만 내려놓아라. 그리하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즉시 얻게 되리라.”
그러나 사실 새롭게 얻어야 할 것은 본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이미 처음부터 ‘그것’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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