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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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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4,706회 작성일 13-01-0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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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한때 거창에서 3개월 동안 기간제 교사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대구에서 거창까지 매일 출퇴근할 수가 없어 학교 가까운 곳에 자그마한 방을 하나 얻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학교가 시내로부터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 있어서 주말이 되면 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뛰놀며 함박웃음을 웃으며 행복하게 시골 논두렁길을 걷곤 했습니다.
 
   그 날도 늦은 저녁을 먹고 시골 내음 가득한 밤바람을 쐬자며 밖에 나왔는데,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딸아이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자그마한 발걸음을 떼며 뛰기 시작합니다. 골목길은 제법 어두웠지만 가로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서 그저 정겹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저만큼 뛰어가던 딸아이가 갑자기 멈칫하며 멈춰섭니다. 한참을 기분 좋게 뛰어가던 녀석의 발밑으로 뭔가 시커먼 것이 따라 붙었거든요. 가로등 불빛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림자라는 걸 처음 본 녀석은 흠칫하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것을 떼어내려고 얼른 몇 발짝을 옮겨 봅니다. 그러나 그 시커먼 것이 조금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 오자 이번에는 약간 두려운 얼굴이 되어 빠른 걸음으로 달립니다. 그러면서 흘깃 흘깃 발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만큼 더 집요하게 달라붙는 그것에 점점 무서움이 더해갔는지 딸아이는 그만 으앙 하고 울어버립니다. 그래서 제가 달려가 녀석을 깊고 따뜻하게 안으며 어르며 가만 가만히 달래어 줍니다. 그제서야 녀석은 조금 안심이 되는 듯 울음을 그치면서도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 무서운 것이 또 다시 자신을 따라오지 않을까 하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딸아이는 그렇게 자신의 그림자와의 첫 만남에서 혼비백산이 된 듯했지만, 저와 아내에게는 그 모든 모습들이 그저 귀엽고 예쁘기만 해 내내 얼굴 가득 웃음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그림자에 놀라 달아나던 그 예쁜 모습이란! 그런데 그렇게 잠시 아빠 품에 안겨 있던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환한 얼굴이 되어 다시 내려달라고 보챕니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딸아이는 다시 냅다 뛰는데, 이번에는 그림자가 자신을 따라 와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무엇이 그렇게 신이 나는지, 뛰어가는 딸아이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고요한 골목길에 가득히 울려 퍼집니다.
 
   한갓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서도 무서워 달아나는 것과 같은 일은 비단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어린 아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필자가 오랫동안 도덕경을 강의하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이건 적은 사람이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그들 속에도 미처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심리학적 용어로는 ‘상처받은 내면아이’라고도 합니다만, 육체적으로는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 속에도 어릴 적 부모나 환경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성장이 멈춘 이 어린아이가 있어서, 마치 제 딸아이가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도 무서워서 달아나던 일과 똑같은 일들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대인관계가 힘들다며 괴로워하던 어떤 아줌마는 다섯 살 난 자신의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데려오는 일조차 무한히 힘들어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손을 잡고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주치게 되는 이웃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며, 또 어린이집에서 만나게 되는 또래 아줌마들과 어떻게 눈길을 주고받아야 할지가 몹시도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저 그런 것들로부터 달아나고만 싶었던 것이지요. 심지어 어떤 아줌마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자신에게로 향한 행인의 눈길 하나에도 너무나 소스라치게 놀라고 긴장한 나머지 그만 걸음걸이마저 엇갈려버려, 손과 발이 동시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며 울먹였습니다.    
 
   점심 식사 후의 휴식시간이 너무 길다며 괴로워하다가 일을 그만 둔 청년(왜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휴식시간 동안 함께 둘러앉은 동료 직원들 사이에서 눈길을 어디에 둬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도 있었고, 낯선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그 어색함에 대번 얼굴이 붉어지고 손에 땀이 나서 너무나 힘든다며 호소하던 젊은이 얘기도 들었으며, 나이 많은 직상 상사가 지나가면서 던진 “점심식사 하셨습니까?”라는 평범한 한마디 말에도 안절부절 못하며 한없이 말꼬리를 흐리던 사십대 후반의 중년 남자의 상처도 보았습니다. 오염공포가 자신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며 울부짖던 대학생과, 겨드랑이 냄새 때문에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해 심한 대인기피증에 빠져 우울해하던 건장한 체격의 청년과, 남들이 어떻게 볼까 두려워 바로 앞에 놓인 물컵조차 손으로 잡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비참해 하던 예쁘장한 얼굴의 아가씨도 만났습니다. 아, 얼마나 많은 가슴 아픈 사연들이 있는지요! 그런데 그 모두가 자신의 그림자가 무서워 달아나던 제 딸아이의 모습과 너무나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간곡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린아이가 한갓 자신의 그림자를 무서워하며 달아난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도 수치스러운 일도 창피한 일도 아니듯이, 끊임없이 남들을 의식하며 아주 사소한 일에도 긴장하고 경직되며, 말을 더듬고, 손에 땀이 나며, 얼굴이 붉어지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힘들어하며, 선택을 잘 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시도 때도 없이 강박이 나타나며,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벌벌 떨며 안절부절 못하는 그런 모습들이 결코 부끄러운 일도, 수치스러운 일도, 창피한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그럴 뿐이요, 그냥 순간순간 그런 일이 일어날 뿐인 것이지요. 우리의 삶이 괴롭고 고통스럽고 불행하게까지 여겨지는 까닭은 그런 것들이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하며 거부하고 외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만이라도 마음을 돌이켜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껴안아 주며 있는 그대로 경험해 보면, 그것들은 적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고 깊이 성장시켜 주며 온전케 해주고 싶어서 찾아온 친구요 벗이며 전령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요, 단 하나라도 그냥 놓쳐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그래서 이번에는 이런 이야기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일하고 돌아온 중년의 어떤 사내가 저녁을 먹고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 낮에 자신이 일했던 밭으로 나가 봅니다. 이제 막 돋아나기 시작한 생명의 싹들이 너무나 예쁘고 또 기적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다시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몸도 많이 피곤했지만, 그래도 사내는 그 모든 것들을 사랑 가득한 눈으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동네를 빠져나와 자신의 밭이 있는 언덕길로 마악 접어드는데, 발밑에서 무슨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문득 내려다보니, 어둠 속에서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듯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스라치게 놀란 사내는 기겁을 하며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나 저만큼 달아납니다. 그리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뒤를 돌아보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뱀은 어둠 속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자신이 후다닥 달아나는 몸짓에 놀라 뱀도 잽싸게 사라졌을 법한데도 말입니다. 이상하다 싶어 멀찍이 서서 뱀을 향해 돌멩이를 하나 던져 봅니다. 그래도 꿈쩍 않자 이번엔 몇 발짝 다가가 흙 한 줌을 집어 던져 봅니다.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제서야 자신이 뭔가를 잘못 봤구나 싶어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뱀이 아니라 밧줄이었습니다. 어둠 속이라 밧줄을 뱀으로 착각했던 것이지요. 사내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조금 전까지 뱀이라 여겨 무서워 달아났던 그것을 손으로 집어 멀리 풀숲으로 던져버립니다. 다른 누군가도 자신처럼 놀라는 일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싶었던 것이지요.
 
   우리 안에서 부스럭거리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멀리 달아나려 하는 강박, 긴장, 말더듬, 불안, 우울, 외로움, 우유부단, 오염공포, 초라함 등도 사실은 뱀이 아니라 밧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상처가 우리 눈앞을 가려, 아무것도 아닌 밧줄을 뱀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지요.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뱀이 아니라 밧줄일 뿐입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도 우리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다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달아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으로부터 달아나서는 삶에 있어서 진실로 소중한 것들을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답니다.
 
   여기, 13세기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인 루미Rumi가 쓴 아름다운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여인숙
 
   이 존재, 인간은 여인숙이라
   아침마다 새로운 손님이 당도한다
 
   한 번은 기쁨, 한 번은 좌절, 한 번은 야비함
   거기에, 약간의 찰나적 깨달음이
   뜻밖의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들을 맞아 즐거이 모시라
   그것이 그대의 집안을
   장롱 하나 남김없이 휩쓸어 가버리는
   한 무리의 슬픔일지라도
 
   한 분 한 분을 정성껏 모시라
   그 손님은 뭔가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 내면을 비워주려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
 
   암울한 생각, 부끄러움, 울분, 이 모든 것을
   웃음으로 맞아
   안으로 모셔 들이라
 
   그 누가 찾아오시든 감사하라
   모두가 그대를 인도하러
   저 너머에서 오신 분들이리니
 
   필자는 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새해의 다짐을 엊그제 한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벌써 그 끝에 와있음을 자주 경험하곤 합니다. 그래도 삶이 우리에게 축복인 것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시간들이 ‘지금’이라는 이름으로 늘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배움들 중에 특히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소중한 배움들 속에서 하루하루 우리의 마음과 삶이 진실로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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