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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정한 힘은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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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4,900회 작성일 12-02-0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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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발행되는 월간 잡지 최근호에 실린 저의 글입니다.)

 
   오늘은 가볍게 넌센스 퀴즈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독자 제위께서도 스스로 답을 한번 해보시라.
   넌센스 퀴즈는 이렇다.

   “우리나라 5천 년 역사 가운데 가장 획기적이고 위대한 사건 하나만 고른다면?”

   사람들과 편하게 둘러앉은 자리에서 이런 퀴즈를 내면 모두들 골똘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이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꼽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건조와 명량대첩을, 또 어떤 사람은 고려시대 묘청의 서경천도를 얘기하기도 한다. 아니, 아니, ‘넌센스’ 퀴즈라는 것을 환기시키면 그제서야 환한 얼굴로 모두들 서로를 바라보며 한 번 웃고는 “넌센스가 더 어렵던데…”라며 다시 답을 찾는 재미있는 얼굴들이 된다.
 
   이 넌센스 퀴즈의 정답은 뭘까?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사실이야말로 우리나라 5천 년 역사 가운데 가장 획기적이고 위대한 사건인 것이다. 내가 없다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있기에 사랑도, 관계도, 의미도, 그리움도, 눈부신 햇살도, 계절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도 있고, 내가 있기에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는 바로 ‘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나’는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 곧 지금 여기에서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고, 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당당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분명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자비롭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충만하기도 하고 초라하기도 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나’의 전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강하고 당당하고 충만한 나, 스스로에게 만족과 흡족함을 주고 남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나’가 되기를 바라고 그런 자신을 추구하면서, 부족하고 초라하고 못난 자신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저항하고 거부하며 부정하려고 한다. 그렇듯 ‘나’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버리고 다른 하나는 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하지 말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가 ‘나’라면, 내 안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도 다 소중하고 중요하다. 그러니 ‘나’를 부분적으로 살지 말라. '나'의 전부를 받아들이고 ‘나’를 전체적으로 살 때, 썩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삶의 진정한 힘도 내 안에서 솟구쳐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진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노자는 도덕경의 곳곳에서 이렇게 말한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내 안에 있는 수컷성[강함, 당당함, 동(動), 적극성]을 알면서도 암컷성[부드러움, 약함, 정(靜), 수동성]을 지키면 내 마음이라는 천하를 비옥하게 적시는 시냇물이 되고, 그렇게 되면 영원히 변치 않는 참된 덕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밝음[사랑, 기쁨, 여유, 분명함]을 알면서도 어둠[미움, 외로움, 상처, 우유부단]을 껴안으면 ‘나’라는 천하가 온전히 질서잡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참된 덕이 ‘나’와 어긋나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영화로움[충만, 지혜, 완전함]을 알면서도 욕됨[부족함, 초라함, 무지]을 버리지 않으면 모든 참된 생명성이 비롯되는 골짜기가 되고, 그렇게 되면 참된 덕이 언제나 내 안을 가득 채우게 된다.

   노자는 또 이렇게도 말한다.

   不出戶, 知天下. 不窺牖,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문 밖을 나가지 않고 천하를 알며, 창문으로 엿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를 아니,
   그 나감이 멀면 멀수록 그 앎은 더욱 적어진다.

   진실로 그러하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문 밖을 나가지 않고도 삶의 완전한 질서를 알게 되며, ‘나’라는 창문 밖을 기웃거리지 않고도 모든 참된 것들을 보게 된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1)라고도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만 지금의 ‘나’를 떠나 다른 어떤 곳에서 삶의 진정한 힘과 평화를 얻고 싶어 한다. 아니, 그렇지 않다.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삼조(三祖) 승찬 스님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는가.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가려서 택하지만 말아라.
   다만 (내 안의 어떤 것은) 미워하고 (어떤 것은)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

   진정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다. 모든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 안에 있다. 영원히 변치 않는 무한의 것이 이 보잘 것 없는 유한의 존재 안에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내가 아니라 남이 되려고 하고, 지금이 아니라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 스스로 무거운 짐 지며 괴로워하곤 한다.
 
   아니, 지금을 떠나지 않고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날 때, 우리가 늘 꿈꾸어 오던 영혼의 자유와 평화, 삶의 진정한 힘, 영원한 행복은 어느새 나의 것이 되어 있음을 문득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내가 ‘나’를 온전히 만날 때 남도 진정으로 만날 수 있으며,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 남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억하자, 삶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진정한 열쇠가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내 안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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