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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 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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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4,579회 작성일 06-02-0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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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성탄절을 전후한 매서운 추위와 함께 또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지난 88년에 졸업한 이래로 때마다 찾아와 자주자주 그 넓은 품안에 푸근히 안기곤 하는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앉아 가만히 지난 한 해와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올 한 해도 여느 때와 같이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참 많은 감사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꼭 10년 전, 그러니까 1994년 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 이래로 어쩌다 보니 저는 가슴 속에 상처와 아픔과 눈물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과 함께 그 아픔과 힘겨움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그들 가슴에도 '평화'가 찾아오는 감사한 일들이 올 한 해에도 참 많았습니다.

    '말더듬'을 고치기 위해 대학도 포기한 채 7∼8년을 눈물겹도록 돌아다니다가 부산 도덕경 모임에 인연되어, 말더듬을 고치기 위한 일체의 노력을 정지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 달간의 '실험'을 통하여 비로소 말더듬으로부터 빠져나와 자기 자신에 대해 웃기 시작한 ○○○님, 태어날 때부터 병약한 몸으로 태어나 39년간을 그 병으로 인해 괴로워하면서 자신의 인생마저 한없이 짓눌려 살다가, 마침내 "고통, 그것이 바로 진리였습니다!"라는 말로써 자신의 그 오랜 굴레와 고통들을 툴툴 털어버리고 나온 ○○○님, 30대 후반에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면서부터 한 순간 잿빛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인생을 어쩌지 못해 15년이 넘도록 목말라 하며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그 오랜 갈애(渴愛)를 끝내고선, 50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행복하다"고 말하기 시작한 ○○○님, 20대 청춘이 다 가도록 '나'라는 것에 짓눌려 옴짝달싹도 못하던 한 청년이 두 달간의 '실험' 끝에 조금씩 자신을 믿기 시작하면서, 아직은 여전히 삶에 대해 불안하고 쭈뼛거리는 모습이지만, 그런 모습인 채로 세상과 자기 자신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 내딛기 시작한 ○○○님, "'시선공포'라는 엄청난 삶의 무게와 힘겨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친 지난 13년간의 고통은 그것을 피하지 않고 맞닥뜨린 단 3시간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라며 어느 날 문득 '시선공포'로부터 빠져나와서는, 어느 모임 날 둘러앉은 자리에서 또다른 모양으로 힘겨워하는 한 사람을 오히려 위로하며 담담히 자신의 지난(至難)했던 삶의 얘기들을 들려주던 ○○○님, 가슴 속에 항상 감당할 길 없는 분노와 억울함을 지닌 채 1년 365일 가운데 365일을 술을 마시며 '살아있음' 자체를 숨막혀 하다가 어느 날 문득 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선생님! 제 가슴 속에서 그 분노와 억울함이 사라졌어요!" 라며 화알짝 웃던 ○○○님……. 아, 그밖에도 많은 그 모오든 감사한 일들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문득 이렇게 쓰고 보니, 읽기 나름으로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글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만, 아뇨, 저는 단지 제 가슴 속에 있는 감사한 일들을 한 해를 돌아보는 이 마지막 순간에 조금 글로 표현해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언젠가 제게 이렇게 말해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김선생님은 참 보람되시겠습니다."
    "왜요?"
    "늘 그런 일을 하시니까요…."
    그때 저는 그 분께 이렇게 말씀드린 기억이 납니다.
    "아뇨, '보람'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보람'이 아니라,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삶과 자기 자신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힘겨워하는 사람들과 인연되는 것도 감사한 일이요, 그들이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무거웠던 짐들을 내려놓고 자신의 일상(日常)과 삶 속으로 힘있게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감사한 이야기들을 올해에는 전혀 <쓰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39년 동안을 병약한 몸으로 살아온 ○○○님의 눈물겨운 이야기와 그 고통으로부터 어느 순간 문득 빠져나온 감동적인 이야기는 "고통, 그것이 바로 진리였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그 분이 직접 쓴 글을 제가 받아놓기까지 했으면서도 어찌된 영문인지 몇 달이 지나도록 교정(校正)을 보지도, 전후(前後) 이야기를 정리하지도 못해 여기 이 <비원단상>에 올리지 못했으며, 그밖에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다시 읽는 도덕경>을 비롯한, 써야 하고 또한 쓰고 싶은 많은 글들을 저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습니다. 다만 <질의 응답> 방에 올려진 몇몇 분의 질문에 답답하리만큼 늦게 답을 드린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래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올해는 <글>이 참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쓰고 싶고 또 써야 한다는 마음은 언제나 굴뚝 같았지만, 그러나 그런 마음과는 달리 전혀 글이 되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올 한 해 저는 자꾸만 '늑대소년'이 되어갔습니다. 어느 산골 마을에 양치기 소년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소년이 들판에서 양을 돌보다가 문득 심심하다는 생각에 장난기가 발동해서는, "늑대야∼! 늑대가 나타났다!" 라고 외칩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진짜 늑대가 나타난 줄 알고 부랴부랴 삽이랑 곡괭이를 들고 소년에게로 달려오지만, 이내 그것은 한 철없는 소년의 장난기어린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그 소년을 크게 꾸짖는 것으로 그냥 발길을 돌이키지만, 그러나 거듭된 소년의 '거짓말'은 정작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마을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소년의 비명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이 홈피에 자주 글을 올리겠다고 여러 번 약속을 하기도 하고 다짐도 했습니다. 최근엔 어느 산골 마을에 계신 분이 <질의 응답> 방에 '답답한 마음에…'라는 제목으로, 언제쯤 도덕경 18장 이후의 책이 나오느냐고 물으셨을 때 '약속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제가 글을 올리면서, 적어도 한 달에 한 편 이상씩은 홈피에 글을 올리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 그리고 저 자신, 이 약속만큼은 꼭 지키겠다고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며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 그것 또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게 저의 '거짓말'은 올해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2004년 한 해를 보내면서 이제 다시 제가 여러분께 '약속'을 한다 한들 어느 누가 제 말에 귀기울이겠습니까.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 자신과 여러분께 다가오는 2005년엔 '오프라인' 만큼이나 '온라인'에서도 더욱 더한 정성과 사랑과 마음을 쏟겠다고 다시 한 번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해봅니다. 저 먼 산골 마을에서뿐만 아니라 이 홈피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의 성원과 고마움에 새해엔 꼭 지극정성으로 보답해 드리겠다구요. 두고 보십시오. 저 자신, 새해는 '다작(多作)의 해'로 정해서, 시간을 얻든지 못 얻든지 끊임없이 쓸 작정입니다.

    또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면,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비원단상>의 글을 좀 더 다양한 장르로 써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왜 지금까지 저는 오직 한 가지 톤(tone)만을 고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밝고 명랑하며 산뜻한 '단상(斷想)'들이 수시로 떠오르건만, 왜 그런 얘기들을 경쾌한 리듬조로 가볍게 써내려 갈 생각들을 못했을까요. 그것은 아마 '하나 더하기 둘은 셋'이라는 것이 한 번 입력되기만 하면 평생 그런 줄로만 하는, 우직하리만큼 단순한 저의 성향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어쨌든 이젠 여기 이 <비원단상>에 삶의 '질적인 변화'를 맞은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때그때마다 떠오르는 '단상(斷想)'들을 놓치거나 미루지 않고 알뜰히 써서 올올이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특히 요즘 새롭게 제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성경 속에서의 다양한 비유와 그 번뜩이는 지혜들을 '성경 이야기'라는 테마로 묶어 꾸준히 연재할 생각입니다. 물론 우선 도덕경 18장부터 빠른 시일 안에 올릴 거구요. 아, 정말입니다, 새해에는 많이많이 쓸 것입니다.

    그리고 <질의응답> 방의 질문에 대해서도 빠른 답변 드릴 것을 다시 한 번 약속합니다. 그동안 삶의 다양한 의문과 고민들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그분들께 답변을 드리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느꼈음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답변이 조금이나마 여러분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새해엔 더욱 정성껏 답변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자리에서 이토록 가슴 설레고 벅차보기도 참 오랜만입니다. 제가 이런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그동안 다양한 모양으로 저를 질타해 주시고 저를 돌아보게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새해엔 여러분이 바라는 모든 일들이 다 활짝 피어나고 이루어지며, 여러분의 가정에도 항상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끝으로, '말더듬'으로부터 빠져나온 이래로 하루하루 더 예뻐질 뿐만 아니라, 모임에 나와선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힘겨움과 그 마음의 짐들을 조금씩 나눠지기 시작한 ○○○님이 자신의 엄마에게 보낸 아름다운 편지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말더듬으로부터 빠져나왔다는 것은 단순히 그 '문제'로부터만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새롭게 열려가고 가벼워지며 마침내 자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이사야 65:17~18) 라는 성경 말씀처럼, 이제 그는 자기 자신과 삶을 새롭게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픔과 눈물과 고통이 많았던 만큼 감사와 은혜와 기쁨이 잔잔하고도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는 삶을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그의 힘겨웠던 삶의 얘기들을 한겨울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 나누듯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만, 우선은 그의 편지만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고맙습니다.


    *   *   *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태어나 처음으로 편지를 써 본다.(그냥 평소 하던대로 반말 하께)
    올 2월에 직장을 그만 뒀으니까, 집에서 쉰지 벌써 10개월째네.
    방송대 공부랍시고 하고는 있다지만, 노는 딸 보고 있자니 괜시리 안쓰러워지는 엄마 맘 내가 안다~
    있잖아,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내 맘을 모른다는 생각에 거의 모든 고민을 엄마한테 얘기 안 하고 혼자서 삭이고 살았었다?
    그런데 집에서 엄마랑 같이 있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잖아. 그러면서 안 건데, 엄마랑 내가 이렇게 닮은 점이 많고 또 엄마가 내 맘을 이렇게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동안 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던 걸까?
    마치 딴 세상에서 살았던 것 같다.
    친구들하고 얘기할 때조차 이렇게 편한 적은 없었던 거 같다.
    옛날 수학여행 가서도 집에 전화하는 게 쑥스럽고 이상해서 전화도 안 걸었던 내가 엄마를 못보고 외출한 날엔 꼬박꼬박 전화해서 엄마랑 수다 떠는 거 보면 내 참 많이 변했제?
    회사 그만두길 잘 한 거 같제?(라고 말하면 무슨 소리고!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겠지만^^)
    그동안 돈은 못 벌었지만, 난 엄마를 얻어서 참 뿌듯하다~
    식구들이 깊게 잠든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준비하고 출근해서 오후 5시쯤에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혼자 저녁 드시고 집안일 하다가 흥미도 없는 TV 보면서, 늘 늦게 들어오는 가족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피곤해서 주무셨을 엄마를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프다.
    내가 있잖아, 집에서 종일 지내다 보니까 그동안 엄마가 어떻게… 지냈는지 이제야 알았다.
    몰라서 미안하다….
    내가 늦잠을 자서 아침은 못 챙겨주지만, 엄마 퇴근하고 올 때 내가 문 열어줄 때마다 수줍게 반가워하는 엄마! 한 번씩 새벽 3시가 넘어도 잠이 안 와서 주방을 어슬렁거리며 차 마시고 있으면, 엄마도 깨서 잠이 안 온다며 같이 얘기했던 시간들!
    엄마가 이른 새벽 잠 못드는 날이 많았다는 것도 그때야 알았고….
    엄마 시집와서 고생한 얘기, 회사 사람들 쌍욕해가며 흉보던 얘기, 혼자 있어 심심할 땐 부침개 부쳐 먹으면서 보내라는 얘기 등등 정말 사소한 얘기들이었는데, 엄마랑 얘기할 때면 늘 유쾌한 웃음이 나온다?
    엄마, 요즘엔 이런 생각한다.
    그나마 엄마가 5년 전부터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얼굴에 생기가 돌아 그 점에서는 감사하지만, 관절염 있는 손가락으로 일하러 나가는 엄마를 생각하면, 자식이 되어가지고 용돈 드려가며 편하게 해드리지 못해 내가 참 미안하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자식 용돈 받아가며 편하게 계시게 하는 게 효도인지, 아님 용돈 드릴 형편은 못되지만 이렇게나마 엄마 친구 해주는 것이 효도인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엄마, 이젠 직장을 구할려고 한다.
    내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 바빠질 지도 모르는데, 그 전처럼 고된 일 하고 와서 얘기할 사람 없이 혼자 계실 거 생각하면 ㅡ 물론 요즘엔 아빠가 가끔씩 일찍 들어오실 때도 있지만 ㅡ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이젠 나의 우선순위는 <가족>이므로 엄마 얼굴 못 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면 전화라도 자주 하께.
    집에서 있으면서 외롭고 심심한 내 심정, 친구는커녕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해 그 점 때문에 더욱 외로웠는데, 그 마음을 엄마가 알아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내 맘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를 거야.
    다른 딸처럼 야무지질 못해서 미안, 참 미안.
    무엇보다 건강해서 오래오래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고, 이제는 자식 뒷바라지 그만하고 나에게 기대세요!(정신적으로다가…)
    엄마…… 알지?

    엄마의 제일 친한 친구, 딸 ○○○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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