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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동산사무소 부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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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5,739회 작성일 06-02-0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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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무척 오랜만이죠?
    <오연옥씨 이야기>를 들려드린 이래로 벌써 많은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어느새 이렇게 많은 시간들이 흘렀나 싶기도 합니다만, 그동안에도 저는 참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인연들과, 많은 삶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지리산에 들어갈 때부터 저 자신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감사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제게 인복(人福)이 많다는 겁니다. 내면의 허허로움을 견디다 못해 교직(敎職)을 그만두고 지리산으로 들어갈 때에도, 어떤 분의 소개로 몇 해 전부터 지리산으로 들어와 공부와 수행을 하시던 이선생님이란 분을 만났는데, 이 분은 진리를 알고 싶다는 저와 나눈 몇 마디 말에 사흘 동안을 온 산을 뒤지다시피 해가며 제가 기거할 토굴을 함께 찾아주시기까지 했습니다. 얼마나 고맙던지요! 그때 이후 지금까지 저는 얼마나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지요! 그 벅찬 감동의 순간들을 잊을 수도 없고,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어느 부동산사무소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두 분과의 만남과 인연을 생각하면 지금도 제 가슴은 감사와 감동으로 출렁입니다.

    작년 11월의 어느 날 저와 일찍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知人)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부동산사무소를 함께 운영하시는 부부가 있는데, 그분들을 좀 만나봐 달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두 사람이 이혼을 하려 하는데, 그 전에 자신의 제안과 설득으로 저와 함께 도덕경(道德經) 공부를 한 번 해보기로 했답니다. 특히 아내편에서 남편이랑은 이제 더 이상은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어 이미 이혼도장을 찍어 놓았고, 그런데 남편이 결코 이혼은 안된다며 달리 방법을 모색해 보자고 하니,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자신의 제안대로 저와 함께 공부를 한 번 해보기로 하되, 그러고 난 이후에도 별 소용이 없다면 그땐 서로가 미련없이 헤어지기로 했다면서요.
    이 지인(知人)은 제가 지난 95년도부터 대구 삼덕동에 있는 '흙마당'이라는 전통찻집에서 <논어(論語)>를 강의할 때 인연된 사람인데, 그 자신도 내적인 갈증과 방황으로 '아봐타 코스'를 받기도 하는 등 정신적인 추구가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부부도 사실은 여러 가지 많은 '자아[眞我] 찾기 프로그램'을 받아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여간 저는 그렇게 그 부동산사무소 부부를 처음 만났는데, 그때가 목요일 저녁 무렵이었고, 그러면 다음 주 월요일부터 공부를 시작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사모님께서 단호하게 안된다는 겁니다. 내일 아침부터 당장 해달라는 거예요. 사모님의 마음이 단 하루라도 지체하고 싶지 않을 만큼 참 다급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다음 날부터 부동산사무소에서 매일(월·화·목·금요일)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부동산사무소 일을 시작하기 전에 도덕경(道德經)을 펼쳐들고, 자기 자신과 <마음>을 들여다 보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부하기로 한 첫날 아침 일찍 부동산사무소에서 그 두 분과 저 그렇게 세 사람이 마주 앉았을 때 사모님께서 문득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사실 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참, 저 자신이 돌이켜 봐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이 사람 제 남편이 좀 문제가 많은 사람이거든요. 어떻게든 이 사람을 잘 좀 가르쳐 주셔서 변화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어쨌든, 공부를 해보십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공부'가 시작되었는데,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공부를 해나가는 동안에 오히려 사모님이 더 많이 우시고 더 많이 통곡하게 됩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던 사모님이 오히려 더 많은 내적 왜곡과 자기 우월감에 사로잡혀 얼마나 남편을 깊이 무시하고 있었던가 하는 것이 공부하는 대목 대목에서 자주 발견되곤 했거든요.
    저는 이 부부의 경우를 보면서, 자기 자신을 바로 알고 바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가 하는 것을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사람이란 본시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게 마련이지만, 바로 그러한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無知)'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심각하게 느꼈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그 남편 되시는 사장님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선, 그 사장님에게 보다 더 깊은 존재의 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대개가 어릴 때의 가정환경에 의해 비롯되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무엇이든 <진실로 느낄 줄 아는 가슴>이 없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방인이 되어버린 모습인데, 그로 인해 그에게는 모든 것이 ― 내면 깊이 들여다 보면 ― 사실은 그저 건성이요 생색이며 면피(免避)일 뿐 그 어느 자신의 삶에도 주체적이지 못한 자기방기(自己放棄)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아아, 그건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어쨌든 저는 그 사모님에게 감사함을 드립니다. 분명히 '이다'라고 철떡같이 믿고 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부분이 '아니다'로 명백히 드러날 때, 그것을 변명하거나 회피하거나 외면하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그 '아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던 그 솔직함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함을요. 그리고 스스로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 왔지만, 공부를 하면서 다시 한 번 그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사실은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턱없는 자기 오만과 우쭐거림과 타인에 대한 한없는 무시 속에서 유지되어온 크낙한 허구(虛構)였다는 것이 발견되자, 그저 화들짝 놀라고 부끄러워 하면서 하염없이 통곡함으로써 자신이 몰랐던 그 모든 '진실(眞實)'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던, 사모님의 '삶에 대한 그 진지함'을요. 공부하는 내내 저 또한 사모님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동했던지요!

    두 분과의 공부과정을 말씀 드릴려니, 어쩔 수 없이 그 분들의 어릴 때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물론 이 모든 얘기는 함께 도덕경을 공부하는 가운데 나온 얘기들입니다.

    어찌 보면 두 분은 서로 정반대의 환경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장님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퇴근길에 자주 술을 드시고는 ―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의 아픔과 삶의 힘겨움이 있었고, 이를 또한 어쩔 수 없이 홀로 술로써 달랠 수밖에 없었기에 그랬던 것임을 사장님도 나중에야 이해하게 되었답니다 ― 집으로 오셨고, 그러면 어김없이 어머니와 다투셨으며, 곧 와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가재 도구가 날아가 부서져 내리곤 했답니다. 어려서부터 그런 불안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날들이 연일 그리고 자주 되풀이 되면서 사장님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감정과 느낌과 생각들에 오롯이 닿기 보다는 그 모든 소중한 경험들을 일찍부터 다 잃어버리게 된 것이지요.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중엔 무엇이 진짜 자신의 감정이요 느낌인지조차도 잃어버리게 되어, 모든 것을 다만 '머리'로만 만들어내고 짐작해야 하는, 무엇이든 <진실로 느낄 줄 모르는> 슬픈 가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아, 이런 얘기를 하니, 문득 저의 어린 시절 아픔이 기억납니다. 이제 그 얘기도 조금 하겠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한 분이셨지만, 어머니는 네 분이셨습니다. 그 가운데 네 번째 어머님이 저를 낳으셨는데, 저는 열 두명의 자식들 중 막내였습니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 것은,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담임 선생님이 호적등본을 떼어오라고 하셔서 처음으로 그것을 떼어본 일이 있는데, 맨 끝에 저의 이름이 분명히 붙어 있어 우리집 호적등본이 맞긴 맞는 것 같은데,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름들이 어찌 그리도 많던지요! 그때의 그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특히 아버지의 사랑이 못내 그리웠습니다. 그러나 아버진 네 가정을 거느리시다 보니 우리집엔 자주 오시지도 못했고, 겨우 몇 달만에야 한 번씩 오시는데, 그것도 너무나 잠시 그리고 엄한 모습으로만 오셔서 저는 그저 작은 가슴만 콩닥콩닥 하며 어찌할 줄을 몰라 했습니다. 아아,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와 한 이불 밑에서 잠을 자고, 한 밥상에서 아버지와 함께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밥을 먹는 것이 얼마나 부럽고 동경스러운 일이었던지요! 저는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제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보다도 더욱 더 제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받을 줄도, 줄 줄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가족간의 가장 자연스럽고도 기본적인 감정의 교류조차 경험된 적이 없기에, 나중엔 무엇이 진실로 자신의 감정이며 느낌인지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진실로> 절망할 줄도, <진실로> 울 줄도 모르는 인격부재(人格不在)의 자기분열에 늘상 빠지게 되는데, 제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랬기에, 무엇이든 <진실로 느낄 줄 모르는> 사장님의 그 가슴아픈 심리상태를 저는 너무나도 잘 압니다.

    저는 그런 저 자신이 못견디게 괴로웠습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이 진짜 자신의 감정이며 느낌인지조차도 모른 채 늘상 우왕좌왕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제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는 단 한 번도 주체적으로 살아본 적이 없기에 언제나 어느 때나 남들을 의식하면서, 짐짓 내가 실제로 그러한 양 감정과 행위를 지어내기도 하고, 허세를 부리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또 때로는 남모르게 우쭐거리고 으스대기도 하는 자신이, 늘상 그렇게 하면서도, 돌아서서 보면 미치도록 싫었습니다.
    '아아,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보면, 바로 그런 고통과 아픔이 어쩌면 저를 진정한 구원(救援)의 길로 인도해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깊이 상처받은 가슴이었기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언제나 어색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언제나 힘겨웠으며, 아무리 달아나도 언제나 다시 목격하게 되는 깊은 자기분열감(自己分裂感)은 나로 하여금 늘상 마른 모래를 씹는 것 같은 끊이지 않는 고통을 가져다 주었지만, 또한 다른 한 편으로 보면,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저는 지금의 이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케 해주는 방향과 그 길 위에서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차라리 축복입니다.

    한편 사모님의 경우는 참 행복한 가정 속에서 마냥 즐겁고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냅니다. 아버지는 근엄하고 기품있는 교육자(敎育者)이셨고, 그 가슴 속에는 또한 한없는 따뜻함도 지닌 분이셨기에 가정엔 언제나 따뜻함과 부드러운 기운이, 그리고 질서와 존중의 기운이 가족 모두를 감싸며 흘렀습니다. 맏딸로 태어난 사모님은 어려서부터 예쁘고 총명해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학교에 들어가면서는 공부도 잘해 나무랄데 없는 아이라며 칭찬이 늘상 끊이질 않았습니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갈 때 진학문제로 아버지와 잠깐 갈등을 일으키고 충돌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모님은 언제나 아버지의 말씀에 잘 따르고 순종하는 착한 딸로 자랍니다. 아아,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아이로니컬 하게도, 사모님 자신에게는 '온실효과'가 되어 무엇이든 자신의 입장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모든 기회와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말하자면, 사모님은 바로 그런 모양으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인데, 무엇이든 아버지가 부족함 없이 자상하게 챙겨 주시거나 꾸짖어 주시고, 또 자신은 그런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착하고 모범적인 맏딸이 되려하다 보니,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제대로 눈길을 돌리지 않아 '자기다움'의 모든 창(窓)들이 닫혀버린 것이지요. 보세요, 사장님과는 정반대의 환경과 경우이긴 하지만,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는 두 분이 똑같은 아픔과 상처를 가졌잖아요?
    이 대목에서 사모님은 크게 두 번 우십니다. 한 번은 단 한 순간도 자신답게 <살아온> 적이 없고 다만 <살아져온> 자신을 발견하면서이고, 다른 한 번은 그토록 무시하고 심지어 때로는 사람같지 않게도 여겼던 남편이 사실은 자신과 똑같은 상처와 아픔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입니다. 두 번째는 거의 통곡하셨는데, 아아 그렇게 울 수 있다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사실 사모님이 그토록 남편을 무시하고 간섭하게 된 데에는, 어려서부터 깊게 패인 내면의 상처가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치유되거나 위로받은 적이 없는 사장님에게도 원인이 있었겠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깊게는 사모님 자신의 ― 그리고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 맹목적인 자기 우월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주 자주 듣게된 칭찬과 함께 아버지로부터는 늘상 반듯하고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자랐으니, 사모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랜 세월 동안 그 모든 것들과 자신을 동일시(同一視) 함으로써 스스로를 한껏 높여버리게 된 것이지요. 그런 눈으로 남편을 보니 무엇 하나 마음에 차는 게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사모님은 자기 눈 속에 바로 그런 자고(自高)한 오만의 대들보가 깊게 박혀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끊임없이 남편만 탓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모님의 그 모든 허구(虛構)가 곧이어 말하게 될 '한 달 실험'을 통하여 다 깨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다 상처받은 영혼들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오직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가 어느 누구를 감히 정죄하고 손가락질 하겠습니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정죄하는 그나 정죄받는 그나 다같이 상처받은 영혼들일 뿐입니다. 다만 자신에 대한 무지(無知)가 너와 나를 그토록 현격하게 나누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 세상에 육신(肉身)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도 사실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우리 자신이 사실은 '사랑덩어리'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말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태어나 지금 이 순간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건만,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기에, 사랑하기는커녕 끝없이 서로 상처주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알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에 대해 눈을 뜨면 그땐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보고, 바르게 아는 공부가 삶에 있어서 더없이 중요하고 소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버러지[벌레] 보다 못한 존재임을 알 때 하나님[진리(眞理)]을 알게 된다."
    이것은 부동산사무소 부부를 제게 소개시켜 준 그 지인(知人)이 언젠가의 만남에서 한 말입니다. 아멘입니다.
    부동산 사모님도 조금씩 조금씩,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나 남들의 눈에 비친 자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에 대하여 눈떠가면서 변화를 맞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사모님을 결정적으로 변화케 하는 계기가 됩니다.
    여느 때와 같이 그날도 저는 아침 일찍 부동산사무소엘 갔는데, 그날따라 저보다 조금 늦게 오신 두 분이 늘 마주 앉아 공부해온 둥근 책상에 앉자마자 서로 말다툼을 하시는 겁니다. 아직 도덕경 책도 꺼내기 전에요. 아마 사장님이 늦었다 싶어 좀 급히 운전을 하신 모양인데, 그 일로 인하여 ― 그리고 이런 일은 참 잦았던 모양입니다 ― 그 전에 있었던 다른 일들까지 다 들춰내가며 오는 내내 서로 티격태격 했나 봅니다. 그래도 아직 분이 가시지 않았던지, 자리에 앉자마자 사모님이 먼저 사장님의 그동안의 잘못된 부분들을 격앙된 어조로 조목조목 말씀해 가시는데, 사장님은 또 사장님대로 할 말이 많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두 분의 말씀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제가 느닷없는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한 가지 도발적인 제안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사모님에게 더 무게가 실린 제안인데, 오늘 이 순간부터 한 달 동안 그 어떤 경우에도 남편을 간섭하지 않는 실험을 한 번 해보십시다. 이 기간동안 사장님이 어떤 모습을 보이든 적어도 한 달 동안만은 사장님에 대하여 어떠한 간섭도, 어떠한 말도, 심지어 잘­잘못을 가리는 어떠한 추궁도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지요. 이는 사장님에게로 향하는 사모님의 모든 통로를 틀어막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사모님은 이 한 달 동안만이라도 사장님을 완전히 놓는 무한방기(無限放棄)를, 사장님 입장에선 비록 한 달 동안이지만 사모님의 일체의 간섭이 없어지니 무한방탕(無限放蕩) 하는 실험을 한 번 해보자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해보시겠습니까?"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사모님은 지금 모든 관심과 에너지가 바깥 ― 남편 ― 으로만 향해 있다는 것, 물론 그것이 사모님의 생각엔 남편을 위하여 그런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두 사람 모두를 죽이고 있다는 것, 삶의 진정한 변화는 '바깥'을 변화시킴으로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변함으로써 가능한데, 그런 의미에서 바깥으로만 향하는 사모님의 모든 통로들을 틀어막아야 했다는 것, 그런데 바깥을 향한 사모님의 내적인 에너지의 분출은 여전한데 그 모든 통로들이 막혀있으니, 자연히 눈이 안(內)을 향하여 자기 자신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눈이 '바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할 때에만 비로소 존재의 모든 '문제'들은 해결될 수 있다는 것 등등을 말입니다.
    그랬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사모님이 "선생님이 하라시면 해야지요." 하면서도, 근심 가득한 얼굴로 한숨마저 내쉬면서 하는 말이,
    "나는 이제 죽었다……"

    아아, 그 한 달 동안 사모님은 정말 진지하고도 성실하게 자기 실험에 임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도 안쓰러울 만큼 말이 없어지고, 어떤 땐 표정이 심히 굳어지거나 어두워지기도 했으며, 가끔씩은 도덕경을 공부하는 중에 통곡하며 깊이 울음 울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어떠시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아직은 말씀드릴 단계가 아닙니다……조금 더 있어봐야 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습니다. 얼마나 처절히 자기 자신을 들여다 봤을까요!
    그 '한 달 실험'을 통하여 사모님은 완전히 변화합니다. 말하자면,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것이지요. 그 실험을 제안한 날이 지난 2월24일이었고, 따라서 3월24일이면 실험을 종료하게 되어 있었습니다만, 그 날이 되자 이번엔 오히려 사모님이 실험 연장을 제안했습니다. 조금 더 하면 안되겠느냐는 거예요. 그리곤 열흘인가가 더 지나자 스스로 말문이 터지는데, 이미 '달라진 자'의 목소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때가 정확히 4월1일이었는데, 명백히 달라진 사모님의 내면을 보고는 제가 말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실험'을 종료합니다. 한 달이 넘는 많은 날들 동안 제게 맡겨주셨던 사모님의 삶의 모든 칼자루들을 지금 이 순간부터 사모님에게로 다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사십시오. 이미 사모님 안에서 움트기 시작한 무한한 질서와 지혜의 빛이 이제는 사모님을 인도하실 겁니다……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참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에도 81장까지의 우리의 도덕경 공부는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것은, 처음 제가 두 분에게 도덕경을 강의할 때에는 그 책의 각 장(章)들이 두 분에게 자신들을 비추어주는 거울 역할을 했지만, '실험' 종료 후에는 그것이 '거울'이 아니라, 사모님의 그날 그날의 새롭고도 다양한 내적 각성(覺醒)들을 그대로 글로 옮겨놓은 것들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도덕경이 사모님 안으로 쑥 들어와, 도덕경이 사모님이 되고 사모님이 도덕경이 되어버린 것인데, 그때부터 사모님은 도덕경의 각 장(章)들을 얼마나 재미있어 하고, 또한 너무나 쉽고 명쾌하다며 얼마나 자주 감탄을 하는지요!
    그와 더불어 사모님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왔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그토록 자신을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던 남편이 예뻐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거예요. 남편의 이런 아름다운 면을 자신은 그동안 왜 몰라봤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두 분의 사이가 언제 이혼을 생각했느냐는 듯 가까워져, 도덕경을 공부하는 중에도 사모님은 연신 미소 가득한 얼굴로 사장님의 뺨을 쓸어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보기 좋던지요!
    또 어느 날엔가는 아침 일찍 부동산사무소를 들어서는데, 먼저 와 계신 사모님의 옷이 전에 없이 곱고 예뻤습니다. 그래서 도덕경 책을 펼쳐들고 마주 앉았을 때 제가 물었습니다.
    "오늘은 사모님이 더욱 예뻐 보이십니다. 옷도 참 곱고……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그랬더니, 사모님은 아무 말없이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수줍은 듯 가만히 왼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시는데, 그 손가락엔 큼지막한 예쁜 반지가 곱게 끼워져 있었습니다.
    "햐, 참 예쁘네요!"
    "우리 남편이 사줬어요. 이 옷두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며칠 전에 두 분이 신혼여행을 다시 갔다왔답니다. 저 남해로 해서 2박3일 동안 두 분이서만 오붓이 갔다오셨다는데, 아아 그 말씀을 듣는 제 가슴은 얼마나 고맙고 기쁘고 벅차던지요!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도덕경 공부가 끝나갈 즈음 사모님은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생님, 전에는 언제나 제 남편에 대하여, '왜 하필 이 사람이 내 남편이 되었을까? 왜 저런, 나하고는 전혀 맞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수준의 사람이 내 남편이 되어 이토록 나를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고 또한 괴롭게 할까?'라고 생각하며 지긋지긋해 했는데, 이제 보니, 만약 나에게 이 남편이 없었다면 나는 스스로 제 잘난 맛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하고 교만하게 고상떨면서 살았겠구나 싶은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어찌 그리도 나는 나를 몰랐을까요? 그리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제게서 온갖 간섭과 구박을 받으면서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이 순간까지 저를 기다려준 남편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래요, 그게 바로 '부부의 비밀'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에베소서 5:31∼32)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비밀'까지 깊게 다가가는 부부는 세상에 참 적어요. 그저 자신에게 맞나 안맞나 하는 것으로,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나거나 다투다가 헤어지곤 하는데, 그러나 영적(靈的)으로 보다 깊이 들여다 보면, 부부라는 것은 각자 자신의 영적 성장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을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깊게 부른 결과라고 봐요. 그 깊이까지 닿았을 때 비로소 두 사람이 부부로서 인연된 '비밀'을 깨닫게 되는데, 사모님에게는 다행히 그 비밀이 열려 진정으로 성장하고 다시 살게 된 것이지요.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도덕경 공부가 끝나, 어느 날엔가 저녁을 함께 먹으며 책걸이를 하는데, 아아 그날 두 분의 그 환히 웃으시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언제까지나 그런 모습으로 두 분이 백년해로(百年偕老) 하시길 바라면서, 두 분과의 인연을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두 분의 허락을 받고서 집필(執筆)하기 시작했으며, 다 쓰고 난 뒤에도 혹 잘못되거나 누(累)가 되는 부분은 없는지를 위해 두 분께 먼저 보여드리고 여기 이렇게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주로 사모님에게 초점을 맞춰 말씀을 드렸는데, 때가 되고 기회가 닿으면 사장님 얘기와 그 뒤의 이야기도 다시 한 번 나눌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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