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서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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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9,087회 작성일 06-02-20 21:29본문
안녕하세요?
이 글은 7년 전 서울 도덕경 모임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던 한 편의 편지글입니다. 그때 충북 괴산에서 도덕경 모임을 한 번 가진 적이 있는데, 대구에서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참 좋은 만남과 강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임이 있고 난 며칠 뒤 윤양헌 선생님께서 이 편지를 제게 보내오셨는데, 그 내용이 넘 감동적이라 각 지역 도덕경 모임 때 모두에게 읽어드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 글은 사라진 이전 홈페이지에 오랫동안 올려져 있었는데, 이제 새로운 홈페이지가 마련되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다시 찾아내어 여기에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 * *
민들레 상생체 모임에 다녀와서
'깨달음'에서의 깨달음
김기태 선생님께
한참 이글거리는 열기 속을 일행들과 무사히 흘러 흘러 자알 도착하셨는지요.
저는 평소 뵙고 싶었던 분들을 만난 기쁨과, 관심 있는 모임에 주변인으로 참여해 본 또 다른 맛을 풋풋하게 머금은 채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젯밤 푹 자고 나니 또 주부임을 느끼게 하는 일상들이 눈에 들어오겠지요. 가족들이 모두 밖에 나간 뒤 청소기 들고 왔다 갔다 하는데, 빨려 들어오는 놈은 먼지가 아니라 상생체 모임의 일상 뿐이더라구요. 그중 선생님과의 시간이 아쉬웠기에 떠오르는 상념들이 지워질 새라 재빨리 컴퓨터를 켰습니다.
저는 평소 뵙고 싶었던 분들을 만난 기쁨과, 관심 있는 모임에 주변인으로 참여해 본 또 다른 맛을 풋풋하게 머금은 채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젯밤 푹 자고 나니 또 주부임을 느끼게 하는 일상들이 눈에 들어오겠지요. 가족들이 모두 밖에 나간 뒤 청소기 들고 왔다 갔다 하는데, 빨려 들어오는 놈은 먼지가 아니라 상생체 모임의 일상 뿐이더라구요. 그중 선생님과의 시간이 아쉬웠기에 떠오르는 상념들이 지워질 새라 재빨리 컴퓨터를 켰습니다.
돈이 있어야 눈깔사탕을 사먹을 수 있어 행복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눈깔사탕 신드롬에 걸린 어린아이에게, 돈이 없어도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 먹어도 먹은 것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 깨닫게 해주시려는 듯한 선생님의 아름다운 열정 앞에서 저는 많은 걸 생각하고 있었지요.
행복할 권리가, 아니 행복할 수 있는 힘이 각자 자기 안에 있다는, 아니 자기 자신이 곧 행복덩어리라는 사실을 사실이라고 거듭 거듭 '강조하셔야만' 했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줄곧 우리가 몸담고 정신 적셔가며 영혼을 담보로 잡혀놓고 살아가게끔 한 이 사회를 먼저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행복덩어리라는 깨달음은커녕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말 앞에서조차 송구스러워지거나(자기비하에 익숙해져서), 비웃음(물리적 소유가 행복지수라고 두뇌에 딱 박혀져서, 그래서 팔자소관이라는 믿음에 더 익숙해져서)뿐이거나, 후회막급한 회한(자신의 행복은 누구 하나 잘 만나는데 달렸노라 굳게 믿어온 터여서, 그래서 잘못 선택한 과거행적들이 자꾸 돌이켜져서) 속으로 침잠하거나, 아니면 이글거리는 욕망(권리를 착취나 이기주의와 동일시함으로써)의 상상 속으로만 빠져드는 다양한 불구자들로 만들어버린 사회를 말입니다.
그런데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주시려는 선생님의 열정 앞에서 저는 조금 깝깝해졌습니다. 좀 더 구체적일 수는 없을까? 구체적이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한 일상의 모세혈관을 통해 깨달음을 맛볼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름대로 발견한 것이 있었답니다.
선생님도 역시 수많은 일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보게 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역시'라고 한 이유는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자라는 것과 일탈을 통한 각고의 노력 두 가지입니다. 이건 물론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지극히 적은 사례들이 전제가 된 거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화시켜 말씀드려도 유의미할 거라는 멋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깨달았다.'
이 단어는 내 자신 안에서 상당히 이분법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그날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있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란 가정도, 가족도, 이웃관계도, 사회관계도 뒤로 한 채 수양산에 들어가 몸을 바닥까지 가도록 혹사시켜 가면서 오쇼 라즈니쉬나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스승의 길을 받침 삼아 꾸준히 수도정진 하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그것도 단 한 번에 벼락맞은 사람들쯤으로 정의되어 있었지요. 따라서 '깨달은' 사람은 개인이 직업을 선택하듯 수많은 직업 중에 수준 높은 직업을 선택한, 부럽기만 할 뿐인 '남자'이면서 범인들(여성은 모두 포함)이 덤벼들 영역이 아닌, 저 동구 밖에 있는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단어는 내 자신 안에서 상당히 이분법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그날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있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란 가정도, 가족도, 이웃관계도, 사회관계도 뒤로 한 채 수양산에 들어가 몸을 바닥까지 가도록 혹사시켜 가면서 오쇼 라즈니쉬나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스승의 길을 받침 삼아 꾸준히 수도정진 하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그것도 단 한 번에 벼락맞은 사람들쯤으로 정의되어 있었지요. 따라서 '깨달은' 사람은 개인이 직업을 선택하듯 수많은 직업 중에 수준 높은 직업을 선택한, 부럽기만 할 뿐인 '남자'이면서 범인들(여성은 모두 포함)이 덤벼들 영역이 아닌, 저 동구 밖에 있는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정의는 '깨달음'에 관심은 있으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저에겐 자기분열과 주눅들림을 강요하지요. 자기찾기를 열망하는 만큼 오히려 도무지 잡히지 않는 그 무엇쯤으로 체념만 남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일 겝니다, 아무튼.
저는 이제까지 일상의 삶 속에서 문득 문득 깨달아 가면서 물 흐르듯 표적 없이 깨달음의 합집합으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여성들(외람되지만 저를 포함해서)을 한 번도 '깨달은' 사람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 하나 하나가 전혀 추상적이거나 낯설지 않고 내 삶의 여정을 '깨달음'이라 알려주는 것 같았으니, 이 어찌 오만방자한 민망스러움이 아닐는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소중한 사람들을 아주 유치할 정도로 무지무지 미워하다가 깨닫곤(?) 했더군요. 알고 보니 제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미움이더라구요. 이건 다시 말하면 제가 가장 소중하게 그리워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일 겝니다(누군가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 했지요. 동의합니다. 사랑과 미움은 한 줄기인 것을. 그렇다면 제가 사랑을 제일의 가치로 여긴다는 말은 금방 거짓으로 들통나버리네요. 무관심을 가장 고통스러워해야만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일 텐데, 미움에서 가장 고통을 느꼈던 걸 보면 참으로 유치하고 편협한 사랑에 빠진 여자일 뿐이라는 걸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다니. 아무튼 하려던 이야긴 계속해야겠지요).
15년 전쯤일까. 사랑으로 선택한 남편이 걷잡을 수 없이 미워지기 시작했지요. 어느 일부가 그의 전부가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사랑에 푹 빠졌던 것처럼, 어느 일부가 그의 전부가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온통 미움으로만 잦아드는 거예요. 그 미워하는 마음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어느 날 그냥 미움 자체를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생존전략 차원이었던 거겠죠?(이번에 괴산에 갔을 때 폭포수 위에서 다이빙 할 때 있잖아요? 바위 앞자락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심정, 살이 쪽쪽 빠지는 것 같았어요. 그것이 고통스러워 '에라, 그냥 뛰어내리자!' 하게 되더라구요, 살기 위해)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죄의식이 더욱 미움을 부채질한다는 누군가의 가르침을 떠올리면서 처음엔 '맘껏 미워해 보자, 어디까지 가나.' 하는 오기로 맘껏 미워했지요. 그러다 보니 지쳤는가, 그냥 미움 자체를 받아들이게 되더라구요. 그러던 중 어느 날 알 수 없는 기쁨의 에너지가 솟구치는데, 세상이 어찌 그리도 아름답던지요('에라!'하고 폭포수 아래로 뛰어내린 순간, 매끄럽게 물 속으로 빠져들다 올라오는 감촉이라니, 아! 엄마 뱃속에서 내가 헤엄치던 양수가 이렇지 않았을까?). 잿빛 하늘도, 먹구름도, 썩은 나무도 너무 아름다워 찬거리 사러 가면서 줄곧 눈물을 흘렸더랬습니다. 남편이 밉다니요, 그저 사랑스럽게만 보이더란 말입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었지요. 남편이 밉고 사랑스럽고는 남편 탓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 있다는 것을. 자연은 그대로인데 저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분명 내 안의 변화 때문일 테니까. 그러니 남편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복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물론 단 한 번에 그렇게 정리되었겠어요? 지금도 종종 상대방을 원망하면서 헤매다 돌아오고 헤매다 돌아오고 하기를 나뭇가지가 꽃피울 때마다 저지르고 있는 걸요. 어쨌든 그처럼 걷잡을 수 없는 눈물로 다가왔을 때도 있고, 따스한 물에 꿀이 번지듯 달콤하게 젖어들면서 세상을 다시 읽게 된 때도 있었지요.
이런 경험조차도 가능했던 것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내가 원하고, 진짜 나를 알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고 믿어요. 그리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원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이 강요하는 가치관들에서 스스로 해방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믿구요. 제가 제 자신을 높이 사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욕구 뿐이라고나 할까? 아직까지는요.
선생님, 현실세계에 묻혀서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할 만큼 작아져버린 자신의 본모습을 찾는 것이 '깨달음'이라면 이런 경험도 '깨달음'의 문전에나마 다가서 본 것이라 할 수 있겠는지요. 사실 이건 질문이 아닙니다. 저는 '깨달음' 자체에 의미를 갖지 않으며, 다만 삶 자체를 중요시 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제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깨달음'과 '깨달은 사람의 삶'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 경험을 말씀드린 것은,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묵묵히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여성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나의 비약적(?) 믿음에 관한 선생님의 답변이 듣고 싶어서였지요. 그렇다면 '깨달음'에 관한 나의 고정관념은 분명 남성 중심적인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구요.
그렇습니다. 제가 선생님과의 시간 속에서 나름대로 발견한 것을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깨달은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다는 사실과, 따라서 '깨달음'의 정의가 남성 중심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거였습니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자는 '깨달음'을 위하여 가정과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남자들이 여자의 자리를 메워주지 못하는 불구자로 길들여져 왔으니까요. 그에 비해 남자들은 쉽게 떠납니다. 여자는 항상 가장의 빈자리까지 메워가며 가족을 살려냈고, 방랑생활을 마치고 귀가하는 남편을 맞이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들 살아왔지요.
그러나 이런 공간적 개념 말고 더 중요한 것은 '깨달음'의 본질적 전제에 있습니다. 즉 주체적이지 못한 사람이 '나'를 찾아 떠날 수는 없지요. 오빠를 위한, 남편을 위한, 자식을 위한, 시댁 가문을 위한 희생적이고도 종속적인 삶이 여성의 미덕임을 진리로 알고 살아온 여성들에게 어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주체적 힘이 있을 것이며, '나'를 찾으려는 행로에 감히 기웃거릴 수나 있겠는지요.
따라서 지금까지의 '깨달음'은 남자들만의 것이었으며, 그것은 일상과의 괴리를 통해서만, 가정 밖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대단한 무엇으로 편견지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성들은, 적어도 남성중심(아버지중심, 남편중심, 시댁중심)의 가족제도 안에서나마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기내면을 찾아 떠납니다. 자기를 찾고자 하는 남자가 가족을 등지고 자기를 찾아 떠난다면, 여자는 '여자다움'을 등지고 가족을 보듬은 속에서 자기를 찾는 것입니다. '나'가 곧 내 안에 있는 거라면, 가족 밖에서 구하든 가족 안에서 구하든 자기찾기의 결실은 똑같다고 봅니다. 아니, 어쩌면 억압상황이 더욱 구체적일 때 깨달음도 더욱 구체적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거개의 남자들이 가정 밖에서, 육체의 피폐함을 바닥까지 떨어 뜨려가며 득도(得道)해 보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군요. 억압보다는 기득권이, 의무보다는 권리가 주어졌던 가정 안에서 득도하기란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의사가 자신들의 권위를 위해 환자들이 알 수 없는 용어들을 사용해가며 환자를 주눅들게 하는 것처럼(치유의 목적에 위배되는 심리환경을 만들어내는 모순을 저지르는 것이지요). '깨달음'도 그렇게 해서 권위를 만들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깨달음'의 권위를 제가 문제삼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깨달음'이 궁극적으로는 삶과의 연관선상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저의 소견 때문이지요.
탁 까놓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깨달음'은 곧 '여성성'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입니다. '깨달음'이 곧 사랑 덩어리라면 롤랑바르뜨의 말을 빌려도 괜찮을지, '사랑하는 남자는 사랑하기 때문에 놀랍게도 여성적이다.'라고 했거든요. 생명을 잉태하고 보듬는 자궁의 논리가 곧 '나' 아닐까요? 이질적인 정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보듬고 보듬어서 생명의 파장을 안겨주는 자궁의 체계가 곧 '나'의 체계 아닐까요? 해서, 자궁을 갖지 못한 남성들의 '깨달음'의 행각이 그토록 지난(至難)해야만 했던 건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지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남자들이 아내와 엄마의 풍부한 내면세계를 느끼는 것은 바로 그 증거가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저는 남자냄새 나는 남자의 '깨달음'은 믿지 않습니다. 자궁 가진 남자, 여자내음 풍기는 남자의 '깨달음'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지요. 아마도 저는 여자로서 무척이나 주눅들어 있었나 봅니다.
짧은 시간을 그나마 주변인으로 참석했던 것이 제겐 풍요로웠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선생님께 편지를 띄울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그렇구요.
어린아이의 두서없는 말에서 어린아이의 심사를 알 수 있듯이, 저 역시 선생님을 믿는 마음에 저의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기회가 있겠지요.
참, 선생님의 도덕경 강좌를 서울에서도 들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매우 행복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만남을 감사드립니다.
어린아이의 두서없는 말에서 어린아이의 심사를 알 수 있듯이, 저 역시 선생님을 믿는 마음에 저의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기회가 있겠지요.
참, 선생님의 도덕경 강좌를 서울에서도 들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매우 행복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만남을 감사드립니다.
1999년 7월 27일
윤 양 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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