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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하씨의 귀가(歸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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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5,952회 작성일 06-02-0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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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200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새해 아침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재하씨를 소개합니다.
    이재하씨는 제가 몇 달 전 부산에 김태완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러 갔을 때 거기서 인연된 사람인데, 세 시간 남짓한 강의가 끝나고 이후 저녁식사와 차(茶)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을 때, 개량 한복을 정갈하게 입고서 수줍은 듯 자신의 얘기를 하던 그를 아직도 뚜렷이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때의 그는 뭐랄까, 아직 뭔지 모르게 안정되어 있지 않았고, 짐짓 얘기를 하는 속에서도 언뜻언뜻 자신의 타는 듯한 갈증을 내비치기도 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와 나는 가끔씩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부터는 대구 연암찻집에서 있는 도덕경(道德經) 강의에 그가 정기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살아온 지난(至難)했던 삶의 얘기들을 듣게 되었는데, 아아 직장과 처자식마저 버려두고 도(道)를 찾아, 진리를 찾아 오랜 세월 떠돌아 다니는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저와 흡사하던지요!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이 사람이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그랬는데, 참으로 감사하게도, 정말 오래지 않아 이 사람의 마음에 변화가 왔고, 어느 날엔가는 ― 바로 며칠전 연암찻집 강의가 있은 다음날이라고 기억하는데 ― 울먹이면서 제게 전화를 해서는, 아내에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가서, 그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져본 적이 없는 삶의 짐들을 이제는 올올이 지며 살아가겠노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아아, 그 말을 듣는 제 가슴은 얼마나 벅차오르던지요!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그때 이후 이재하씨가 연암찻집 강의에 나와 들려준 많은 삶의 변화들은 둘러앉은 우리 모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고, 그 기록들이 너무나 눈부시고 감사해 여기 이렇게 올리게 된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아래의 글은 '나의 길을 찾아'라는 제목으로 이재하씨가 직접 써서 제게 보내온 글입니다.

 
    * * *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많은 이유로 길을 오고 간다. 그래서 인생을 혹자는 '나그네길'이라고도 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41년을 길 없는 길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가 되어 살았다. 내가 '나'를 찾아 헤맨 이 길고도 끝없는 방랑의 길이 언제부터 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제 그 지루했던 방랑의 길을 멈추려 한다. 그리고 내가 왜 그 긴 세월을 스스로 나그네가 되어 끝없이 떠돌아야만 했는지에 대해 솔직히 말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아울러, 나와 같은 이유로 길을 떠나 무언가를 찾고 있는 모든 님들에게 이 긴 여행 이야기를 통해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무엇'이 있다.

    1. 길을 떠나야만 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나의 환경과 내 삶이 너무도 보잘 것 없고 미천한 것으로 여겨져 늘 불만이었고, 참으로 그것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런 보잘 것 없고 작은 내 삶을 벗어나 무언가 강하고 완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그래서 어려서부터 나를 사로잡았고,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으로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인식하면서부터는 점차로 그 욕망이 커져만 갔다. 내가 바라는 삶은 사랑과 행복이 충만한 삶이었건만, 실제의 나의 삶은 온갖 고(苦)가 한시도 떠나지 않는 무겁고 답답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공부 잘해 출세하여 부모님의 한(恨)도 풀어드리고 싶었고 부자도 되고 싶었지만, 난 항상 가난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돈으로 사는 세상이 싫었고 서로 경쟁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이 세상이 미웠다.
    도덕군자가 되어 세상살이로부터 초연해지고 싶었지만, 삶은 각박해지기만 했다. 내 스스로는 참으로 반듯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였지만, 그럴수록 어찌된 영문인지 삶은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고, 잘 살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삶은 더욱 초라해져만 가 급기야 무엇이 진정 잘 사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삶의 무게가 점차 무겁게 느껴지면서 모든 것이 그저 짐스럽게만 여겨졌다. 직장을 수없이 옮겨다니며 힘겹게 버티고 살아가던 나에게는 가족과 부모, 아이들조차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삶의 무게가 감당하기조차 힘겨워졌을 때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스스로의 삶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지?'
    '왜 태어났으며, 무엇을 하기 위해 살고 있지?'
    이러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30대 초반 무렵, 두 아이의 아빠이면서 건실한 직장의 간부로 재직하면서, 겉으로는 그래도 괜찮게 살아가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내 안의 삶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고통으로 변해 있었고, 부와 명예로 성공할 자신이 없었던 나는 점차 세상의 모든 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고 전지전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득도(得道)'를 꿈꾸는 교활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 보잘 것 없는 '나'와 구차한 현실(직장)을 팽개치고 '완전'을 향한 길을 떠나야겠다고 늘상 생각하게 되었다.

    2. 끝이 없는 길을 헤매다.

    '득도(得道)'를 목표로 떠나는 길은 묘한 흥분과 설렘으로 나를 압도했다. 수많은 책을 닥치는대로 읽어가면서 '도(道)'에 대한 지식을 쌓아갔고, 다양한 수행을 경험하면서는 초월적인 능력도 점차로 갖추어지는 것 같아, 나는 비로소 행복할 수 있었다. 점차로 번잡한 세상사가 더욱 싫어졌고, 오직 이 길만이 내가 가야 할 가치있는 길로 여겨져 참으로 열심히 '득도'에 매달렸다.
    온갖 신비한 체험을 경험하면서 사람으로서의 한계마저 벗는 것 같아 감사했으며, 그러면서도 때로는 아직 설익은 많은 지식과 관념으로 마음이 몹시 혼란스러워지기도 했지만, 나는 반드시 '득도'하고야 말 것이라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에 오로지 그 길에 매진할 수 있었다. 신비하고 빠른 방편을 찾아 동분서주하였으며, 즉시 깨닫게 해 줄 신비로운 스승을 찾아 전국을 헤맬 때도 나는 조금도 힘들어 하거나 지쳐하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조금씩 알아간다는 기쁨과 기대와 희망 속에 내 가슴은 부풀어가기만 했다. 나는 너무나도 간절히 나 자신으로부터 구원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알아가면서 때로 교만해지고, 가르치려 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그것은 또한 내가 점차 '도인(道人)'이 되어간다는 증거가 되어주기도 했기에 나는 오히려 자긍(自矜)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세상을 작고 바보처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 느껴졌고, 내가 '득도'하면 자비를 베풀어 저들을 구원해 주리라는 영웅심마저 생겨, 나는 점차 나 자신이 정말로 이 세상을 구원할 숙명을 받고 태어난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내가 가는 이 길은 현실도피의 길이 아니라, 사나이라면 모름지기 가야 할 가장 숭고한 수행의 길이요, 또한 스스로 가는 길이기에 모두가 나를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모든 경전(經典)에서 '네가 바로 부처다.'라고 했으므로 나는 정말 부처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랬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은 중생(衆生)이 부처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할 과정이라고 여겨 그 모든 것을 달게 받았다.
    하지만, 득도(得道)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득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한편으로는 더욱 완벽하고 정교한 사람으로 변해갔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작 내 삶과 일상(日常) 속에서는 전혀 완벽하지 못한 사람으로 자주 고꾸라졌고, 그때마다 자신의 한없는 부족과 결핍을 스스로 정죄하는 가난한 자로 변해갔으며, 범(凡)과 성(聖)을 끊임없이 분별하면서 온갖 것을 차별하다가, 급기야 먹고 자는 것마저도 그냥 하지 못하는 환자 아닌 환자가 되기도 했다.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사랑을 갖추어 만인에게 베풀고 싶어했기에 오히려 항상 사랑 없는 자신을 쓰라리게 목격해야 하기도 했는데, 한 때는 자비와 사랑의 실천을 위해 사회복지 단체에서 중증 장애인을 위한 자원봉사자로서의 삶을 살아보기도 했지만, 현실을 회피한 '마음 장애자'인 내가 그들에게 하는 모든 행위가 다만 위선(僞善)으로 여겨져 쓸쓸히 돌아서야만 했고, 또 언젠가는 탐진치(貪嗔痴)에 찌든 세상을 벗어나면 '도(道)'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아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살아가는 귀농공동체 마을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추구해 보기도 했지만, 편안해지리라 생각했던 마음이 오히려 더욱 혼란스러웠고, 그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자유와 평화는 한 순간도 나를 자족케 해주지 못해, 나는 스스로 찾은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완전'을 추구하면 할수록 이상하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었고, 마침내 자신의 무능(無能)을 신묘한 능력을 얻어 해결하고자 한 내가 사회에서 건강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게 되어버렸다. 나의 성공을 보장해 주리라고 믿고 열심히 노력하여 어렵게 취득한 '건축사' 자격증은 진리와 '완전'의 노예가 되어 있는 나에게는 이미 쓸모 없는 휴지조각에 불과해, 생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단순한 막노동과 단순생산직 뿐이었기에 나의 몸과 마음은 점차 지쳐가기 시작했다.
    내가 추구하는 나의 모습은 이미 '신(神)'에 가까울 만큼 완벽한 모습이었기에 나는 세상사 무엇에도 만족할 수가 없었으며, 그것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득도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목격되어지는 나의 부족과 못남에 나는 한없이 가슴아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득도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버림'의 수행과정이라 믿고 자위하면서, 유일한 희망인 '도'를 향해 다시 끝없는 길을 걸어갔다.
    그처럼 진리를 향한 나의 구도(求道)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 용광로가 되어, 나는 전국을 누비며 해보지 않은 수련이 없었다(돈이 아주 많이 들어가는 수련에는 갈 수 없었지만). 그런 가운데 온갖 정신수행 서적과 경전을 닥치는대로 탐독하여 지식적으로는 이미 모든 진리를 안 것 같았으나, 그럴수록 내면의 갈증과 답답함은 더욱 가중되었고, 수많은 수행프로그램에서 신비한 체험과 '한소식'을 여러 번 경험하였지만, 그것은 얼마간 나를 황홀케 만들다가 문득 사라지고 마는 마약처럼, 그 에너지 상태가 그치고 나면 내 삶은 더욱 궁핍해지고 괴롭게 될 뿐이었다. 이러한 거듭되는 나의 여정(旅程)은 수행자인 척하는 교만만을 키워줄 뿐 내 삶에는 한 톨의 진정한 자유와 지복(至福)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어찌 하랴, 내가 남과 더불어 함께 잘 살기 위해 택해야 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길은 오직 '성불(成佛)' 뿐이었기에, 다시 한 번 목숨을 바치는 각오로 이 길로 뛰어들밖에……!
    버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논리로 이후 나는 득도하기 위해 나를 짐스럽게 하는 모든 내 삶과 가족, 부모, 친구, 명예, 부, 욕망 등등을 수도 없이 버리며,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걷고 또 걸었다. 득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게는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나는 마지막으로 중생(衆生)을 단시간내에 신선(神仙)으로 만들어준다는 자칭 생불(生佛)이 있는 지리산 어느 깊은 계곡으로 빨려들어 갔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무렵 남편에 대한 불신과 생활고(生活苦)에 지칠대로 지친 아내는 "정말 가려면 이젠 아예 돌아올 생각일랑 하지 말라."고 울부짖었지만, 나는 그런 아내가 오히려 원망스럽기만 했다.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만인(萬人)을 위해 '의인(義人)'의 길을 떠나는 남편을 이해해 주지 못하다니, 세상에 믿을 사람이라고는 오직 나뿐이구나……. 내, 온전히 깨닫고 돌아와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하며 호의호식(好衣好食)하게 해주면 그땐 나를 이해해 주겠지 하고 자위하며 나는 지리산으로 '기적의 도깨비 방망이'를 찾아 길을 떠났다.
    살을 에는 지리산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겨우내내 몇 달 간, 하루 18시간씩 계속되는 수행! 인간의 몸과 마음이 득도의 방해물이라 여겼기에 나는 철저히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면서 수행하였으며, 정말로 단 1초라도 신선이 되고 싶었다. 내 욕망이 간절했던지, 신비한 능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환골탈태(換骨奪胎), 텔레파시, 의통(醫通), 타심통(他心通), 미래예언 등등. 꿈에도 갈망하던 능력들이 주어짐에 나는 진실로 구원받은 듯 감격했고, 당장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상하게도 '능력'에 집착할수록 나는 점차 추악해져 가고, 두렵고, 심한 상실감 속에서 인간미마저 잃어감을 느꼈다. 아! 그러던 어느 날, 그 모든 것은 '능력'을 갈망하던 내 욕망이 만들어낸(불러들인) 의식의 장난이었음을 깨닫고는 너무나 허탈하고 허무하여 그 추운 겨울 지리산에 묻혀 나는 미친놈처럼 울부짖었다. 신선이 되고 싶어 찾아간 지리산에서 나는 폐인(廢人)이 되어 황망하고도 초췌히 산을 내려와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철저히 망가지고 난 후 나는 비로소 뼈저리게 깨달았다. '진리'는 결코 내가 밖에서 구하여 얻을 수 없다는 것과, 그동안 그렇게 '참나(眞我)'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던 온갖 수행이 알고 보니 모두가 현재의 보잘 것 없는 '나'를 버리고 '완전한 내'가 되고자 한 더러운 욕망 놀음이었음을―!

    3.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완전히 망가진 채 집으로 돌아오니, 내 삶은 더욱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나를 환멸하는 아내의 냉대와 외면, 주변 사람들의 멸시의 눈빛과 비난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정말 괴로운 것은 산산이 부서진 내 모습이었다. 진리에 버림받고,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한 나는 이제 가기 싫어도 또다시 집을 나서야만 하는 얄궂은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길을 나서는 정처없는 방랑자의 앞길에는 눈물만이 흐를 뿐이었다. 괴로운 발걸음은 '절'로 향했고, 큰스님이 될 팔자라는 권고로 승려가 되기 위한 행자 노릇도 하였으나, 머리를 깎는다고 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고, 또한 더 이상 가족과 부모에게 상처를 줄 수가 없었기에 차마 출가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 온 삶의 목표가 득도(得道)이다 보니, 이젠 어느 곳에서도 마음을 붙이지 못한 채 그저 인연따라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나의 삶은 겨울나무처럼 깡 말라만 갔다. 진리에 대한 막연한 발심(發心)만 있을 뿐 이제는 모든 수행이 다 무의미해져 버렸으며, 무슨 신비한 책을 읽어도 흥미롭지 않았다. 내가 찾아가 의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는 듯 했다.
    알려고 하면 더욱 모르겠고, 그렇다고 그냥 살 수도 없었기에, 내 삶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나는 길 위에 서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서성이고 있었다. 사람의 온기마저 잃은 채……!
    그렇게 밖으로만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문득 눈을 돌이켜 나를 보니, 나는 어느새 내가 배반한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불쌍하고 메마른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 이제 깨달음마저 포기하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차라리 부모나 처자식이 없었더라면 편안히 죽을 수나 있을텐데……. 도대체 내가 가려 하는 '그곳'이 정말 있기나 한 것일까? '진리'는 너무나 고귀한 것이기에 나같이 미천한 인간은 아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란 말인가…….

    4. 가야 할 길은 원래 없었다.

    41년을 오직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나는 스스로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그렇게 끝없이 침몰하고 있었다. 그 오랜 세월 오직 '진리'만을 추구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내면의 자유와 평화는 눈곱만큼도 없었고, 일상(日常)은 끊임없는 불안과 초조와 답답함뿐이었으며, 온갖 아는 것으로부터 결박되어 나는 어느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진리표 박제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김기태 선생님과 인연이 이어졌고, 매주 목요일마다 대구 연암찻집에서 도덕경 강의를 한다기에 답답한 마음에 그냥 강의를 한 번 들어볼 양으로 어느 날 문득 연암찻집을 찾았는데, 아! 이 한 번의 우연한 방문이 내 삶을 근본에서부터 뒤바꿔놓아 마침내 그 오래고도 긴 방랑의 길을 멈추게 할 줄이야! 김선생님은 내가 평생을 추구하였지만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진리에 이르는 길을 너무나 쉽고 평이한 일상의 살아있는 삶의 언어들로 내게 전해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나의 부족과 못남이 싫어 끊임없이 '완전'을 찾아 수행의 길을 떠났고, 그 속에서 무언가 변치않는 것을 얻어 나를 채우려 했건만, 이제 그 허망한 걸음을 멈추고 지금의 그 부족과 못남 속에 단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있어 보라 한다.
    나는 간절히 영원불멸의 도(道)를 갈구하였건만, 내가 그토록 회피하고 저항하던(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던) 지금 이 순간의 보잘 것 없는 삶이 바로 '그것'이며, 따로이 구할 '무엇'이 없다고 한다.
    에고(ego) 덩어리인 나 자신이 싫어 그 '나'를 버리고 고귀한 '참나(眞我)'를 보고 싶었건만, 그보다는 자신의 위선(僞善)과 교만, 교활함, 거짓과 회피, 버러지(벌레)보다 못한 자신의 흉측한 몰골부터 먼저 똑바로 보라고 한다.
    비록 득도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의 숭고함과 특별함을 증거해 주는 많은 소중한 나의 수행기록들과 알음알이를 자랑했더니, 그 모든 것들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똥닦은 휴지'라고 한다.
    김선생님의 이 모든 말씀들은 내겐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간절히 '완전'을 찾아 헤매었건만, 그 '완전'이란 다름 아닌, 너무나 보잘 것 없어 늘 저항하고 또한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41년 동안의 불구같은 삶 그 자체가 바로 '완전'이었다니! 수행한 만큼 반듯하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고, 아는 만큼 올바르게 인도해 주는 길잡이가 되어준다고 믿었던 나의 모든 신념과 지식이 오히려 나를 죽이는 독(毒)이었다니! 목숨을 걸고 닦고 또 닦아도 구해질까 말까 한 것이 도(道)라고 생각했는데, 이 밋밋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현재의 삶이 그대로 완전한 도(道)라니……!
    나는 김선생님의 강의를 녹음하여 듣고 또 들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지금까지의 내 모든 가치를 뒤엎는 천지개벽과도 같은 소리로 들렸으며, 도에 미쳐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살아온 내게 비로소 내 삶과 나를 바르게 보게 하는 새롭고도 진실한 빛이 되어 주었다. 자꾸 들을수록 선생님의 말씀은 수미산 보다 높고 은산철벽(銀山鐵壁) 보다 단단하던 내 고정관념들을 봄눈처럼 녹였고, 봄빛에 피어나는 새싹처럼 그 말씀들은 새록새록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 나는 마침내 내가 아만(我慢)과 위선(僞善)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나의 못난 몰골들을 스스로 보게 되어, 비로소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너무나도 희한한 것은, 그렇게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원래 부족하고 죄많은 존재였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아주 조금 나도 모르게 그 사실을 인정한 것밖에 없는데, 그토록 오랜 세월 간절히 찾아다니던 진리와 자유, 해탈(解脫), 반야(般若), 지혜, 도(道), 깨달음 등등의 온갖 것들이 사실은 모두 내가 만든 허구(虛構)였음이 드러났고, 그와 동시에 찾거나 구해야 하는 모든 것이 저절로 없어져 버렸다.
    내 못난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 그토록 수행에 집착했건만, 못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나에게는 더 이상 극복해야 할 못남이 저절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원망스럽고 보잘 것 없어 회피하고 싶었던 내 삶을 분별없이 그대로 보니, 그토록 나를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던 자기분열(自己分裂)과 자기정죄가 사라져버려, 그냥 지금 이대로의 삶을 살아가게 되어버린 것이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라도 편안히 할 수 없었고, 목석(木石)같이 감정을 조절하면서 살아오던 내가 보잘 것 없는 현재의 삶을 인정하면서부터 말과 행동이 편안해지고,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생명에너지를 그냥 그대로 느끼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못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부터 진리를 향하던 걸음을 비로소 멈추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나와 내 삶 속으로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도인(道人)이 되어 세상을 구원하겠다던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 그냥 일상의 평범한 삶을 진솔하게 살아가는 '참사람'이 저절로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에 저항하던 몸짓을 멈추고, 지금 여기의 일상(日常) 속으로 돌아온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내와 가족, 부모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긴 세월 남편 없는 빈 자리를 고생하며 지켜온 아내와, 애비 없이 훌쩍 커버린 아이들 앞에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도를 깨치기 전에는 죽어도 가족 앞에 다시 서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던 내가 도를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도'공부에 지쳐 다 해어진 걸레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 그대로 아내와 아이들 앞에 진실되게 다가갈 수 있었고, 이제는 그냥 이 못난 모습 그대로 살겠노라고 잔잔히 말할 수 있었다.
    귀하게 얻은 착한 막내아들이 도에 미쳐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방황하던 모습을 안타까이 지켜보시며, 그 오랜 세월 동안 아들의 무사귀가(無事歸家)만을 간절히 바라시며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하시다 이제는 늙고 병마저 드신 어머님은, 이제 돌아와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자식의 손을 꼬옥 잡으시고는 울고 또 우셨다. 이제 내가 죽어도 눈을 감고 죽을 수 있게 되어 고맙고 또 고맙다고 하시면서, 앞으로는 부디 잘 살아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아, 사랑하는 어머니! 이 못난 아들은 천하를 얻고 싶어 온 천지를 방랑했지만, 얻을 것도 없고 가야 할 곳도 없음을 이제서야 알고 이렇게 가던 길을 멈추고 어머니께 돌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선생님!

    5. 돌아와 보니, 내가 바로 길이다.

    알아서 알아진 것이 아니고, 가서 도달한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하고 가야 할 곳이 없다는 자각이 잔잔히 내 안에서 일어나면서 41년간의 방랑의 길이 멈추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의 상황이 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방황을 마치고 돌아온 자리는 예전 그대로 여전히 혼란스럽고 흐리멍덩하며 바보같지만, 어찌된 까닭인지 전처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고 자기분열과 자기정죄도 일어나지 않는다. 취[取]하고 버리는[捨] 분별이 그렇게 사라져버리고 나니, 나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의 만족과 성취, 미래의 구원 등을 기대하지 않게 되어 무엇을 하든 결과에 매달리지 않고 항상 기쁘고 즐겁게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욕구가 사라지면서 나는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 가슴 가득한 사랑과 기쁨 속에 그냥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나를 특별히 여기던 마음도 없어지고, 나로 하여금 끝없이 길을 떠나게 하던 온갖 개념과 논리가 봄눈 녹듯 사라져 나는 이제 더 이상 가야 할 곳이 없어져 버렸으며, 이미 내가 길(道)이므로 나는 단지 이 평범하고 흐릿한 나의 길을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걸어갈 뿐이다.
    가야 할 곳이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아직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가 늘 고통스럽고 또한 가야 할 길이 아득히 멀기만 하더니, 문득 가야 할 곳이 없어져 버리니까 나는 어디로 가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멀리 허망한 길을 떠나본 사람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가야 한다고 믿고 있던 그 길은 단지 현재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가 '완전'을 꿈꾸며 만들어 놓은 허구(虛構)의 길임을……!
    이제 다시 돌이켜 보면, 그렇게 힘들게 나를 진리를 향한 길로 내몰았던 내 모든 삶의 상황은, 허망했던 나를 진정한 지금 이 순간의 삶 속으로 인도하는 은혜로운 축복의 여정(旅程)이었음을 알겠다. 그 모두는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내가 만들어 내가 짊어졌으며, 내 스스로 내려놓아야 하는 사랑의 짐이었고, 내가 나로 거듭나기 위해 꼭 치러내어야 했던 나의 소중한 '사람살이'였다는 것을! 그 어떤 순간에도 나의 참사랑은 한시도 나를 떠나지 않았으며, 또한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을 알기에, 이젠 나도 그 '사랑'으로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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