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국 선생님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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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6,919회 작성일 06-02-07 08:42본문
안녕하세요?
오늘은 황재국 선생님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황재국 선생님은 현재 대구에서 '황선생 수학교실'을 바로 지난 월요일(11월18일) 새로 오픈한, 수학 전문강사 이십니다. 나이는 서른 아홉에 아직 노총각이구요. 지난 화요일 정화여고 선생님들과의 금강경 모임을 마치고 마악 나오는데, 오픈했다며 전화가 왔길래 가봤더랬습니다. 아직 책상이랑 집기도 다 들어오지 않았고, 학생도 한 명 오지 않았지만, 아크릴 냄새가 코를 찌르는 텅 빈 원장실에 혼자 앉아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너털웃음을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는 그가 그래도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와의 만남과 인연은 참으로 극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7월13일 중앙일보에 저에 관한 기사가 나간 후 얼마가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난데없이 그가 제게 전화를 해서는 대뜸 말하기를,
"중앙일보를 보고 전화를 하는데, 당신 강의에는 관심없고, 나이도 나랑 비슷한 것 같은데, 소주나 한 잔 합시다...."
"좋지요!"
그렇게 우리는 마주앉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이미 어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자신이 그토록 목말라 하던 삶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 물어본다거나 얘기를 나눈다는 것에 대해 이미 충분히 식상해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나 기대를 하며 달려가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또한 언제나 실망뿐이었던 것입니다.
처음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그는 거듭 자신의 궁극적인 갈증에 대해 말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깨달음이란 다름 아닌, 혼자 있으면서도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한 것인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무어라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불안에 늘 입술이 탔던 것입니다.
"화두(話頭)를 잡을까요?"
"아니, 화두는 어렵습니다. 놓치지 않고 성성히 잡기도 어렵거니와, 그것을 타파한대도 또다른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과 삶 그리고 일상(日常)을 떠난 어떠한 것도 잡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당신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그는 그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 정말이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왔던 것입니다. 큰스님이란 큰스님은 대부분 다 찾아보았고, 누군가 한소식 했다 하면 천리길도 멀다 않고 달려갔으며, 성당이나 교회에서도 타는 목마름으로 그 말씀에 매달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애틋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궁극적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에 이르렀고, 아아 그렇다고 그 헛헛한 가슴을 안고 그냥 살아갈 수도 없어 이제 그는 깊디 깊은 절망감 속에서 그나름의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길 없는 자신의 내면의 공허와 그에서 비롯된 '불안'을 잊어버릴 수 있는 두 가지의 방법을 찾아내게 되는데, 그 하나는 '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술'입니다.
대구 팔공산 정상에는 '갓바위'가 있습니다. 다른 여느 불상(佛像)과는 달리 머리에 갓을 쓰고 있어 '갓바위'라 부르는데, 커다란 바위를 깎아 만든 불상(佛像)입니다. 그 불상(佛像)을 손으로 만지며 소원을 빌면 어떤 소원도 다 이루어지는 영험함이 있다 하여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언제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요. 저도 한때는 ㅡ 대구 영남일보 교정부 계약사원으로 근무할 때라고 생각되는데 ㅡ 홀로 고요히 앉아 명상할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없어 시간만 나면 그 갓바위에 올라가 그 옆 한적한 바위 위에 앉아 채울 길 없는 내면의 공허를 아파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갓바위에 오를려면 한시간 반은 족히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황재국 선생은 이제 그 갓바위를 뛰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목격할 수밖에 없고, 채워도 채워도 채울 길 없는 자신의 내면의 공허를 어쩌지 못해 미친듯이 그 갓바위를 오릅니다. 차라리 그게 나았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 그냥 그 텅 빈 공허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쓰라림 보다는, 미친듯이 뛰고 숨이 턱에 차 더이상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되어버린 육체의 고통이 더 나았던 것입니다. 차라리 그게 더 견디기 쉬웠던 것이지요. 그렇게 그는 매일을 뜁니다. 그것도 단 27분만에! 갓바위 정상까지를요! 아아, 차라리 그것은 고통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그 갓바위까지의 뜀박질을 그는 몇년에 걸쳐 지금까지 1천여번을 거듭해 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ㅡ!
그렇게 미친듯이 갓바위까지를 뛰어 올라갔다가 내려와 시원한 물로 미친듯이 샤워를 하고 나면 적어도 한동안은 그 '공허'를 잊어버린답니다. 전에 없이 마음이 너그럽고 여유로워지기도 하고,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약간의 자신감이 생기더랍니다. 확실히 그것은 효과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를 못했습니다. 고작, 아아, 고작 12시간! 그 미친듯한 뜀박질의 약발은 너무나 짧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루중 나머지 반은 어떻게 하나? 그 긴 시간은 또 어떻게 견디나?
그는 입시학원의 수학 강사였습니다.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치는 시간은 언제나 늦어 밤 11시가 넘었습니다. 그러면 추적 추적 어두운 골목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와서는, 고통을 못견뎌하는 환자가 미친듯이 진통제를 찾듯 그는 한 병의 소주를 마주합니다. 아아, 그 한 병을 다 비우기 전에는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원래 그는 술을 못마시는 체질이었습니다. 소주의 그 역하고도 쓴 냄새가 못견디도록 싫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의 너무나도 괴로운 고통에 입을 대보기 시작한 소주가 이젠 매일밤을 한 병을 비우지 않고는 그 나머지 반의 '공허'를 달랠길이 없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리하여 그는 밤이 되면 내일 아침 갓바위를 뛰어오를 수 있다는 희망으로 잠들 수 있었고, 오후가 되면 저녁 늦게 소주 한 병을 마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 긴 오후를 버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오래 지속이 되던가요? 그러한 뜀박질과 노력들이 다시는 갓바위를 뛰어오르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술잔을 움켜쥐지 않아도 될 만큼 자신을 진정으로 해소시켜 주던가요?"
"아니요! 그것은 언제나 그때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황청심원과 같았어요. 언제나 언제나 먹을 때 그때 뿐! 그리하여 나는 지금까지 1천번을 거듭 거듭 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고, 다시는 갓바위를 뛰어오르지 않아도 되며, 다시는 미친듯이 술잔을 움켜쥐지 않아도 되는 길이 있습니다.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되죠?!"
"거꾸로요! 거꾸로 하면 됩니다. 말하자면....당신이 자신의 내면의 공허와 불안을 느낄 때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과는 반대로 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의 텅 빈 내면을 목격하거나, 불안이 찾아오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못견뎌하며 밖으로, 갓바위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그 모든 경험과 시간들이 이미 말해주듯, 그것은 진정한 해소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젠 그것을 거꾸로 하여, 어느 순간 문득 불안이 찾아오면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무작정 갓바위로 뛰어갈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불안 속에 한 번 있어보십시오. 다시 말하면, 갓바위로의 뜀박질을 버리고 불안을 택하라는 말이지요. 당신에게 찾아온 불안을 <해소>나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그냥 불안해보라는 말입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술잔을 기울일 때에도 그것이 자신의 내면의 공허를 잊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도 거꾸로 하여, 술잔을 버리고 공허를 택하라는 말입니다. 그냥 그 공허감 속에 있어보는 것이지요. 그러면 스스로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을요! 정말요! 당신의 삶 속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이런 경험이 있게 되면, 그때는 정말이지 모든 것을 알게 되요! 스스로요! 진리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해주거나 전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단지 거꾸로만 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해왔던 방식과는 반대로 거꾸로만요!"
".....쉬울 것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언제나 밖으로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만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단지 내 생활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거꾸로만 하면 되니까요. 좋습니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헤어질 때 그는 내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내일 정수기 사장님과의 독강(獨講)에 참석해도 되느냐고 말입니다. 강의를 한 번 들어보고 싶다면서요. 저는 흔쾌히 대답했고, 그는 다음 날 사장님의 옆자리에 앉아 '곡즉전(曲則全)'으로 시작되는 도덕경 22장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의를 마쳤을 때, 그는 상기된 얼굴로 말했습니다.
"어제 당신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무언지 모를 기쁨같은 것이 내면에서 솟구치더니, 오늘 당신의 강의는 내 가슴을 너무나도 벅차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곤 그는 변했습니다. 말하자면, 39년 동안의 그의 질기디 질긴 갈증이 끝이 난 것이지요. 사장님과의 강의를 마치고 오후 2시부터의 범물동 강의를 위해 차를 타고 가는데, 그가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강의 끝나고 자신을 잠깐 볼 수 없느냐면서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김선생한테 시주를 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한테도 시주를 한 적이 없고, 또한 단 한 번도 헌금을 해본 적이 없지만, 김선생한테는 내가 시주를 하고 싶습니다."
그는 20㎏짜리 쌀 한 포대를 내게 건네주었고, 만면에 웃음 가득 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쌀을 건네받은 저는 또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던지요! 아아, 마침내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해 쉼을 얻은 그가 얼마나 얼마나 고맙던지요!
그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자기분열'과 '자기정죄'가 없고, 더 이상 목말라 하지 않는 자신만의 소박하고 당당한 삶을요! 그런 그의 외적인 삶에도 변화가 와 학원 강사로서의 생활을 접고 그룹과외 전문의 '황선생 수학교실'을 열었으며, 내면의 갈등 때문에 엄두도 못내던 결혼도 이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제게 자꾸만 중매를 재촉합니다. 그래서 사실 얼마전에는 제가 중매도 섰습니다. 그의 내면이 변화된 처음 한동안에는 너무나 오랜동안의 마음의 억압과 긴장이 사라진데서 비롯된 '지난친 당당함'이 조금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것도 겨우내내 우리속에 갇혀있던 소들이 봄이 되어 첫 방목(放牧)을 나갈 때 길길이 뛰는 것과도 같을 뿐 조금 지나면 곧 제 모습을 찾을 것임을 저는 압니다. 나중에 그로부터 들은 얘기이지만, 모든 것을 거꾸로 해보기로 한 처음 한동안은 참 힘들었답니다. 도대체가 자신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구멍들을 틀어막았으니, 왜 아니 그랬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달아나지 않았고, 그 그침[止] 속에서 이제 그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살게 된 것이지요.
참 고마울 뿐입니다. 늘 부초(浮草)처럼 자신과 삶 속에서 떠다닐 수밖에 없었던 그가 하다 못해 말 한 마디라도 당당하고 분명하게 하는 걸 보면 참 감사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습니다. 그런 그가 얼마나 보기 좋은지요! 요즘도 가끔 전화를 하거나 한 번씩 만나 소주를 한 잔 하는데, 그때마다 제가 감동받는 것은 그 흐른 세월만큼 자라있는 그의 삶과 존재의 성숙이요! 그저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거꾸로요....
예, 거꾸로요!
오늘은 황재국 선생님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황재국 선생님은 현재 대구에서 '황선생 수학교실'을 바로 지난 월요일(11월18일) 새로 오픈한, 수학 전문강사 이십니다. 나이는 서른 아홉에 아직 노총각이구요. 지난 화요일 정화여고 선생님들과의 금강경 모임을 마치고 마악 나오는데, 오픈했다며 전화가 왔길래 가봤더랬습니다. 아직 책상이랑 집기도 다 들어오지 않았고, 학생도 한 명 오지 않았지만, 아크릴 냄새가 코를 찌르는 텅 빈 원장실에 혼자 앉아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너털웃음을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는 그가 그래도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와의 만남과 인연은 참으로 극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7월13일 중앙일보에 저에 관한 기사가 나간 후 얼마가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난데없이 그가 제게 전화를 해서는 대뜸 말하기를,
"중앙일보를 보고 전화를 하는데, 당신 강의에는 관심없고, 나이도 나랑 비슷한 것 같은데, 소주나 한 잔 합시다...."
"좋지요!"
그렇게 우리는 마주앉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이미 어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자신이 그토록 목말라 하던 삶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 물어본다거나 얘기를 나눈다는 것에 대해 이미 충분히 식상해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나 기대를 하며 달려가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또한 언제나 실망뿐이었던 것입니다.
처음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그는 거듭 자신의 궁극적인 갈증에 대해 말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깨달음이란 다름 아닌, 혼자 있으면서도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한 것인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무어라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불안에 늘 입술이 탔던 것입니다.
"화두(話頭)를 잡을까요?"
"아니, 화두는 어렵습니다. 놓치지 않고 성성히 잡기도 어렵거니와, 그것을 타파한대도 또다른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과 삶 그리고 일상(日常)을 떠난 어떠한 것도 잡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당신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그는 그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 정말이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왔던 것입니다. 큰스님이란 큰스님은 대부분 다 찾아보았고, 누군가 한소식 했다 하면 천리길도 멀다 않고 달려갔으며, 성당이나 교회에서도 타는 목마름으로 그 말씀에 매달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애틋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궁극적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에 이르렀고, 아아 그렇다고 그 헛헛한 가슴을 안고 그냥 살아갈 수도 없어 이제 그는 깊디 깊은 절망감 속에서 그나름의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길 없는 자신의 내면의 공허와 그에서 비롯된 '불안'을 잊어버릴 수 있는 두 가지의 방법을 찾아내게 되는데, 그 하나는 '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술'입니다.
대구 팔공산 정상에는 '갓바위'가 있습니다. 다른 여느 불상(佛像)과는 달리 머리에 갓을 쓰고 있어 '갓바위'라 부르는데, 커다란 바위를 깎아 만든 불상(佛像)입니다. 그 불상(佛像)을 손으로 만지며 소원을 빌면 어떤 소원도 다 이루어지는 영험함이 있다 하여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언제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요. 저도 한때는 ㅡ 대구 영남일보 교정부 계약사원으로 근무할 때라고 생각되는데 ㅡ 홀로 고요히 앉아 명상할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없어 시간만 나면 그 갓바위에 올라가 그 옆 한적한 바위 위에 앉아 채울 길 없는 내면의 공허를 아파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갓바위에 오를려면 한시간 반은 족히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황재국 선생은 이제 그 갓바위를 뛰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목격할 수밖에 없고, 채워도 채워도 채울 길 없는 자신의 내면의 공허를 어쩌지 못해 미친듯이 그 갓바위를 오릅니다. 차라리 그게 나았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 그냥 그 텅 빈 공허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쓰라림 보다는, 미친듯이 뛰고 숨이 턱에 차 더이상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되어버린 육체의 고통이 더 나았던 것입니다. 차라리 그게 더 견디기 쉬웠던 것이지요. 그렇게 그는 매일을 뜁니다. 그것도 단 27분만에! 갓바위 정상까지를요! 아아, 차라리 그것은 고통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그 갓바위까지의 뜀박질을 그는 몇년에 걸쳐 지금까지 1천여번을 거듭해 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ㅡ!
그렇게 미친듯이 갓바위까지를 뛰어 올라갔다가 내려와 시원한 물로 미친듯이 샤워를 하고 나면 적어도 한동안은 그 '공허'를 잊어버린답니다. 전에 없이 마음이 너그럽고 여유로워지기도 하고,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약간의 자신감이 생기더랍니다. 확실히 그것은 효과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를 못했습니다. 고작, 아아, 고작 12시간! 그 미친듯한 뜀박질의 약발은 너무나 짧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루중 나머지 반은 어떻게 하나? 그 긴 시간은 또 어떻게 견디나?
그는 입시학원의 수학 강사였습니다.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치는 시간은 언제나 늦어 밤 11시가 넘었습니다. 그러면 추적 추적 어두운 골목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와서는, 고통을 못견뎌하는 환자가 미친듯이 진통제를 찾듯 그는 한 병의 소주를 마주합니다. 아아, 그 한 병을 다 비우기 전에는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원래 그는 술을 못마시는 체질이었습니다. 소주의 그 역하고도 쓴 냄새가 못견디도록 싫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의 너무나도 괴로운 고통에 입을 대보기 시작한 소주가 이젠 매일밤을 한 병을 비우지 않고는 그 나머지 반의 '공허'를 달랠길이 없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리하여 그는 밤이 되면 내일 아침 갓바위를 뛰어오를 수 있다는 희망으로 잠들 수 있었고, 오후가 되면 저녁 늦게 소주 한 병을 마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 긴 오후를 버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오래 지속이 되던가요? 그러한 뜀박질과 노력들이 다시는 갓바위를 뛰어오르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술잔을 움켜쥐지 않아도 될 만큼 자신을 진정으로 해소시켜 주던가요?"
"아니요! 그것은 언제나 그때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황청심원과 같았어요. 언제나 언제나 먹을 때 그때 뿐! 그리하여 나는 지금까지 1천번을 거듭 거듭 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고, 다시는 갓바위를 뛰어오르지 않아도 되며, 다시는 미친듯이 술잔을 움켜쥐지 않아도 되는 길이 있습니다.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되죠?!"
"거꾸로요! 거꾸로 하면 됩니다. 말하자면....당신이 자신의 내면의 공허와 불안을 느낄 때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과는 반대로 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의 텅 빈 내면을 목격하거나, 불안이 찾아오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못견뎌하며 밖으로, 갓바위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그 모든 경험과 시간들이 이미 말해주듯, 그것은 진정한 해소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젠 그것을 거꾸로 하여, 어느 순간 문득 불안이 찾아오면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무작정 갓바위로 뛰어갈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불안 속에 한 번 있어보십시오. 다시 말하면, 갓바위로의 뜀박질을 버리고 불안을 택하라는 말이지요. 당신에게 찾아온 불안을 <해소>나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그냥 불안해보라는 말입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술잔을 기울일 때에도 그것이 자신의 내면의 공허를 잊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도 거꾸로 하여, 술잔을 버리고 공허를 택하라는 말입니다. 그냥 그 공허감 속에 있어보는 것이지요. 그러면 스스로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을요! 정말요! 당신의 삶 속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이런 경험이 있게 되면, 그때는 정말이지 모든 것을 알게 되요! 스스로요! 진리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해주거나 전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단지 거꾸로만 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해왔던 방식과는 반대로 거꾸로만요!"
".....쉬울 것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언제나 밖으로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만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단지 내 생활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거꾸로만 하면 되니까요. 좋습니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헤어질 때 그는 내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내일 정수기 사장님과의 독강(獨講)에 참석해도 되느냐고 말입니다. 강의를 한 번 들어보고 싶다면서요. 저는 흔쾌히 대답했고, 그는 다음 날 사장님의 옆자리에 앉아 '곡즉전(曲則全)'으로 시작되는 도덕경 22장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의를 마쳤을 때, 그는 상기된 얼굴로 말했습니다.
"어제 당신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무언지 모를 기쁨같은 것이 내면에서 솟구치더니, 오늘 당신의 강의는 내 가슴을 너무나도 벅차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곤 그는 변했습니다. 말하자면, 39년 동안의 그의 질기디 질긴 갈증이 끝이 난 것이지요. 사장님과의 강의를 마치고 오후 2시부터의 범물동 강의를 위해 차를 타고 가는데, 그가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강의 끝나고 자신을 잠깐 볼 수 없느냐면서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김선생한테 시주를 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한테도 시주를 한 적이 없고, 또한 단 한 번도 헌금을 해본 적이 없지만, 김선생한테는 내가 시주를 하고 싶습니다."
그는 20㎏짜리 쌀 한 포대를 내게 건네주었고, 만면에 웃음 가득 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쌀을 건네받은 저는 또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던지요! 아아, 마침내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해 쉼을 얻은 그가 얼마나 얼마나 고맙던지요!
그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자기분열'과 '자기정죄'가 없고, 더 이상 목말라 하지 않는 자신만의 소박하고 당당한 삶을요! 그런 그의 외적인 삶에도 변화가 와 학원 강사로서의 생활을 접고 그룹과외 전문의 '황선생 수학교실'을 열었으며, 내면의 갈등 때문에 엄두도 못내던 결혼도 이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제게 자꾸만 중매를 재촉합니다. 그래서 사실 얼마전에는 제가 중매도 섰습니다. 그의 내면이 변화된 처음 한동안에는 너무나 오랜동안의 마음의 억압과 긴장이 사라진데서 비롯된 '지난친 당당함'이 조금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것도 겨우내내 우리속에 갇혀있던 소들이 봄이 되어 첫 방목(放牧)을 나갈 때 길길이 뛰는 것과도 같을 뿐 조금 지나면 곧 제 모습을 찾을 것임을 저는 압니다. 나중에 그로부터 들은 얘기이지만, 모든 것을 거꾸로 해보기로 한 처음 한동안은 참 힘들었답니다. 도대체가 자신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구멍들을 틀어막았으니, 왜 아니 그랬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달아나지 않았고, 그 그침[止] 속에서 이제 그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살게 된 것이지요.
참 고마울 뿐입니다. 늘 부초(浮草)처럼 자신과 삶 속에서 떠다닐 수밖에 없었던 그가 하다 못해 말 한 마디라도 당당하고 분명하게 하는 걸 보면 참 감사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습니다. 그런 그가 얼마나 보기 좋은지요! 요즘도 가끔 전화를 하거나 한 번씩 만나 소주를 한 잔 하는데, 그때마다 제가 감동받는 것은 그 흐른 세월만큼 자라있는 그의 삶과 존재의 성숙이요! 그저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거꾸로요....
예, 거꾸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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