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머물러 두지 않으면 ㅡ 신심명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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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6,233회 작성일 14-04-03 21:11본문
전체 81장으로 되어 있는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가운데 가장 짧은 장인 40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반자도지동 약자도지용
돌이키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요, 약한 것이 도의 쓰임이다.
‘돌이킨다[反者]’는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혹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말입니다. 낮은 밤이 되고 밤은 다시 아침이 되며, 생(生)한 것은 멸(滅)하게 되고 얻은 것은 잃게 되며, 흥(興)은 다시 망(亡)이 되고 유(有)는 다시 무(無)가 된다는 것입니다. 슬픔은 오래지 않아 기쁨이 되고, 불안은 (비록 잠시라 할지라도) 다시 편안함이 되며, 우울이나 수치심도 어느 순간엔 망각하고 있을 때가 있고, 즐거움도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변화한다는 것이 바로 ‘도의 움직임’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약한 것[弱者]’이란 곧 무위(無爲)를 가리킵니다. 어떤 것을 억지로 바꾸고 고치고 극복해서 다른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은 변화하니 다만 집착을 내려놓고 그 흐름과 하나가 되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슬플 땐 그냥 그 슬픔과 하나가 되고, 불안할 땐 그 불안에 저항하지 말고 온전히 받아들여서 그 고통과 혼란 속에 가만히 있어 보며, 수치심이 들 땐 아무 염려하지 말고 그 순간 마음껏 비참해져 보라는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매 순간 있는 그대로를 올올이 받아들이며 그 순간 속에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도의 쓰임’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 순간의 슬픔과 불안과 수치심은 오래지 않아 제 스스로 돌이키고 변화하여 사라지면서[反者] 전혀 새로운 마음의 힘을 선물처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함으로 말미암는 이런 경험을 단 한 번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때 우리의 마음은 어떤 근본적이고도 질적인 변화를 맞게 되어 참되고도 영원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해, 단 한 번 온전히 ‘지금’ 속에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영원’을 얻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도를 깨닫기란 얼마나 쉽습니까? 자유란 얼마나 단순합니까?
노자는 다른 곳에서 이런 말도 하고 있습니다.
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 복지소의 복혜 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부위기 선부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우리 눈에 나빠 보여서 멀리 하려는 것[禍] 속에 정말 좋은 것[福]이 깃들어 있고, 우리 눈에 좋아 보여서 가까이 하려는 것 안에 정말 좋은 것은 하나도 없을 수 있다.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기실 정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름[正]은 다시 기이한 것[奇]이 되고 좋은 것[善]은 다시 요상한 것[妖]이 되나니, (그 둘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진실로 오래 되었구나!
다만 집착을 내려놓고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도의 ‘길’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마조(馬祖) 스님은 또 이렇게도 표현하셨습니다.
道不用修 但莫汚染 何爲汚染
도불용수 단막오염 하위오염
但有生死心 造作趨向 皆是汚染
단유생사심 조작추향 개시오염
도는 닦을 필요가 없다. 다만 더럽히지만 말아라. 어떤 것이 더럽히는 것인가? 분별하는 마음으로써 조작하고 추구하는 것들이 바로 더럽히는 것이다.
불안할 때 그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떤 인위적인 노력을 통하여 편안한 마음 상태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 바로 ‘조작’이며, 그와 같이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닌 미래의 보다 완전한 자아상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도를 더럽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도란 다름 아닌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이것’이니까요. 중생인 이대로가 바로 부처이니까요.
이제 승찬 스님의 말씀으로 돌아오겠습니다.
57.
一切不留 無可記憶
일체불류 무가기억
아무것도 머물러 두지 않으면 기억할 만한 것이 없다.
석가모니의 정각(正覺)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삼법인(三法印)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화한다.)이듯이, 우리 마음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변화하고 흐르는 것이기에 그 흐름과 하나가 되면, 즉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되면, 그렇게 아무것도 머물러 두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요 자유요 해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현재’에 있게 되면 매 순간을 100%로 살게 되기에 아무것도 기억해 두려고 하지 않고 또한 그 무엇도 지키려고 하지 않아도 언제나 자유롭고 신선하며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삶의 진정한 힘은 ‘기억’ 속에 있지 않고 매 순간의 ‘존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58.
虛明自照 不勞心力
허명자조 불로심력
텅 비고 밝아 스스로 비추니 애써 마음을 수고롭게 하지 않는다.
무엇이 텅 비고 밝아 스스로 비추느냐 하면, 지금 이 순간 우리 안에서 올라오는 모든 감정 느낌 생각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번뇌가 바로 보리[菩提, 깨달음]라는 말이지요. 그러니 애써 마음을 수고롭게 할 일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텅 비고 밝아 스스로 비춘다’는 말을 달리 표현해 보면, ‘모든 것은 다만 있는 그대로 일 뿐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도 좋다-나쁘다, 이다-아니다, 됐다-안 됐다, 밝다-어둡다 등의 이원(二元)의 분별로써 판단하고 규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금강경에서는 如來者卽諸法如義(여래자즉제법여의, 부처란 곧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9.
非思量處 識情難測
비사량처 식정난측
생각으로 헤아릴 곳이 아니니, 의식과 감정으로 측량키 어렵다.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딸아이의 눈빛 하나에도 긴장하고 경직되어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저의 모습이 바로 ‘자유’다 라고 하면 이해되시겠습니까. 불안 그것이 바로 ‘도’요 수치심 그것이 바로 ‘진리’다, 어느 순간 문득 찾아온 우울이 바로 ‘깨달음’이다 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은 생각으로 헤아릴 곳이 아닙니다.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 하늘 위 하늘 아래에서 내가 가장 존귀하다.)이라고 석가모니가 말했듯이, 진리니 자유니 도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은 다만 말일 뿐,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나’가 있을 뿐입니다.
60.
眞如法界 無他無自
진여법계 무타무자
진실하고 변함없는 법계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다.
‘진실하고 변함없는 법계’란 바로 ‘지금’입니다. 다만 분별심 하나만 내려놓으면 이 자리가 바로 ‘그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다고 승찬 스님은 말씀하고 계시지만, 진실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은 동시에 ‘있다’는 것임도 알게 됩니다. 그런 모든 이원의 분별을 넘어서 있는 자리가 바로 ‘지금’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승찬 스님은 이 신심명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有卽是無 無卽是有 若不如此 不必須守
유즉시무 무즉시유 약불여차 불필수수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니,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모두 갖다 내버려라!
61.
要急相應 唯言不二
요급상응 유언불이
재빨리 상응하고자 한다면 오직 둘 아님만을 말하라.
오직 둘이 아닐 뿐입니다. 모든 것은 다만 있는 그대로 일 뿐 그 어떤 것도 둘 곧 이원의 분별 속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 ‘이원의 분별’은 오직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허구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그 한 마음만 내려지면 즉시로 우리는 실상을 깨달아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62.
不二皆同 無不包容
불이개동 무불포용
둘 아니니 모두가 같아서 품지 않는 것이 없다.
둘 아님을 알게 되면 비로소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모든 것은 다만 있는 그대로일 뿐이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없기에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고, 기억해 두거나 쌓아둘 것이 없으며, 지킬 그 무엇도 없기에 한없는 평화가 우리 마음 안을 가득히 흐르게 됩니다.
63.
十方智者 皆入此宗
시방지자 개입차종
온 세상의 지혜로운 이들은 모두 이 근본으로 돌아온다.
온 세상의 모든 지혜로운 이들이 돌아오는 근본의 자리란 바로 ‘지금’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이미 그 자리에 있지 않나요? 우리는 ‘지금’을 떠나서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무엇을 더 찾고 무엇을 더 구해야 하지요? 다만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만 하면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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