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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믿음)이 필요한 이유.

작성일 11-02-1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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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ala (218.♡.100.82) 조회 4,52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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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산소와 같다.
믿음없이 우리는 하루도 잠시도 살아갈 수 없다.
이 세상은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게 약속이다. 우리가 정류장 지하철에서 기다리는 이유에서 부터
이 사회를 유지케 하는 각종 관공서, 은행 상점, 모든 인간관계등도 모두 약속에 의하여
유지되기 때문에 문명이 가능한 것이다.
당장 믿음이 없으면 발 한발짝도 내디딜 수 없다.
땅이 꺼지거나 지뢰가 숨겨져 있을 지 누가 아는가.
병원에 가서도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면 치료효과가 더디거나 거의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실로 믿음은 인간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미나나나 교육같은 데 가면 몸을 꼿꼿히 세워 그냥 뒤로 넘어져 보라한다.
동료가 확실히 뒤에서 안아 주지 않으면 골로 갈수도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누구나 주저한다.
워낙 불신의 시대라 몸을 내맡겨 직장동료를 믿고 사람을 신뢰하는 체험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적인 삶속의 믿음을 눈에 보이지 않은 곳으로 확대 시켜 보라.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하나님과 같은 인간을 만들고 난후
하나님이 인간에게 한 약속의 말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이다.
하나님이 한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내려 주시고 그대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로 한 약속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란 말이다.
성경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순종과 불순종의 인간 역사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창조와 종말을 믿지도 않으면서 예수님을 인용하며 성경을
다 이해한것처럼... 기독교를 다 이해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
물론 자신의 관점대로 이해한 것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기독교는 이천년간을 서구문명을 주도 해왔으나 근 이백년전부터는 엄청난 도전을
받아왔지만 믿음은 결코 그 끈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혼탁하고 살기가 힘들면 힘들 수록 종교심은 더 더욱 깊어지게 된다.
개인적 고난이 커지면 커질 수록 고난의 의미가 차원을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시대 기독교의 타락을 안티들은 수없이 인용하는데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실상이고 우리모두의 진실인 것.
이시대의 타락이 특별난 것도 아니고 이미 성경속에 다 나와있는 이야기다.
새삼 이시대 사람들만이 더 위선적이거나 부패하며 타락한 것만도 아니다.
그대들...순수함을 원하는가?
태고시대 제사방식은 어디서든 대부분 유사하다.
제사의 제물은 인간 즉 사람이다. 신의 노여움, 재앙을 풀기 위해 제를 지냈다.
제물로 자신을 바쳐야 함에도 대신 건강한 양이나 송아지를 바친다. 그래서 희생양이다.
자신을 죽여 신에게 바침은 자신의 교만을 신에게 용서구하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자기라 할 것이 없으므로 판단 비판 정죄할 수 없음에도
원죄때문에 늘 선악을 구별하고 스스로 판단 비판 정죄하며 신에게 도전해온 것이다.
자신이 직접 칼로 제물의 속을 가르고, 사지를 절단하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고
부위별로 해체하여 이를 완전히 태워 연기로 날린다.
이것이 소위 번제다.
이것이 제례 의식의 시초다.
그후 많은 세월 그 제례의 의미가 왜곡되고 변형되었다.
인간 삶은 사실 의식에서 시작하여 의식에서 끝난다.
탄생에서 돌찬치 입학식 졸업식 수여식 개업식 결혼식 기념식 장례식까지...
우리가 세상살면서 순종해야할 이유는 세상사람에게 덕보려 하는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며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은 복을 구하려 것은 맞지만 물질적 복만은
아니다.
순종 그 자체가 복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원래 인간됨의 본모습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순수함을 추구하는 이유다.
내가 이 세상을 내 좁은 어깨에 얹고 살아가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겠는가?
그러니 하나님에게 맡기고 직장선배에 맡기고 선생님에게 맡기고 남편에게 맡기고
이웃에게 맡기고 전문가에게 맡기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순종(믿음)이라는 것.
믿음이 별개인가?
선한 마음으로 남들을 믿는 것이다. 속으면 속으리라. 다 나를 성장시키려 하는 하나님의
뜻이겠지. 나를 더 큰 쓰임새로 쓰시기 위한 하나님이 예정된 고난이자 광야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크리스챤이다.
순종(믿음)은 용기이다. 용기없이는 신앙을 가질 수 없다.
내의지를 내려놓고 권위에 복종하는 과정은 자신이 깨지는 것이다.
내가 깨져야 순종이 가능하다. 요만한 자존심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을 그르쳣는가
내가 깨져야 승리한다. 이는 용기다. 용기가 생기기를 기다려서는 절대 용기는 오지않는다.
날 내려놓고...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에 순종하는 행동부터 하고 나면 내가 용기를
가졌었구나 하며 깨닫게 되는 것이다.
...
.
.
시간이 좀 있어 타자연습 좀 했습니다.ㅎㅎ
재미로 봐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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