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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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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득 (221.♡.89.66) 댓글 6건 조회 6,310회 작성일 16-10-0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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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산청모임후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와
오랜만에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봤습니다.
내 평생에 가장 많이 봤던 영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약간의 울림정도 였는데,
어느 날 주위가 고요해지고 차분해 졌을 때 다시 보니
마치 제 자서전의 일부를 보는 듯한 강력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영화는,
5.18 광주. 갓 입대한 순수하고 여린 주인공이 계엄군이 되어
극도의 공포와 혼란 속에 그만 어린 여학생을 우발적으로 죽이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그 일 후 주인공은 심한 자책감과 감당할 수 없는 상처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별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여 무미건조하게
살아갑니다.
 
어쩌다 어울리지않는 경찰이되어 학생운동자를 고문하고 그러면서 자신을 학대하고,
사업을 시작하고, 주식과 사기로 재산을 탕진하고 집과 가족과도 이별하여
혼자 남게 됩니다.
마지막 철로 위에서 '나 돌아갈래'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자살로 영화가 끝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감독은 마치 우리가 병의 원인을 찾아가듯 거꾸로 배치하여 보여줍니다.
 
그 섬세한 표현과 대사에 많이 놀랐고,
또한 내 인생의 '변곡점'과 돌아가고 싶은 그 때를 떠 올리게 합니다.
(순전히 저의 관점입니다)
 
우리 역시 살면서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쓰라림을 갖고 있을것입니다.
그로 인해 인생이 꼬이고, 꼬인 매듭은 그 다음 매듭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악순환이 시작되는 지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바이런케이티는 거실에 널린 아이들의 양말이,
기태샘은 있지만 없었던 아버지의 부재,내침이(이것도 순전히 저의 생각입니다),
저는, 없었으면 좋았을 아버지의 '있음'이 저의 변곡점 입니다.
 
아버지는 주위 친척 분들이 종종
"네 아버지는 두 발로 다니는 짐승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분이시고
어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너희 엄마같은 사람은 또 없다"라고 할 정도로 정많고
착하신 분입니다.
즉, 저에겐 불지옥과 천국이 동시에 존재 했었습니다.
아버지는 호랑이 백 마리 보다,
람보 백 명 보다 훨씬 강하고 무서운, 제게는 철인 28호 였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일에 '완벽한' 간섭과 욕지거리,폭력을 휘두르셨습니다.
밥을 늦게 먹으면 늦는다고, 빠르면 빠르다고, 많이 먹으면 많이 먹는다고, 적게 먹으면 적게 먹는다고
늘 구박과 손지검.(아버지도 할아버지로부터 4형제 중 가장 많이 구박을 받고 자라셨답니다)
기태 선생님이 강의 중에 사람들과 식당가서 먼저 밥뚜껑을 열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몰라 쩔쩔 맸다고 하는 고백.
저는 그 기분 충분히 압니다
이래야 할 지, 저래야 할 지 몰라 늘 눈치보고 긴장하고 쫄아 있었습니다.
말대답이나,"싫어요"라는 단어는 제 머리에 아예 없었습니다.
뭘 시키던지 즉시로,빠르게, 잘 해야 했었고 칭찬은 거의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오면 전 머리가 정지되었습니다.
초비상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오토바이로 친척 분이 만드신 옷을 시장에 내다 주시는 일을 하셨는데,
일 마치고 돌아오며 울리는 오토바이 소리에 저는 오금을 저렸습니다.
지금도 불현 듯 오토바이 소리가 나면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곤 합니다^^;
 
저 역시 아버지를 한 번도 마음을 담아 다정하게 불러 본 적이 없고,
따스한 눈길,어루만짐은 기억에 없습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는지, 어려운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하는지 조언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생명을 주었지만 영혼을 파괴했습니다.
그저 하나님한테 우리 아버지 좀 어서 데려가 달라고 간절히(?) 기도 했었습니다.
가난은 얼마든지 참겠다, 학교는 안다녀도 좋다, 제발 아버지만 없게 해 달라.
이게 어릴 적 제 소원이었습니다.
 
(모든 사랑과 따스함은 어머니에게서 받았습니다.
부족한 저를 늘 감싸고 숨겨주고 보살펴 주셨지요.)
 
이런 시간이 결혼 전까지 지속되었으니 어언 30년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지금도 사람 앞에서 뭘하려면 긴장되고 주눅들어 많이 힘들어 합니다.
금새 얼굴이 빨게지고 심장이 고동칩니다.
53인데 말이죠^^;;
제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아버지로 변합니다.
(자연스런 환경이면 말도 잘하고 재미납니다!)
 
정말 무섭고 끔직한 것은,
백 만번도 더 되네였던 '난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거야'란 다짐과 달리
이미 제 가족에게 제가 '그런 아버지'가 되어 있음을 안 순간,
내 안에 내가 어쩔 수 없는 또 하나의 내가 있음을 안 순간,
슬펐습니다!(아, 지금도 눈물이....)
 
상처의 대물림!!
.
.
.
 
그러다 어쩌다보니 하늘이 도우사, 한 마리 불쌍한 어린 양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가장 먼저 가족에게 빚갚음을 하고 있는데,
만만치 않습니다.
지은 죄가 워낙 무거워...시간이 많이 필요 할 거 같습니다.
 
또 그동안 밀쳐두고, 숨겨왔던 '숙제'들을 하나씩 하고 있는데
이거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치뤄내느라 무겁고 힘겹지만,
그 끝은 언제나 배움이고 성장이며 사랑임을 압니다.
 
안솔기 쉼터에서 못한 말을 이렇게 긴 글로 대신함을 이해해 주시고
6여년의 시간동안 변함없이 장소와 식사를 내어주시는 야마꼬님과
십시일반 하시는 산청모임 도반님들께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합니다.
 
세상의 아버지,어머니들께 화이팅!!
(저희 아버지는 여전히 너무 건강하게 잘(?) 계십니다^^;)
  
 
   
 

댓글목록

유기님의 댓글

유기 아이피 (222.♡.106.139) 작성일

문득님......감사합니다......

열어보여주신 삶과 마음.......고맙습니다

댁에 잘 가셨죠?

전 덕분에 편안하게 왔습니다^^(마침 중간 경유해서 바로오는 차가 있더군요^^)

환절기.....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뿌리 드립니다('그저'에서 바꿨습니다^^)-

유기님의 댓글

유기 아이피 (211.♡.148.228) 작성일

글을 읽고 이렇게  무서우신 아버지밑에서도 이렇게 훌륭한 분이 나올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여러번 드네요

행인님의 댓글

행인 아이피 (211.♡.161.211) 작성일

문득님,

내보이기 쉽지 않은 일들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제게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두살 때 돌아가셨다는데
한점의 기억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아버지'라는 역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답니다.

뭘 어떻게 하는 게 아버지가 할 일인지를
정말 전혀 몰랐습니다.

그걸 되갚느라고 한다고 하고 있기는 한데
제대로 전해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이야기에는
어쩌면 다 그에 해당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야 우리 유한한 인간으로는
알기 어렵다고 해도
바이런 케이티의 얘기처럼
그 일이 이미 일어났으니까
그게 우리 모두에게는 최선의 일이겠지요.

전 [박하사탕]을 보지 못했습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한번 봐야겠습니다.

이렇게 만나고 속을 터 놓을 수 있게 된
인연이 고맙습니다.

돌도사님의 댓글

돌도사 아이피 (211.♡.42.102) 작성일

자신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길인데...
참으로 어렵습니다.

쉬운 길이면 다들 쉽게 찾아가겠지만,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본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유쾌하지 않기에
매 순간 자신의 잘난 모습으로
대체하고서는 그냥 멀쩡하다고 앉아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자주봅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스스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니
계속 다른 사람에게 투사합니다

스스로 참기에는 그 상처가 너무 아파서!!!

그럼에도 요즘은 다른사람의 모습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봅니다.

그 깊이만큼
참으로 자유롭습니다.

내가 인정되니
남도 그대로 인정하게 되고
너와 내가 확연히 달라야 함도 인정하니
우리라는 울타리도 생기고~~~

감사합니다.

시간나면 박하사탕
다시  봐야겠습니다.

즐건 하루 되셔요...^*^...

짬뽕님의 댓글

짬뽕 아이피 (222.♡.67.58) 작성일

저두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하루 하루 감정이 너울 너울 춤을 춥니다.
 아이들의 닫힌 마음에 어쩔줄 모르는 저 자신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문득님의 글로 위안을 받고 갑니다.

vira님의 댓글

vira 아이피 (110.♡.248.56) 작성일

잘 지내셨는지요?  지난 일요일  문득님의 조카 상혜를 미얀마 수행처에서 헤어진 이후 9년만에 만났습니다. 아마 계속 볼  인연이었던가 봅니다.  이제 어엿한 주부가 되어있더군요. 그때에는 20대 중반의 참하고 열심히 수행하는 아가씨였었는데....보정스님, 자홍님과 그의 아들 딸, 그리고 문득님 모두 공부하는 인연이 중한 집안이라 느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나날이 가벼워지시기를! 한번 뵈어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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