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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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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프렌드 (210.♡.14.195) 댓글 7건 조회 6,351회 작성일 06-02-1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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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선약이 있는 관계로 이번 서울경 도덕경 모임에 참석할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많은 도반들의 후덕한 웃음이 그리워지네요...
죄송한 맘에 글을 조심스럽게 올려봅니다. 이 글은 작년 12월에 어머님의 장례를 마치고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내용입니다.
<엄마를 보내고>

지난 해 초여름, 국립암센터 앞마당에서 엄마와 저는
갑작스러이 닥쳐온 죽음의 판정을 담담히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가슴 밑바닥은 딱딱하게 굳어지고 엄마와 저 사이에는
갑자기 찾아온 어색한 손님 때문에 병원의 베드처럼
차거운 냉기만 드리웠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그 하늘의
햇살이 얼마나 따스하던지 그 따스함때문에 아무런
원망조차 할 수 없이 침묵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날 이후 엄마와 저는 죽음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엄마는 닥쳐올 육신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남은 자식들에 대한 걱정을 하나 하나 정리하여야 했고,
저는 마흔 길목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우주에서 엄마의 부재를, 나라는 존재의 생성이
있었던 그 자리 그 뱃속이 사라짐을, 막연한 두려움,
근원적 슬픔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피할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깨달은 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이리 저리 스님, 신부님, 목사님,
명상센터를 기웃거리고, 각종 영적 서적을 읽기도 하고
기도 및 명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깨달은 자는 이 근원적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리라,
그 분에게 이 근원적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리라,
그래서 저도 깨우쳐 엄마에게 삶과 죽음은 이런거야,
그러니 엄마, 죽음을 너무 두려워 하지마, 우리 그냥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이자고
죽음 너머 영원이 자리하는 곳이 있다고,
그 자리로 갈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저의 진리를 찾겠다는 여정은 나름대로 절실했던지
조금 지나치기도 했습니다.

자정을 넘겨서 집에 들어올때가 잦아 졌고,
주말에는 처자식 버리고 몇날을 헤메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명상 도중 조그만 체험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찾았다고 깨달았다고 하면 이미 그 상태는 멀리 멀리 사라지기
시작하더군요.
마치 생기면 사라지듯이, 잡으려면 더 멀어지듯이,
저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그 어느 누구로부터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마흔 길목의 방황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는
것을 아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엄마에게 삶은 이런거야, 죽음은 이런거야 라고
진리를 구해서 전해주리라는 저는 그 의문의 답을 찾지 못하고
아무것도 엄마에게 전할 말이 없었습니다.
가끔 엄마를 뵈면 깨달았다는 분들의 말씀만 앵무새처럼 말씀드리고
정작 제가 알았다는 것은 모른다이기에 제 얘기는 아무 것도 전해드릴 수 없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몇일 전에 며느리와 김장을 같이 하고
싶다고 하며 내려 오라고 하여 처와 애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 갔습니다. 그날 엄마가 그러더군요,
필재야, 처자식 버리고 무언가 찾겠다고 나서지 마라,
그냥 그렇게 처자식들 사랑하며, 감사하며 살아라,
네놈 처자식 사랑하는 것만 하기도 이 놈의 목숨줄이 너무 짧지 않느냐.
뼈만 남은 엄마의 이 몸뚱이를 봐라, 더 찾을 것이 없다, 처자식 사랑 뿐이다,
그리고 죽음 그 이후에는 화장하고 허공에 그냥 뿌려달라고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엄마의 마지막을 뵙지 못했습니다.
새벽에 찾아간 영안실에서 본 엄마의 얼굴이 어찌나 편안하고 예쁘던지,
아직 식지 않은 손이 얼마나 따스하던지, 그날 국립암센터 앞마당에서 본 따스한 햇살과 같이 말입니다.
임종을 지킨 누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엄마가 몇일 전부터 몸은 아프지만
맘이 그냥 편안하다고 그러시더라 하더군요.

상주인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문상오셔서 슬피우시는 분들도 많으셨습니다.
엄마가 종가 맏며느리라 살아 생전에 살기 고달픈 친척분들이 지나가다 집에 들려
엄마에게 이런 저런 하소연을 하시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그저 그냥 고달픈 친척분 옆에서 얘기를 들어주고 같이 있어 주었습니다. 그런 엄마가 무척 그립고 아쉬웠던가 봅니다.

임종하신 그 다음날은 눈이 내렸습니다. 부산에서는 보기 힘든 눈인데 그 날은 펑펑 내리더군요. 엄마를 화장하고 유골을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뿌렸습니다.
제가 유골을 뿌릴 차례가 되어 한 움큼 유골을 잡으니 화장터 부터 따라온 열기가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엄마의 따스한 품같이 그 온기는 제 손끝을 타고 마음 바닥을 두드리더군요.

그 순간 엄마의 부재는 생각이 아닌 현실이 되어 제 앞에 이 손끝의 느낌으로 있었습니다.
엄마는 어디로 가셨을까요, 우리가 왔던 그 근원으로 돌아 가셨을까요,
엄마는 재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지고 오로지 깊은
침묵만으로 남아 있습니다.
.......
........

그리고 저는 다시 생활로 돌아 갑니다. 엄마가 말씀하신 것처럼,
이 생활에서,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여기 이 순간에서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모지라면 모지란 대로 못나면 못난대로
그저 있는 그대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나면 죽고 생기면 사라지고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그냥 저절로 그 뜻대로 모두 이뤄지는 이 삶과 죽음의 깊은 침묵에서 있는 그대로 순종하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어김없이 이 겨울이 지나면 또 다시 봄이 올것이고
차거운 땅이 풀릴 것이고 그 땅에서 이름 모를 풀이 자라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 풀끝에서 엄마의 숨결을, 생명을 생각할 것입니다.

이 겨울, 뼛속 깊이 느껴지는 추위, 그 안에서도 따스한 온기가 자리함을 생각하며
엄마를 이제 보냅니다.



어머니, 저를 작게작게 하시어 티끌로 쓰시고 마침내 그
티끌마저 흩어져 당신의 품에 스며들게
하소서....()()()....

(엄마, 저를 낳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감사합니다. 최 필재 올림

댓글목록

.님의 댓글

. 아이피 (211.♡.124.37) 작성일

*
*두루마기 앞섭 열어 잠시 안아드렸음 좋겠군요.

** 다가올 제 나중이 두렵네요. 우리 맘 고저 건강하시길....()

김재환님의 댓글

김재환 아이피 (218.♡.231.122) 작성일

'엄마의 부재'란 말이 제 맘을 막 아프게 합니다.
살아생전 자식들에게 누를 끼치기 싫다며 죽으면 그냥 화장해 뿌려달라셨던 제 아버지가 생각나네요.
그래서 전 정말 그런 줄 알고 모두들 반대하는데, 제가 그렇게해드려야 한다며 제 아버지의 유골을 고향 이북과 제일 가까운 임진강에다 뿌려드렸어요.
그리고 한 참후에 정말 내가 잘못했구나하고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프렌드님의 글을 읽으며 자꾸만 눈물이 나네요~
그래서 저 또한  나도 죽으면 그저 산이고 바다고 아무데고 조용히 화장해서 뿌려져야 겠다고 생각하고있어요.
아 물론 이건 제 부인 될 사람의 몫이지만...
먹고 살겠다며 주변을 둘러볼 여유없이 내 발등의 불만 끄고 있는 요즘의 나에게 다시금 나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군요.
프렌드님 덕분에 간만에 실컷 울어볼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비님의 댓글

나비 아이피 (211.♡.184.159) 작성일

가슴이 뭉근해지며 주르룩 눈물이 흐르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고맙습니다, 프렌드님... 담엔 꼭  뵈요^^

토담님의 댓글

토담 아이피 (210.♡.241.80) 작성일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참 아름다운 분이라고 느꼈는데 역시!
비록 지금 어머니의 존재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아름답게 살아계시니, 천지에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을 겁니다
언제나 함께인 그 어머니으 마음과 더불어 행복하세요
어머니 생전의 말씀처럼 사랑하고 감사하기에도 부족한
유한한 삶을 사는 중 진실로 안다면 우리의 영혼은 맑게 정화될 겁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프랜드님 찿아서 어머니께 보여드릴려고 했던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선한 노모를 오랫동안 몹시도 힘들게 한 못난 불효자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뭔가를 구하려는 동안에는 한번도 어머니의 참마음을 진실로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한 생각 내려지면서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직 사랑으로
언제나 함께해주고 계시는 참 어머니의 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서럽고....감사하고...행복해...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 어머니는 진실로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프랜드님 이번에 못 오시면 언제라도 비원재에 놀러오세요
손 한번 따뜻하게 잡아보고 싶군요

지도무난님의 댓글

지도무난 아이피 (211.♡.93.139) 작성일

으음~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김기태님의 댓글

김기태 아이피 (219.♡.207.207) 작성일

그랬었군요....

지리산에서 첨 뵈었을 때 참 따뜻했습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이디아님의 댓글

이디아 아이피 (221.♡.19.101) 작성일

이곳 에서    모두  함께    명복을  빕니다.  엄마의  그  말씀이  김샘님의  가르침과  무엇이  다른가요?

 우리들의  부모들은  참으로  무얼  ,그  딴거  찾지  못하고  온 가슴으로  묵묵히  자식과  당신의 삶을
 송두리채  떠안고    살았지요 .  참으로  오로지    매  순간을  사신  불보살님들이죠.  아니,  우리처럼
늘    이자리를  떠나  더  나은  좋은것을  구하고  찿을줄  모르기에  온전히 그  순간을 살 수
 있었던거  아닐까요?

  저도  엄마의  싸늘 한  계모 자리가  그렇게  늘  떠나고  싶었던  자리가    지금에야,  스스로  나의  분별심,차별심에서      항상  엄마곁에  곁돌며  맘  괴롭혔던  사실에  40대가  되어서야  부끄럽게    많이  울고
  참회    했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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