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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이 (211.♡.184.159) 댓글 0건 조회 6,069회 작성일 06-04-2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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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리 책
장정일
나는 요리책입니다.
나는 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질투를
일으키거나 시기를 품지도 분노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어떤 전술이나 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전쟁을 일으키지도
못합니다 나는
요리책입니다.
나는 당신을 웃게 하지도 울게 하지도
못합니다 나에겐 갈등도 반전도 없으니까요.
또 나는 당신으로 하여금 외치게 하지도
침묵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나의
목적이 아니니까요. 물론 당신을
침대에서 일으키지도 못하고
라디오를 켜게도 끄게도 못합니다
단지 나는
(중략)
요리책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사상투쟁을 하도록 이론을 제공
하지도 않고 민중봉기를 부추기지도
않습니다 나는 또 정부를 선전하지도
기성세대를 대변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어떤
주의와 종파를 지지하거나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의 존재는 누구에게나
긴요하게 쓰여집니다 나는
요리책입니다.
십 년 전 장정일이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랍시고 유행했던 이유는..
그가 관심있었던 분야가 정치, 사상 등의 거대한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정일이 관심 있었던 건 보잘것 없는 자신의 삶..
그리고 그 보잘것 없는 삶을 이끄는 '욕망'이었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같은 소설의 주제도 '자기혐오'였다.

위 [요리책]이라는 시는 장정일의 그런 성향을 잘 보여주는 시다.
위 시 '요리책'의 의미는 기성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그것도 '정식적'인 반론이 아닌..
자기 자신의 자의식에 집중하는 생뚱맞은 방식으로 하는 도전..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면서 자신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기성의 권위에 '병균을 퍼뜨리며' 저항하는 게릴라, 가미가제식 투쟁.
(장정일의 '게릴라'란 시도 참 매력적이다)
위의 시에서 '요리책'이 의미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자신의 詩다.
자신의 시에 뭔가 위대한 사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실용적으로 읽혀지길 바라는 그런 마음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심각하고 치열한 정신운동의 결과물로 시를 바라보는..
그런 기존의 관념에 돌을 던지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시는, 그리고 시인은 너무 과대평가받고 있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다.
장정일은 시의 종말은 시와 대중가사의 구별이 없어지는 그 시점이라고 했는데..
어떤 새로운 것이 나오려면 기존의 것을 모두 파괴해버리려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장정일 시의 의미는 지금도 새롭다.
우리 사회의 기존의 권위가 하나 하나 조금씩 파괴되고 있는 요즘..
요리책으로 '명상'할 수 있는 그런 정신상태가 매우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낡아빠진 '진보'의 틀이 아직도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나약하고..
자신을 솔직히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한.. 그런 마음,
뭔가 확실하고 명쾌한 걸 바라는.. 그런 마음.. 때문에
낡은 진보의 틀(실지로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이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낡은 진보의 틀이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보수적인 마음' 때문인 것이다.
(요즘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의 삽질은 그런 걸로 설명할 수 있다.)

뭔가 위대하고 익숙하고 권위있어 보이는 그런 것들 보다..
개개인의 존재론적 의미를 잘 읽을 수 있는 그런 정신상태가 널리 퍼질 수 있다면..
기존의 낡은 틀은 언젠가는 '새로고침'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정일 시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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