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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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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11.♡.227.16) 댓글 11건 조회 6,779회 작성일 06-08-07 22:52

본문

깨달음을 통해서는 부족한 빵을 견뎌낼 수 있지만,
깨달음 자체가 빵을 주지는 못한다.
깨달음은 '나'를 고통의 굴레에서 해방시키지만,
그것은 '너'의 해방과는 근본적으로 별개의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 것'이 깨달음이라고들 하지만,
손위에 불똥이 튀어 올라있거나 개에 물린 상태를 '관조'하는 것을 깨달음이라 말할 수 있는가?
현자는 무조건 분별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분별해야할 것과 분별하지 말아야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이이다.
하물며 물도 낮은 곳을 찾아 갈 줄 아는데, 인간임에야!
* 부류 : 잡글

** 여기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 것'이 깨달음이라고들 하지만, 손 위에 불똥이 튀어 올라있거나 개에 물린 상태를 '관조'하는 것을 깨달음이라 말할 수 있는가?] 라는 표현은 '빵'을 먹어야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생물학적 필요성'과, 인간에게 고통을 가하는 '물리적 압박'은 인간 생존자체에 영향을 미침으로 모든 것을 분별없이 대하거나 간택하지 않는 것은 잘 못되었다는 것이다.(물론 이는 깨달음을 쫓는 사람들이 모두 분별과 간택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아무것도 분별- 간택하지 않으려는 극단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물질'(유)를 '무'로 보는 시적 관점을 동양철학에서는 고수하고 있으나, 말 그대로 물질자체가 무라면 우리는 이러한 문장을 이해할 기회자체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적' '인식'의 관점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물자체'는 우리의 인식 너머에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을 뿐이지만...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그 '물질의 필요'와 '물리적 압박으로 부터의 해방의 필요성'이, '나'에게 중요한 것을 진정으로 알게 되고, 그 필요성이 '나'를 넘어서 '너'의 것에도 닿아있음을 알게된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 것'이 깨달음이라고들 하지만, (타인의)손 위에 불똥이 튀어 올라있거나 개에 물린 상태를 '관조'하는 것을 깨달음이라 말할 수 있는가?] 와 같이 '타인의'라는 수식을 집어 넣으면 의미가 분명히 와닿지만, 1차적으로는 '내 자신의' 손 등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굳이 수식하지 않았다.

이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을 '타인에 대한 무관심/무지/무행동'과 동일시 하는 이해와 대립된 관점이다.

댓글목록

싱글맨님의 댓글

싱글맨 아이피 (220.♡.228.184) 작성일

깨달음이 무슨 도깨비방망이

깨달음에 대한 추구는,마음의 갈등을 마치고자하는
모든 이의 공통의 바램이 아닐까요? ㅡ 설사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ㅡ

손 위에 불똥이 튀었으면 잽싸게 치워야하고,
개에 물리면 얼른 병원가서 치료하고 광견병 주사까지 필히,
그리고 그 개의 주인을 수배하여 변상을 받아야 함이 바른 처신이지,
이게 깨달은 분이나, 아닌 분이나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둥글님은 그 차이를 아시는지요?  있다고 생각하시는 글 같아서...

깨달은 이가 남의 고통에 무심한 것도 아십니까?
그게 사실인가요?  놀라운 말씀입니다.
잡글이라 하시니,어데서 그냥 인용한 글인가요?
하여간 대단한 말씀들이군요.
다음 말씀이 기다려집니다.

들어와님의 댓글

들어와 아이피 (210.♡.89.144) 작성일

둥글이님은 참 똑똑한 바보입니다.
말을 말대로 받아들여서 생각으로 그것이 사실인양 알고 계시니...
빵이라 하면 그게 실제 빵인가요?
날 때부터 동굴에서 나서 태양을 한번도 못본 사람에게 태양은 이런 거야 했다고
그가 태양을 안다고 생각하시나요?
빵도 내가 먹어 봐야 맛을 알듯 깨달음도 내가 깨달아 봐야 깨달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게 깨달음이다 하고 말하면 그것을 생각으로 알고 깨달음은 이렇다 하면서
빵을 못준다 등... 하고 있으시니...

 
자신의 잣대로만 판단하고 분별한다면 세상에 어느것을 배울 것이 있을까요?
논리와 분별로 중무장을 해도 그게 사실은 난 어리석어요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면...
논리와 분별이 왜 어리석은지 알아보기도 전에
그렇지 않음을 자신의 논리와 분별로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여기 어딘가에 아는 것과 되어 보는 것은 하늘 땅처럼 다른 것이라는 김기태님의 말씀도 있더군요.
분별없는 것이 말대로 그저 분별없는 것이라면 그게 바보지 어디 깨달음이겠습니까?
분별을 치열하게 하여도 분별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분별을 치열하게 하는데 어떻게 분별이 없지? 하는 것도 이해가 되나요?
분별없음이 말대로 분별없음이라면 그것은 무기나 혼침이라는 병인 것입니다. 
병을 갖고 깨달음이라 생각하시니...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못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갖고 계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둥글이님 뿐 아니라 누구나 잘 모를 때는 그런 오류를 범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듣고 물어보는 자세가 나을 것입니다.
둥글이님께서 다른 이에게 자신의 관점을 전달할 때
상대가 잘 모르면서 그렇다고 단정짓고 둥글이님의 말을 논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둥글이님이 이곳에서 하시는 말들을 읽다보면...
마치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삶의 길을 계속 가고 싶은데 무언가 석연찮아서 오신 것 같습니다.
그게 둥글이님의 생의 갈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생의 갈증을 풀어 보이시지도 않고...
남들의 말을 그것이 아니다 라고만 하시니...
아니면 말해주면 되잖습니까?
내 생의 갈증은 이런거다.
하고 말이죠.
같이 고민해볼 것이면 함께 고민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은데....

싱글맨님의 댓글

싱글맨 아이피 (220.♡.228.184) 작성일

들어와님께서 아주 말끔한 말씀을 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역지사지의 말씀은 새삼스러이 부ㄲ러움을 느끼게 만드는군요.
저 역시 둥글이님과 비슷한 심정의 소유자인지라 왠지 그분의
글에 자꾸 눈이갑니다.
아주 냉철하신 분이 어떨땐 아니고...
여러사람을 시험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의문도 가네요.

선장님의 댓글

선장 아이피 (222.♡.190.211) 작성일

둥글이님은 오해는

자신과 깨달은 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을, 그리 해석하시면 곤란합니다.

깨달음이 가르침으로 전파될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스승 막대기로 머리 얻어터질 일도 없겠지요.

님 말대로 불똥이 떨어져도 가만히 있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불똥의 뜨거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행위가 되겠지요?

님 거울을 보세요.. 거기 부처가 보일겁니다.

선장님의 댓글

선장 아이피 (222.♡.190.211) 작성일

우연찮게도 유난히 둥글이님 글에 댓글을 열심히 달게 되네요.

둥글이님의 기운찬 '기운'에 섞여 대충 그 '기빨' 좀 받으려 그런듯합니다.

싫은 소리, 오해는 살아가다 나도 하고 너도 하고 뭐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다 정도 붙고 그러는 거지요.

토론은 치열하게 하고 사랑은 둥글게 하며 살아갑시다.

^^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7.16) 작성일

제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을 그리 해석한 것'은 '다른 사람이 그리 생각하는 관점'을 말씀 드린 것이지 제 이해를 말씀 드린 것은 아닙니다.
'불똥이 떨어져도 가만히 있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알고 있다는 식으로 비꼰 것은
내 손등에 불동이 떨어졌을 때는 피할줄 알면서 다른 사람의 손등에 불똥이 떨어지 것에는
무관심한 모양을 보이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깨달음'관에 대해서 말씀 드린 것입니다.

'깨달음'과 '가르침'이 다르다고 얘기하셨는데...
'깨달음'을 '무'로 해석하실 만큼 상상력이 출중하신 분이 왜 꼭 이 대목에서는 걸리는지 모르겠군요.

어제본 도덕경 3장에서도 가르침은 어떠해야 한다고 나와있읍디다.
가르치고 안가르치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가르치느냐'의 문제가 될 텐데...
우리가 평소 머릿속에 개념화한 '가르침의 방법'과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이러한 필요성 자체를 중화시키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할 듯 합니다.

일예로 저는 '대립적인 조직' 앞에서 무릎꿇고 있거나, 길거리에서 개줄을 매고도 퍼포먼스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 '가르침'이라는 의미가 '일방적으로 내 이해를 상대방의 머리에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고, 또 상대방의 이해도 마땅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라면 (가르침의 의미 자체가 상실되면서)'교통'의 의미가 생성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렇다 보니 '가르침'이라는 단어가 주는 '주도적'이고 '거만한' 이미지가 거부감을 줄 수 있는 것이죠.

뭐 그렇다는 얘김다. ㅠㅜ

정님의 댓글

아이피 (211.♡.240.17) 작성일

둥글이님...

아직, 자신도 모르시는 님이 남의 생각은 어찌 아십니까?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7.16) 작성일

본인들이 그렇게 말씀 하셔서 올린 말씀인데요.
정님은 나만미워합니까? ㅠㅜ

정님의 댓글

아이피 (211.♡.240.17) 작성일

둥글이님을 왜 미워합니까.

둥글이님의 열정을 사랑합니다.

선장님의 댓글

선장 아이피 (222.♡.190.176) 작성일

예 그렇군요.

저도 오해를 했었나 봅니다.

님이 쓰신 본문이 첨부 수정되어 미리 답글 단 내가 참 거시기 합니다.

흠..깨달음과 가르침이 다르다 얘기한 적도 없고, 무로 해석한 적도 없는데

이 대목은 상당히 억울하군요.

뭐 둥글이님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어쩌겠습니까마는

계속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라면 서로 서로 변명은 필요하겠지요?

누구나 자신의 틀로 왜곡할 수 밖에 없다지만 좀 심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기초적인 논지의 오해로 인해 쓰여진 답변은 저에겐 별의미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20.♡.172.48) 작성일

아... 죄송합니다. 제가 설명을 너무 이해 못하게 해놨군요.

이런 말씀입니다.

선장님께서는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무례한' 저에 대해서 충고를 하시고자,
['깨달음'이 '가르침'으로 연결되는 것으라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 말을 통해서 저는 선장님이 깨달음과 가르침을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파단했고,
그래서 선장님이 ['깨달음'과 '가르침'을 다르다고 얘기했다]는 식으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반면 저는 '깨달음'과 '가르침'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개념이라는 주장을 위해서,
흔히 생각하는 '주입식 학교교육' 같은 모습이 아닌 '교통'의 관계를 들먹었던 것입니다. 

하여간 이에 대해서 확실히 설명 못하고 그냥 넘어가서 개념화 시킨 점은 죄송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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