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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의 원조교재 사건의 처음과 끝

작성일 07-08-30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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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22.♡.240.38) 조회 5,23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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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모양이 행한 일

8월 29일 시사 고발프로그램에는 인터넷 얼짱으로 이름이 있는 박모양이 가출소녀들을 집에서 재워주면서 원조교제를 시켰다는 방송이 방영되었다.

인터넷으로 알게 된 가출소녀들을 집으로 불러들인 박모양은 A양에게 원조교제를 해서 돈을 벌어올 것을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자 친구들을 불러서 폭행 한 후 원조교제에 나서게끔 했단다.


A 양은 포주 박모양의 치밀한 계획 하에 하루에도 수차례의 원조교제를 한 적이 있을 정도였고, 이에 못 견뎌서 몇 차례를 도망했지만, 번번히 다시 잡혀와서 수도 없이 구타를 당해야만 했단다. A 양의 진술에 따르면 이때 탈출을 시도한 벌로 박모양은 직접 키우는 고양이 똥을 강제로 먹이고 부츠를 신은 신발로 짖밟혔으며, 한번은 쇄파이프를 휘둘러서 머리를 열 바늘을 꿰매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박모양은 계속 원조교제를 주선했고, 상처가 봉합되면서 실밥을 뽑아야할 상황이 되었음에도 계속 원조교제만을 강요하여 결국 A 양의 머리에서는 고름이 차서 터지는 일이 발생했고, 흉터까지 남겨졌다고 한다.


그렇담 박모양이 A양에게 원조교제를 강요할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함’은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많은 이들은 이로부터 더더욱 충격을 얻었다. 박모양은 명품 악세사리로 자신을 치장하고 돋보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A양에게 혹독한 원조교제를 강요했던 것이었다.


박모양의 싸이월드 홈페이지에는 60만원짜리 샤넬선그라스를 쓰고 친구들과 휴가를 갈 계획이 올려져 있었고, 그 얼마 후에는 실제로 구입한 선그라스를 직접 쓰고 찍은 사진이 올려지기까지 했단다. 뿐만 아니라 박모양이 입고 있는 옷과 악세사리도 하나 같이 명품인데, 이 ‘비용’은 A양의 원조교제를 통해서 충당되었다.


A양의 진술에 의하면 한번은 박모양이 자신의 생일을 위해서 60여 만원이 필요했기에 원조교제로 이를 벌어오라고 했지만, 너무도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입장을 표하자 ‘네가 내 생일을 망칠꺼냐?’고 울면서 다시 구타를 했다고도 한다.


A양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집으로의 ‘탈출’을 시도하게었는데, 박모양은 A양이 마치 자신에게 빚이 있는 것 처럼 이야기를 해서 그들의 부모들로 부터도 돈을 뜯어냈다고 한다.


A양이 사라지자 박모양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다른 희생양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된 B양을 다시 자신의 집에 불러들여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된다.



2. 정확히 무슨일이 있었던가?

박모양이 행한 일은 참으로 잔혹한 일이고 이에 대해 박모양은 처벌은 받겠지만, 우리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될 수 밖에 없는 ‘사회현상’을 읽어내는 시야를 길러야 한다.


이러한 문제가 생겨날 때 마다 사람들은 그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그 ‘당사자’에게만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박모양 역시 공개재판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좀 더 신중하고 폭넓은 시야로 현실을 대면할 필요가 있다.


우선 박모양은 ‘인터넷 얼짱’의 위용을 과시하며 이를 선망하고 있던 A양과 B양을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였 노예화 했던 것인데, 과연 그 외모지상주의는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기업들의 싸구려 상업주의와 이에 영합한 언론들은 허고 헌 날 ‘쇼오락’프로그램에 ‘번들번들’한 스타들을 등장시켜서 10대층의 선망을 조장했고, 이러한 세뇌전략에 중독된 10대 층은 ‘외모캡 천국, 외모꽝 지옥’이라는 도식을 머릿속에 구축하고 기꺼히 ‘외모만 잘 다져져 있으면 만사가 해결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스팩트럼 중에서 그 한 극단에 선 이가 박모양일 뿐이다.


둘째로 물신주의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의 양과 질에 의해서 인간이 평가되는 사회에서, ‘명품’으로 치장해서 스스로를 높이려는 의지를 갖는 것은 물신주의사회(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평범한 이들이 자연스럽게 빠지는 함정이다.

이들의 ‘존재감’은 자기 자신의 굳건한 정신과 가치에 있지 않고,

자신을 치장한 악세사리나, 타고다니는 자동차, 집, 그들의 인간관계에 있다.

이들은 ‘내 자신이 스스로에게 떳떳한 삶을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봐줄 것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이러한 함정에 빠진 이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노력’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데, 게중에는 ‘위법’을 감수하고 그러한 ‘노력’에 매진하는 이들도 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가진 것도 없고 자기 주관도 없는 터에,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은 받고 싶으니 어찌하겠는가?

스스로 ‘존재감을 잃는 것’ 보다는 위법을 해서라도 그러한 ‘존재감’을 갖는 것이

그들 ‘다져지지 않은 주체의식’을 가진 이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처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박모양의 행위는 그 중에서 극단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과연 박모양이 다른 문화권의 사회(예를 들어서 물질이 인간의 가치를 뛰어넘지 않는 사회)에 살았더라도 똑같은 모습을 보였겠는가?에 대한 숙고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내부에 스며들어 있는 물질주의 가치 하나 하나가 박모양과 같은 이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만들어 내리라는 것을 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의 문제는 앞서 두 번째 문제를 좀 더 확대한 내용으로 ‘존재감’에 관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존재감을 갖게 되는가?

앞서 말했던 대로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의 지위’ ‘주변사람과의 관계’ 등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구축한다. 여기에는 ‘주체’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세계’와 ‘환경’의 문제에 대한 그 어떤 진지한 숙고와 고민도 필요치 않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그에 따른 ‘포장’에만 충실하면 된다.


박모양은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고, 그 어머니는 동네 김밥 집에서 일손이 필요할 때만 한 번씩 도와주며 얻는 돈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한국적인 천민자본주의가 가한 ‘압력’은 박모양 스스로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비관을 갖게 했을 것이다. 가진 것의 양과 지위의 높낮이로 인간을 평가하는 사회속에서 ‘분식점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어머니를 자랑스럽고 떳떳히 여기기는 힘들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학교 부적응으로 인하여 박모양은 중학교 2학년 때 중퇴당한 이후로 줄곧 집에서 생활해 왔다. 이후 금품갈취와 폭력 등의 행위로 인해서 보호관찰까지 받는 처지였단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회가 가한 도식에 의해서 ‘불우한 가정’에, 대학은 커녕 중학교도 졸업을 못한 현실은 스스로를 비관하게 만들었을 것이었다. 이 처지에서 박모양은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길’을 택했다.


그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죽던 저렇게 죽던’ 죽는 것이 매한가지의 기로에서, 폼나게 살다가 죽을 길을 택했던 것은 tv 프로그램에서 끝없이 ‘폼생폼사’를 주문한 결과에 의했을 것이고, 능동적 생산의지가 없던 박모양에게 ‘폭력’과 ‘금품갈취’는 자신을 치장할 수 있는 금전을 긁어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일명 많이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좀 더 고도화하기 위해서 하루 아침에 노동자들을 수백명씩 해고하여 길바닥에 나 않게하고, 일명 힘 있는 이들이 없는 자 약한 자 보다는 가진 자에게 맞게 사회정책을 구축되는 현실을 볼 때는

‘제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박모양의 모습은 기성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 극히 정상적인 모습이기에 그러한 ‘약자 희생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관성’이 좀 선정적인 소재와 어우러져서 방송된 것에 놀랄 필요가 없다.

개별적 인간이 빚어내는 문제는 ‘사회적인 원형’ 속에 그 원인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넷째는 ‘쌔드-메저키즘’과 관련된 문제이다.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은 A양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박모양의 폭력에 대해서 온전히 저항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역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봤을 때는 전혀 이상할 일이 못되는 모습이다.


미국의 폭력과 야만성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UN의 결의안을 무시하고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것 자체가 시대를 후퇴시킨 것이고, ‘이라크 침략은 미국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미국 하원의원들이 딕체니부통령의 탄핵안을 상정한 상황이고 부시탄액안도 준비하고 있을 정도이면, 그 정도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자국의 이익에 위배? 되는 이란의 회교혁명을 막기 위해서 이라크의 후세인에게 이란 공격용무기를 직접 쥐어준 것이 ‘그들’이었지만, 다시 석유를 빼앗기 위해서 이라크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쳐들어갔던 것은, 이권이 있는 곳마다 들어가서 분쟁을 일으키고 그 이익을 취해내는 미국의 조잡한 전략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전 세계 이산화 탄소 배출량의 3분의 1을 뿜어내는 상황에서도 오직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온실가스배출규제협약에 탈퇴한 것은 그러한 미국의 야만성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


‘상호불가침조약’만 써주면 핵무기 포기한다고 북한에서 공언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지만, 그랬다가는 ‘긴장과 분쟁, 전쟁’을 통해서 뼈대가 유지되는 미국의 ‘군사-석유’기반이 무너져 버리기 때문에 (다는 아니더라도)미국은 ‘갈등과 분열’을 고의로 조장하는 부분이 틀림없이 있다. 미국의 보수당공화당의 대외정책과 세계화전략이 인류를 어둠으로 몰고 가고 있음의 다름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야만성에 대해서 우리 한국민들 상당수의 모습은 어떠한가?

혹여나 미국에게 저항했다가 ‘철퇴’맞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노예이기를 자처해서 그들의 뒤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기독계계와 수많은수구조직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하나씩 들고 미국을 찬양하는 모습을 우리는 하루 이틀 보아왔는가?


이 모습이 무차별한 폭력을 가하는 박모양에게 저항하지 못했던 A양의 그것과 뭐가 다른 것인가?


물론 이러한 ‘쌔드’(착취자) -‘메저키즘’(착취당하는자)의 관계는 인류의 정신 깊은 곳에 각인된 특별한 생존심리이기는 하지만, 현대사회의 ‘물신주의’ ‘권위주의’가 인간의 그러한 성향을 교묘하고도 집요하게 자극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 박양의 반응


이러한 사건이 방송에 보도 될 때 박모양은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던 듯 하고,

그 직후 자신의 싸이 홈피에 비난 글이 쇄도하자, 이러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내용은

‘ 너희가 내가 하는 것을 봤어? 나 죽고 싶어! 너희는 너무 잔인해’라는 류의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었다.


이에 네티즌들은 분개했고, 아예 실명으로 이름을 드러내고 사진까지 첨부하면서 아예 적나라하게 공개처형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박모양은 비로소 현실을 받아들이며, 어찌해야할 바를 몰라하며 자신의 홈피에 사과문을 올리게 된다.


‘...정말 죽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여기서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지금도 반성 많이하고 있습니다.’


철부지 소녀의 주체할 수 없는 격동적 감정과 미숙한 사고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반응이다.

주변에 방황하는 자신을 잡아줄 사람도 없고, (친구들을 불러서 A양을 집단 구타했다는 것을 보면)만나는 친구들도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평범하지 않은 가족구조와 궁핍은 청소년기의 불안과 조바심을 유난히 증폭하면서 박양을 방황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현대 사회가 압박하는 ‘채우고높아지려는의지/외모지상주의/물신주의’는 기질적으로 가뜩이나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하는 박양을 더더욱 궁지로 밀어 붙이면서, 박양이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하게끔 만들어냈다.


처음에 박양이 길가는 힘없는 아이를 불러 세우고 금품을 갈취하려 할 때는 많은 고뇌와 주저가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취한 것으로 자신을 꾸미고 치장하면서 획득한 ‘우월감’ ‘긍지’ ‘자존심’은 스스로의 불행과 열등감, 상실감을 충분히 마취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박양이 반응했던 바는, ‘정치인’과 ‘기업가’들과 ‘대중’이 합작으로 만들어 놓은 ‘대중상업주의’가 개개의 국민들에게 ‘그렇게 되기’를 요구하는 정확한 반응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태생적으로 악하거나 해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가한 압력(상업주의)가 불우한 환경과 맞물려진 ‘확률적’(이러한 사회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되는...)인 문제이다.


자신이 애초에 원한 길은 아니었지만, 한번 ‘그 길’에 발을 들여 놓고 나서 계속 더 빠질 수 밖에 없었고, ‘제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밟아서는 것을 당연스럽게 여기는 사회’에서 A양을 노예화 하는 것을 ‘당연스레’ 여겼는데... 그 ‘말미’에 비로소 자신이 한 일을 들여다 볼 기회를 들여다 보면서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 사건’의 의미를 알게 된 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 참담함은 그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리라.


이 사건을 접하면서 곰곰이 숙고해 본다.

도대체 박양이 야만적인 것인가?

박양의 머리에 심어진 생각들이 야만적인 것인가?

아니면 박양에게 그러한 생각을 심어 놓은 사회가 야만적인 것인가?


특별한 기회를 통해서 세상이 자기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타인의 삶’도 자신의 것과 같이 중요한 것임을 ‘온전히’ 깨닫고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쩔쩔매는 격동적 청소년기의 한 중심에 있는 박양의 모습을 보면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온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이 빚어진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들여다보고, 이러한 사회를 만들어 낸 우리 ‘각 개인의’ 의식과 욕망(채우고 높아지려는)이 분쇄되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될 터이지만, 이러한 야만적인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 마다 ‘보여지는 대상’에게만 손가락질을 하면서 통탄하는 우리의 모습들이,

결국은 똑같은 사건들을 앞으로도 수도 없이 반복 되게 할 것이기에 더더욱 아파진다.


과연 이러한 사회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잘 적응해서 일상을 살아가는 누가! 박양을 손가락질 할 수 있단 말인가!

부디 박양, A양, B양이 자신이 겪고 있는 사건을 통해서 자기 자신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아픔을 잘 치유하기를 기원하면서...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서 푹 패인 가슴에 인간과 생명과 자연을 담아내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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