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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 권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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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20.♡.72.172) 댓글 0건 조회 5,220회 작성일 07-10-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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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고등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너무 떠들어 대는 통에

여선생님이 울고 나가는 일 등이 있었다.

나름대로는 너무 화가 나서 수업시간에 떠드는 친구들에 대해서 잔소리를 시작했다.


대학 다닐 때는 도서관에 책 놓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의 공부할 기회를 뺏는 이들을 상대로

도서관 대정리? 활동을 수시로 했고, 학교 버스 새치기 하는 학생들 대상으로도 각종의 활동을 했었다. 학업보다 열심히.


졸업 후에는 버스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댐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편안히 버스에 앉아서 갈 기회를 빼앗는 사람들을 겨냥해서, ‘버스 안 예절 지키기 캠페인’ 스티커 등을

(회사 허락 하에) 버스에 붙였고, 버스 탈 때마다 피켓을 열고 앞에 서서 버스 탄 승객들을 대상으로 ‘버스 안 예절지키기’ 캠페인을 행했다. 1년 넘게 그리 했다.


현재도 도서관에서 책 읽는 중에 소란스럽게 하는 사람들,

찜질방에서 새벽에 떠드는 사람들이 있으면

적당히 참다가 가서 한마디씩 해주곤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내가 종종 듣는 소리는...

‘왜? 그렇게 예민하냐?’

‘마음을 좀 넓게 가져라’

‘네 할 일이나 잘해라’

‘네 마음만 편히 가지면 그러한 소리는 안들린다’는 등의 충고이다.


이런 때는 답답함이 목 위까지 밀려온다.

그런 일에 그냥 눈 딱 감고 있으면 내 자신이 편한 것을 몰라서 그리했겠는가?


고등학교 시절 그리 얘기를 했던 친구들의 말을 들었다면,

‘할아버지(잔소리꾼)’라는 별명을 얻어 짝궁없이 홀로 쓸쓸히 고교시절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 때도 그냥 그 무질서하고 타인 배려하지 않는 이들과

그냥 잘 어울려서 취직 공부 열심히 했으면 지금은 안정된 직장생활하면서 하고 있었을 것이다.


졸업 후에도 계속 그러한 ‘다른 사람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내 할일’만 잘했다면

나는 나름대로 ‘평온한 살’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공공의 영역’에서 빚어지는

분명한 ‘사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 사안이 너무 경미해서 ‘사건’이 되거나 ‘이슈’화 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사안은 개인의 문제로 지나쳐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회 공공의 영역에서 하나의 주체가 다른 주체의 자유와 평안을 얻을 권리를 침해하는

사안으로 판단해서 이에 ‘사회적’인 개입을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주체적 개입’은 ‘나’라는 주체가 사회 속에서 보편적인 개인으로서

사회를 대변해서 능동적인 사회 작용을 이뤄내는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주체적 개입’은 ‘개인적’의 행동이 ‘사회적’의미를 창출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사회 속에서 빚어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제안되는 사안’에 대해서 그냥 ‘사사로운 일’로 치부해 버리고, 그 하나하나의 사안들이 모여지고 사회적인 파급력을 발휘해서 발생할 사회구조적인 부조리를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문제를 하나 하나 짚어 내는 것에 대해서

‘왜? 그렇게 예민하냐?’ ‘마음을 좀 넓게 가져라’ 는 등의 충고나 일삼곤 한다.


이렇게 자기 주변에서 빚어지는 ‘사회적인 사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이의 개입을 통해서 작은 부분부터의 사회 변화를 위한 노력이 차분히 축적되지 않다보니,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부조리’에 면역이 되고 무반응 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자기 가족이나 친구, 동문, 조직원들의 부정과 비리 마저도 그냥 각자가 알아서 조절해야할 문제로 인식하면서 눈감아주거나 타협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혈연-지연-학연으로 얽혀진 비합리적인 무리근성으로 움직여지고,

이로 인한 총체적인 사회 부실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그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사회적 사건’을 접하고도 ‘주체적 개입’의지를 깨우지 못하는

각 개인의 순간순간의 불성실이 축적된 결과가 아닐까?

‘주체’와 ‘개인’이 제대로 깨어나지 않은 터에 사회가 제대로 설리는 만무한 것이다.


우리 각자의 일상에서의 조그마한 ‘주체적 나섬’의 노력들은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공공의 장소(버스 안, 도서관 등등) 등에서 시끄럽게 떠벌리거나, 휴지를 내버리는 등의 무질서한 행태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면,

‘내가 조용히 안식을 취할 권리가 있는 이 공공장소에서, 왜? 제가 당신의 떠드는 소리에 귀를 간지럽혀야 합니까? 좀 조용히 말씀해 주실래요’는 식의 이야기를 건네고,

무질서한 행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는 ‘보편적 개인’의 권리를 찾기 위한 일상의 작은 노력이다.

이것 자체가 사회의 지반을 탄탄하게 하기 위한 노력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주체를 온전히 세우는 ‘훈련’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주장이 딱딱하게 ‘주체적 권리’만을 강조하는 세상이 ‘이상사회’라는 것은 아니다.


다소 건조하고 원리원칙적인 활동을 통해서 능동적 ‘주체’와 ‘개인’이 우선 깨어나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못한 전체주의 집단과 조직의 관성에 매몰되어서 발생되는 각종의 부정 부당함의

‘자체정화’를 위한 ‘최소한의’ 시스템 장착일 뿐이고 다만 ‘중간과정’일 뿐이다.


이러한 일상에서의 잡다한 노력과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깨어난 ‘주체’와 ‘개인’ 들은

그 이후 사회, 자연, 우주와의 합일을 시도하면서 자아를 ‘확대’(다른 표현으로는 자아버림)를 시도해야 하는데, 그것은 또 다른 논의에서 다뤄져야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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