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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이 녹아있는 소설 <유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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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도인 (211.♡.76.113) 댓글 0건 조회 14,957회 작성일 08-01-2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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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胡蝶夢)


하늘은 구름한점 없이 푸르기만했다. 먹구름이라도 밀려와 빗물로 시름을 달래주어도
좋으련만, 너무도 파래서 사영은 가슴이 꾹 막힌것처럼 아파왔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날이 어두룩 해졌다.

연무장쪽에는 무회(武會)가 시작된지 오래인지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박수소리가 끊임없
이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영은 그곳으로 갈수가 없었다.

사형제들을 만날수 없었다. 낯이 뜨거워 볼 면목이 없었다.

스승님의 마지막 바램조차도 이룰수 없는 몸이었다.

비칠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영은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마음닿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지나지 않아 산림(山林)이 나타났고, 나무와 풀들이 왜 힘이 없냐고, 괜찮으냐고,
걱정스레 반겨주었다. 어느 나무는 배가 고프면 힘이 나지 않는다고, 다 떨어지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열매를 먹으라 하였고, 어느 풀은 따뜻하게 앉아서 쉬라고 바위위
에 어렵게 뿌리내린 자신의 몸을 서슴없이 내주었다.

처음와보는 곳이었지만 산은 언제나 같았다. 사영은 사분거리는 풀잎소리와 몸을 스치
는 나뭇가지들의 위로에 조금씩 안정을 되찾을수 있었다.

“나는 받기만 하면서 바라는게 너무 많은거야.”

사영은 스스로의 못남을 탓하며 공허한 웃음을 지었다.

‘장주(莊周)는 어느날 꿈을 꾸었지. 그는 꿈속에서 꽃과 꽃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즐거운 나비 그 자체였단다. 그러나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莊周) 그 자신
이었던 게야. 대체 장주(莊周)인 자기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는 나비이고 나비인 자기가 꿈 속에서 장주(莊周)가 된 것일까?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언젠가 노스승이 말해주었던 이야기였다.

“꿈이 현실일까, 현실이 꿈일까.”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사영은 자리에서 일어서 어깨에 매고있는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사영은 검을 들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즐거움도 슬픔도 아닌 스스로를 잊기 위한 검무(劍舞)였다.

검이 자신이었고, 자신이 검이었다. 검날위에 달빛이 아롱질때는 자신도 달빛에 녹아들
었고, 하늘로 솟아오른 검이 허공을 갈라 큰 바람을 일으킬때는 자신또한 달빛과 흩
어져 땅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검은 울었고, 또 웃었다.

검과 하나가 된 사영은 검이 웃고 우는 것을 보았다. 혼탁했던 마음이 명경지수처럼 맑
아져갔다. 아니, 또다른 마음이 생겨난것만 같았다.

그 마음은 자신을 보며, 그리고 검을 보며, 하나(一)로 감싸 흔들림 없이(中) 놓아두고 있었다.

“모든 것은 절로 이루어지는 법이지.”

“다, 하늘의 뜻인 게야.”

스승님의 목소리가, 운수노인의 이야기가 자신을 지도 하고 있었다.

“네, 맞아요.”

사영은 모든 것을 버렸다.

가슴 한구석에 작게 숨어있던 감정을 허공속에 놓아버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검이 나비가 되었다.

손에 쥔 검은 날개가 되어 허공을 은빛으로 수놓기 시작했다.

혜명이란 노스님에게 숭산지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때, 사영에게는 작은 희망 같은
것이 있었다. 스스로 모두 놓아버렸다 생각했지만, 검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고 무회에
나가 조금이라도 더 높은 무언가를 얻게 된다면, 어쩌면 천마와 비등한 대결을 벌일
수 있을것만 같다는 헛된 희망이었다.

구름에 가리어 잦아드는 달빛을 따라 나비의 날개짓은 은빛 호선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다시 검이 되었고 또한 사영이 되었다.

검무가 달빛을 따라 천천히 잦아들었을때, 작은 박수 소리가 울렸다.

“마음까지도 맑아지는 정말 좋은 검예(劍藝)였네.”

男兒當自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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