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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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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윤 (211.♡.169.63) 댓글 1건 조회 3,735회 작성일 08-03-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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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눈길 한번 받지 못하고 책장 한구석에 오래 박혀 있던

낡은 어떤 책을 꺼내 펼쳐보는데

책갈피에서, 난데없이, 수표 한 장이 나왔을 때... 그런 느낌일까.

아무런 기대 없이 집어들었던 이 비디오를 본 뒤의 느낌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뭐라고 말하기 힘든 인생을 이렇게 얘기하는 영화를 만난 건...

이처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영화를 만난 건...

이렇게 알찬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답고 솜씨있게 풀어낸 영화를...

영화 하나를 보았을 뿐이지만 아주 많은 영화를 본 듯한,

아주 많은 인생을 본 듯한 느낌...

마츠코의 아빠는 늘 표정이 어둡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다. 그 흔적조차도...

언제나 수심 어린 굳어 있는 얼굴.

그녀의 여동생에게만 관심이 쏠려 있는 아빠.

폐렴 때문에 늘 침대에 누워 있고 바깥에 나올 수 없는 여동생 쿠미...

아빠는 차마 웃음 소리를 낼 수가 없고, 웃음을 지을 수가 없다.

혹은 아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면 죄책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의 얼굴 근육들은 늘 변함이 없다.

그녀 역시 여동생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빠를 빼앗아갔고

언제나 독점하고 있는 잔인한 경쟁자, 아니 승리자였다.

1/10. 1/100, 아니 천분의 일의 관심도

그녀에게는 돌아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아빠는...?

그래.. 많은 짐작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마츠코에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녀가 철저히 아빠를 빼앗겼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자신도 모르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얼마나 여동생을 증오했을까..

병약함을 무기로 아빠 쟁탈전에서 늘 완벽하게 승리하는 쿠미를...

또 얼마나 아빠를 증오했을까..

그러나 또한 도저히 아빠에게서 벗어날 수도 없는 딜레마.

그녀에겐 아빠의 관심과 사랑이 너무나 절실했으므로...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면서도

절실히 사랑을 원하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이 딜레마.

어떤 이성을 동원해도 해결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어쩌다가 자기도 모르게 한번 입을 삐쭉했는데,

그 모습이 하도 우스워 아빠는 그만 살짝 웃어버린다.

아... 아빠가 웃었다. 나를 보고.. 철옹성만 같던 아빠가..

어린 그녀의 가슴이 어땠을까.

그녀는 유일하게 먹힌, 자신이 알게 된 이 방법을 계속해서 써 먹는다.

다른 방법은 모른다.

그래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궁지에 몰리면 이 방법을 쓴다.

설령 그것이 자기를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이끈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다른 방법은 모르니...

아주 어린 나이에 그녀의 가슴에는 커다란 블랙홀이 뚫렸다.

아빠의 사랑 결핍이라는 블랙홀...

아무리 아무리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

그러나 포기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그 구멍을 메우려는, 그 공허함을 메우려는, 그 외로움을 메우려는

충동, 욕망, 그 처절한 몸부림...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그녀의 일생은 그렇게 너무도 어린 나이에 이미 결정되어 버렸다.

그 후에 그녀가 만난 숱한 남정네들은

모두 아빠의 다른 모습이었고

그녀는 늘 그 어린 마츠코였다.

한결같이 학대당하면서도

차라리 외로움보다는 그 학대받음을 선택하는...

변함없이 배신당하면서도

결코 스스로 떠나지 못하는...

혼자 있음의 지옥과

학대당함의 지옥 중에서

차라리 후자를 원하는...

사랑...

한톨의 사랑을 원하던 그녀에게 그 사랑은 주어졌던가.

숱한 남정네를 거쳤지만, 한톨의 사랑이라도 주어졌던가.

집착...

남자에 대한 그녀의 집착...

자기를 파괴하면서까지 매달리는 집착...

그것이 그저 집착뿐이었던가.

예전의 나라면, 상처받은 영혼의 지독한 집착일 뿐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지독한 집착 속에서도

사랑이 보였다.

말하자면, 신의 사랑이...

그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그래, 누군가는 그 집착이란 것은 실은 남자를 이용한 것뿐이라고

잔인하게 단정할 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누추한 모습으로라도 사랑할 수 있게 했겠는가.

표현하기가 어렵다..

뭐랄까, 집착이라는 누추한 껍데기를 걸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떤 신의 사랑이 보였다는 말이다.

사랑이 없다면, 신의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 세상이 돌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삶이 가능할 수 있을까..

때론 참으로 비참하고 비참한 이 인생이지만

그 안에는 신의 사랑이라는 어떤 알맹이가 있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2007. 10. 27

댓글목록

진리님의 댓글

진리 아이피 (121.♡.16.149) 작성일

김선생님 !넘 잘읽었어요 .저도 보고 싶네요.그 어떤 최악의 순간에서도 신에 사랑을. 진아을 .도를. 자비를 .성령을 .하나님을 볼수있다면 그는 이미 목마름이 끝난 상태 이겠지요.지고의 평화가 가득할것입니다.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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