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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조선과조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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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211.♡.76.43) 댓글 6건 조회 3,762회 작성일 08-06-24 09:23

본문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여러분이 책등을 보아서 어느정도는 알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책은 어려운 단어 들로 있어서 그것을 보면 어렵습니다.불교 관련 책들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 어렵지요.
묵조란 묵묵히 비추다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지금 의식속에서 살아갑니다.의식은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식의 흐름을 비추게 되면 그것이 고요히 가라 앉아 집니다.
이런 상태로 깊게 들어 가는 것이지요. 요가의 방식과 같은 것입니다.
상당히 효가가 있어요. 안정이되고 많은 시간을 지났어도 그것을 모를정도로 삼매에 빠져들수가 있습니다.삼매도 사실 체험을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안정이되고 몸에 세포가 하나하나 살아서 움직이는 그런상태라고 할까. 하여튼 말로는 표현할수가 없습니다.여기에서 깨달은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대혜종고 스님같은 분은 이것을 심하게 비판 하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초창기엔 이것을
배워서 수행을 하셨습니다.
이것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하면 앉아서 의식을 비출때는 삼매에 들지만 여기에서 빠져나오면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예을 들어서 어느 스님이 산에서 수행을 오래해 가지고 이만하면 경계에 훼말리지 않을거라고
자신 만만하게 산을 내려오다가 다른 사람이 스님한테 욕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미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스님은 묵조을 할때는 경계에 안 끌려 가지만 묵조에서
나온상태에는 옛날 그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묵조선은 비추는 것이 있고 비추어진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둘로 갈라 져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둘로 갈라지면 불안을 야기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래서 이 수행법을 버렸습니다 그러다 고행을 하셨지요.
고행을 해서도 않되어서 그것도 나중에는 버렸습니다.
간화선에 대하여서 간단히 써보겠습니다
화두에 든다고 하지요. 이것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화두로 묶어 놓는 것입니다.
화두 그 자체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 저것 떠오르는 생각을 화두가 그것을 잠재우는 것입니다
그렇게하다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입니다.
화두 그자체가 불성이고 부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예요.
구두선도 있지요 . 이것은 그야말로 의식을 따라서 말로 하는 것입니다.
배워서 알고 들어서 알고 보아서 알고 느껴서 알고 지식으로 알음알이 을 내는 것입니다
어떤 깨달음을 세워서 그것이 진짜인냥 말로 하는 것입니다
조사선.
최상승 법입니다. 바로 마음을 보아서 일을 마치는 것입니다.
견성하는 것입니다. 바로 눈앞의 작용만을 보는 것입니다.
중생이 부처고 번뇌가 바로 보리로 보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모든 수행 방법을 하다하다 안되어서 보리수 나무에서 앉아 답답한
마음으로 별을 처다보다 이것을 알았습니다.
저별이 하늘에 걸린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마음의 거울에 비쳐진 그림자 인줄 알았던 것입니다. 가슴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시원해 졌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것이 마음뿐임을 아셨던 것이지요.
구지 스님 의 손가락 하나 드는 것이나. 6조 혜능의 정혜을 말하지 않고 오직 견성을 할뿐이다
라는 것이 이것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정성으로 글을 올려 봄니다만 글솜씨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댓글목록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책도 좀 읽어보시고 사람들과 대화도 하시고 스님에게 여쭈어도 보고 틈틈히 좌선도 해 보세요.
상상력을 발휘 할 때는 따로 있고 처음부터 그것이 무엇이다라는 것을 올바르게 아는 것도
중요 합니다. 석가부처님이 묵조선을 하다가 단점이 있어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좀.
저가 거북선을 만들어 왜군을 무찔렀다는 이야기와 비슷 합니다 ^^

사람들은 대충 간화선은 귀동냥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묵조선을 아는 분은 열에 하나 정도로
드뭅니다.

묵조선과 간화선은 대승에서 나와 꽃을 피웠고 석가부처님은 소승 이전의 분 입니다.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묵조선에 따른 오해는 묵조선이 간화선과 무척 다른 것이라 여기지만 둘은 구할이 똑같습니다.
 묵조선은 단지 따로 화두를 들지 않고 이미 내가 깨달아있음을 결론짓고 그것을 확인하는 모멘텀에
 무게 중심을 둘 뿐....사실은 현성 공안이라는 화두를 들고 있는 셈입니다.

 대체로 부처님이 증득한 도리는 위빠사나로 알려져 있고, 여러 교설 중에 묵조와 간화적 요소가
 암시되어 있는 줄 모르지만 좀 엄밀히 말하면 묵조와 간화에 대해선 언급을 않했다는 것이
 사실 일 것입니다.

 그것은 후대의 무척 중국적 불교이며 또한 도교적 핵심을 차용하고 있지요. 하지만 정통성 문제로
 아마 대승에서 선적 요소를 석가와 연관 시키는 작업을 했겠지요.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원시 불교와 초기의 불전을 보면 여기에 묵조와 간화라는 개념이 거의 없는 듯 합니다.
 남방불교와 티벳 불교의 스님이 선불교를 보면 좀 이상하고 얄굿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한 듯 하고
 달라이 라마도 선불교는 중국, 한국, 일본의 문화로서 인정은 하지만 이해 못하는 구석이 있다고
 하겠지요. 동방삼국은 문화적 프라이드나 자부심으로 대승이 수승하다고 하지만.....
 이 역시 자체 모순적인 말입니다. 높고 낮음이 없는 것이 또 대승의 종지이니까.
 아마도 그런 차별심이나 우월감은 지역, 문화, 역사에서 파생하여 나온 편견인 듯 합니다.
 많은 유학승들이 남방국가로 가서 그곳의 경전과 고승을 만나보고 나서
 자신이 너무 대승 최고라는 편견에 세뇌 되어 살아 왔음을 인정하는 분들이 요즘 꽤나 많더군요.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미쉘 푸코가 지식은 곧 권력이다라고 말했는데, 진리 또한 권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조선은 중국 선종에서 조계종이 갈라져 나와 조계종이 최대다수 최고 지배세력으로 근간을 잡고
 흔들고 있는데....선종과 화두가 불교에서 최고이다라고 해야 존속의 논리와 계속 종파를 장악할 수가
 있기에 그것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러나 다문화 다가치 해체적 현대 사회에서 도전을 받지 않겠습니까. 요즘 수세에도 벅차 불교 기반은
 서서히 붕괴되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는 시대 적응에 실패한 고태적, 중세적 요소를 스스로 부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세 카톡릭 교구보다 더 심할 정도로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요소는 전부 알음알이라 못박아 버리고 있지요.

 근본으로 다시 한 번 돌아가 보자. 석가를 재조명하여 그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시대 입니다.

 석가  부정하고 회의 하지 못하는 진리라고는 없다. 너희들은 나의 실존, 나의 말, 나의 깨달음
          마저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진리를 위하여 

대원님의 댓글

대원 아이피 (211.♡.76.43) 작성일

수행밥법은 사람이 만든 방법입니다. 뗏목과 같은 것이지요.  구경에 들면 모두 버려야 할 것입니다.
소승과 대승을 갈라놓고 하는것은 분별심이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위빠사나 이야기을 하셨는데
위빠사나는 무엇인가.대표적인 것이 호흡관입니다. 들숨과날숨을 관하는 것이지요.
들숨을 할때 그것을 보고 날숨을 할때 그곳을 보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주객이 있어 분리된다는 것입니다.주는 들숨과날숨을 보는 것이고 객은 들숨과
날숨입니다, 하나로 되지을 못해요 ,대상이 있다는 것이지요.
주객이 분리되면은 나와너가 있지요. 석가부처님은 무아을 말씀 하셨습니다.
이때 무아는 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계종의 종지는 직지인심 견성성불 입니다. 바로 마음을 보아서 성불하는 것이지요.
6조 혜능의 법통을 따르는 것이 조계의 전통입니다.사실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문제는 자신이 분명하고 명확하냐 입니다,
도덕경에 보면 아른다움이 추함이요 추함이 아름다움이다,
도을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요. 그이름이 도이다.
금강경에 보면 부처는 부처가 아니라 그이름이 부처이니라.
이모두가 견성[성품을본다]하지 못하면 다가오지 않습니다.
지금 자신을 잃고 경계을 따라서 그것을 자신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성품은 모양이 없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사람들은 모양으로 보고 판단하고 분석하고 이러는데
습관이 들어 있어요.
지금 눈앞에서 잃어나는 일들 모양은 뚜렷이 보이나 모양없는 이것은 보지을 못해요.
보는자와 보이는 모습은 둘이 아닙니다,

대원님의 댓글

대원 아이피 (211.♡.76.9) 작성일

석가 부처님은 꽃을들어 법을 보이셨고
마조는 몽둥이로 법을 보이셨고
구지스님은 손가락 들어 법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종교의 교리로 배울수 없고
학습을 통해서 수행의 방법을 익혀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문득 깨어나면 분명히 들어 납니다.
명확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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