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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대에 대한 철학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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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02.♡.90.161) 댓글 0건 조회 8,197회 작성일 12-12-2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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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나는 개인적으로 이 나라가 변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인보다도 그러한 정
치인들을 만들어내는 국민성(나 자신을 포함하는)에 있다고 여겨왔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지금 많은 이들이 ‘어떻게 박근혜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지’에 대해 자괴감을 갖고
있다. 이참에, 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 나라 국민의 ‘변화를 가로막
는 국민성’을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국민의식을 다소 폄하하는 부분, 일반화
시키는 부분, 유럽 사회에 비해서 하등 취급하는 부분이 있으나, 이는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
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국민성 분석을 위한 간결한 도식을 만들어 내기 위한 한계였음을
밝힌다.


제목 : 박근혜 시대에 대한 주체적 성찰
- 글 : 둥글이

1. 독재자의 딸 박근혜의 당선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 함은 호적상의 그의 가계를 확인하며 비꼬는 의미가 아니라, 그
아버지 박정희의 폭정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정신이 그녀의 마음속에 유산으로 품어져 있음
의 이유이다. 하여간 우리는 이렇게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맞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빚어졌는가?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변화에 대한 의지가 충분히 무르익어 있지 않
은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 않았음은 당연하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한 철학자
가 말했듯이 ‘국가는 국민의 반영’(플라톤)이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결과론적으로)필연의 귀결이다. 우리 국민은 보수정권이 만들어낸 그 무수한 부조리,
부정, 불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 반성하고 시대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과거의 개발독재시대의 향수에 머무르는 길을 택했다.

지난 5년간 보수정권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보수정권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 역설적
사태의 미스테리는 단순히 지난 5년을 살아온 국민들의 정신을 분석하는 것으로는 이해되
지 않을 것이다. 최소 지난 세기를 거쳐 우리의 정신에 어떤 일이 빚어졌는지를 외국의 경
우와 비교해서 살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이성을 깨우고 주체를 세우기 위한 유럽의 역사
서양의 경우. 중세 기독교가 전 유럽의 문화와 역사, 정치와 생활양식을 지배하던 시절. 교
황의 폭압에 짓눌려 있던 ‘정신’은 ‘르네상스’라는 돌파구를 찾았다. 그 직후의 과학혁명을
통해서 인간 정신은 보다 더 ‘현실적인 기반’위에 서기 시작했다.

인간은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다고 기둥에 묶여 불태워 죽임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고, 인
간의 이성이 개화시킨 자유와 평등의 기치는 ‘종교 중심적인’ ‘민족 중심적인’ ‘남성 중심적
인’ ‘자기중심적인’ 굴레를 깨부수고 ‘타인(또 다른 나)의 자유와 권리’ 까지를 인정하는 ‘보
편적 가치’를 찾아내는 혁혁한 성과를 올려, 여성과 가난한 자와 장애인과 노예를 해방시키
는 추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절정은 프랑스 혁명(1877~99년)이었다. 이를 통해서 구질서체제인 봉건제는
무너졌고, 헌법에 의해서 모든 시민의 권리와 평등이 보장받을 수 있는 시민사회의 구색이
갖춰졌다. 이는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 위에 홉스, 로크, 루소(사회계약설)
가 올라섬을 증명한 정치혁명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으나, 그 가장 큰 가치는 ‘주체(개인)’가 역사
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의 봉건사회에서의 ‘주인’은 ‘왕, 제후’들 이었
고, 그 외의 사람들은 그들로부터 다스림을 받아야할 처지의 ‘백성’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
만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개인은 역사의 주역으로 우뚝 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민사회의 외형이 갖춰지고, 그 외형에 실질적인 의미가 들어차기까지 유럽에는 수
많은 지식인들의 통렬한 자기성찰과 행동, 희생이 따랐다. 종교개혁가 후스(15세기)는 자신
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화형을 감내했고, 위클리프는 부관참시 당했으며, 갈릴레오는 지
동설을 체계화 했다가 종교재판을 받고 나서 여생을 가택연금 받았다. 진화론을 편찬한 다
윈은 지금까지도 몇몇 기독교도들의 저주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상의 수많은 걸출한 사상가들과 혁명가들이 희생을 감수하고 자신들의 목소리
를 높인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신화와 전제왕권, 노예근성을 비판할 수 있었던 힘의 동력
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주체 세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깨인 정신으로 보이는 명증한 세상을 다른 이들도 보기를 원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
한 것처럼 타인이 주체의 힘으로 그 모든 억압과 부조리를 극복해서 대지에 우뚝 설수 있기
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제왕권을 강화하고 인민을 노예화 하려 했던 군주들과
그들 깨인 지식인들의 본질적인 차이였다. 전제군주들은 인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자기
뜻대로 조종하고 싶었던 것이고, 지식인들과 혁명가들은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주체를 갖고
살기를 바랐던 것이다. (물론 모든 혁명에 변절자가 있듯이 전제군주들을 몰아내기 위해 앞
장섰던 많은 혁명가? 들은 새롭게 만들어진 민주사회의 토대 위에서 자신들의 힘을 권력화
하기 위해서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법을 택했다. -> 나치즘, 파시즘 등의 전체주의 체
제, 경찰국가 등)

하여간 큰 틀에서 유럽의 역사는 주체적 시야를 깨우기 위한 지식인(민중)들과 이를 거부하
는 권력자의 싸움으로 규정할 수 있는데, 수세기에 걸친 이러한 ‘주체를 찾기 위한 과정’은
다른 표현으로 ‘계몽시대’라고 일컬어지는 바, ‘이성’은 이 시대의 가장 찬란한 발견물이었
다. 이러한 인간의 ‘이성’은 미신, 비합리, 부조리, 남성주의, 집단주의의 편협성으로부터 인
간이 ‘보편적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시야를 제공했다. 이러한 주체를 깨우기 위한 노력의 흔
적은 이들 유럽인들의 역사와 문화에 삼투되어 있고, 그 속에서 태어나 자라는 그들의 후대
들은 자연스레 그러한 소양을 ‘최소한은’ 갖출 수 있게 되었다.

3. 한국의 경우
외세에 의해서 강제 개항을 당하고 일제에 의해 국권을 박탈당한 한민족의 가장 큰 비애는,
‘스스로’ 정치적인 의식을 깨우고 ‘주체적 의지’를 확립하는 성장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경험의 결핍이 그 사람 인생의 전체를 발목 잡는 것처럼, 지금 우리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은 ‘주체’를 성장시키기 위한 정신의 양분을 역사 속에서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 결핍의 결과라 할 것이다.

수천 년 전제군주시대를 관통해 온 한민족의 경우 ‘주체를 성찰하고 이성을 깨우기 위한 역
사’는 유럽의 그것에 비해서 일천하기 그지없다. 몇몇 노비 천민들의 자유를 갈구하는 반란
모의가 있기는 했지만 역사적인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고, 민중봉기의 대표 격으로 일컬어
지는 19세기 말의 동학농민혁명도 ‘평등세상을 위해 전제왕권 제도를 뒤집자’는 정치 혁명
이 아니라 조선시대 관리들의 수탈과 부패에 못 이겨 나섰던 생존권 투쟁에 가까웠다. 이들
은 전제왕권을 부정하지 않았고 다만 ‘현명한 왕’이 '수탈을 멈추고' 자신들을 잘 통치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조선의 억압된 민중들이 ‘자유’를 얻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민중 스스로의 자각이 아니었음
은 역사의 슬픔이었다. 1894년 일본의 강제개항 갑오개혁에 의해 노비들은 자유의 몸이 되
었다. 그 해방된 노비들의 상당수가 일본인들을 은인으로 여기고 주인처럼 떠받들며 친일파
로 전락했음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를 구가할 힘이 없던 노비들은
급작스레 주어진 자유를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고, 자신들에게 자유를 선사한 이들의 노예가
되기를 기꺼이 자처했던 것이다.

우리 정신을 성장시키지 못했던 아픈 역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
의 국권을 박탈했고 한민족은 그 안에서 노예 생활을 해야 했는데, 이후 쿠데타를 통해서 대
통령이 될 박정희를 비롯한 수많은 친일파가 앞장서서 독립운동가들을 살해했음은 우리 민
족이 이성을 깨우고 주체를 세우지 못했음의 결과이고 또 다른 주체세움을 방해하는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

한일합방 후 45년간 우리는 일제 치하에 노예근성을 갖고 살아남는 법, 획일화된 군사문화
속에적응해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했는데, 6.25이후 이러한 ‘주체를 숨기고 몸 사리는 문화
(위에서 하라는 데로만 하는 문화)’는 더욱 공고히 구축되었다. 이승만 정권이 자신들의 안
위를 위해서 정부조직에 그대로 이식한 일제 잔재는 획일화된 군사문화, 상명하복의 문화를
그대로 민중에게 요구했고, 정권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독립운동가들, 애국지사들을 잡아 죽
이기 위한 반공이데올로기까지 도입됐다. 이는 민중들을 침묵시키는데 효과가 있었다. 이러한
공포 분위기 속에서 민중들이 현실을 냉철히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을 깨우고 거리낌 없는 자기
존재로서의 ‘주체’를 세우는 것에 무리가 따랐음은 당연했다.

4. 박정희 쿠데타 이후의 민중의 자각.
박정희의 5.16군사 쿠데타는 한민족의 노예근성을 가장 능동적? 이고도 찬란히 발현시킬
사건이었다. 역사를 통해서 스스로 자유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민중은 조선시대 때
처럼 자신의 자유를 어떤 힘 있는 이가 ‘잘’ 관리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 얼마 전 전쟁
을 치룬 잔상이 종종 현실과 범벅이 되어 눈앞에 아른거리는 상황, 말 한마디 잘 못하면 끌
려가서 죽임을 당하는 시대에 민중들은 이 ‘공포감’ ‘거추장스러운 자유’를 그 어떤 ‘전재
전능한 인물’이 처리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가뜩이나 일제 45년간의 노예 시절 동안의 익
숙한 (군사)문화에 대한 향수까지 불러일으키고 있음에야 박정희 정권은 상당수의 민중들에
게는 꿈의 정권이었다. 이렇게 일본이 강제개항으로 얻어진 자유를 민중은 박정희에게 기꺼
이 반납했다.

물론 이러한 부조리에 소수의 선각자들이 나섰고, 그들은 박정희 정권의 직접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격렬히 저항하며 때론 죽어갔다. 하지만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민중
들은 협력하지 않았다. 이성이 깨이지 않고 주체가 바로 서지 않은 상당수의 민중들에게는
옆에서 빚어지는 그러한 사건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들은 대한늬우스가 전해주
는 소식만 열심히 들으면서 (아직도 구미 시장이 ‘반신반인’이라고 일컫는)박정희 신격화에
자신들의 교인으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했다.

조선시대에 민중들은 단지 ‘백성’에 불과했지만, 동아시아의 격동과 남북 분단의 혼란을 틈
타 나타난 박정희는 스스로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다 시피 했고, 민중들은 기꺼이 떠받들었
다. 이렇게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고 거대한 종교집단의 광신도가 되는 일은, 인류 역사를
통해서 주체와 이성이 깨이지 않은 민중들이 흔히들 빠지는 함정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
이 함정인 줄을 알지 못하기에 기꺼이 그곳에 빠지기를 자처한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 그간의 부정부패가 누적되었고 개발독재의 부작용이 팽배하던 터라, 19
세기 말엽에 동학혁명이 일어났던 것처럼 민중들이 봉기를 하기는 했다. 그래서 잠깐 봄이
오기는 했다. 하지만, 민중들에게는 무르익어 개화된 이성도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세울 힘
도 없었기에 다시 한 번 전두환의 12.12 군부구데타에 그들이 잠시 거머줬었던 자유는 넘어갔다.

1998년 우여곡절 끝에 민주화 운동가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후 노무현이정권 재창
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탄생이 민중들의 이성이 깨었음과 주
체가 세워있음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전 정권의 ‘폭정’에 대한불만이 표로
환원된 것이었을 뿐이었다. 민중들의 이성이 깨이지 않고 주체가 세워져 있지않았음은 그
직후 이명박 정권의 탄생을 통해서 반증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은 그 증거이기도 하고
반대로 다시 그를 고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5. 이명박 정권과 민중의 자각
이명박 정권 초기의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 국책사기극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태는 이
명박 정권이 전제왕조시대의 폭정을 행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냈는데, 이를 대하는 민중
들의 모습도 그 시대 백성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음은 참으로 난감한 현실이었다. 이성이
깨이지 않고 주체가 세워져 있지 않은 상당수의 민중들은 그들 앞에 보이는 사건들의 의미
가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사건 자체를 보려하지도 않았다. 열
심히 먹고 사는 데에만 바빴기 때문이다. 아니 그냥 먹고 살기만 하는데 정신이 팔렸으면
오히려 감사할 정도였다. 그 사건들에 ‘테러’ ‘종북’의 의미를 부여한 이명박 정권의 선전을
그대로 수렴하여 오히려 손가락질하고 욕설하기에 바빴다.

이명박 정권 시기 동안 OECD 저임금 노동자 비율 1위가 되었고, 자살률 1위, 청소년 자살
율 1위가 되었으며, 청소년 삶 만족도 꼴지를 기록했다. 사회적 공공지출비 OECD 꼴지이
임에도 사회복지 지출이 많다며 공공제정을 축소하고, 재벌 감세 100조를 해줬다.(삼성에게
지원한 국가재정만 4조) 이명박은 물론 측근, 친인척들의사기,횡령,땅투기,비자금조성,공천
헌금비리,각종이권사업압력,국정원민간인사찰, BBK, 내곡동땅, 총리실불법도청, 천안함사건,
청와대돈세탁, 국정원 직원 댓글임무 등의 수많은 불법, 탈법, 사기, 공작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이러한 부조리가 밝혀지고 개선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 눈에는
이러한 사건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잘 먹고 잘살 생각만 머리에 꽉 차 있는 뇌는 이성을 깨
울 시간도 없고, 주체를 세울 여력도 없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박근혜를 뽑았던 것이다.

6. 박근혜 정권과 민중의 자각
남북 지도자가 독재자의 자식들이라는 것은 역사상 유래 없는 한민족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
다. 하지만, 남한민중이나 북한민중이나 이러한 부조리를 인식하고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변
화를 위한 지혜와 용기, 힘을 뿜어낼 주체와 이성의 힘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이유로 그 수
치는 이미 우리의얼굴에 던져진 상황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단순히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의미의 그것으로 끝
나는 것이 아니다. 민중들이 스스로 깨어나는 노력을 거부하고 독재정권의 향수를 불러일으
키는 강력한 리더쉽에 자신의 자유를 내맡겼음의 의미이다. 박근혜 자신이 ‘너무 정치가 과
잉이다.’라는 표현으로 과거 군부독재시절 같이 ‘민중의 자유를 탄압할 것’을 공공연히 표방
했던 것은 자유를 기꺼이 내던질 많은 민중들의 지지를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
이다. 박근혜가 ‘NLL - 북의 도발 - 종북세력의 창궐’ 문제를 들먹이며 국민적 공포감을
조성한 것 등도 이질적인 것에 대한 공포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것을 ‘지도자’가 해결해주기
를 원하는 수동성(보수성)을 촉발시키기 위한 계략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청산되지 않은 친
일 반역의 역사(박정희)가 여태껏 세워진 역사의 전복을 시도하기까지 할 것이다.

이미 이명박 정권 치하에서도 UN인권조사관이 "모범사례였던 한국이 경찰국가가 된 것 같
다는 생각 들 정도"라고 말 했다. '2011년 언론자유 보고서'에 대한민국은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 자유국’으로 강등되어 아프리카의 자메이카, 가나보다 언론자유도가 떨어진
상황이다. 여기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이 사회의 미래에 대한 참담함을 보장한다.
.
박근혜의 당선은 앞으로 ‘기득권세력들(권력)을 수호하고 민중들을 바보를 만드는 공작’이
더욱더 활성화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임과 동시에 이 나라 민중의 이성이 깨이고 주체가 세
워질 기회에 적신호가 들어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물론 주체와 이성이 깨이지 않고 그 속
에 자신의 자유를 내던진 상당수의 민중들은 정권이 끝날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멈춘 편협한 정신이 박근혜를 뽑았듯이 박근혜
가 빚어내는 일을 그들 스스로의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외국에서 조롱하듯이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인권변호사 문재인’과 겨루고 있음을 떠벌려
댔던 것은 ‘제정신’을 가진 인간들이라면 수치스러워야할 그것이지만, 이성과 주체를 내던지
고 반신반인 박정희를 떠받들던 이들에게 박근혜는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목자
의 등장으로 보였을 따름이다. 그들은 단지 박근혜를 찬양, 경배하고 박근혜를 반대하는 무
리를 종북세력, 반국가세력이라고 규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정신으로는 그것이
바로 사회참여인 것이다. 주체와 이성이 깨이지 않은 이들의 비애이다. 이렇게 우리는 앞으
로 5년 동안의 거대한 종교부흥회 벌려야할 형편이다.

7. 앞으로의 과제
그렇담 우리는 앞으로 5년간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미 이 사회의 문제점은 앞선 글에 모두 정리되어 있다. 우리 국민은 아직도 유럽의 계몽
주의 시대에 이뤄낸 성취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유사 전제군주체제를 더 선호할 만큼
스스로의 자유를 주체할 여력도 없다는 사실. 대북관계, 동남아시아 상황의 불명확하고 두
려운 현실을 공포감으로 확대하는 세력들에게 민중의 의식이 잠식되었다는 것. 그래서 개발
독재시대의 향수를 느끼고 독재자의 딸을 선택한 상황이라는 것.

이러한 문제의 바탕에 우리는 결국 ‘이성’을 깨어내고 ‘주체’를 세워낼 필요를 거듭 느끼게
된다. 이성과 주체는 쉽게 말하면, 미신, 비합리, 부조리, 남성주의, 집단주의의 편협성으로
부터 인간이 ‘보편적 가치’를 찾을 수 있는 힘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최소한의 상식, 보
편진리가 통용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이다. 물론 유럽식 계몽주의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유토피아는 아니다. 하지만 이성을 깨우고 주체를 세워, 최소한의 상식과 보편진리가 통
용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이상향을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선결과제인 것임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문화 인류학적 상상력의 부
재, 역사의식의 부재가 용산참사, 쌍용자동차사태, 국책사기극제주해군기지의 의미와 작용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들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공포감으로 “그놈들 종북좌파” “반국가세력”
“처단해야 해”라는 공격성을 쏟아내게 하는 바, 자각한 자들은 이러한 사건들의 사회-인문
학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시야를 깨울 기회를 틈틈이 만들어야 한다.

물론 기득권세력들이 각종 교육 - 문화 정책을 통해서 이에 반하는 방법을 고착화 시키고
있음이 현실이다. ‘잘 먹고 잘사는 꿈’에 쪄들게 하고 열심히 시험공부만 전념해 성공에의
의지를 고조시키고 이의 여부에 따라서 우열감을 통해서 돌아가는 사회체제를 만들어 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일단 그러한 굴레에 진입시키기만 하면 그 구성원은 그것을 유일
한 존재양식으로 받아들여 자발적으로 그러한 구조를 공고화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눈앞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부조리의 개선을 위한 현장투쟁 함께, 장기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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