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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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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vira (110.♡.248.244) 댓글 6건 조회 7,991회 작성일 13-02-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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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3학년 아니면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장마 뒤끝의 어느 날 성급한 물놀이꾼이었던 나는 아직도 물이 줄지 않은 냇가의 흙탕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친구 누군가 동행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 기억은 분명하지가 않다. 철교 교각 아래쪽은 물이 적당히 깊은데다 물살의 변화가 심하지 않아 어린 우리들이 물놀이 할 때 매우 좋아하던 곳이었는데 그 날은 평소와는 다르게 강한 물살, 불규칙적인 물의 흐름과 변화로 인하여 괜히 왔나 싶게 겁을 먹게 되는 것이었다. 항상 익숙했던 교각 아래에서 만난 갑작스럽게 생기는 소용돌이는 벗어나려하면 할수록 점점 끌려 들어가는 것이었으며, 아무리 손발을 허우적거려도 제자리이거나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의 중심으로 가까이 끌려가는 것이었다. 갑자기 공포감이 확 밀려 들어왔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그 무섭고 당황스러운 와중에 떠오른 누군가의 말. 물에서 소용돌이를 만나면 그 속으로 따라 들어가라는. 짧은 순간 몇 번의 망설임과 두려움이 교차했으며 무슨 용기였는지 확 뒤돌아 소용돌이의 흐름을 따라 들어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그 중심을 향해 거꾸로 들어갔다. 깊숙이. 평소 같으면 물속에서 눈을 뜨고 잠수를 할 수 있었지만, 흙탕물이라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물의 흐름과 끌어당기는 힘에 몸을 내맡겼다. 영원같이 느껴지던 시간이 흐르고(사실은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음) 그 소용돌이에서 조금 떨어진 하류 쪽으로 솟아나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강한 소용돌이 같지도, 그렇게 깊은 물 같지도 않았지만 그 사건은 오랫동안 꽤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피하고 싶은, 거부하고 싶은, 벗어나고 싶은 무수히 많은 소용돌이를 만났으며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죽음’ 같은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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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생명 가진 것들은 어떤 질적인 변화의 시점이 되면 가장 어렵고 힘들고 갑갑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가 변화의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한 마지막 순간에는 지금까지의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어둡고 답답하고 도대체 앞이 보이지 않는, 그대로 자기 존재가 영 끝나버릴 것 같은 고치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그 어두운 고치 속에서 그냥 가만히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무위 속에서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마침내 자유가 임하는...”
(삶을 묻고 자유를 답하다: 김기태-침묵의 향기)
 

삶에서 무수히 만나는 두려움이라는 소용돌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주저주저하다가 뒤돌아서서 그 두려움의 중심으로 뛰어든다. 삶을 신뢰하며. 어린 시절의 그때같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댓글목록

서정만1님의 댓글

서정만1 아이피 (221.♡.223.12) 작성일

위라님글 봐서 반가웠어요 ^^ 물에 빠져죽는꿈이나 그런 상상을 하면 매우 두려워서 그런상황을
겪은 사람들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자주 궁금했었어요...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vira님의 댓글의 댓글

vira 아이피 (1.♡.36.2) 작성일

올린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나날이 깊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모임이 없는 1년은 그 동안 열심히 들었던 강의를 점검하고 실제 삶에서 적용해볼 기회이겠지요. 다시 뵈올 때까지 건강하시길. 몸 마음 모두.

우리님의 댓글

우리 아이피 (121.♡.71.205) 작성일

와... 너무나 실감납니다. 가슴이 벌렁벌렁하네요. 그렇구나... 진짜로 그속으로 들어가는게 맞구나...

vira님의 댓글의 댓글

vira 아이피 (1.♡.36.2) 작성일

고맙습니다. 어린시절의 한 기억을 너무 과장되게 표현한것 아닌지... 괜히 캥깁니다.

myh님의 댓글

myh 아이피 (175.♡.72.243) 작성일

소용돌이 속으로
혼란 속으로
혼돈 속으로.........
고맙습니다^_^

vira님의 댓글의 댓글

vira 아이피 (1.♡.36.2) 작성일

오랫만이네요. 두분 다 편안하시죠? 따뜻한 날 산청전국모임에 나가겠습니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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