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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 괴승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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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1.♡.157.53) 댓글 1건 조회 16,564회 작성일 13-04-1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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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짊어지고 고개를 넘다가 누군가를 만났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
자신을 만났다고 사람들에게 떠벌리지 말라고 했다. 만약 그랬다가는 우리의 인연은 그것으
로 끝이란다. 해서 그냥 ‘어떤 분을 만났다.’고만 해두자.
 
첩첩 산중 샛길에서 그분이 약초를 캐시고 계시기에 인사를 드리며 ‘약초 캐세요?’라고 여
쭈니 ‘올라와서 차나 한잔 하라’고 하셔서 연이 이어졌다.
 
머리는 번들번들 깎으셨는데, 평상복 차림이고 고무신을 신고 있어서 처음에는 이분의 정체
를 유추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신원파악의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직감하셨는지 ‘과거에는
스님이셨다는데 형식에 구애 받는 것을 싫어해서 그냥 홀로 산속에서 생활하면서 수련하고
있다.’고 언질을 주신다. 한편으로는 투박하시면 서도 눈이 부리부리 하고 총기가 있으셨는
데, 언 듯 봐도 평범치 않음이 느껴졌다.
 
봄에 산에 나는 모든 풀이 약초라고 하시는 스님은, 드믄 드믄 캐서 오솔 길에 던져 놓은
각양각색의 풀들을 주섬주섬 모아, 200여 미터 위쪽에 있는 작은 집으로 나를 인도했다. 흙
집이 아주 운치 있었는데, 아궁이의 그을음이 벽을 타고 올라온 모습이 정겨움을 더해줬다.
스님은 다소 정리가 안 되어 어수선한 방으로 들어가 앉을 것을 권했다. 초반의 찝찝함을
견디고 이불을 좀 밀쳐내고 바닥에 앉으니 구수한 흙내와 뜨뜻한 방바닥의 온기가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해줬다. 이틀 전에 땐 군불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란다.
 
하여간 그렇게 앉아서 방문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산세에 취해 있는데 물을 끓여 들어오신
다. 스님은 통의 약초가루를 꺼내 털어 넣더니 주전자를 흔들어 찻잔에 따라주신다. 둥글이
가 본래 형식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복잡한 다도의 지루함 없는 투박함이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차 향기가 뭔지 이냐?’고 물으시기에, ‘모르겠다’고 하니 갑자기 육두문자가 나오시
더니 ‘할아버지 제사도 한번 안 지내봤냐’고 욕을 하신다. ‘코 막혀서 무슨 냄새인지 잘 모
르겠다.’고 하니 도시에서 100만원 주고도 먹기 힘든 ‘침향차’ 라고 하신다.
 
하여간 여차저차 하는 순간 카리스마 넘치는 스님의 설법이 시작되었는데,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말을 하니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스님은 나처럼 ‘말(구호를 적은 조끼를
입는 것)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결국 사람을 해하는 일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신신 당부하시면서 다양한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스님의 말씀을 적으려고 하니 ‘그 (필기하는)어리석음’을 지적하면서 ‘그렇게 글로 써
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한탄하신다. 그래서 ‘머리가 워낙 멍청해서 기억이 잘 안 된
다’고 말씀 드렸더니, 대충 이해하시는 듯 한 눈빛이다.
 
7살 때부터 동자승 생활을 하셨다는데, 척보면 사람의 상태를 안다고 하신다. 그래서 나를
처음 보실 때도 ‘기독교? 천주교? 신자’냐고 물으셨다. ‘아니다’라고 하기에 좀 미안해서 ‘기
독교집안’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사실 스님은 그보다는 ‘의학’쪽의 지식이 혜박하신 것을
인정받고 싶으신 듯 했다. 부산과 대구 사람들은 본인을 ‘허준’이라고 칭한단다. 그러더니
대뜸 나보고 ‘목이 안 좋냐?’고 물으신다. ‘목은 괜찮고 기관지가 좋지 않다.’고 하시니 ‘목
을 낫게 해주겠다’고 하시더니 허름한 박스에서 침구를 꺼내더니 목과 뒤통수에 침을 한방
씩 놔주셨다. 스님의 주저 없는 확신과 자신감에서 이뤄지는 자비로운 행위가 내 몸에 난데
없는 두 개의 구멍을 냈지만, 난 영문을 따져 물을 사이가 없었다. 무조건 감사드릴 뿐이다.
 
스님은 문득 나에게 ‘전국 돌아 다니냐 보면 어디 인심이 제일 좋냐?’고 묻는다. 그래서 내
가 체험했던 바대로 ‘전라남도 인심이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니다’며, 갑자기 역사 얘기
를 꺼내신다.
 
전라도는 과거에 죄인들이 유배당하던 지역이기 때문에 ‘피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게 ‘생물학적인 피의 청결성’을 뜻하는 것인지 ‘혈통의 순수성’을 얘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를 의미하는지 궁금하던 찰라, 자신이 현재는 ‘주딩이를 놀리지 않기 위해서’ 산속에
살고 있지만, 전쟁이 일어나는 등으로 나라에 큰 일이 생기면 초야에 묻혀 있지 않고 세상
에 나가서 나라를 구하는 전쟁에 참여하신다고 하신다. 그럼 ‘칼을 쓰실 거예요, 총을 쓰실
거예요.’라고 물어볼까 말까하는 찰나 밥 때가 되어서 식사준비를 하시기 시작했다. 주변이
온통 봄나물 천지인지라 뒷모습을 보이고 사라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산미나리, 냉이 등의
봄나물을 한소코리 따 오셨다. 냉이는 데쳐서 양념을 해서 내오셨고, 나머지는 옹달샘 물로
씻어낸 후에 된장과 함께 내놓으셨다.
 
그렇게 맛나게 점심을 함께 하고 난 후에 스님은 자신의 밑에서 3년만 공부하면 진리가 터
득 되서 뭐를 하던 성공한다고 얘기를 하신다. 스님은 세상만사는 ‘태어나고 - 먹고 - 자고
- 죽는 것’의 원리만 정확히 알면 잘 살수 있다고 하신다. 하지만 이를 아는 것이 쉽지 않
기 때문에 ‘면밀히 공부’해야 한단다. ‘보통은 세 가지만 배우면 된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
니 20년 전부터 ‘죽음을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셨던 것을 보면 스님은 그 앞선 것들은 진즉
에 다 깨닫고 나머지 죽음의 과정을 배우시는 듯 했다. 하여간 스님은 그렇게 자신이 아는
것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은데 “이렇게 내 것을 다 내버려도 가져갈 도둑놈이 없어!”라
며 한탄하신다. 과거 스님이 출가시킨 사람도 몇 명 있다고 하셨고 집도 구해서 보내주셨다
고 하신다. 그러며 ‘배움과 집 장만을 병행’행 가능성의 운을 띄우시더니, 둥글이에게 ‘집이
필요하지 않냐?’고 하신다.
 
‘필요 없는데요’라고 얘기하니 ‘하여간 집은 있어야 한다. 3년 함께 있으면 집 한 체 쯤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하신다. ‘집구하려고 작심했으면 일을 하고 다니겠지, 이렇게 배낭 메
고 유랑 다니고 있겠냐?’고 하니 ‘작심해서 집을 구하려고 해도 집구하기가 쉽지 않음’을 설
법하신다.
 
이 스님은 자기 인생을 참 주도적으로 잘 꾸려나가시는 분이셨다. 아마 정신적으로 방황을
하고 있을 사람이었다면 이 스님에게 넙죽 절하고 제자가 되는 길을 청했을 것이다. 말씀
중간 중간에 예상치 못한 통찰과 자신감은 그의 모습으로부터 산과 같은 든든함을 풍기기
했다.
 
사실 이런 분들이 세상 안 보이는 곳곳에는 상당히 많이 있다. 이분들이 자신이 ‘믿는’ 원리
에 자신감과 확신이 가득한 이유는 스스로의 삶의 궤적으로 봤을 때는 그러한 ‘믿음, 이해,
앎, 원리’가 체험된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저 없는 확신을
가지고 권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슷한 반응을 할 수 있는 정신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들
은 ‘선각자’ ‘고승’이 될 것이고, 그에 정신이 반응을 하지 않는 이들은 그냥 ‘눈귀가 막힌
사람’이 된다.
 
문제는 이런 부류의 분들은 ‘똑같은 믿음, 원리’를 가진 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런 분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서로 싸움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은 서로 피해 다니
거나 산속에서 도를 읆조리신다. 이러한 사연을 알지 못하고 우연히 이러한 분들을 대면하
는 방랑객은 이분들이 보이는 고도의 확신과 주관에 ‘획~’ 넘어가서 ‘광신도’로 전락할 가능
성이 크다.
 
이날 만난 스님을 폄하하고자 하고자 쓰는 말이 아니다. 이 스님의 순박하고 때론 엉뚱하면
서도 악의 없는 맑은 마음은 특별한 것이었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보편적으로 ‘도’
‘수양’ ‘마음공부’를 하는 이들의 특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공부’를 하고자 하는
이들은 대단한 자신감으로 그럴싸한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방에 ‘훅’가지 말고 우선 세상
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시야를 갖은 후에 고루고루 사람을 섭렵하라는 것이다.
 
하여간 이후로도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짐을 추스르기 시작했고, 사람이 그리우셨
는지 스님은 하룻밤 묵어가라고 권하신다. 하지만 이미 창녕에 전단지 도착한 것을 찾아야
할 상황여서 정중히 사양하고 다음기일을 약속했다.
 
스님이 다소 괴이하지만, 소탈하고 욕심이 없으며 거리낌이 없어 보이는 것이 참 좋았다.
언제곤 놀로 와서 없으면(산 위쪽의 토굴에서 종종 수련하시느라 집을 비운다고 한다.) 방
에 불 때고 묵어가라고 하신다.
 
‘다음에 올 때 뭐가 필요하시냐?’고 하니, ‘필요 한 것 없다. 신경 쓰지 말라’며 ‘어차피 두
번 세 번 만나면 도반이고 벗이 되어 있을 것이니 편히 오라.’고 하신다.
이런 괴이하면서도 유쾌한 인연은 둥글이 유랑의 활력소이다.
 

댓글목록

제석S님의 댓글

제석S 아이피 (222.♡.105.160) 작성일

ㅎㅎㅎ
노숙자와 노숙자의 만남이라!!!
산노숙자+ 길거리노숙자
기분 나빴다면 죄송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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