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습니다.
물론 주위에서 많이 놀라거나 하면 나도 덩달아 놀라고
'충격적'인듯 표현을 해주었고
그렇게 느껴야만 하는 것처럼
해왔는데..
물론 즐거움도 그렇습니다.
간혹 나도 진짜 즐거운 날이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있었어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행복했던 기억...
그건 가족과 떨어져야만 하고 주위에 아무도 없어야만
생기는 나와 자연과의 대화...그럴때 나는 진정이 되고
자연스러워지고 편안해집니다.
그런 편안함이 내겐 행복입니다.
왜 충격을 못느낄까? 오늘은 그걸 생각해봤습니다.
제 아이가 나무계단에서 굴러서 깜짝 놀라는 상황이 되었는데
끔찍하긴 하더라구요. 근데 주변에 있던 엄마와 언니의 눈이 더 싫었습니다.
왜 아이 하나도 제대로 못보냐는 핀잔와 나에 대한 저평가..
아마도 아무도 없었다면 나는 아이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상황에 좀 더 내 자신으로 다가갈 수 있었을거예요.
가족이란 내게 그런 존재들...
암튼 나는 정말 신기하게도 전혀 놀라지 않습니다.
어떤 끔찍한 상황을 목격해도 그저 잠깐 '음...그렇구나..' 정도/
아마도 영아때부터 집안의 분위기를 목격해서겠죠.
나같은건 아무도 신경안쓰고 다들 자기들의 분노표출에다
고성에 자식 매질...엄마는 칼을 문다고 달려가고...
매일마다 저녁이 시작되면 공포도 같이 시작되고(아버지퇴근시간에 맞추어)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공포를 매일마다 느껴보신분 있나요?
잠이라도 자야 그 광경들을 안볼텐데
잠든 애를 깨워서라도 목격시키는 사람들...
그 어느누구도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 없이...
나는 그렇게 커왔었요.
물론 위로 언니와 오빠 둘이 있었지만
언니는 저녁이 시작되기 전까지 저를 괴롭히는 대낮의 공포 그 자체였죠. 그런 사람이 언니라고요...
오빠들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한집에 산다고 겪는 일이 다 같진 않아요.
물론 부모는 같지만 자식들은 서열에 따라 받는 고통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나는 막내...
아무도 신경안쓰는. 그야말로 존재감 없는 여린 아이...
부모때문에도 힘들어 죽겠는데
위의 형제들이 위로는 커녕 ...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어디 기댈곳 없이 이 나이때까지 살아온 것은
기댈수 있는 곳이 없어서였다고...
모든 가족이 나는 짓누르는 상황에서 숨만 쉬고 숨만 쉬고
그러다 고3이 되어서야 대학을 핑계로 집을 나왔죠.
그리고는 돈을 벌어서 내가 고3까지 살아오면서 부모한테 받은
경제적 도움을 다 갚아주겠다고 생각했어요. 키워달라고는 안했지만 어쨌건 키워주셨으니까요.
부모한테서 받은 양육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겠다는 생각...
나는 왜 그게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단 한번도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지라는 의문을 달지 않았어요
왜냐면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줄 알았거든요. 정말로.
나는 이미 초등학교때부터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어요.
집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런 상황이야 겪을때는 무섭지만
밖에선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어.
중학교때부터 일요일만 되면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다녔어요.
고등학교때는 서울까지 혼자서 당일치기로 다녀간 적도 있고요.
물론 결혼할때까지 우리 가족은 내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고 그들이 우리집을 방문할 때는
자신들이 갈 곳이 없을때.. 예를 들어 남편과 심하게 싸우고 아이들 데리고 갈 곳이 없어서.
그리고 서울엔 왔는데 돈이 없어서 돈이 필요하거나 잘 곳이 필요해서..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필요할때 찾다가 필요없어지면 연락한번도 없지요.
아무도 관심을 써주지 않는 나란 아이는 그래도 착실한 편이어서
잘 자랐지요. 고등학교때 사진속의 나는 정말 웃음기가 사라진.. 아니 웃음기가 없는것마저
숨겨야 하는 어정쩡한 표정..(안웃으면 안웃는다고 야단나니까)그 표정속에 있는 절망, 슬픔, 외로움, 기죽음, 삶에 대한 신산함, 무기력,,,
나를 사람들은 어둡고 무겁다고 했지요. 다가가기 어렵다며 웃으며 살라는 상처스런 충고도 잊지 않고.
다가오라고 누가 했나요? 웃지 않는게 피해를 주었나요? 나도 웃기 싫어서 안웃는게
아니거든 절대로.. 웃음이 안나와. 웃음이 뭔지도 모르겠고.. 다만 나도 너희들에게 다가가는게 어렵고
너희들이 부담스럽거든..같이 하는 공동작업이 공동으로 하는거기때문에 힘들거든.
난 혼자하고 싶은데..
그렇지만 너희들이 웃고 떠들때 나도 거기에 끼어 한번쯤은 걱정없이 소리내어 웃어도 보고
하고 싶었어.
근데 웃음이 안나와. 왜냐면.. 나도 몰라... 그냥 힘들어 사는게... 집에 가는 날이 다가오면 얼마나 끔찍한지
너희들은 모르지...
웃음이 뭔지 몰라서 안웃는것이고, 표정이 어두운것은 집안상황이 나를 힘들게 해서 지쳐서 그런거고
무거워보이는건 이 모든것이 나를 억누르기 때문이니까 제발 가벼운 말로 웃으며 즐겁게 살라는 충고는 말아줄래..
웃으며 살지 못하는게 마치 죄인같잖아. 가볍게 살아야만 잘 사는건 아니잖아.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어 인기가 있어야 성공한 인생은 아니잖아. 세상은 이렇게 사는게 정답이라고 내게 오답이라는 딱지를 붙여주었지만
난 내가 너희들과 비교해봤을때 뒤지지 않을만큼 사랑스럽거든...이쁜 마음도 많아. 너희들보다..그러니까 보이는것으로 평가하지 말아줄래. 내가 비록 지금은 증오와 분노의 바다에서 미친사람처럼 희번덕거리며 살지만
늘 이렇기야 하겠어..
내가 느끼는 증오는 진실이다.
당연하거고 진작에 느꼈어야 하는건데 좀 늦은거다.
박범신작가가 어느 테레비에 출연하셔서 눈물을 보이며 말하길
"난 아직도 내가 어린시절 그 고통스러운 곳에서 한발짝도 기어나오지 못했다는걸 알았어"
나이가 70이 넘어서까지 초등학교나 될까 하는 시절에 겪은 그 고통스런 가족에 대한 기억에서
한발짝도 기어나오지 못하고 가끔 그 고통스런 그때의 어린아이로 돌아가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이
나를 솔직하게 만들었다.
고백...70이 넘은 작가의 고백.. 나는 부끄러워서-어릴때 겪은 일이 부끄러운게 아니라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미숙하게시리 고통스러워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지 못한 사실이- 감추고 살던 일을 공중파에서 자신의 어린아이와 같음을 고백하다니.. 고백이란 이런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 고백으로 인해 나는 내게, 내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이미 다 겪어본 사람처럼 난 여전히 무감정이다.
감정의 무기력...
애초에 감정이 없었던듯이 나는 뭘 느끼기엔 아직 녹으려면 멀었다.
영원히 감정이 생기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이 된다.
나도 진짜 표정으로 만든 웃음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웃음이 나와서
웃고 싶다.
내게 들어가는 길..그건 감정의 싹이 잘려진 내 어린시절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어떤 사건에서 나는 어떤걸 느꼈던걸까?
왜 아무것도 느끼면 안되었는지...표현하면 안되었는지..
기억은 안난다. 어린시절 기억이 없다. 가끔씩 떠오르는 장면이 있지만...물론 공포스런 장면이지만
예전처럼 그 장면을 공포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어딘가 구석에 숨어서 공포스런 그 장면을
고스란히 보고있을 나를 찾아본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얼 느끼는지,,,
구석에 숨어있는 나에게만 집중한다..나의 생각과 감정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