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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제어라는 모든 개념은 잘못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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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히피즈 (110.♡.44.69) 댓글 7건 조회 5,474회 작성일 11-06-14 11:35

본문

아래글에서 인용했던 원문을 올립니다.

의견내시는 데 참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선사(禪師)들이 다루었던 방법들을 몇 가지 생각해보자. 여기에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네 가지 특별한 방법이 있다.

1. 모든 사물은 사실상 「하나」라는 대답.

2. 모든 사물은 사실상 「무(無)」요, 「공(空)」이라는 대답.

3. 모든 사물은 있는 그대로 아주 「자연스럽고」「옳다」는 대답.

4. 「질문」과 「질문자」가 그 해답이라는 것.

문제 자체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모순과 이중성, 혹은 불교에서 번뇌(煩惱)라고 부르는 「생(生)과 사(死)」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1. 「이 몸과 부처가 다르지도 별개도 아님을 알라.」
그렇다면 어찌 무엇을 더 구하리! 우리에게 덧붙일 것 하나도 없네.

첫 번째 유형인 모든 사물은 사실상 「하나」라는 말은 우리가 이중성의 모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데는 어떤 것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런 대답에 대한 심리적인 반응으로 모든 경험, 생각, 감각, 감정이 바로「도(道)」라고 느끼는 시도가 나타날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까지는 선(善)과 악(惡)이 같고, 즐거움은 고통과 같다고 느끼려는 시도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모든 가능한 경험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상징 속에서, 자기 경험이 지닌 의미를 명백하게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 개개의 경험을 「도(道)」라는 상징적인 생각에 집착시키려는 형태를 취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반응은 부딪치는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좌절감마저 역시 「도(道)」라고 주장해, 점점 더 「모든 것이 하나」라는 의미의 본질을 포착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2. 형상은 곧 공이요, 공은 곧 형상이다.「色卽是空이요, 空卽是色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사실상 하나라는 대답보다는 접근하기 쉬운 다른 형태의 대답이 생겨났다.
그것이 모든 것은 사실상 「무(無)」요, 「공(空)」이라는 주장이다. 이 대답은 실제를 「하나」라고 표현하는 데 사용한 의미나 내용을 알아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라는 주장에 대한 심리적인 반응은 부딪히는 모든 경험에 「예.」라고 답하면서 인생의 모든 측면에서 전체적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모든 것은 「공(空)하다」라는 주장에 대한 심리적인 반응은 모든 개개의 경험에 「아니오.」라고 말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3. 「일부러 부처를 찾는다면 부처가 바로 너의 번뇌이다.」
「길에서 도인(道人)을 만나면 도를 말하지 말라.」
옷을 입어야 할 때는 옷을 입어라. 걸어야 할 때는 걸어라. 앉아야 할 때는 앉아라.
부처를 찾겠다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갖지 말라.
「추울 때는 화롯가에 모여 앉고,
더울 때는 계곡 대나무 숲 언덕 위에 앉는다.」

다음은 전혀 되어진 것이 없다는 의미로 보이는 대답의 형태로, 모든 것을「예.」라고 말할 수도 없고「아니오.」라고 말할 수도 없다는 대답이 있다. 이 해답의 중요한 요점은 각자의 마음을 귀찮게 하지 않고 내버려두며, 마음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심리적인 반응은, 여름에는 덥다는 느낌, 겨울에는 춥다는 느낌을 다투지 않고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따라서 마음이 반응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다투고 싶어하는 어떤 감각이 있다는 느낌과 다투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당신이 사실적으로 느끼는 방법이 가장 올바로 느끼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즉, 인간의 삶과 근본적인 모순이란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느낌을 바꾸려고 하거나 없애려 하는 데서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현재 느끼고 있는 감각과는 다르게 느껴 보려는 욕망 역시 바로 변화되지 않는 현재의 느낌일 것이다.

4. 「제 마음을 부디 편하게 해 주십시오.」
「너의 마음을 내게 가져오너라. 그러면 내가 너를 편안케 하리라.」
「제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내가 너를 이미 편안케 하였다.」

「해탈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누가 너를 속박하느냐?」
「아무도 나를 속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벗어나기를 구하느냐?」

베는 칼은 칼 자체를 베지 못하고, 보는 눈은 눈 자체를 보지 못하네.

마지막으로 문제를 질문자와 질문 자체로 되받는 대답이 있다.
대답이 단순히 질문을 반복하거나, 「너의 질문은 완벽히 정확하다, 왜 나에게 묻느냐?」라는 식으로 질문을 되받는 예들도 있다.

이러한 대답은 의문이 일어나는 마음의 본래 상태에 주의를 되돌리는 방법이며, 「만약 너의 느낌이 너를 괴롭힌다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 누구이며 그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한 심리학적인 반응은, 느낌을 느끼려 하고 앎을 알아보려는 - 주관적인 대상으로 만드려는 - 노력일 것이다.
하지만 무주선사는
「부처를 찾으면서 부처가 되고, 마음을 쥐고서 마음을 찾는 것은」

영원토록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또 혜가선사는 이것을 「소를 올라타고서 소를 찾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와같이 이들 네 가지 대답 속에는 공통적인 형식이 있다.

그것은 모든 대답이 순환한다는 것이다.

만약 모든 것이 하나라면, 이중성에서 느끼는 모순의 감정마저도 이런 감각에 반대되는 나의 느낌과 마찬가지로 역시 「하나」이다.

모든 것이 「공(空)」하다면, 공(空)하다고 느끼는 생각 역시 공(空)하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나를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가 도로 꺼내 주겠다는 말처럼 공(空)하다.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대로 자연스럽고 옳다면, 나쁘고 자연스럽지 못한 일들도 역시 모두 옳고 자연스럽다. 내가 만약 사건들을 일어나는 그대로 놔두지만, 그 사건 중 하나가 사건의 과정을 방해하는 나의 욕망일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결론적으로 모순의 근본이 자기 이해 부족이라면, 나는 어떻게 자아(自我)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자아(自我)를 이해할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해서 문제의 근원은 의문이다.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자면 모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는 그 모순에 있다.

위와 같은 순환론들은 적어도 아주 분명한 두 가지 결과를 이끌어 낸다.

첫 번째는
우리가 스스로를 도우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야만
인간이 처한 처참한 상황에 대한 마음의 한계를 알게 된다.

두 번째는
자신이 처한 비참함의 깊이를 알게 될 때
우리는 편안해 진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자기 상실에 대해서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데,
이것이 뜻하는 바는 자기 복종, 자기 희생이다.

이것이 선가(禪家)에서 생존욕구 속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을 조화시켜 보려는 근원적인 욕망이
너무나도 불가능한 욕망이고 그 상황은 비참하며
그 자체가 엄청난 악순환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결국 그 무엇이 되게 하거나 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은, 마음의 통일성을 산산조각 내어 행위를 마비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자기 제어라는 모든 개념은 잘못된 생각이다.

<푸른글님의 사이트에서 옮겨 왔습니다 ^^>

댓글목록

실개천님의 댓글

실개천 아이피 (124.♡.44.5) 작성일

현대를 살아가는 요즘, 

옛 명신보감의 좋은 글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작은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려 봅니다.

 
1. 남을 무시하지 말라.

  - 태공이 말하였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여 남을 업신여겨서는 안되고,

자기가 크다고 생각해서 작은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되고,

용기를 믿고 적을 가볍게 대해서는 안된다.

 
2. 의심받을 일은 하지마라.

  - 태공이 말하였다.

참외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 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바로잡지 말라.

 
3. 힘으로 남을 이기려하지 말라.

  - 맹자가 말하였다.

힘으로 남을 이기려하면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지만 진심으로

복종한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해서요, 덕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려 하면

마음속으로 기뻐서 진심으로 복종하게 된다.

 
4. 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

  - 한때의 분노를 참으면 백 일 동안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

 
5. 남을 해치고자 하면 자신이 먼저 당한다.

  - 태공이 말하였다.

남을 판단하고자 하면 먼저 자기부터 헤아려 봐라. 남을 해치는 말은

도리어 자신을 해치게 되니, 피를 머금었다가 남에게 뿜으면 먼저 자신의 입부터 더러워진다.

히피즈님의 댓글

히피즈 아이피 (165.♡.17.115) 작성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_()_
제가 궁금했던 점은 많은 분들이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셔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지셨느냐, 아니면 자유로워졌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냐, 입니다.
저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올리다보니 무례를 범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널리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180.♡.134.234) 작성일

재미난 사실은 '모든 사물은 하나다'라는 주장을 열심히 해대는 이들일 수록,
세상의 문제에 대한 고민과 실천의 필요성을 무시하고 오직 그 '관념'의 끄트머리만
물고 늘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 모순이 어디서 오는지 늘상 궁금합니다.

실개천님의 댓글

실개천 아이피 (124.♡.44.5) 작성일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ㅎㅎ

'한 때의 분노를 참으면 백 일 동안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

이 말이 저의 가슴을 뼈저리게 만듭니다......

실개천님의 댓글

실개천 아이피 (124.♡.44.5) 작성일

둥글이님을 보면 '카르마 요가'라는 단어가 생각나네요.. 그리고 멋진 성경 구절도 있습니다 ^^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될 것이다.(마태5.9)

히피즈님의 댓글

히피즈 아이피 (165.♡.18.177) 작성일

제대로 못 깨쳤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요.
진실로 모든 것과 하나임을 체험했다면 저절로 이타행이 발현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요즘 법륜시님을 사모하고 있습니당~ ㅋㅋ

일호님의 댓글

일호 아이피 (14.♡.40.191) 작성일

모순은 없습니다. 모다 자신의 삶을 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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