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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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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초심 (121.♡.102.49) 댓글 4건 조회 6,641회 작성일 11-09-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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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 선생님^^

홈피가 새단장을 하였네요^^ 축하드립니다!!

저는 초심(사천)입니다.

기억하시는지요?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망상이 도>라는 말에 눈 꺼풀이 떨어져 나갔던 놈 입니다. ㅎㅎ
잘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오랜만에 인사올립니다. 추석도 지났는데 오랬만에 인사를 올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의 근황을 최근에 제가 적었던 글을 아래에 덧붙임으로서 대신하겠습니다.
그리고 몇 편의 글을 이곳의 도반님들을 위하여 (무시해도 전혀 상관 없슴^^*) 올려보겠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기원올립니다_()_
*****************************************************************************
제목 : 보물섬!!^^


여러분들은 지금의 나의 삶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 줄 <보물섬(깨달음)>을 찾아서 여행중이신 것은 아닌지요?^^


우리가 이렇듯이 보물섬을 찾아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바꾸어서 말하면 지금이 나의 삶이 불만족 스럽다는 것이지요. 지금 현재의 나의 삶에 만족을 할 수가 없으니 나의 삶을 멋지게 충만 시켜 줄 보물섬을 찾아서 그 보물들로 지금의 나를 만족스러운 나로 변화시킬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말이죠, 불만족스러운 나의 삶의 무게를 풀어 줄 보물들은 사실은 저곳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irony) 하게도 불만족스러운 나의 삶인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법화경의 오백제자수기품에 빈인계주貧人繫珠의 비유가 있습니다.


가난에 지쳐 유랑을 하는 어떤 사람이 우연히 관리였던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의 집을 방문하게 되어 술대접을 받고 만취가 되어 잠들고 말았습니다. 마침 이때에 그 친구는 공무로 멀리 출타를하게 되었으므로,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친구에게 작별의 인사를 할 여건이 되지 않아서 그 친구를 위하여 친구의 의복안에 무상의 가치가 있는 무가의 보배구슬을 꿰매 주고 출타를 하였습니다.


취기에서 깨어난 그는 그런 사실을 전혀알지 못한채 또 다시 유랑의 길을 떠나 여러나라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의 끼니를 해결하기도 힘들 정도로 고통의 나날이였습니다. 그렇게 고통속에서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관리였던 그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관리인 친구는 자신의 친구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는 크게 놀라며 묻습니다.


이보게 친구!
내가 그때 공무 때문에 먼 길을 떠나게 되엇을 때, 자네의 품에 무가의 보주를 넣어 두었었는데 자내의 몰골이 어찌 이렇단 말인가?하고 한탄을 하게 되었고 비로소 그 친구는 자신의 품에 무가의 보주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행복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줄거리입니다.


물론 여기서 관리였던 친구는 부처님이시고 가난한 사람은 우리들 중생들이며 품 속에 넣어준 무가의 보배는 부처님의 가르침이기도 하며 불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수행을 하여 자신의 본래면목(불성)을 깨달아 성불을 하는 것으로 이 비유의 글을 해설해 놓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비유의 말씀을 좀 다르게 해석을 합니다.
무가의 보주를 가난한 사람(중생)의 품 속에 넣어 주었다고 하는 것은 네가 원래 부처(일불승)임을 가르쳐 주었으나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미망에 쌓여 있는 중생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다시 깨달음을 찾아서 방황을 하다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다시 관리인 친구를 만났는데 이때 관리인 친구(부처)가 내가 자네에게 예전에 이미 있는 그대로 부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다시 일불승의 가르침을 펼치자 그때사 비로소 그 말을 이해를 하고 지금 이대로 완전한 일불승의 도리를 깨달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고자 한 바는 가난한 사람과 관리인 친구가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모양을 따라 가면 차별이 있으나 원래 차별이 없는 <이것!=일불승>의 나툼일 뿐입니다. 원래 지금 이대로 완전한 사바즉 적광의 세계를 일관되게 가르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무가의 보주가 무었일까요? 이 무가의 보주가 무엇인지만 알면 사실은 이 공부의 끝입니다. 이 비유가 법화경에 나오므로 법화종단에서는 무가보주는 묘법연화경 5자라고 하는 것이 대세이며, 또는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을 근거로 관세음보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무가의 보주를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자신있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 무가의 보주는 다름 아닌 <게으름, 불안, 무지, 미움, 분노, 짜증, 부족, 번뇌, 중생, 지옥...등등>입니다. 즉 여러분들이 할 수만 있다면 어쨌거나 없에 버리고 싶은 그래서 이런 것들을 멸하고 난 뒤의 그 반대의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그 저주하는 바로 그것이 '보배'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십중 팔구는 <미친놈, 지랄하네!!>라고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 제2품인 방편품에서 분명히 삼승(성문, 연각, 보살)은 방편이었음을 말씀하시고 유일불승(唯一佛乘)을 설하셨습니다. <오직 하나의 불승뿐이다!!>고 천명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행이 깊어서 큰 스님으로 추앙 받으시는 분들 조차도 제가 말씀드린 '보배'는 보배가 아니라 수행을 통하여 멸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말에 대하여 한마디로 <미친놈, 지랄하네!!>가 답인 것입니다.


유일불승(唯一佛乘)이란 모든 것이 불승(부처)뿐이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서 티끌만한 하나라도 제외를 한다면 그것은 모든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과 저것은 빼고 그 나머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모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말씀드린 '보배'를 보배로 보지 못하고 똥 닦은 휴지 보다도 더 못하게 취급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것은 아니야, 내가 지금 이것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으니 이것은 사라져야만 할 그 무엇이야!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 누구도 나를 구속시키지 않았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 만든 사슬에 묶여서 번뇌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단 한번이라도 '분노'라는 손님이 찾아 오면 그것을 따듯하게 맞이해 준 적이 있습니까? 한 번이라도 '불안'이라는 손님이 찾아 오면 그 손님을 감사한 마음으로 접대해준 적이 있습니까? 내 안에 이런 손님들이 찾아 오면 그 즉시 이런 것들을 멸하려 하고 거부하려고 하지 않았나요?


'불안'이라고 하는 것은 '당당함'의 동반자입니다. 그렇다면 '불안'을 멸하고 나면 '당당함'역시 사라지고 맙니다. 왜냐? 둘은 몸과 그림자와 같이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분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분노'가 없다면 '사랑'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너무도 당연한 것을 우리는 터무니 없는 망상속에서 한쪽은 없에고 다른 한 쪽만을 선택하고자합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불안이라는 손님이 찾아오면 진정으로 한 번만이라도 따듯하게 맞이해보십시오...!
그랬을때 불안과 당당함이 둘이 아님을 체득할 수가 있습니다. 진실로 우리가 외면하고자 했던 그것들을 단 한번만이라도 진정으로 맞이하여 하나가 되었을때, 우리는 뜻하지 않게도 <이것!=부처)과 하나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똥 묻은 휴지보다도 더 더럽게 취급했던 것들이 바로 <무가의 보배>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일불승>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릴 수가 있습니다.


<번뇌즉 보리>가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밤에 담배를 피기 위해서 작은 방에 딸린 베란다로 가는데, 가족중의 누군가가 작은 방이나 베란다에 불을 켜면 밖의 풍경을 볼 수가 없습니다. 불을 꺼야만 그때사 비로소 바깥의 산과 달과 별 빛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렇듯이 지금 이대로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을 찾아 헤매는 욕망의 불꽃이 나를 태우고 있는 한 지금 이대로의 삶은 말뿐인 허구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밖을 향하여 내 뿜는 불꽃들을 꺼버리고 나면 저절로 있는 그대로의 존재의 실상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제가 말씀드린 <보배>들을 진정으로 맞이해보십시오. 이것들이야 말로 바로 지금 여기 이순간 나의 역동적인 살아 있음(존재의 실상)을 일깨우는 진정한 보배들이니까요...!


사랑합니다_()_

댓글목록

만허님의 댓글

만허 아이피 (118.♡.19.89) 작성일

비원님의 말씀을
불교의 비유로 잘 설명하시군요,

미친놈 지랄하네 하실분은
이곳에는 없겠죠,

열정적인 설명 감사합니다,^^

chun님의 댓글

chun 아이피 (59.♡.186.231) 작성일

초심님

감사합니다....

열정적인 말씀에 감동받고 갑니다~

부목님의 댓글

부목 아이피 (222.♡.202.67) 작성일

미친놈 지랄하네

김기태님의 댓글

김기태 아이피 (119.♡.14.170) 작성일


안녕하세요, 초심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소식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참 잘 지내고 계셨네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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