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의 종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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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무개 (116.♡.248.160) 댓글 0건 조회 6,111회 작성일 11-10-09 19:33본문
흔히 신이나 우주, 종교, 진리를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신과 진리를 설명하는 일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난 후에
코끼리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과 같다.
장님은 처음 만지는 코끼리에 대해서 자신이 만진 부위가 전부 인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만진 부위를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는 전봇대와 비슷하다'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 말을 전해들은 사람은 '코끼리는 전봇대이구나'라고 알아듣게 된다.
코끼리의 귀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는 방석과 비슷하다.'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코끼리는 방석이구나'라고 알아 듣는다.
그렇게 코끼리에 대한 정의는...
꼬리를 만진 장님에 의해서는 '코끼리는 밧줄이다.'
코를 만진 장님에 의해서는 '코끼리는 굵은 관이다.' 등등의
서로다른 정의가 퍼져나가게 된다.
코끼리의 일부를 만진 장님의 이야기는 코끼리의 전부가 되어서
코끼리는 수십가지 서로다른 정의로 퍼지고, 그 정의는 또 다른 갈래로 퍼져서
수백가지의 다른 정의로 펴저나가게 된다.
오늘 날 종교가 바로 그러하다.
신과 진리를 이야기하면서 직접 보고, 만진 사람의 일부이야기가 전부로 전해지고
퍼지면서 신과 진리는 서로 다른 것으로 정의되어 서로 부딪히고 싸우게 된다.
코끼리의 전체를 보아야 하는데 전체를 못 보니 일부가 전부로 생각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코끼리를 전봇대로 확신하는 사람과 방석으로 확신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툴 수 밖에 없다.
종교는 신을 이해하고 신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는 도구이어야 한다.
강을 건너고 나면 배를 버려야 하지만 강을 건너는데는 관심이 없고, 배에만 관심을 갖는다.
신은 온데 간데 없고, 종교 자체를 믿는다.
종교는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 상관이 없다.
코끼리를 처음 다리로 접하든, 꼬리로 접하든 점점 확대 해나가면서
몸통과 귀와 코 등 전체를 더듬어 알아가야 한다.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 그 종교를 통해서 신과 진리와 우주의 법칙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는 종교 자체에 머무르기 때문에 서로 부딛히고 싸우게 될 수 밖에 없다.
종교가 불완전하기에 같은 종교끼리도 파가 나뉘어서 서로 비난한다.
강을 건넌자는 배를 따지지 않는다.
전체를 본 자는 절대로 다투지 않는다.
강을 건너지 못한자들이 큰 배 작은 배를 따지기 바쁘고....
전체를 모르는 자들이 옳고 그름을 따진다.
코끼리 전체를 알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눈을 뜨는 것이다.
눈을 뜬다는 것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나면 자기 불신이 사라지고
자기 내면에서 신의 존재가 원래 함께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이는 종교에 관계 없이 신의 존재를 아는 방법이다.
내가 눈을 뜨면 모든 장님의 말이 다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듯이
신의 존재를 알게 되면 모든 종교 틀리지 않음을 알게 된다.
두번째 방법은 코끼리의 일부에서 벗어나 점점 더 넓게 더듬어 가는 것이다.
편협적인 종교관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수용하고 긍정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종교의 깊은 뜻이 이해되면서 신의 전체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온전한 신을 느끼게 되면 모든 것이 다 옳음을 알게 되어
편협된 종교관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는 종교라는 배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가는 이치와 같다.
어떤 배를 이용하든지 강을 건너는 것이 중요하지 배는 절대로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된다.
코끼리를 모두 더듬어 안 자는 모든 장님의 주장이 다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과 진리를 안 자는 모든 종교가 다 옳음을 알게 된다.
강을 건넌 자는 절대로 배에 집착하지 않는다.
아무개 나는 첫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아버지의 지병(조울증)으로 생선생상을 하시면서 힘들에 4남매를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절과 무속신앙에의지하시며 살았다.
나는 무신론자로 살았다.
19세부터 못난 나 자신의 변화를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허용하면서
존중고 사랑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28세에 사윗감 자격으로 미달인 나는 결혼하면서
'교회를 다녀야 한다'는 처가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결혼 이후에 오늘날까지 교회를 다니고 있다.
뭔지 모르지만 작년에 세례라는 것을 받았고....
노래를 좀 한다는 이유로 성가대 권유를 받아 오늘 처음 성가대석에 서서 찬양을 했다.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내가 기독교인으로 신을 영접을 했거나....
영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면서 내 뜻과 무관하게 맺어지는
인연을 거부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깊은 신앙심으로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일요일마다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나쁘지 않은 말씀(?)을 듣는 것도
손해는 아니라는 생각에 20년째 다니고 있다.
종교와 무관하게 39세가 되던 해에 나는 거듭나게 되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허용하고, 사랑하기 시작한지 20년이 지난 후
마음의 상처가 모두 치유되고, 계란껍질 속에서 수증기같은 나의 존재가
망망한 우주로 펴지는 느낌을 받은 후에 세 가지 깨달음이 왔다.
1. 나는 수증기와 같은 無의 존재로부터 왔다.
2. 나는 완전한 인간으로 창조되었다.
3. 나는 하늘에서 이룬 선을 이 땅에서 이룰 도구이다.
분명 나를 창조한 존재가 있고, 나를 창조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창조주는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신은 이미 내 안에서 처음부터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신과 둘이 아니고, 내 마음을 움직이고, 내 팔과 다리를 움직이고....
내가 만날 인연을 맺고 헤어지게 하고, 모든 내 삶을 주관하고 있었다.
내마음의 나침반으로 존재하면서 이미 정해진 내 갈길을 안내 하고 있었다.
그(신)는 나에게 그가 전하고 싶은 글을 매일 쏟아부어주고....
20년 넘게 대전 생명의 전화 상담을 하고 있으면서...
상처입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도구로 나를 쓰고 있다.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내어 놓았다.
나는 종이컵을 쓰지말자는 캠페인을 통해 4000개 이상 환경컵을 나누어주며
아들과 둘이서 대전에서 서울, 부산, 제주를 행군했고....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누드퍼포먼스까지 했다.
나는 창조주의 도구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도구'로 닳아 없어지기를 희망할 뿐이다.
그것이 내 삶의 목적이고, 목적대로 쓰여지는 것 만큼 큰 희열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개는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가 정해놓은 길을 내 마음 속의 나침반이 지름길을 향하고 있고...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가기만 하면 된다.
나침반만을 보고 가노라면 길도 있지만 길이 아닌 길을 가게 될 수도 있다.
강물이 가로 막을 수도 있고, 가시밭길이 나올 수도 있다.
남들이 가는 길, 편한 길을 두고...
내가 길이 아닌 길을 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염려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두려움이 없다.
나침반에 대한 확고한 확신이 있기에 나는 당연히 그 길을 간다.
그와 내가 둘이 아니기에 담담하게 갈 뿐이다.
그의 메시지가 곧 내 삶의 메시지 이기에....
사랑합니다.
산처럼...
나무처럼...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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