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위에 언급한 고참이 나에게 물었던 거다.
'야, 루시오. 요즘 부대 완전 개판이지 않냐? 이를 어쩔꼬..어떻게 생각하노?'
그래서 난 '알아서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고참님은 부대에 대한 정이 각별하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고참은 '당연하지. 난 너도 알다시피 사회에선 내 할 일 외엔 신경을 끄고 산다. 내 공부할 시간도
없다. 근데 여기선 달라. 지난 1년9개월동안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데..우리가 그렇게 당하고도 어떻게
지금의 부대를 다시 만들어냈는데..난 전역하고 길거리서 얼굴도 모를 우연히 마추친 사람이 타격대 출신이라고만
해도 반갑게 인사하고 음료수라도 같이 마시고플 정도로 애정이 있다고.'
고참의 이 말에 내 머릿속에선 모든 정답들이 올라와주었다. 우리는 이미 모든걸 갖추고 있었구나...라고.
이 고참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그리고 철저히 문제를 해결하는 그 힘만을 기르며 살아왔는데
군대라는 틀 속에서 자신이 아닌, 타인들과 함께 동화되었었고 자신이 아닌 후임들을 위해...
그 과정에서 동료 대원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겪으며 자신이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을(악습이 있는 부대를 없애는)
창조해냈다. 이 얼마나 멋지고 감사한 일이었나? 하늘이 각자에게 맡는 여건 속에서 모든걸 이미 다 주시었다.
난 내가 유대감과 소속감을 갖기 위해 빨간명찰이 상징인 해병대를 가고자 했다. 거기에 가야 얻을줄 알았다.
근데 난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가족들에게서 유대감과 함께함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스스로 눈을 가렸을 뿐이었다.
난 내가 특전사를 가야만이 인내와 노력을 하여 강인한 자가 된다고 여겼다. 근데 내가 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이미 숱한 노력들을 했었고, 이미 많은 결과들을 냈었다. 약할 때, 약해지는 내 모습이 강한것을...스스로
부정하고 있었다.
난 내가 어려서부터 크게 되면 사법시험을 패스해야 가치있는 사람이 될 거라 믿었었다.
근데 나는 이미,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을 창조해내고 있었음을 몰랐었다.
난 지금도 10명 내외의 대원들과 함꼐 살 부딪히며 샤워하고, 같이 잠을 자고, 같이 밥을 먹으며
가족처럼 지내고 있고, 매일 민원인들을 위해 애쓰고 있었으며 주취자에게 멱살을 잡히고, 욕을 먹을 때마다
무서움, 두려움, 수치심의 날 계속 만나주고 있었다. 이미 씨앗 속에 모든걸 다 갖추고 있었음을...
이미 지금 여기에서 다 누리고 있었던 걸...각자의 여건에서 다 누리고 있었다.
껍데기(해병대,특전사,고시 따위)가 문제가 아니였다. 내가 추구했던 행복은 저기에, 미래에 있던 것도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 맞게, 이미 지금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너무 감사했다. 예전엔 날 사랑할 줄 모르는 날 저주했었다. 근데 날 사랑하지 못해봐야
날 사랑하게 됨을 알게 되니, 날 거부해줄 수 있단게 감사했다. 또 부모가 날 길러주지 않았다고 저주했었다.
근데 그 덕에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자랄 수 있었음을 알았기에 감사하다.
특전사에서 날 퇴교시킨 교관을 원망했었다. 해병대에서 자진퇴교한 스스로가 못났었다.
에버랜드에서 날 퇴사시킨 직원들이 미웠었다. 그런데...만일 특전사에서 퇴교하지 않았다면, 해병대를
갔었을까? 해병대를 퇴교하지 않았다면 에버랜드에서 일 할 수 있었을까? 에버랜드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공연단에 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공연단에 와서 온전히 무너지는 날 만날 수 있었기에...
그리고 의경으로 입대해서 지금의 날 창조하고, 성장할 수 있었기에...모든 것이 감사했다.
하다 못해 감사함을 느끼지 못할 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기에 감사했다.
이미 다 갖추어져서 넘 감사하다.
그 고참 덕에 이러한 진실을 다시금 알게 해주어 넘 고맙기에..다음달 전역식 때 편지에 꼭 이렇게 적어주고싶다.
'루시오와 1년1개월동안 인연을 맺어주어 감사합니다. 이미 이룩해놓으신 부대는 이제 남은 자들의 몫입니다.
염려마시고, 사회에 가셔서도 건강히 화이팅하시길 빌겠습니다. 전 고참님의 타고난 그 통찰력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단 한 번쯤은...세상을 바르게 읽어내는 그 시야를 자기 자신을 향해
한 번만 돌아봐주십시요. 화가 나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지만 온전히 화가 난
자신을 돌아봐주신다면, 그 또한 정말 재밌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라고...
ps: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ㅎㅎ 깜빡하고 질의응답에 이 글을 적었었네요. 커뮤니티에 뒤늦게 올리는 점
양해부탁드리며^^; 아마 올해 적는 마지막 게시글이지 싶은데, 미리 인사드릴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 전역하고 뵈요!!^^ 읽어주셔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