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승산 유선사(遊仙寺)와 신선설(神仙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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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명도abcd (1.♡.209.58) 댓글 0건 조회 8,558회 작성일 13-08-06 11:02본문
* 절에 산신각이 있는 이유 (불교와 민간신앙(도교,신교)의 결합)
산은 하나의 독립된 우주이자 세계라고 생각되며, 산마다 독립된 공화국이 있고 그 대장은 산신령인데, 백두산에는 백두산 신령, 지리산은 지리산 신령, 두승산은 또 두승산(전북 내장산 부근 고부 방면) 산신령이 안있겠나 싶다~
산은 외부와의 격절(隔絶)된 공간이고, 속세의 지겨운 삶을 단절하며, 새로운 기운을 감지하고 맑은 정신을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아득한 과거로 부터 현재까지 과거가 현재에 녹아있고, 현재가 과거 속에 들어있어 과거와 현재가 서로 삼투되었다고 볼 수 있다.
'화엄경'에 유명한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티끌 하나에 시방세계, 모든 우주가 들어 있다. 는 말과 상통되며 중심이라는 게 따로 없고 내가 곧 우주고 우주가 곧 나다~는 뜻이 된다.
여기에 이르면 시,공간 그리고 存在의 구별이 녹아 버린다.
풍수지리로 보면, 유선사에는 두개의 혈(穴)자리가 전해오는데, '비룡망해혈(飛龍望海穴)'- 나는 용이 바다를 굽어본다(대웅보전 터) 와 '연소혈(燕巢穴)' - 제비집 자리(요사채 터) 인데 두승산 7개 봉우리가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변산반도 서해를 노려보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절에는 커다란 대호상(大虎像)이 대웅전 옆에 있는데, 그쪽의 약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하여 만들었다고 주지인 비구니승 성주스님의 말이다.
그러니 이절은 절이름도 그렇고 호랑이 상을 보면, 보통의 <산신각>을 떠올릴 수 있고 불교보다 도교 쪽이 강함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딸 이름이 김유선(金庾仙)인데 띠가 98년 무인생 범띠 이다. ㅎ)유자 한문은 유선사와 다르고
庾자는 김유신 장군 유자인데 -곳집 유, 노적 유라고 : 이슬이 쌓인다. 쌀 창고 뭐 이런 뜻이다.
산신각에는 보통 노인과 동자 그리고 항상 범 한마리가 노인 앞에 앉아있다. 범은 곧 산신이 화한 것이라 볼 수 있고, 옛날 우리 할머니들이 산신기도 하실 때 이 범을 자주 보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나도 어릴 때 직접 들은 바 있다.
어쨌거나, 산신기도는 이쪽 도가 수련자나 정신 공부 수양자에 있어서 교양필수 과목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 두승산 끝자락을 천태산이라 하는데, 여기서 조선 중기 남궁 두라는 사람이 하늘로 승천하려다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데.(믿거나 말거나 전설) 그는 죄를 지어서 피신 중 무주 적상산에서 권진인 이란 스승을 만나 7년 수도 끝에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으나 마지막 불기운이 모자라 실패했다고 한다.
<홍길동전>을 쓴 교산 허균이 함열로 유배 시에 도술을 배우고자 남궁 두를 만나 축지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당신은 그동안 주색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알려 줄 수가 없다' 고 거절했다 한다.
한편, 권극중(1585~1659) 이란 사람 역시 남궁 두와 동시대 인물인데 두승산 자락에 살았고 丹學의 바이블인 <참동계>(參同契)를 주석한 인물이다. 참동계는 중국의 주자(주희)도 그 비밀을 알 수 없다 할 정도로 어려운 비서(秘書)인데, 그 핵심은 <감리교구(坎離交구)>에 있다 한다. -감(혼)을 리(백) 속에 집어 넣는 것인데, 심장의 불기운을 신장의 물기운 속에 집어 넣는데 그래야 혼백이 흩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단학에서는 이를 현빈(玄牝)-노자가 강조한 것, (자리를 잡았다고 표현하는 데), 하여간 이를 겪어야 신선(도인)이 된다고 함. 신선 위에 천선(天仙)이 있는데 하늘에서 장생불사하는 경지로 지상의 부채를 다 갚은 다음 하늘로 유유히 올라가는 백일승천의 과정을 거친다.
조선 후기 '용호비결'의 저자 북창 정렴과 중국 청나라 때 내단수련가 황원길 도인도 백일승천 했다는 허무맹랑한(?) 전설이 있다. ㅎ
<중용>의 표현대로 하면 '희로애락이 아직 시작되기 이전 상태를 말하는데, 몸 속에 아까 말한 <감리교구>가 이루어지면 희로애락의 감정이 일어나기 전의 담담하고 초연한 마음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는 <참동계 주해>의 저자가 바로 전북 고부사람 <권극중>선생의 저술인데 이 분도 두승산에서 수도했다는 설이 있다.
마지막으로 증산도의 창시자 강증산(1871~1909)도 두승산과 관련이 있는데, 우선 그 쪽 방면에서 출생했고,
그가 20대 중반 두승산 시회(山 정상 망선대)에 참석했는데,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증산에게 비서를 한권 전했는데, 그 책이 바로 <수심정경(修心正經)>으로 추측되며 조선 후기 전라도 지역에서 유행한 내단수련서 라고 한다.
강증산 死後 이 책은 방 안 천장에 보관되어 오다가 외동딸 강순임을 통하여 원불교 2대 종법사 이고 원광대 송천은 총장의 부친인 정산종사 송규(1900~1958 : 경북 성주가 고향)에 전해지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성주에 원불교 교당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몇년 전 송규종사의 따님을 (당시 82세) 만나 봤음)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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