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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산청모임(81장. 믿음직한 말은 번지르르 하지 않다)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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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름가지 (117.♡.172.26) 댓글 4건 조회 8,964회 작성일 17-12-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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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청모임에서 선생님께서 제게 말을 건냅니다.
'올 한해 편안했지요!, 아무 일 없었지요!!'라고....
'네, 선생님'하고 대답했습니다.
조금 떨떠름했지만(선생님은 제가 내내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을 알고도 짐짓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이었으니까요. 올 4월경부터 지금까지 저는 내내 크고 작은 좌절들로 고통스러워하고 우울했었습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고 우울했을 뿐인데, 어느날부턴가 아이들은 제게 '특별한'선생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누군가는 이야기를 참 잘들어준다, 또 누군가는 커피를 한잔 내려주었을 뿐인데 느낌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고통스러워하고 우울한 저에게는 조금 어리둥절한 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조금은 알기도 하겠습니다. 내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느낌, 생각들에 예민하게 깨어있는 만큼, 또 그것들이 주는 고통에 예민하게 깨어있는 만큼 주변의 고통을 이해하고 배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내안의 두려움을 직시하고 그것에 깨어있을 때(비록 그것이 고통을 주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열린 가슴으로 다가설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아무 일이 없었다기보다는 제게 참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토록 중한 질병으로부터 돌아올 때 사람은 백배나 더 섬세해진다'는 니체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토록 중한 질병', '고통과 좌절'이, 실패가 더 이상 실패가 아닌, 그저 한번의 경험(세상 사람들이 실패라 이름붙이는 그것)이 저를 보다 더 큰 성장으로 이끌 뿐이었습니다.


81장. 믿음직한 말은 번지르르 하지 않다.
믿음직한 말은 번지르르 하지 않고, 번지르르한 말은 미덥지 못하다.
잘 하는 자는 논쟁하지 않고, 논쟁하는 자는 잘 하지 못한다.
아는 자는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자는 알지 못한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고 남을 위하여 다 베푸는데 자기는 더욱 갖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모두 주는데 자기 것은 더욱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기만 할뿐 해되지가 않고,
성인의 도는 그저 행할 뿐 다투지 않는다.


한해의 마지막 공부모임,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감사와 아름다운 일이지만, 또한 살아 있음으로 우리는 결핍과 힘겨움을 경험합니다. 낮과 밤, 여름과 겨울, 자연의 이치가 음양이 같이합니다. 그렇게 즐겁다가 스트레스받고 살아가시는 여러분, 손에 잡아지지 않지만, 좀더 성장한 것 같고, 좀더 편안해진듯한 느낌들을 가지고 한 해를 살아온 여러분 자신을 위해 박수한번 칩시다.






진리의 말, 어떤 말이 진리의 말일까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순간, 모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 모든 몸짓들, 애씀, 수고로움 등 그런 모든 것의 궁극의 목적,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영혼의 자유, 마음의 평화, 행복, 깨달음....
이런 것들은 밖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권력을 아무리 많이 가지더라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소유,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무엇인가를 가지게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만약, 밖으로부터 얻으려고 하면, 노력,수고,시간,몸부림이 개입되고, 언젠가 미래에 얻을 수 있을거라 기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진정한 자유는 지금은 여기에 없다는 것을 전제하게 됩니다. 지금은 행복하지 않고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전제위에서 수고와 애씀을 통해 이런 궁극의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희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희망이 사실 고문입니다. 수고와 애씀만 낳지, 더 가물어 집니다. 노력을 통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궁극의 것은 오지 않습니다.
지금은 내게 없기에 노력을 통해서 얻으려는 것이 마음이 만들어 놓은 허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마음, 생각이 주인이 되어 있기에 그 행동을 멈추지 못합니다. 수고와 노력을 통해서 얻어 보아서 이미 안된다는 것을 경험하고 알고서도 그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반복합니다. 그것은 이처럼 강력합니다.

미래와 수고를 통해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면 남는 것은 '지금이대로의 나'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전히 구속되어 있는 삶의 모습인데 이게 어떻게 자유야?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이제 지금부터 그 의문을 풀어가 보겠습니다.
'믿음직한 말은 번지르르 하지 않고'
여러분이 진실로 영원한 자유를 여러분의 것으로 하고 싶다면, 지금 이대로의 여러분 자신을 떠나지 말고, 지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진리는 매순간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하는 이런 말들은 번지르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찾아들어가보면 가슴속에서 느낌표가 꽝!하고 찍힐 것입니다. 진실로 해방을 맞고 싶다면, 지금 있는 그대로의 여러분 자신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여기의 이 나, 불만족스럽고 결핍되어 있는 이 나와 영혼의 자유가 무슨 상관이 있길래, 지금의 나를 떠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지? 우리 자신은 모르는게 너무나 많습니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안다고 생각하는 것때문에 진실로 알아야 할 것에 대해 문을 닫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실로 참된 것은 모름속에 있을 수 있는데, 안다는 것으로 그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이 나뭇잎, 이름을 떼고 나면 그것이 무엇인가요?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 막막함, 모름, 사실 지금 진리를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저는 그 나뭇잎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 섬세한 구조, 질감, 햇빛을 받아 광합성작용을 하고, 산소를 만들어 내는, 30미터가 넘는 커다란 나무는 중력을 거슬러 뿌리에서 빨아들인 물을 나무의 끝까지 끌어 올립니다. 그걸 어떻게 할까요? 바람이 불면 나무가 춤을 추고 그 춤이 일종의 펌프질 역할을 합니다. 햇빛, 바람, 공기, 땅, 땅속의 무수히 많은 미생물들, 깊이 알지 못하면서 안다는 것으로 우주의 신비로운 박동을 다 지나쳐 버립니다. 가로수길을 걷다보면 그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자기 생명을 살리는, 온 우주가 살리는 그 나무를 보면서 저는 전율합니다. 어떤 악조건속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그 생명의 율동, 호수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 그걸 보고 있으면 너무 예쁩니다. 빛나는 보석같은, 또 양철지붕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의 감각이 열려있고, 볼줄 아는 눈이 있으면, '물' 그것에 이름을 떼어보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속에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섬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면 그 파장과 일치하게 되고 접점이 되면 그 단 한순간만으로도 정화되고 기쁨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 세상은 이와같은 기적이 널부러져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안다는 생각으로 이 모두를 다 놓쳐버립니다.
제가 노가다를 할 때, 더운 날씨에 공구리를 치는데 쉬지도 못하고 죽을동 살동 땀을 뻘뻘흘리며 일하는 나를 보게 되었는데, 그 순간 전 감동하고 전율했습니다. 미친듯이 일하는 이 생명력, 하루종일 일했는데 피곤한 줄을 몰랐습니다. 가고옴이 없는 이 기쁨, 감사, 그렇게 일하고 나면 밥맛이 너무 좋고, 그러다 잠이드는 그리고 깨어나는, 이 신비, 정말 좋습니다. 그렇게 감각이 열리게 되면 이 세상은 감사와 기쁨입니다. 이런 상태이면, 많이 가지든 적게 가지든 상관없습니다. 그런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오늘 선생님 강의 중에서 '그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면 그 파장과 일치하게 되고 접점이 생기면, 그 단 한순간만으로도 정화되고 기쁨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 부분의 말씀이 제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호수에 물방울이 튕기고 그 파장에 귀 기울이는, 정말 전율하게 되고 그 순간 우주와 합치될 수 있겠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학생때 자취를 했는데 양철지붕을 가진 집이었습니다. 어느날 방에 누워 있는데 소니가가 내립니다. 빗방울이 양철지붕을 '우당탕' 요란스럽게 두드리다 흘러 물받이로 흘러가고, 물받이의 물은 또 큰일이나 난것처럼 모여들자마자 '콸콸' 흘러갑니다. 그러면 소나기가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물이 모여 흐르는 소리, 또 그 모여 흐르는 물이 처마밑으로 '철퍼덕' 떨어지는 소리, 마당 한켠에는 토란이 있어 잠시 잠든 토란잎을 '투둑'하고 빗방울이 깨우듯 노크하면, 그 소리에 놀란 토란잎이 몸을 흔들고, 그 빗방울은 흔들거리는 토란잎을 부여잡지 못하고 마른 흙바닥에 내던져져 '툭'하면서 먼지가 한 움큼 일어나는, 또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퍽'소리와 함께 더 큰 흙먼지를 일으키면, 그 흙내음이 소나기의 빈틈없는 틈을 헤집고 가만 누워있는 내게로 다가와 괜찮냐는 듯이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그러면 저는 이게 뭐지하며 코를 킁킁거려 봅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마른 흙냄새, 지렁이 똥냄새, 쥐며느리 오줌냄새, 닭똥냄새가 뒤섞여있어 마치 후시딘 연고나 된듯이 내 마음의 상처를 부드럽게 감쌉니다. 크고 작은, 두드리고 흐르는, 맑고 둔탁한, 높고 낮은, 복합적 흙내음까지 가진 요란한 그것은 일종의 입체적인 우주적 하모니였고, 구겨져 있는 내 마음을 두드려 펴는 듯한 편안함을 주었었습니다.(가만 생각해보니, 소나기의 퉁퉁거리는 소리가 내 영혼의 먼지를 털어내고 싯겨내어 잠시 잠깐 영혼이 안식을 취했던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것에 대해 알지 못하고, 또 하나 알지 못하는게 있는데, 자기자신을 모릅니다. 이 몸을 자신이라 여겨버립니다. 여러분, 몸, 마음, 보고 듣는 이것, 손의 정교한 구조와 작용들, 너무 익숙해서 새로울게 없다고 여기는데,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세상의 신비를 바라보는 이 '나', 좌뇌와 우뇌로 나누어지고, '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좌뇌, 우주와연결된 우뇌, 자뇌와 우뇌는 둘로 나누어져있고, 이게 척추를 통해 아래로 내려가느데, 산소, 음식, 소화 기관, 우리 몸의 혈관 길이가 12만키로에 달합니다. 소화기관이 음식물을 소화시켜 에너지를 만듭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쌀, 배추 이 모두가 우주가 키웁니다. 우주가 키운 것을 내가 먹고, 나 또한 우주입니다. 십이지장, 쓸개, 음식이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양의 산이 위장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창자를 통해 음식물이 흡수되고, 그리고 엉덩이, 이 다리가 걸어가고, 호흡하고, 느끼는 이 몸, 피부, 손톱, 60조의 세포가 각자 자기 역할을 합니다. 이 60조의 세포가 전체가 하나가 되어 음식물을 소화시키고, 어떤 것은 손톱이 자리나는 에너지로 가고, 어떤 것은 머리카락이 자라게 하는, 먹고 배설하는 이 전부가 하나이고, 오직 하나밖에 없는 이게 진실입니다. 우주적 에너지가 가득찬 이 몸의 형태, 고양이의 형태, 저 나무의형태, 전부가 하나입니다.

좌뇌가 '나'라는 생각을 해버리면, 나와 남이 분리되고, 내가 독립적 개체가 되어 나와 남이 전부 개별화되는, 위계가 생기게 되고, 인간은 위대하고 만물은 수단으로 전락해버리는, 그런데 진실은, 빗방울 소리, 감각이 열리면 그 빗방울의 파장을 느끼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흐를 수 있는데, '나다'라는 생각이 분리를 가져오고 한정되고 유한한 존재, 결핍의 존재가 되어 버리는, 이 몸이 나다는 생각에 갇히게 되는 그래서 결핍된 존재가 되는, 이 착각 하나가 그 모든 추구를 만듭니다. 정말 모든 사람들이 이 착각속에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너무나 모릅니다. 그 모른다는 것에 호기심을 기울여보면, 그 모름속에서 앎의 영역이 감지될 수 있습니다. 진실을 찾고 싶으면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자유는, 이 움직임속에 있는데, 이것을 감각하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깨어 잠들때까지 일어나는 이 마음, 감정도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감정, 느낌이 우주의 근원적 에너지의 표현, 우주적 춤입니다. 이대로 전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내 안에서 일어난 이 모두가 우주적 에너지고 지금 있는 그대로가 진리입니다. 더하거나 뺄것이 하나 없는, 이 진실 앞에서 우리는 왜 결핍혹에서 살아갑니까?, 실재는 에너지 밖에 없는데 나라는 생각이 좋고 나쁜 것으로 나누고 분리시켜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밝은 것은 취하고 어두운 것은 버리려듭니다. 나무에서 '나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나무를 잃어버리는, 매순간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게 되면 단 한순간도 분리가 없는,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으면 거기에 결핍이 없게 되는, 그리고 이것이 절대적 평화입니다. 분별심하나 내려 놓고, 그냥 그 순간속에 있어보면, 답답하고 어둡고 좁고 나쁜 것인데, 그것속에 있어보면 그 속에서 무한의 자유를 알게 됩니다. 이게 진실입니다. 멀리서 찾지 않고, 사소하게 여겨지는 감정들 속에 우주가 있습니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진실되게 만나면 에고가 녹아 내리면서 모두가 다 달라져있는 충만된 삶을 살게 됩니다.

분별하고 따지는 사람은 그속에 빠져 삶의 아름다움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도, 여러분이 도이고, 삶이 도이고, 거기에 개념이 필요합니까? 그냥 살아갈 뿐, 그냥 존재할 뿐, 그 존재의 풍요로움, 많이 아는 자는 지금 이순간의 자신을 모르는 자입니다. 진리를 아는자는, 지금 이순간, 그 단순함, 지금 자신을 찾아온 것에 변명하거나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자꾸 생각을 끌어 들이는 자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만나고 경험하는, 삶밖에 없습니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그 감정들을 만나면 될 뿐, 거기에 개념, 설명이 들어가면 목마르게 됩니다.

자유, 평화는 줄 수 있는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도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존재하면, 그 사람의 향기는 멀리 퍼져갑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꾸 피하고 거부했던 그것을 만나게 하고, 미래로 향하던 마음을 지금의 자신으로 돌이키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육체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이 에너지, 우주에 꽉찬 에너지의 생명력이 나타난 것이고, 그것이 현시되어 이 몸으로 나타난 것뿐입니다. 이 고통, 결핍도 이롭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이유는, 존재에서 품어져 나오는 그 빛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질의응답>
춤, 사실 삶자체가 춤입니다. 동작들, 등을 긁고, 여러분이 지금 질문하는 것, 이 모두가 춤입니다. 우리의 삶, 율동, 파장, 파동, 모든게 춤입니다. 화장실에 가서 앉아 있어보면 턱이 가렵고 그러면 손이 올라가고, 가려운 턱이 긁기 좋게 살짝 방향을 틉니다. 그 손이 올라가는 그 동작에서 느껴지는 그 감각이 참 섬세하고 재미있는데 그게 다 춤입니다. 호수가의 청둥오리가 날아오르며 일으키는 물결 그것도 춤입니다.

[질문]
제가 깨달았다는 분을 두 사람 만나보았습니다. 한분은 그 분이 쓴 책을 읽고 잔뜩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는데, 책과 사람이 너무 달랐습니다. 꽤 유명하고, 예언도 하고, 신문에도 나오는 분인데 무엇인가 아닌 듯 느껴졌습니다. 또다른 한분은 유명하지도 않고 야인처럼 살아가는데, 그분의 이야기는 선생님과 비슷했습니다. 저는 깨달음의 상태가 되면 대단한 어떤 능력을 가진 상태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수행했고, 이 에고가 마지막까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아무런 특별한게 없고, 그분이 겪는 삶의 고통은 저와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저는 깨닫기만하면 신이 된다는, 외모에서 벌써 빛이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가 지나가기만하면 모두가 저를 우러러 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리산에서 제가 수행할때, 저는 수행자라는 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욕탕엘 가면 주변 사람들이 위대한 수행자가 오셨구나하며 나를 우러러 볼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자비를 베푸는, 이게 우러름을 받고 싶은, 지배하고 군림하고 싶은 영적인 권력욕이었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을 통해 잃었던 모든 것을 한방에 만회하고 싶은.....그러나 제가 눈뜨고 보니, 너무 평범하고, 그저 지금 이순간에 깨어있는 것, 그러고나면 그냥 텅비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그저 이순간, 아무것도 없으니 온 우주가 다 있습니다. 아무 상이 없는, 남자 혹은 여자라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 없는, 그저 존재의 황홀함, 기쁨, 감사, 이 바탕에서 나 자신이 텅비어버리면, 알았다는 이런게 다 사라져 버리고, 그냥 있음, 그 자유로움, 그 어떤 상, 이름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근원, 온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달리 말하면 참 건강한 사회인이 되는 것, 자기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고통이 사라지니 현실에 있는 자신을 보게되고 자기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우러름을 받는 존재가 되고 싶어 도를 닦습니다. 그런데 그 에고가 사라지면 그저 존재만 남습니다.
 어떤 분은 살면서 깨달음을 추구했는데, 열심히 수행하다 문득, 자신을 보니까, 돈,술,여자,물질에 대한 욕망이 참 많은, 그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게 너무 힘들 것같아 수행을 포기했는데, 그때 마음을 푹 쉬어버리게 됩니다. 그냥 나는 나고, 단순함인데,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결핍투성이의 자신을 받아들이면 거기에서 엄청난 충만이 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릅니다.

이 수저는 길지도 짧지도 않습니다. 이 수저에 오는 인연에 따라 수저는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는데, 그 인연이 없으면, 이것 이대로 길고 짧음이 없는 절대입니다. 내가 찌그러지고, 결핍이어서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롭습니다. 길고 짧음속에 집어 넣어 괴롭게 되고, 그렇게 그 상대적 세상 속으로 집어넣은 자가 바로 자신입니다. 온전히 자기자신을 받아들이면 그게 해탈입니다. 그러면 에고가 사라지고, 그저 자기자신의 삶을 살게되는, 움츠러들고 찌그러진게 다시 펴지게 됩니다. 그러데 사람들은 자기자신이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더 나은 자신이 되려고 하는데, 더 나은 자신이 되려하는 행위가 결핍을 만들어 버립니다.


2017년이 거의 마무리되어 갑니다. 잘 마무리되길 바라며,

2018년 새해 1월 산청 안솔기에서 다시 됩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here님의 댓글

here 아이피 (211.♡.139.85) 작성일

81강 강의 좋았습니다
강의를 듣고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 문득 ᆢ
'감사함을 잊고 살았구나' 생각되더군요
거저 받는것이 이리도 많은데 눈감고 살았구나 싶었어요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17.♡.172.26) 작성일

네, 저에게도 이번 강의가 특별했습니다.
강렬하기도 했고요.

거저 받는 것이 이리도 많은데 눈감고 살았어요.
제가 그래요.
요즘은 혼자있는게 좋더라고요. 그게 거저 받는 것인데, 이전엔 늘 혼자인 나를 부정했어요.
저는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거저 받는 것인데, 이전엔 늘 지루해 했어요.
저는 사지 멀쩡한 육체를 가지고 있어요. 그게 거저 받는 것인데, 늘 말랐다며 탓했어요.
저는 예민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거저 받는 것인데, 늘 고통스럽다 저항하고 원망했어요.

~~~말하자면 끝이 없어요~~~~~

노랑나비님의 댓글

노랑나비 아이피 (61.♡.100.218) 작성일

강의 참석은 못해도 글로 강의요약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내년엔 참석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새해도 선생님의 강의를 함께하는 식구들모두에게 깨어있음이 함께하길.....
그리고 저에게도 무지에서 벗어나는 울림이 있기를.....
.
.
.
.근데 새해에 갖는 이 희망사항이 고통인거죠?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83.♡.203.138) 작성일

노랑나비님,
때때로 댓글을 남겨주셔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희망사항이 고통인거죠?'하고 질문 혹은 의문을 던지셨는데요,
사람들은 불안이 오면 불안하지 않으려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자신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행위를 합니다. 그래서 심하게는 약물, 도박, 알콜 등에 중독되기도 하는데요, 참 안타까운게, 그런 행위들에 의해 불안은 더욱 확대 재생산됩니다. 이게 '무지'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인데, 노랑나비님은 그런 '무지'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을 내셨고, 그것은 지금 올라오는 것에서 더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는 것이니, 바른 마음을 내신 것입니다.
 지금 올라오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버리고 불안하지 않는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우리의 불안을 확대 재생산합니다. 불안하지 않는 나를 '희망'할때 우리는 흔히 '불안한 나(지금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불안)'를 경험하려하기보다는 부정하고 건너뛰어 버립니다. 그래서 불안이 올라올 때 다른 것을 바라지 말고, 그 불안 속에 있으라는, 내 안에서  불안이라는 형태로 올라오는 감정, 느낌, 생각들을 온전히 경험해 보라는 의미에서 선생님은 '희망'을 부정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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