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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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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2건 조회 4,461회 작성일 07-09-2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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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태어난 아이들은 헤엄을 물처럼 배웁니다.
그 모양새가 엉성하더라도 물길의 흐름을 잘 알지요.
여기서 '수영'이나 '폼'이란 인위적 용어를 일부러 피했습니다.
열살 무렵인가 거제도 인지 남해섬 인지 기억이 잘나지 않습니다.
여름 한 철 고운 날씨였고 두살 위인 사촌형과 재미나게 놀고
있었지요. 해변가의 오른쪽에 아름답고 작은 섬이 둥실 떠올라 있었고
그 곳에는 소나무와 자갈밭과 암석이 어울러져 무엇인가 밝고
재미나고 환상과 모험이 뒤섞인 것 처럼 그 섬은 우리를 유혹했지요.

영도와 남항을 오고가는 솜씨의 물개들이라 우리는 드디어
그 섬에 가서 놀기로 작정했습니다.
대략 삼십분 정도 헤염쳐 가면 금방 닿을 수 있는 거리 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기진맥진 한 시간 가량을 헤엄쳐도 그 작은 섬은 처음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그대로 그 거리에 떠있었습니다.
'링반데룽' 현상 같기도 하고, 우리가 섬에 가까이 가면 섬이
장난스럽게 그 만큼 뒤로 물러나는 것 처럼 보였지요.
아니 실제로 사촌형과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시퍼런 바다물 위에서
그 순간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자' 우리는 서로 그 말을 하자마자 뒤로 벌렁 누워 뒷다리
로만 처음 출발한 바닷가를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느리지만 남은 힘을 최대한 아껴가며 헤엄치는 방법이였지요.
그래서 우리는 다시 뭍에 힘이 탈진한 상태로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사촌형과 나는 어려서 왜 그렇게 가까워 보이는 섬이 막상
다가가자 한없이 멀어져 보이는 것일까 그 까닭을 이해할 아무런
경험이나 지식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과학 잡지의 어떤 페이지에서 그 해답을 보았습니다.
[ 우리 인간의 시각은 중간에 아무런 장해물이 없다면 그 거리를
측량하지 못하고 착시 현상처럼 그 대상물이 무척 가깝게
보인다. 이런 현상은 평야와 바다, 산 등에서 일어난다.
인간은 대체로 중간에 놓인 여러 장해물의 원근법을 계산하여
대상물과의 거리를 가늠한다.]

하마트면 물에 빠져 죽은 시신이 될 뻔한 경험이였지만 좋은 교훈
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간혹 우리의 마음 속에 내재한 '심리적 유추 개념의 거리'
에 대입하여 봅니다.

심리상의 유추 거리는 저가 지어낸 말 입니다.
많은 분들이 명상이나 깨달음이란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어떤 '불멸' '자유' '행복' '초월' 같은 것을 얻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저가 그 섬에 닿으면 펼쳐 질 것 같은 세상 같은 것이지요.
앞선 覺子들의 어떤 비범한 차원에 들어서서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는데. 그들은 그 이후 다시 본래의 고통, 번뇌, 삶에 빠져
허우적 거리게 되더군요.
그들에게도.
'그러함'은 다시 내가 옛날에 경험한 '섬'처럼 수평선 상에 눈에, 손에
닿을 듯 멀리 떨어져 그대로 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섬이란 존재는 결국 자신과 그 섬 사이에 가로 놓인 장해로만
제대로된 거리를 환산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걸려드는 유혹, 고통, 슬픔, 번뇌.....이런 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 자체가 장해가 아니라, 그것이야 말로 그 섬과 나 사이의
실존적 자각을 가늠 하는 유일함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The concept of awareness is by which we measure our pains,
conflict, agony and etc,.
각자의 섬과 헤엄 방식으로 인생을 잘 헤쳐 나가시기 바래 봅니다.

댓글목록

송재광님의 댓글

송재광 아이피 (211.♡.252.214) 작성일

많은 사색을 필요로 하는 글입니다.

J(제이)님의 댓글

J(제이) 아이피 (121.♡.37.54) 작성일

시간(변화)이 없으면, 영원을 알 수 없고,
현상이 없으면 허공을 알 수 없겠지요.

마음 안에서의 거리란, 때로 멀게 가깝게
인식되지만, 그기가 그기 아니겠습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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