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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있는 작은 아이

작성일 07-09-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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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조회 6,612회 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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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무렵, 하노이 공항에 내리자 꼭 한국의 작은 도시 시외버스 터미널에
온 듯 하였다. 시가지로 들어서는 길은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잘 닦인 진흙길이였다.
호텔에 여정을 풀고 땅거미 내리는 하노이 시내를 발길 닿는대로 걸었다.
저녁 어스럼 내리는 저잣거리에 인력거 처럼 생긴 시클로가 하나 둘 늘어나고
아오자이 옷을 입은 여학생들이 자전거를 탄 채 재잘거렸다.
일가족이 탄 오토바이가 서커스 곡예단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조그만 시장에 들러 이름도 모르는 과일을 이것저것 사먹었다.
대나무로 짠 바구니에는 가물치나 잉어 같은 고기가 퍼뜩였고
파랑새가 다리에 줄이 묶인 채 작대기 위에 올려져 팔리고 있었다.
허름한 길가 식당에는 가늘고 하얀 국수 사리가 큰 솥에서 데쳐져 나와
흰김이 뭉실뭉실 피어 올랐다. 길 옆 느티나무 가지에 거울을 매단
노천 이발소에는 어떤 남자가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동네는 차츰 어둑어둑 해져갔고 발걸음은 낯선 곳을 여기저기 배회하며
헤메이다가 무작정 어떤 마을 어귀에 접어 들었다.
어떤 집 앞 마당에는 텔레비전을 꺼집어 내어 그 주변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끌 떠들고 있었다. 조금 더 골목길을 들어서자 커피와 젓갈
냄새가 뒤섞인 듯한 묘한 냄새가 스며나왔다. 골목 어딘가에서 어떤 아낙이
민요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굴과 등은 어느새 땀에 흠뻑 젖어들었다.

그 때 어스럼한 어둠의 틈새로 작은 아이가 골목에서 나오다 갑작스레
나와 마주쳤다. 그 아이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 보다가 겸연쩍은 미소를
보이더니 금새 다른 골목길로 사라졌다.
그 아이가 사라진 뒷 모습을 우득커니 바라보고 난 후 갑자기 앞이 어질거렸다.
나는 지금 어떤 세상에 서 있는가, 갑자기 머리가 혼미스럽고 아득해졌다.
몇 걸음을 비틀거리며 걷다가 나는 이역만리 낯선 동네의 한 켠 어둑한 골목
담벼락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때 까마득히 잊혀진 나의 모습을 보았다.
한 아이가 부러진 작은 나뭇가지로 땅을 파헤치다 땅강아지의 몸을 부수었고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울면서 그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하노이에 도착하자 마자 느낀 야릇한 느낌, 넋이 나간 듯 거리를 배회하며
낯선 골목에서 알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던 것은 그 당시 베트남을 찾는다는 일이
마치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여 갑작스레 한국의 70년대 초반으로 돌아간 듯한
일종의 시간 여행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시적 시차 적응(time lag)의 혼란으로
갑작스레 유년으로 그만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S 님에게:
삶이란 참 이상합니다.
적지 않게 나이를 먹고 자라고 구경 했지만
때로는 아이가 그대로 피터팬 처럼 몸집만 커져
단지 어른 연기를 좀 잘해낸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경험과 앎으로
쉬지 않고 걷고 뛰었으나
왠지 뒤돌아 보면
나는 제자리에 선 채 한 발자국도 내딘지 못하고
왠지 삶이 고단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나'는 정말 변화하고 개선되고 있는 것인가요?

댓글목록

식객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식객 아이피 (121.♡.37.54)
작성일

자몽님!!
어제, 어떤 님에게 듣고 깊이 공감했는데,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저마다 성장을 멈춘
아이가 하나 있다고 하네요!!

단지 나의 짐작이지만,
아이는 첨에는 본성에 의해 자유롭게 자랐겠지만,
아마도 부모나 학교에서 비롯된 문명의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이 멈춘듯함니다.

사랑을 먹고 자라야할 아이가,

너는 이렇게 되어야 해!!
너는 왜 그것 밖에 안돼!!
맨날 의무만 지우고,
쉴새 없이 비교당하고,
구박만 받으니,
성장이 멈춰버린 듯합니다.

이건 제 이야기이고, 일반적인
사람의 이야기이니 오해는
마십시요!!

또 비가 오네요!!
......

자몽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제 글은 심리적 내면의 아이에 대한 상징 보다는 그 당시 베트남이 나의 어릴적 동네를 방불
하게 하여 갑작스레 시공 이동을 한 듯한 느낌을 적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은유도 일부 있네요.

<내면의 우는 아이>와 <환상을 쫓는 아이>는 심리학에서 즐겨 다루는 주제 분야로 치료 효과가
뛰어 나다고 합니다. 재미난 것은 오럴 섹스와 항문 섹스에 집착하는 어른 들 중 상당수가
<내면 아이> 때문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나도 <내면 아이> 치료를 스스로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엄청난 감정 변화와 공격성,
격렬한 반응이 증폭되어, 주위에서 보면 심한 오해를 살 여지가 많아 좀 조심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여러 명상 교주와 도판을 떠도는 불쌍한 영혼들 중 일부는 성장이 내면에서 그냥 멈추어져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떼를 써며 울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입으로는 평상심도, 영적 진화, 아스트랄계의 여행 등을 말하고 있지요.

자몽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내 문제만 해도 벅차고.......우선 나를 고치는게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나도 불쌍한 존재이지요.
 남들 봐도 좀 불쌍해 보입니다.

 불쌍해 보인다는게 냉소, 조소, 우월감은 아니고

 나도 인연 닿아 내 도움 간절히 필요한 사람을 도와 줄 뿐.

 남 인생, 남 문제, 남 자아 어쩌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저 '진짜 고민하는 게 그것 아니예요?'하고 말을 하고.............
 '아, 진짜 그러네요'하는 사람에게 제가 복용하는 약을 좀 나눠 주기는
 합니다.

 냉소와 우월은 이미 자가 치료하여 재발은 안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자몽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정성껏 답글을 달았더니 그냥 지우셨네요.

 그저 행복하시기 바랄께요.

거시기님의 댓글

profile_image 거시기 아이피 (218.♡.241.55)
작성일

저의 정체성 입니다
자기치유를 통한 참나 찾아가기입니다
자몽님의 스스로의 던지는 독백 많은 메시지에 부정 할수없군요
진정 말하지못하는 아픈 한사람이 있음에 많이 나누어 주심을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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