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저절로 살아진다의 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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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정 (210.♡.30.23) 댓글 0건 조회 8,752회 작성일 18-03-10 13:18본문
Q. 어떤 경우도 내가 인위적으로 노력을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다가오는데 로 그것을 잘 살면 살아지는 것이 아닌가요?
A. 거기에서 정말 그대로 살면 되지 않는가라고 얘길 하죠.
자! 살아진다라는 것이요, 우리가 말로 하자면 이런 겁니다.
많은 식자들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봄이 오면 꽃피고, 여름 되면 무성하고 가을되면 낙엽지고 겨울되면 쉬다가 또 다시 봄이 되면 꽃이핀다. 무엇이 문제냐, 그것을 그냥 살면 되지 않는가” 라고 말을 해요.
여기에서 대단히 미세하게 능동적인 부분이 없죠?
이렇게 되면,움직이는 주체가 없잖아요. 어쩔 수 없죠.
‘어쩌려 해도 가는 세월 막을수 없고, 어쩐다고 해도 때되면 죽을 텐데...’
여기에서 무엇이 빠진거냐면 느낌이 가지고 있는 행위,
느낌이 가지고 있는 필요가 빠져있어요.
되어지는 것은 바로 느낌의 속성을 살 때 되어지는 거에요.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은 늘 행위를 가지고 와요.
제가 이렇게 어떤 사람을 봤는데, 너무 이쁘잖아요. 그럼, 아~ 이쁘다 하면서 쓰다듬게 되고. 이렇게 뭔가 행위들이 당연히 느낌에는 행위가 따라요. 똥마렵다 똥싸러가 가고 배고프다하면 밥먹고, 이쁘다 다가가고, 밉다 거부하고. 뭐가 필요하다 그러면 움직이고, 느낌 자체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내가 배가 고프다 할 때, 밥을 먹을 때 밥을 먹으면서 노동이라고 생각을 하나요?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모양만 딱 떨어뜨려 놓고 보면 많은 노동이에요. 움직이고 팔움직이고, 그러한 절대 느낌에 대한 행위들은 내가 하는게 아니에요. 노력하는게 아니라구요. 당연히 하는 행위들이에요.
그 당연한 행위들을 할 때 살아지는 거에요. 그 당연한 행위들을 하지 않고 되어진다가 아니에요. 이 부분을 놓치고 얘기를 하는거에요.
되어진다라는 건 당연히 되어지는 거에요. 왜? 느낌이 있으면 움직여 지죠.
배가 고픈 놈이 되어진다 그러고 가만히 앉아있다는 것이 말이 안되죠.
그런데 표피적으로 그런식으로 해석들이 되어져요.
아니요. 느낌은 절대로 가만히 있질 않아요.
느낌은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생각은 머무르고 상상은 머무르는데 느낌은 절대로 머무르지 않아요.
지금 여기와 계시잖아요. 움직여집니다. 느낌은.
그래서 느낌의 속성을 살 때 그대로 되어지고 거기에서 모든 것들이 드러나고 알아지고 삶을 살게 되는 거죠. 이 부분이 누락되어있는거에요. 기가 막힌 말씀들을 하시는데.
그래서 이 차이가 뭐냐? 큰 스승들은 앉아서 사람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죠.
그리고 그런 말씀을 하죠. 마라하지 같은 스승들도.
‘이미 나는 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나는 어느곳에 가도 깨달은 자로 자기 역할을 다 하게 된다.’ 누가 아니래요. 독각불 훌륭하죠.
그런데 부처같은 사람은 다가갔다구요.
자기기 움직였다구요. 자기가 산다구요. 이 미세한 차이가 전부입니다. 이 미세한 차이가요.
그래서 이 미세한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밝혀야 되요.
느낌의 속성을 그대로 밝혀야 되요.
그것을 내가 사느냐 안 사느냐는 그 사람의 몫일지라도 사실을 밝혀야 되요. 사실을 밝혀 놓고 그다음은 각자 그것을 살것인가 안 살것인가는 그들이 몫이라. 그것을 그렇게 단순하게 정말로 단순하게 붓다필드처럼 편하게 살아라 해버리면 안되요.
그리고 되어지는 거다.사는게 아니라 살아지는 거다 라고 말을 해버리고 끝나면 안되요. 거기에서 많은 오해들이 생겨요. 살아지는 부분이 어떤 부분이 느낌의 속성인가를 드러내줘야 ‘아, 이렇게 수동적인 것이 아니구나. 능동적인 구나 조차도 아니구나. 속성이구나. 느낌은 이렇게 움직이고 사는 거구나.’ 이렇게 스스로 알아져서 정말로 내가 노력을 하는 삶이 아닌 정성을 다하는 삶으로 바뀌는거에요.
노력은 하면 안되죠. 노력은 내 부족하다라는 것만 계속 느끼게 해주니까.
정성으로 바꿔야죠. 이렇게 삶자체의 능동적으로 내가 여태까지 뭔가 노력하고 애쓰고 했던 것들이 느낌으로 살면 그저 속성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요. 우리는 여태까지 정말 기가막힌 비유가 밥을 먹을 때 그 많은 수고로움을 살았으면서도 그것을 수고롭다고 느끼지 못했잖아요.
이게 바로 느낌의 삶이에요.
필요가 움직일 때는 노동도 아니고 노력도 아니고 내가 하는 것도 아니에요. 당연한 행위들이에요. 그리고 노동도 아니에요. 필요가 움직이면 그 필요에 의해서 당연히 움직이는 거에요. 졸리면 이불 깔잖아요. 그게 노동인가?
졸리면 누가 이불깔아주기를 기다리는 게 더 어색하지 않아요? 이렇게 자연스러운 삶이라는 것은 결코 행위의 주체가 빠지는 것을 얘기하는 삶이 아니에요.
느낌의 속성을 말하는 거에요.
뭐든지 노력하고 사는 삶하고 완전히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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