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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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양헌 (211.♡.55.80) 댓글 5건 조회 8,272회 작성일 06-03-05 18:42본문
길은 가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 있는 것이다
토담님이 올려놓으신 화면을 보고
문득 나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이끌어 주었고 지금도 이끌어주고 있는
나의 길 - 어머니의 자궁 - 그 어머니를 품은 자궁... -을 생각해 본다.
가보지 않고 돌아올 수 있을까?
삶은 가는 것.
그 길은 ‘나’와 ‘나 아닌 나’의 모순과 대립 갈등과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는 땅 위의 길이다.
그 길을 가다 보니 알게 된다.
땅속 길이 있다는 것을. 땅 위의 길을 가고 있는 나를 쉬지 않고 품어주고 이끌어 주고 있었던 땅 속 기운을. 그 길이 돌아올 수 있었던 길임을.
돌아오기 위해 가는 길임을 알고 간다면
갈등과 좌절을 그리 진하게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며, 저항과 거부로 몸부림치면서 가려고 해도 가지지 않음을 그토록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러므로 보이지 않아서 설명할 수 없는 땅 속 기운-내 어머니 품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인가?
돌아오기 위해 있는 길인 줄 모르고 그렇게 갔기에
돌아 오는 길을 볼 수 있었고
돌아오니 비로소 주인되어 그냥 걸어갈 수 있게 된다.
나는 한국이란 땅에서 태어났다. 나의 부모님, 조부모님......도
땅 위를 걸어가는 나를 끊임없이 품어주고 있던 내 어머니의 자궁속 기운, 그 중 가장 강한 힘은 개인주의적이 아닌(동양의) 힘이라 여겨진다.
동양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관계성’이라 했다.
개인의 인성을 바라볼 때 그의 관계성을 파악함으로써 개인주의의 좁은 틀을 벗어난다.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에서 시작하며
‘자기가 서기 위해 남을 먼저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갖는다.
바로 개인은 여러 개인이 더불어 만들어내는 관계망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개인의 인성은 바로 개인의 사회성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기운 속에서, 이런 기운을 품은 어머니 자궁 속에서 나의 육신이 빚어지고...
땅 위로 나오니 여자와 남자에게 각기 다른 인공자궁이 덧씌워지면서(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남자에게 ‘선택당하는’(보여지는) 여자/여자를 ‘선택’(일방적으로)하는 남자,
직장에서 꽃이어야 하는 여자/ 실패란 있을 수 없는 남자 등등 여남 이분법의 땅 위 를 의혹없이 걷기 시작했다.
좌절이 있을 줄, 자기모순에 괴로워할 줄, 갈등상황에서 피눈물 만날 줄
진정 모르고.
그래서
진정 알게 되었다.
땅 위의 규범들은
내 육신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어머니의 자궁기운을 난도질 한다.
그래서 ‘남을 먼저 세울 수’ 도 없으며, ‘내식구 아닌 남을 키울 수’도 없으며, ‘관계망’이 원하는대로 되질 않아 ‘인성 고양’에도 참담해 질 수 밖에 없다. 절로 자기 분열과 좌절을 겪는다.
삶이란 모순, 대립, 갈등 과정에서 진행된다.
동양의 땅은 그런 모순 대립의 균형과 조화를 대단히 높은 가치로 삼는다.
이 균형과 조화는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의 견제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유가는 인본주의로서 오만과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는데
도가는 그 오만과 좌절을 위로하는 종교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나’와 ‘나 아닌 나’가 모순 관계에 있으면서 비로소 ‘나’로 완성될 수 있었음은 바로 이런 자궁의 기운을 이미 내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구나 감사함이다.
‘나’를 찾는 과정이 개인의 여정이긴 하나
찾고 나면 개인주의로 종착되지 않고 비로소 ‘관계성’이 살아나고 그 관계성에서 부족함 없는 풍족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내 육신이 자랐음이며
동양의 그러한 땅의 기운이 내 어머니의 자궁이었음이라.
‘내가 서기 위해 남을 먼저 세운다’?
상대방을 먼저 대접하는데 익숙한 여자로 자라온 나는 이런 거지깡깽이같은 교훈은 약자를 더욱 낮은 위치로 세뇌시키기 위한 강자들의 전략이라 치부했었다. 그토록 대접하는 내가 ‘서기’커녕은 한없이 비참하고 억울하기만 했으니.
그래도
내가 가장 중요시 하는 삶이 ‘관계성’이었고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남을 먼저 세우기’(관계성, 사회성) 위해
내안의 나 아닌 것(저항, 거부)을 세워야 했음을 알게 되다니!
‘나’로 돌아오기 전에는
‘남을 먼저 세우기’는 노예근성에 다름 아닌 행위에 불과했으며
손하나 까딱않고 요구만 하는 남편 앞에 밥상 차려 올리는 것이 더럽고 치사하고 억울하고...... 해서 온통 자기분열로 불행했었다.
‘나’로 돌아오니
내가 기쁨으로 남편을 대접하게 된다.
내가 주인이므로.
‘내가 서기 위해 남을 먼저 세운다’
참 기막힌 문구다. 타인은 빠지고 오직 ‘내가 서야 한다’가 아닌...
가부장제인 이 땅에서, 남을 배려하는 여성다운 여자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이 땅에서, 여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남자를 대접하며 온통 의지해 봤던 여자들. 그들은 그러한 삶의 여정 속에서 거지깡깽이같은 문구를 찢어버리고 자신을 찾았을 때 아! 그 자리에 ‘나’만이 아니라 남도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관계성’에 비로소 힘이 생기고 비로소 자족함을 경험한다.
이 문구가 내게 기막힌 언어로 다가오는 것은
문구대로 남을 먼저 세우게 하는-절대 그럴 수 없는- ‘배려’의 삶, ‘관계적’ 삶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그 여정에서 비로소 나의 내면을 먼저 세워야 함을 궁극적으로 알게 되어, 결국 ‘나’와 ‘타자’의 ‘관계’가 자유롭고 따뜻하게 만날 수 있음을 축약한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사람을 느낄 때 그의 자궁-‘관계성’-을 보게 되는 것같다.
깨달았다는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이유다.
타인이 빠지고 오직 ‘ 깨달은 자기만’ 있는 자들의 오만방자함을 보면
저절로 구역질이 솟구친다.
자궁을 외면한 채 ‘자기’를 찾았다 하니
이보다 더한 가관이 어디 있겠는가?싶다.
삶의 일상을 외면한 채 가르친다 하니 가관이요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삼은 채 남녀에게 해방을 주겠다니 가관이요
‘관계’의 감각도 모른 채 ‘도’를 떠들어 대니 가관이다.
많은 여자들과 자궁 가진 남자들의 감각이 나와 같지 않을까? ^^
도덕경 가족들 참 감사하다.
내가 받는 축복이 참으로 크다.
또 봄이 오고 있다.
댓글목록
나비님의 댓글
나비 아이피 (211.♡.184.159) 작성일...................
숫년님의 댓글
숫년 아이피 (211.♡.184.159) 작성일
이런 기운 속에서, 이런 기운을 품은 어머니 자궁 속에서 나의 육신이 빚어지고...
땅 위로 나오니, 여자와 남자에게 각기 다른 인공자궁이 덧씌워지면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남자에게 ‘선택당하는’(보여지는) 여자/여자를 (일방적으로)‘선택’하는 남자,
직장에서 꽃이어야 하는 여자/ 실패란 있을 수 없는 남자 등등 여남 이분법의 땅 위를
의혹없이 걷기 시작했다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남녀문제의 출발점은 여기서부터가 아닌가싶다.
아무리 어떤 것으로 화려하게 포장을 하여 모양을 바꾼다 하더라도......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문제를 안고 있음에서 모든 문제들이 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런 공기를 마시며 살아왔고, 그 공기의 맛에 길들여져 왔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리 되어져 버렸던 것이다.
인간(존재)이기 전에 여자로서, 남자로서 자신의 실체를 인식하면서부터
많은 문제가 야기되기 시작하였으니....
알고 보니 둘 다 피해자...?
존재를 모르는 여와 남이 관계를 맺는 순간.....
결국에는 둘 다 서로에게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되고 마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여 방법이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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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이 있을 줄, 자기 모순에 괴로워할 줄, 갈등 상황에서 피눈물 만날 줄 진정 모르고.
그래서 진정 알게 되었다.
자웅동체님의 댓글
자웅동체 아이피 (211.♡.184.159) 작성일
이땅의 남자들이여, 잘난채하지 마라!
이땅의 여자들이여, 주눅들지 마라!!!
'잘남'도 '주눅'도 다 다른 모양의 똥닦은 휴지일뿐!!!
암년이 숫년되기 위한, 숫놈이 암놈되기 위해 지닐 수밖에 없었던 것인 것을!!!!!!!!!
이땅의 남자들이여, 잘난채하라!
이땅의 여자들이여, 주눅들어라!!!
암년이 숫년되기 위해, 숫놈이 암놈되기 위해~~~
아줌마1님의 댓글
아줌마1 아이피 (59.♡.149.146) 작성일
윤양헌 선생님. 오랫만에 인사드립니다.
동생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많이 감사했어요.
이렇게라도 감사인사드리게 되어 다행입니다.
내가 서면 절로 남을 세우게 되어지데요.
내가 서지 못하면 이런 저런 몸짓만 요란스럽지
나 괴롭고 남 괴롭히고...
첨 나를 보았을때 너무 지독한 추물이라 경악스럽고 절망스러웠어요. 많이 많이...
그런 나를 받아들이면서부터 서서히 편안해지기 시작하고
괘씸하기 짝이 없던 남들도 조금씩 이해되면서
또다른 모습의 아픈 나로 보여지기 시작하데요.
윤양헌님의 댓글
윤양헌 아이피 (218.♡.243.231) 작성일
반가워요 정희씨
동생님에게 잘해 드린 거 없는데...
바로 저희 동네로 이사 오셨더라구요?
늘 본 듯 착각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동생분이라 느꼈어요
동생집 놀러 오시면 꼭 연락주세요
함께 만나 맛있게 비벼봐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