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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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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봉식이할매 (175.♡.214.244) 댓글 8건 조회 8,110회 작성일 15-01-27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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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군복

사람이라면 당연히 '아픔'을 좋아하지 않는다.
종교를 믿는다 해도 다를 것이 없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주여! 나에게 아픔을 내리지 말아 주세요!"라고 기도할 것이고,
절에 다니면 "부처님 제발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빌 것이다.
나 역시 보통사람들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던 나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아픔에 대한 정의는
"당장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물건"이었다.

그런 나에게 아픔이 찾아온 건 고등학교 3학년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하루 중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는 아주 따분한 생활의 연속인 고3 시절.
무더운 여름 선풍기 바람도 들어오지 않는 교실에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 땀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나의 엉덩이에 통증이 "똑똑"하며 노크를 한다.
바늘 찌르는 듯한 통증에 한참을 당황했다.
하지만 고3이라는 현실이 눈앞에서 일렁거린다.
아플 시간에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 하는 시기였기에, 아픔은 잠시 무시한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잘한 건 결코 아니다.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가?"
그렇게 난 가벼운 문제로 인식했고 그렇게 통증을 키우게 된다.
꾸준히 아프기보단 오전에 아프면 오후에는 사라졌다.
말 그대로 증상은 오락가락했고 그래서 난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여름 내내 흘린 땀에 더위가 녹아내려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 통증의 세기 또한 달라졌다.
바늘로 찌르는 아픔에 손으로 벽을 붙잡지 않고서는 도저히 걷기 힘들었다.
아픈 사실을 부모님에게 말하게 되고 집 근처 유명한 정형외과 병원을 찾아가게 된다.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건물, 병원 특유의 냄새가 진동했다.
조금 오래된 건물 이미 복도엔 환자들이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으려 복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 의사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게 된다.
선생님은 통증에 대한 증상을 간단히 물어본 뒤 간호사를 따라가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라 지시한다.
간호사 누나를 따라 방사선과로 갔고
방사선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는 기계 앞에 바지를 홀라당 벗고 누워 사진을 찍고선 결과를 기다렸다.
꼬추가 보이는 엑스레이 사진을 유심히 본 의사 선생님은 '골다공증'이라며 큰 문제가 아니니 안심하라고 했다.
의사인 자신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휘갈겨 쓴 차트를 간호사에게 넘기며 이름 모를 약을 처방하라고 지시한다.
난 순진하게 의사의 말을 믿엇고 부모님 또한 전문가의 말을 믿는다.
그렇게 병원에서 처방한 약봉지를 손에 들고선 신이 나게 흔들며 집으로 걸어간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바보스러울 만치 어리석었다.
아프면 아픈 이유가 있거늘 의사의 말만 믿고는 통증의 신호를 무시한 점이다.
남들보다 공부를 잘해 의대에 갔고, 돈이 많아 개인건물에 병원을 차린 흰가운이 아주잘 어울리는 의사가 처방해준 이름 모를 약은 다름 아닌 '진통제'이다.
'진통제' 마치 병이 낮는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신비의 약 말이다.
1990년대 의사들은 처방된 약을 환자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사실은 '진통제'라는 약의 이름을 숨긴 것이다.
최근 들어서 전문가의 조언이 많은 잘못을 일으키자 '전문가의 말을 믿지 마라.'는 책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 실천이 낫다'는 고사성어와 같이 저 아이는 현실에서 몸소 체험하게 된 것이다.
통증은 문제를 인식시키는 '사실'인 반면 전문가의 정직하지 못한 '거짓'말은 사실을 외면하게 한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1학년까지만 해도 특별한 통증은 찾아오지 않았다.
통증이 찾아오지 않은 것보다 아픈 것을 문제라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더욱 병을 키우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려 대한민국 남자라면 언젠가는 가야 할 군대를 지원하게 되는데,
군생활은 몸속에 잠복해 있던 병이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이기도 하다.

저 실수투성이 불쌍한 녀석은 지가 병에 걸려있는지도 모른 체 해군을 지원해간다.
초등학교 때부터 끊임없이 주입된 교육 덕분에 이타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다.
"난 공산당이 싫어요.!" 와 같은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를 가야 한다." 이 말을 찰떡같이 믿고 있었다.
아프면 열외라는 사실은 망각한 체 신체검사에서 2등급을 받았기에 해군을 지원해서 간다.
아픈 놈이 2등급 받아서 놀랬을 것이다. 
1990년대 신체검사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 애매한 병은 찾아내지 못한다.
시대적 상황만 봐도 신체검사와 관련된 병무청 비리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이지 않았을까?
차라리 외국산 소고기를 한우라 속이고 판매하는 쪽이 더 신빙성 있어 보인다.

진해 해군 교육대에 입소해 7일쯤 지나 "이제는 훈련에 적응했다." 생각이 들때쯤 오른쪽 골반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만약을 대비해 약국에서 지어온 진통제는 전부 다 압수당해 아파도 약을 먹을 수 없었다.
훈련 중 통증을 참기 힘들어 울먹이며 훈련교관에게 압수했던 약을 돌려달라 부탁해보았지만,
"안된다."는 매정한 소리만 돌아올 뿐이었다.
아픈 다리를 끌고 훈련장 여기저기를 다녔고 심지어 행동이 굼뜨다며 교관의 지휘 몽둥이로 등짝을 뚜드려 맞기도 했다.
그런 힘겨운 생활 속에서 난 서서히 지쳐 갔다.
맛없기로 소문이 자자한 훈련소 짬밥을 맛있게 먹는 동료들과는 달리 난 몇 숟가락 먹지도 못했다.

늘 먹는 자리 맞은편 엔 커다란 거울이 있었고 그 거울은 언제나 나를 슬프게 비쳐줄 뿐이었다.

그렇게 슬픔에 취해 앉아 있는 나를 돌아볼 때가 많아졌다.
그때가 아마 훈련소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상에 만약 지옥이 있다면 아마 바로 여기가 지옥이지 않았을까?

삶이 기가 막힌 건 지옥 같은 곳에서도 희망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다고,
그렇게 밉기만 하던 교관들도 사람이기에 나에게 편의를 봐주기 시작한다.
아주 힘든 훈련은 열외를 시켜 주었고 그렇게 하루하루 힘겹게 훈련소 생활을 해나갔다.
아무리 편의를 봐준다고 해도 훈련 점수가 모자라면 점수 미달로 탈락한다.
탈락하면, 처음부터 다시 4주간의 훈련을 받아야 하고 특히 군번이 낮은 후임과 같이 지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탈락만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고 꿈속에서도 다짐했다.
그렇게 아픔은 조금씩 쌓여서 참기 힘든 만큼의 통증이 몰려오던 절체절명의 시기에 '전투 수영'이라는 특별한 훈련을 받게 되는데,
놀랍게도 나를 괴롭히던 통증은 수영 훈련만 받고 나면 며칠 간사라지는 판타스틱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나는 기뻤다.
훈련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받지 않아도 됐었고
통증을 사라지게 해준 수영훈련은 마치 신이 선물해준 행운이라 믿게 된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수영 훈련으로 말미암아 통증의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훈련 중 가장 어려운 관문인 '유격훈련'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다.

훈련소 통과가 행복한 결말이냐고? 당연코 "아니다!"
순진하고 이타적이며 통증을 무시한 채 군대에 지원해간 바보 멍청이.!
어설픈 바느질로 계급장을 수놓은 저 아이가 겪게 될 아픔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결과적으로 행운이라 믿었던 통증 완화는 오히려 병을 키우게 되는 전초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만약, 수영이 훈련에 포함돼 있지 않은 육군이나 공군에 지원해 갔다면 의가사 제대라는 명예를 받을 수도 있었다.
의가사 제대가 안 된다 해도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으면 병명을 알 수 있어 입대 면제를 받았을 것이다.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통증!
이름 모를 병과 함께한 2년간의 군대 생활.

기쁨보다는 아픔이 많은 고통으로 얼룩진 군복을 입게 된다.

댓글목록

바다海님의 댓글

바다海 아이피 (112.♡.76.8) 작성일

봉식이 할매 라고 해서 여자분 인줄 알았는데...씩씩한 대한민국 남자 셨군요~~!

봉식이할매님의 댓글의 댓글

봉식이할매 아이피 (175.♡.214.244) 작성일

아이디 때문에 종종 오해를 많이 받습니다.

저도 남자이기에 여인이 더 좋습니다.
할매가 아이를 사랑스럽게 보듬어 주듯 살결 보드라운 여인을 보듬어 주고 싶습니다.
아쉽게도 그 많은 여인들 중 같이 손 잡고 걸어갈 임자를 아직 못 만났습니다.
내 님은 어디 있을까요? ㅎㅎ

햇살님의 댓글

햇살 아이피 (175.♡.55.224) 작성일

그 이름모를 통증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님에겐 '아픔을 즐겨라'라는 말 자체도 아픔이
될 수 있겠어요.
혼자 감내한다는 것만큼 슬퍼고 괴로운일도
없을텐데.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무도 알아 주는 이없이 그 힘듦을 겪어내선
봉식이할매님이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봉식이할매님의 댓글의 댓글

봉식이할매 아이피 (175.♡.214.244) 작성일

아픔을 즐기면 변태가 됩니다. ㅎㅎ
농담이고요.

김기태 선생님 가르침 덕분에
이젠 아픔을 벗 삼아 지내고 있습니다.

김기태님의 댓글

김기태 아이피 (125.♡.71.137) 작성일

'괄목상대(刮目相對)'라더니, 글 솜씨가 정말 많이 좋아졌네요!
감동 한 자락 크게 안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봉식이할매님의 댓글의 댓글

봉식이할매 아이피 (175.♡.214.244) 작성일

김기태 선생님께 직접 칭찬 받으니 은근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글 쓰기랑 관계없는 공과대학을 나와 글 쓰기 한다는 것 부터가 오르기 힘든 산을 택한 꼴이니까요.

그런 나를 너무 잘 알기에 아주 조금씩 목표를 세우고 올라갈려구요.

책을 열심히 읽으며 틈틈히 글 쓰는 연습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두려움 속에서 열심히 떨어봤기에 이젠 두려움을 대한 내성이 생겼다고 할까요?
두려움에 대처하는 자세는 조금 알꺼 같습니다.

"배째라!"를 외치며 한발씩 딛고 올라가면 언젠가는 도착하지 않을까요?

바다海님의 댓글의 댓글

바다海 아이피 (112.♡.76.8) 작성일

베째라!  쵝오지요

루시오님의 댓글

루시오 아이피 (210.♡.226.237) 작성일

기쁨보다는 아픔이 많은 고통으로 얼룩진 군복을 입게 된다.
=뭔가 시작이 된다는 암시랄까요? 웅장함의 감동을 받았어요 형.ㅎㅎ
멋있습니다!^^

저도 잠깐 지나가던 연이었지만...특전사 훈련소에서 끊어질 것 같은 발목을 이끌고
계속 굴려지던 때가 잠시 스쳐지나가네요.ㅋㅋ 만일 그 때, 계속 남았다면....이런 생각도 드네요.ㅋ
다음에 또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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