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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을 '업연'을 위하여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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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 (59.♡.72.150) 댓글 3건 조회 7,269회 작성일 06-05-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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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을 '업연'을 위하여

이계삼



먹다가 남긴 밥은, 저승 가서 염라대왕 앞에서 다 주워 먹어야 한단다.”
어렸을 적, 밥상머리에서 어머니는 이렇게 이르시곤 하였다. 그것은 참
곤란한 요구였지만, 내가 무슨 힘이 있나, 염라대왕 운운하는 그 서슬에
눌려 억지로 밥그릇을 비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고마운 가르침이었다. 어머니의 말씀은 제 몫의 밥은
고맙게 다 비우는 게 사람의 도리라는 평범한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어렴풋하게나마 엄중한 깨달음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한 존재가 살아서 일군 모든 업연(業緣)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
불교적 형이상학이랄까, 책임의 윤리랄까. 내가 커가면서 배운 게 그러했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것, 세상은 바늘끝만큼의 오차도 없는 인과의 법칙으로
흘러간다는 것,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새만금, 대추리, 천성산 그 살생의 ‘업연’-

새만금 갯벌의 마지막 숨통이 끊어졌다. 대법원 판결이 떨어지던 순간,
대한민국은 WBC 한일전에 숨죽이고 있었고, 좀 이어 이종범의 적시타가 터지자
온 나라가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고 한달 뒤 새만금 갯벌을 찍은 사진들을
본다. 생명의 갯벌이 한 달만에 죽음의 시궁창이 되었다!

여의도 140배가 된다는 거기에 남산 백몇십개를 깔아 묻고, 산업단지건,
관광단지건, 무언가를 만들었다치자. 그래서 갯벌의 흔적은 찾을 수도 없이
미끈덩한 땅덩이가 새로 탄생했다치자. 그래도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

그 어마어마한 살생을, 이유도 목적도 잘 모르면서, 하던 일이니 계속하고
보자며 냉큼 숨통부터 끊었다는 것, 그 순간 폭죽 터뜨리고 만세 부르며
인간들은 염치도 없이 기뻐했고, 함부로 저지르면서도 두려운 줄을
몰랐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저 헤아릴 수 없는
살생의 업연은 누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5월 4일 신새벽, 대추분교에 1만5천의 경찰이 새카맣게 들이닥쳤다. 5월 5일
어린이날, 폐허의 대추분교에서 나는 보았다. 학교를 지키던 아름드리 거목들이
수도 없이 분질러지고, 뿌리까지 뽑혀 나뒹굴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둡도록
뛰놀았을 운동장은 포클레인 삽날이 엉망진창의 가르마를 내놓았고, 시소도
철봉도 그네도 시멘트 밑동까지 뽑힌 채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었다. 마을을
지키던 ‘백만장자’(국방부 장관님의 표현) 노인들의 얼굴은 메말라 앙상했다.
고향을 뿌리 뽑고, 추억과 동심을 분탕질한 그 자리에 다시 터를 닦아 마침내
이방의 군대에 갖다 바칠 285만평의 땅, 거기에서 또 얼마나 거대한
살생의 업연은 만들어질 것인가.

이제 5월말경, 천성산 관련 대법원 판결이 떨어진다. 이제 천성산 차례다.
한 비구니가 목숨처럼 섬겼던 산, 거기 깃든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다섯
번이나 제 육신을 죽음 직전까지 갖다놓았던 전대미문의 투쟁은 이제
대법관들의 판결문 몇 장으로 운명이 갈린다.

새만금, 대추리, 그리고 천성산. 이들을 마음에 담은 지 몇 년이 흘렀다.
이제 나는 알겠다. 이 땅은 크고 작은 새만금, 대추리, 천성산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점점 미쳐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살생의 업연은 또한
넘쳐난다. 이제는 아득하고, 생각하기에도 질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미 국방성 펜타곤에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다. 펜타곤이 뿜어내는
살육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고자 그들은 어느 방에 모여 간절하게
기도한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에게 다가온 서늘하고도 깊은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새만금 판결 전날, 대법원 앞에서 촛불을 켜고 밤새 엎드려 기도하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천성산을 위해 기도한다. 대법원 판사님들의 현명한
판단을 위해, 지금도 그 산천 옆구리를 굴착하는 파괴의 굉음에 떨고 있을
생명들을 위해 기도한다. 대추리 도두리 어르신들의 가난한 소망을 위해,
크고 작은 새만금, 대추리, 천성산으로 가득 찬 이 땅을 위해 기도한다.

내 아이들, 내 손주들, 자손만대에까지 미칠 그 살생의 업연을 풀기 위해,
이 질식할 것 같은 맹목과 후안무치의 공기 속에서 숨통이라도 좀 틔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엎드려 기도하는 것, 이것밖에 없다. (한겨레21)

댓글목록

무진님의 댓글

무진 아이피 (220.♡.87.168) 작성일

퍼온 글이니, 답변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 분 말씀처럼 살생의 업연이 있고,
그것이 바늘끝 만큼의 오차도 없이
인과의 법칙으로 흘러가는 것이라면,
엎드려 기도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닙니까?
뭐하러 엎드려 기도할까요.

새만금 대법원 판결이 나던 날, 온나라가 야구보면서
폴짝폴짝 뛰었다고 하시는데,
온 국민이 어떻게 하고 있었으면, 속이 시원하실래나요.


전대미문의 투쟁이 대법원 판결문 몇장으로
결론이 난다고 개탄하고 있는데,
그 '전대미문의 투쟁'을 일러 다른 사람들이
플랜카드 몇장이라고 표현하면 기분이 어떠신지요.

살생의 업연,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선생님 하시는 일이나 그냥 잘 하시라고
여쭙고 싶네요.

anan님의 댓글

anan 아이피 (211.♡.95.181) 작성일

무진님,
지당하신 소견이기도 합니다.
하오나, 너무 가벼이 생각한 것은 아니신지....
그리 간단하게 참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는군요.

인디고님의 댓글

인디고 아이피 (211.♡.184.159) 작성일

무진님은 세상사의 어떤 일들에 관심을 갖고 계신지요?
님은 살아가면서 진정 바라는 것이 없으신지요?
하시는 일 그냥 잘 하시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요?
위의 글쓴 님이 하시는 일과 무진님이 하시는 일(?)이 진정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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