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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8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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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영 (59.♡.241.228) 댓글 2건 조회 7,116회 작성일 06-05-2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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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술이 덜 깼다.
때로는 이런 오락가락하는 상태에서 묻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지금처럼.
작년 12월28일날...그날 나는 삶이 끝났다. 그러니까 나의 기쁨,슬픔,절망,기대,욕심,망상,두려움등등이 정말 나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것을 Redhill의 어느 나무 아래서 알게 되는 순간의 기이함이랄까 ..음 암튼 혼자 삽질을 멈추게 되는 순간 그동안 쌓였던 피로함을 느끼면서 이틀동안 계속 잠을 잤었다.
작년 28일 1년넘게 끌어왔던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믿었던 그래서 모든 것을 걸었던 그친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렸던 남자친구를 찾아서 호주로 갔었다.그날 내가 살았던 아파트에 (내가 떠난후 그 친구가 거기에 살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굴러다니는 여자 속옷들..그리고 테이블위에 있는 일본여자애와 껴안고 웃고 있는 내 남자친구의 사진.사진속의 그 장소는 내가 그렇게 함께 가고 싶어했던 거기였다.
둘이서 4개월반을 거기에서 살았다고 했다.참으로 우습게도 내가 호주 도착한 날이 유꼬가 일본으로 떠난 그날 이었다.더더욱 우스운 사실은 시간대도 비슷해서 내가 브리즈번 공항 1층에서 입국절차를 하느라 줄을 서있는 동안에 그 둘은 2층에서 출국 심사대 앞에서 줄을 서서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2년전에 내가 떠날때 우리 둘이 손을 잡고 울었던 그 면세점 앞에서...셋다 누가 오고 가는지 서로의 일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물론 애실리는 말했다.그녀는 쉐어메이트였을 뿐이라고...한번도 사랑 한 적은 없었다고.단지 돈이 무지 많아서 돈 쓰는걸 도와줬을 뿐이라고. 그래 나도 보았다.그녀가 흘리고 간 은행 내역서에는 한국돈으로 2천5백만원을 가지고 호주로 6개월 어학연수하러 왔었다는 거.그리고 지지리 못생기고 영어도 하나도 못하는 전형적인 일본 폭탄이었다는 걸.
그래도 숨이 막혔다.그둘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그애에 대한 나의 지겨웠던 집착때문에.그래서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은데 애실리가 울기 시작했다.미친듯이.그리고 오히려 나에게 소리쳤다.왜 이제야왔느냐고...너무너무 기다리다가 내가 한국에서 선봤다는 소식에 절망해서 약을 먹었었는데 3일동안 잠만 자다가 일어나보니 밀린 방세며 세금,,그리고 현실은 너무 힘겨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욕실로 도망을 갔다.잠시라도 그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욕실 문을 잠그고 문에 기대 서 있는데 세탁기와 세면대사이의 작은 틈에서 뭔가 반짝이는게 있었다.
콘돔껍질...둘이 여기서 했구나.쪼그리고 앉아서 한 참을 들여다 보았다.나는 잠깐 생각을 했었다.이 작은 콘돔껍질이 나에게 어떤 결론을 줄 것인가에 대하여.(내가 준 돈으로 샀음이 분명한 그 콘돔을 내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그리고 알았다.나는 호주에 애실리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이 콘돔껍질을 보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잠시 웃었다.내가 치른 비싼 댓가를 생각하면서.환상속의 그대는 이번에는 나였다.애실리가 욕실 문을 마구 두드리다가 거의 부수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말했다. You won !
그러나 어이없게도 욕실 앞의 애실리는 반지를 들고 서 있었다.1년넘게 간직했던 때문은 반지 케이스를 왼손에 잡고. 나는 두번째로 웃었다.이번에는 애실리가 환상속의 그대였다.그 반지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고 나는 여기까지라고 말하고 40도넘는 땡볕을 걸어서 집으로 걸어왔다.집으로 걸어 오면서 나는 비참해질 준비를 했다.나의 오만과 환상과 집착이 보기 좋게 박살나는 순간 이었다....그리고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한 끔찍한 공포가 밀려올 차례였다.분노,원망,허탈은 당연하고.
그런데 참으로 참으로 기이하게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차마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집앞에 있는 몇백년된 고목 앞에 서 있는데 강물같은 평화가 밀려왔다.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다.끝.
Special thanks to Ashley...

댓글목록

이디아님의 댓글

이디아 아이피 (211.♡.105.20) 작성일

오!  그대  아름 다운  생의  구름  한조각이여 !
  이미  전쟁과  평화의  그림 이어라

Gott님의 댓글

Gott 아이피 (220.♡.190.122) 작성일

내가 쓰고 내가 읽는 일기이지만 일기는 말하는 자와 쓰는자가 별도의 존재로 등장한다.
나의 이야기가 내게 소설로 다가올때면, 나는 나의 진실이 관객을 위하여 각색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결국 진실을 말하지만 결국 하나의 소설이 될수 밖에 없음을 나는 안다.
그렇다고 거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또한 아니다.
도도한 역사또한 한편의 사기극인데, 한편의 일기야 아무렴 어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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