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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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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봉식이할매 (175.♡.214.244) 댓글 2건 조회 8,122회 작성일 15-03-17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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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월 14일 토요일 고등학교 친구 현수의 결혼식에 갔다.

예식장은 부산 사상터미널 바로 옆이었다.

특히 사상터미널은 대학교 시절 통학하면서 수도 없이 다녔던 곳이라 쉽게 찾을 줄 알았다.

난 그렇게 어색한 양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마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사상터미널에 내려 건물 밖으로 나왔다.

기억과 전혀 다른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곳은 예전 추억의 그 공간이 이제는 아니었다.

그 덕분에 한참을 헤맸다. 청첩장의 약도를 수시로 확인해 보지만 도통 현실 속에서 적용하기 힘들다.

신경을 날카롭게 쓴 덕분에 배까지 아파져 와 더욱 조바심이 차오른다.

일단 예식장은 포기하고 생리현상부터 처리하기 위해 지하철의 화장실을 선택했다.

주변 패스트푸드 점도 참 많은데 왜 지하철을 선택했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끝을 알수 없는 기다란 곤충의 배속으로 걸어서 들어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두리번거렸다. 화장실도 보이지 않는다. 환장할 노릇이다.

이마엔 땀이 삐질삐질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왜 부산에 왔는지 그리고 왜 지하로 내려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친구의 결혼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떠난 지 오래다.

무작정 안으로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똥꼬는 터지기 직전이고 화장실을 알리는 표지판은 나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한참을 걸어서 들어가서야 저 멀리 화장실 표지가 보인다.

다행이다 저기구나 싶었다. 가까이가 눈으로 확인했다. 화장실 앞쪽으로 200M.

"이런 된장" 엉덩이를 곧추세우고 힘을 주어 뒤뚱뒤뚱 걷기 시작한다.

엉덩이 안쪽에서 막 흘러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걷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한다.

시간은 엉덩이를 주시하며 최대한 천천히 흐른다. 흘러넘치지 않게 조용히.

화장실의 남은 거리를 알리는 표지판 180M, 160M, 100M 더욱 염장을 지른다…….

100M 표지판 다음부터 머리가 하얘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해결은 한 모양이다.

그나마 팬티에 묻지 않은 거 같아 다행이다.

색이 누렇게 바랜 팬티를 입고 친구 결혼식에 갈 뻔했다. 생각만 해도 "어이구" 끔찍하다.


2

헤매고 해맨 끝에 겨우 시간 맞춰 예식장에 도착했다.

나는 사람이 북 적 되는 곳을 가보지 않았다.

별로 경험해 보지 못한 장소에서의 어색함은 나를 투명인간으로 만든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버린 예식장은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채워져 있다.

환한 조명이 비치는 예식장은 조금씩 회색빛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주위의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음은 내가 투명해지는 속도를 더욱 부채질한다.

그런 사라지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친구를 찾아 나섰다. 아니 반대로 나를 찾기 위해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곤 나에 대한 존재를 기억하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나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부터 이십 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 녀석들은 잃어가고 있는 나를 하나씩 채워준다.

그들과 악수하며 부 등 껴 안은 덕분에 예식장이 환하게 밝아졌고 나는 조금씩 빛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독신자를 주창하며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외치던 녀석이 제일 빨리 결혼했고

고등학교 시절 연애에 눈을 뜨고 열심히 짝꿍 찾는 놀이를 하던 녀석들은 미혼이다.

결혼해서 벌써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한 녀석부터 오래전에 결혼했지만, 아직 아이 소식이 없는 애들부터.

그런 평범한 장소에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 참석한다는 것 그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녀석들은 나의 특별한 외모를 거침없이 말을 하곤 한다.

"니 허리가 왜 그리 꾸부정하노?" , "얼굴은 또 왜 그리 늙었노?" 등등…….

아픈 사람은 아마도 저런 소리 듣기 싫어서 참석 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노처녀가 친척들 많이 모이는 행사에 불참하는 것처럼.

난 다행히 그런 수준의 단계를 넘어섰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랑 늦게까지 같이 보냈다.

술과 음식 그리고 이야기를 꽃피우며 놀았다. 그리고 나의 아픔도 숨기지 않고 이야기했다.

아픔을 감추면 감출수록 고통은 배가된다.

아픔은 숨길수록 주변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썩은 사과 하나가, 그 옆의 사과도 썩게 하듯이.

그러니 아씨리 그냥 내가 먼저 이야기하는 편이 좋다.

그럼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을 썩게 하는 사과가 아니라 관심의 대상으로 변하게 된다.

썩은 게 더는 문제가 되지 않기에 주변을 오염 시키지도 않는다. 이래서 아픔은 퍼트려야 된다.

불편함을 풀기 위해 오히려 내가 먼저 아픔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니. 친구들은 처음에는 어안이벙벙했다.

다들 눈동자가 동그래지고 입은 다물지 못해 마시던 술이 도로 흘러내렸다.

그중에 "니 허리가 왜 그리 꾸부정하노?"란 농담을 날렸던 친구는 미안해하는 눈빛으로

나의 이야기를 숨소리도 내지 않고 듣는다.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나는 멋진 포즈를 잡고 "친구야 괜찮다, 그러니 친구 아니가!" 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쑥스러워서 하지는 못했다. 난 잘난 체 하는 꼴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한다. 그게 나니까.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만남은 한마디로 "배리 굿~~~!" 이었다. 친구들도 다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하나둘씩 입을 모아 '계'를 만들자고 노래를 부른다. 다들 친구가 그리웠나 보다.

댓글목록

햇살님의 댓글

햇살 아이피 (175.♡.55.224) 작성일

친구분들도 잘 만나고 오셨네요^^
예전 친구들을 만나면, 바로 예전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 느껴져 정겹고 기뻐져요.
결혼식장까지 가는데 흑역사를 쓸뻔한 위험을 잘 모면하신 건 다행입니다. ㅎㅎ
부산이 참 많이 바뀌더라고요. 갈 때마다 변화된 모습을 보면요.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모임 때 뵈어요~~^^

짬뽕님의 댓글

짬뽕 아이피 (61.♡.196.211) 작성일

그냥 마음이 놓이는 건 뭘까요? ㅋㅋㅋ
잠시 저도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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