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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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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봉식이할매 (14.♡.227.32) 댓글 0건 조회 770회 작성일 24-06-19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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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도 마음은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다. '아니, 방에만(직업 x, 돈 x, 친구 x, 건강 x) 있는데, 왜 이런 거지' 현실과 마음 둘 사이 전혀 일치되지 않는 괴리감이었다. 하다 하다 이젠 정신까지 나갈 모양이다. 수많은 x가 붙어 있는 목록에 정신도 포함시킬 참이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행복 근처도 있지 않은 내가 왜 이런 묘한 감정에 휩싸이는 건지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건 미친 게 맞아." 인터넷으로 정신병원을 검색해 봤다. 진짜 찾아가 볼까 살짝 고민도 했지만, 통장에 몇십만 원 밖에 없는 터라, 정신과 상담비가 아까웠다. 혹시나 '행복해야 할 것이라곤 1도 없는데, 마음이 평온합니다. 그래서 내가 미친 거 같아요' 이딴 고민 상담에 의료보험이 적용된다면 당장 찾아갔을 거다.

 히키코모리 10년 차 면 일단 물어볼 친구도 없고 가족 간의 대화도 거의 안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혼자 이런 생각 저런 오만가지 생각을 해봤다. 그러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물어봤다. '너 변한 거 맞아?' ..... '응, 나 변한 거 맞다' ....... 변했다라...... 나는 기본적으로 누구를 잘 믿지 않는다 그게 내 마음일지라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던가. 내 마음을 믿을 바에 정치인의 선거공약을 믿겠다. 나는 확인이 필요했다. 변했다고 하는데, 진짜인지 아니면 말뿐인지. 나는 그 희생양으로 담배를 선택했다. 담배는 늘 새해 목표, 삶의 방향, 그리고 의지를 다 잡을 때 늘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냥 버려지는 것도 아니고 가위로 싹둑싹둑 무참히 토막 난 채로 버려진다. 담배가 무슨 죄가 있나, 담배 피우는 놈 잘못이지 담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렇게 불쌍한 담배를 지금(10년)까지 피우지 않고 있다.

 30대 중반까지 살면서 한 번도 마음을 궁금해본 적도 없고 마음속의 나와 대화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 근데, 지금 나는 마음속 나와 대화를 하고 있지 않는가. 네이버 형님한테 '마음'을 물어봤다. 그렇게 시작된 '마음' 찾기 여행은 강원도 치악산 도사님을 만나게 되고 그분의 소개로 김기태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선생님을 만나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의 마음에 대해 배우게 되고 나 또한 다른 여러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니 너무 많은 생각들이 밀려왔고 만나는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느 날처럼 김기태 선생님의 산청 모임으로 가는 차 속에서 옆 사람을 붙잡고 몇 시간이고 책 이야기를 기관총처럼 쏳아냈다. 그렇게 옆자리에서 한참을 듣고 있으시더니 한마디 하시더라. "상우 씨, 책 모임 나가봐야겠다." 책 모임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왕 사람을 괴롭히려면 제대로 해야지 싶었다. 괴롭힘 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책 모임은 나에겐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곳이었다. 그렇게 쌓아둔 생각들을 모조리 쏳아낼 기세로 책 모임에 찾아갔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지 않던가. 책 모임에서 뜻밖에 철천지원수를 만나버렸다. 학창 시절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글쓰기 말이다. 책 모임에 참석하면 강제성은 없지만 모임 후기를 써야 했고 본인이 열심히 책을 읽었다면 사실을 글로 남겨야 했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자신이 책 모임을 열기 위한 조건 중 하나는 바로 모임 후기를 써야 한다는 거다. 여기선 선생님의 벌이나 꾸지람 수준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는 모임을 나가야 하고 내가 책 모임을 열고 싶으면 글을 써야 했다. 이번엔 피하거나 도망갈 수 없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른 체 글을 쓰려고 하니 제대로 된 글이 나올까? 아니올시다. 그때 내가 썼던 모임 후기, 독후감을 읽어보면 정말로 끔찍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걸 전부다 글로 옮겨 쓰려니 무슨 내용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 딱 그 수준의 글이었다. 그래서 나는 찾아야 했다 글쓰기 선생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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