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돌아가기>-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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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나는이 (203.♡.145.114) 댓글 13건 조회 7,492회 작성일 06-08-23 11:23본문
이러한 내용은 책에도 많이 소개되어있고 또 깨달았다고 대접받는 분들도 그런얘길 많이 해왔기에 사람들은 그런줄로만 압니다. 저도 옛날에 공부할땐 그런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나를 부정하고 이렇게 화내고 속상해하며 짜증도내고 심심해도 하는 중생인 <나>란 존재를 어떻게 해야 넘어서서 저 고상하고 순수하며 항상 지복으로 가득찬 거룩한 경지에 들어갈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이 난제를 붙들고 그해결을 위하여 수많은 밤을 정진하며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누가 그 고민하는 <나>자신을 마음속에서 한번 죽여보라고 하길래 <그것참 일리있다>하는 생각으로 숱하게 죽이는 연습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그렇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나자신을 죽이는 그짓을 하는 그놈은 바로 내가 해탈하여 더잘되어보고자하는 욕심을 가진 또다른 <나> 즉,또하나의 <내생각>이었음을 어느날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그차원에서 한번더 벗어나서 그 생각일체를 모두 밑에서 받치고 있는 토대가 되는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의식이란 현상조차도 나오고 돌아가는 3차원이아닌 異次元의 자리였고 그것이 우리가 이렇게 사는 3차원이란 세계를 마치 환영처럼 혹은 영화화면 처럼 만들어내고 또 지탱하고 있는 <만법귀일>의 근본자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초월의 자리이므로 우리감각으론 다다를수 없는 <끊어진 자리>였지만 또한 동시에 그자리는 일체의 형상이없기에 그자리를 인식하려는 내 순수의식만이 충만하게 독존하는 妙有의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름대로 거듭 깨어난 그상태에서 과거의 저 자신을 있던그대로 바라다보니 과거의 번뇌망상속에 깊이 빠져 온갖사연을 안고 살던 나 자신은 이미 <있는 그대로>완전한 존재였던 것이었습니다.
다만 과거와 지금의 차이는 나의 존재의 중심이 과거엔 내마음의 온갖사연속에 푹 빠져있었던 것이었고 지금의 나는 존재의 중심이 <나>조차도 없는 그무한한 크기의 새로운 차원적 존재(새로운 나?)그자체로 이동되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차원으로 이동된 나는 항상 고요함과 따스한 평화속에 無爲 그자체로서, <전체>로서 不動者가되어 묵연히 있는 동시에 또한 그안에서 가금씩 안개처럼 아스라하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내마음의 온갖현상을 구경하고 바라다보는 관조자가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대 제가 깨달은 것은 이세상이 이미 완전하게 창조되었고 기막히게 운영되어오고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업습이 우리를 깨달음에 다다르지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여기고 있지만 진리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이미 제가 가진 제나름대로의 업습이란 창조의 수단에 의해 자기를 그렇게 그런존재로 표현하고 나타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아아!
세상은 이미 완전하였으며 내가 알고 배웠던 모든 깨달음에 대한 지식과 견해들은 몽땅 지워버리고 내다버려야만할 쓰레기나 다름없었습니다. 세상은 이미 구원되어있었고 이미 천국그자체였으며 이미 하나님, 삼라만상은 있는그대로가 부처님의 지극하신 사랑의 몸동작이자 섬세한 표현 그자체였습니다.
제가 제안에서 사라지고 그대신 세상전체가 그대로 다 내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저는 수많은 육체에 우주에서 나오는 근원의식을 싣고있었습니다. 저는 우리들이 말하던 선악이 우리들이 자신을 개체의 몸덩어리로 보면서 시작된 하나의 후천적인 모럴이요, 질서체계임을 알았습니다. 전체가 하나인 그자리에서는 그런 선악시비가 다 무너져버리고 사라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내안에선 다 내몸을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였습니다.
내가 너를 내남편이요, 아내요, 하고 여기는 것도 개체간의 질서체계일뿐 실상은 상상의 세계일뿐이었습니다. 그 세계에선 시집장가가는 일이 있어도 없는것이었고 그런일 자체가 무의미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저의 시각에는 세째손가락이 네째손가락하고만 붙어있겠다는 이상한 질서일뿐이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런 대자유의 무한계에서 자연스럽게 놀았습니다.
그러자 제주변의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행동은 비합리적이라느니 윤리에 어긋난다느니, 오해를 살소지가 있다느니 하면서 말입니다.
그때 저는 다시또 한번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세상이란 거대한 연극무대에서 홀로 <이건 연극이야! 그러니 그렇게 살필요가 없어!>하고 분위기를 깨며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그건 우리가 창조하고 있는 이세상이란 연극공연에 초를 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깨달은 나>라는 개체의 相을 다시한번 갖고 또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깨달은 나> 그놈도 죽여야만했습니다.
<이것이 깨달은 자의 경지다> 그런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방식조차 없애버려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비로소 이세상이란 전체와 평안하게 완전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젠 그누구도 과거와 똑같이 되돌아온 저에게 더아상 시비걸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도딲는다고 난리를 치더니 이제야 정신을 차렸구먼!>
이소릴 듣는데 몇년이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압니다.
이젠 이세상이 <있는 그대로>온전하다는 것을 .
이젠 이세상이 <있는 그대로>나와 하나이면서도 또 전체로 거듭난 나는 그속에 개체로서 들어있는 연극을 하고 있다는 이 오묘하고도 신비한 사실을.
저는 제가 살고있는 이 세상과 이 연극이라는 삶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끌어안고 그와 하나가 되어있다는 것을.
저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서 다시 제가 제안에서, 제마음속에서 없애버렸고 지워버렸던 <깨달음>이란 소리를 다시 해대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이런짓이 부질없는 짓이란걸 잘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혹 어느누군가가 이런 저의 여정을 밝힘을 통해 자기의 <道를 구해야해!>라는 생각에서 벗어난다면 그 또한 제 연극을 더충실히 하는것이 아닌가 싶어 이런 글을 지금 올리고 있는 겁니다.
댓글목록
묘각님의 댓글
묘각 아이피 (203.♡.153.199) 작성일둥글이 선사한테 매좀 더 맞아야 하겠구만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8.♡.47.226) 작성일
제가 무기를 사용해서 사람 때리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냥 주먹으로 끝내고 말거든요.
'아금니 다무세요!!!'
좋은 글입니다.
[이젠 이세상이 <있는 그대로>온전하다는 것을 .
이젠 이세상이 <있는 그대로>나와 하나이면서도 또 전체로 거듭난 나는 그속에 개체로서 들어있는 연극을 하고 있다는 이 오묘하고도 신비한 사실을.] 전적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현상적'으로 세상은 완벽한 것이죠. 전혀 그릇되게 구축되고 작용되는 부분이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위의 말씀만 정리했을 때 사람들은 '오해'를 하시더군요.
'있는 그대로 세상이 온전하니 - 내가 나서서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 안가져도 된다. 내 할일만 하면 된다'
물론 제대로 이해하시는 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지만 '많은' 한국적 정서를 가진 분들은 문자그대로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입죠.
이게 큰 함정이라는 것은 스스로 배가 고플때 한 한달 정도 가만히 있거나,
가족들이 병에 들었을 때 그냥 '알아서 돌아가겠지'하고 손 놓고 있을 때 어떤일이 빚어지는 지를 보면 됩니다.
'현상적'으로 세상이 온전히 그렇게 있는 것을 그냥 그대로 관조만 하면서 자신의 생만 사시는 분들은 '현명한 정신'을 가졌을 줄은 모를망정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통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상적'으로 세상이 온전히 있다는 것은 별도로 자각하고 - '자아''를 확장해서 '내 자신을 생각하듯' '내 가족' '내 이웃' '인류' '생명'으로 그 자아성을 뻗히고 관심같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면... 비로소 '현상적으로 온전한 세상'을 바르게 겪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아가 세상에 뻗혀서 하나로 합쳐진 상태에서 그 실천성이 담보되어야 '무위'가 가능하지... 세상이 '현상적으로 온전하다'고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만 머릿속으로 이해되는 그 수준의 그것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형 기독교인들이 '천국의 꿈'을 꾸면서 십일조만 열심히 내면 천국갈것이라는 환상에 그 어떤 종자의 사람들보다 기쁨에 들떠 있는 모습을 보십시요. 단순히 세상이 현상적으로 온전하다고 머릿속으로만 이해하는 분들의 깨달음은 그 수준 이상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여간 위의 글은 글 자체로 참 좋은 글인데... 우리가 상당히 오해할 수 있는 여지의 그 문제점이 잠재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하여간 지나가는 이 님의 이런 류의 글을 좀 많이 올려주셔서 문제의식을 깨워주시길...
지나는이님의 댓글
지나는이 아이피 (203.♡.145.114) 작성일
저는 이글의 묘미는 맨 마지막에 있다고 봅니다.
많은 일명도를 찾는 이들이 현실을 경시하고 그 무엇을 잡고 추구하고 있습니다.
불교용어로 '번뇌즉열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살아가면서 생기는 번뇌가 곧 진리 자체라는 것입니다.
어떤 추구의 대상으로 도(道), 깨달음이라는 환상(?)을 잡으려는 방식에 대한 일갈이라 생각합니다.
묘각님의 댓글
묘각 아이피 (203.♡.153.199) 작성일
번뇌즉 열반이라 하여
현실을 경시하지 않게 됩니까?
자신의 좁은 테두리 안에서의 번뇌현실에서만
안주하는 현실파나 머리속 망상추구파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부가님의 댓글
어부가 아이피 (211.♡.95.137) 작성일
펌글 속의 이야기는,
바다가 아니라 강의 이야기군요.
강에는 피안의 비유가 통하지만, 바다는 그냥 바다입니다.
굳이 海印이란 언어를 씁디다만, 그 또한 도단이지요.
바다에 이르면 그냥 바다입니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8.♡.47.226) 작성일
이 글이 '바다의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이 이야기를 쓴 이가 진정 바다이야기를 할만한 자격이 있는 분인지는 이분의 다른 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사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그런 척'하는 것과 '그런 것'과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죠.
따라서 아마 이 글이 바다이야기가 아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의혹을 묘각님께서 갖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도 저 글 자체가 '바다이야기'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요새 '바다이야기'에만 빠져있다가 낭패를 당하는 당하는??? 이들을 많이 접하기 때문에도 저 글이 현실적 실천성(자아확대적인)을 담보하는 문제의식이 좀 더 가미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져집니다.
하여간 제대로된 이해인지는 모르겠군요. @.@ 빙빙~~
묘각님의 댓글
묘각 아이피 (203.♡.153.199) 작성일본문글이 아마 정님의 사유체계와 비슷한 류의 글로 보여집니다.
묘각님의 댓글
묘각 아이피 (203.♡.153.199) 작성일이곳 스타이신 김선생님의 사유체계와도 비슷하 보이구요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8.♡.47.226) 작성일
넓게 봤을 때는 우리 모두 한사람의 자식이겠지만,
'실천성이 담보된 자아'의 경계를 '나'에 두는 가 '확대하는가'를 기준으로 이곳 싸이트의 논객의 패가 갈라지는 듯 합니다.
김기태 선생님은 자각하신 분이시고,
실지로 다른 이들의 아픔까지를 공유하면서 자아를 세상에 확대하신 분이시기도 한데...
특이하게도 선생님이 말씀 하시는 '이론적'인 바탕은 '스스로 먹을 밥'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의 밥'에 대해서 초연하신 것으로 보이십니다. 실지로는 다른 사람의 밥을 걱정은 하시면서요.
말씀은 그렇지 않은듯이... 하신다는 것이지요.
아마 이는 모든 문제를 '개인의 관점'에서 풀어내려는 선생님 특유의 에너지의 현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많이 '연구'? 하고 있습니다. ㅎㅎ
어부가님의 댓글
어부가 아이피 (211.♡.95.137) 작성일
보태어 드릴 說이 있긴 하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기침만 하고 갑니다.
사실은, 24시간 컴 앞에서 밥道를 닦는 중에
농땡이가 근질거리면 커피 한 잔 때리면서 이곳으로 마실을 오거든요.
(소생은 그리 큰 몫도 아닌데....안즉도 밥道의 화두를 풀지 못했니더ㅠㅠ)
언제 시간 좀 만들어 성심껏 썰 한번 풀어봅시다.
--비싼 녹차 대신 커피를 세 사발째 마시고 있는 어부 올림
묘각님의 댓글
묘각 아이피 (203.♡.153.199) 작성일
내가 너다라는 자아의 경계 확대가 한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크게 바꾸어놓을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소위 말하는 성현들의 큰자각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동일시 오류와 범주 착각이 여기서부터 시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더군요
다다님의 댓글
다다 아이피 (203.♡.44.195) 작성일지나가던이 님이 혹시 김연수선생이신가요?
지나는이님의 댓글
지나는이 아이피 (203.♡.145.114) 작성일아뇨,, 거기에 자주 가는 사람입니다. 좋은 글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