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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라는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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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몽 (210.♡.107.100) 댓글 1건 조회 4,890회 작성일 07-06-2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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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이의 작은 텃밭이나 옥상의 스티로풀 상자나, 작은 화분에 심겨진
작은 깨잎처럼 생긴 잎새에 연한 보랏빛 꽃이 희미하게 피어난 풀을
한 잎 뜯어내어 손가락에 비벼 냄새를 맡아보면 방아잎 향내가 그득하다.
방아는 생선 비릿내와 육고기의 역한 냄새를 중화시키는 향신풀 (herb)
로서 주로 고등어, 갈치 찌개나 개장국, 매운탕 같은 음식에 南道 사람이
요긴하게 넣는 잎새이다.
그런데 이 방아라는 풀은 부산, 울산, 진주, 하동, 김해, 밀양을 벗어나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몇년전 손수 방아 씨앗을 가져다 꽃밭과 아파트 화단에 심었는데 여기 북녁
기후에 맞지 않았서인지 중간 키 정도 쯤 자라다 그만 말라 시들어 버렸다.
외할머니는 하동 사람이라 간혹 부산에 오면 김치를 담구어 주시기도 했는데
김치에다 산초가루와 계피 가루를 조금 넣어셨다.
어, 김치가 이상해서 못먹겠어 어릴 적 꽤나 투정을 부렸다.
그런데 정작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고향 땅에 묻혀 세월이 한참 지나고서야
할머니가 남겨준 그 독특한 방향이 문득문득 몸과 혀에 아로새긴
지문처럼 남아 오래 동안 배회하는 것을 느꼈다.
할머니라는 존재는 사라졌는데 그 미각만이 남았다.
요즘 좀 이기적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엄마가 이 세상을 언젠가 떠나신다면, 토란 들깨죽, 담치 탕수국,
물꽁탕, 조개 쑥국, 톳나물 두부무침 을 이 세상 어디서 다시 찾아
맛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좀 든다. 엄마는 나를 자기 몸에서
떼어 놓고 난 후 당신만의 입맛으로 나를 키우셨다.
타관살이 이십여년. 밤마다 꿈을 꾸면 고향의 옛집으로 찾아가
마당에 심겨진 천리향, 누렁이 개, 갯벌 바위에 자란 파래를
숟가락으로 누나와 긁어다 나물 묻혀 먹는 장면을 본다.
그 옛집과 사람과 꽃과 개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인데도.
사람의 기억이란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꿈결처럼 아득해지고, 꿈길 사이로,
꿈의 언저리에서, 방아잎 향내가 입 안과 코 끝에 싸악하게 스며든다.
그 감각의 기억이 몸과 마음을 때로는 강렬히, 사무치게 흔들어댄다.

댓글목록

자몽님의 댓글

자몽 아이피 (210.♡.107.100) 작성일

소인이 미련하다보니 방아풀을 모두 죽이고 말았나 봅니다.

 쓰임 원경님의 글을 보니.......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에 조개와 방아를
 넣은 음식이 갑자기 그리워 지네요.

 음식남녀라면 그리해야 겠지요. 어쩔 수 없이 사먹는 날이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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