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의 증세와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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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18.♡.60.234) 댓글 5건 조회 12,372회 작성일 06-10-19 15:58본문
인간은 다소나마 강박적인 증세를 갖고 있다. 가령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밥을 보고서 먹고 싶은 심정이 들면서 침이 삼켜지는 것이나, 편안한 생활을 동경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의 강박적인 심리로 볼 수 있다.
즉, 인간이 접하는 특정한 현실에 대해서 그의 생존에 유리할 수 있게끔 ‘개연성 있는 사물과 현상에 대해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심적 자극을 받는 것은 넓게 봤을 때 강박증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심적인 기제가 작용되지 않으면 우리는 매 순간 생소한 현실을 접하며 살아야 할 것인데, 이로 인해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강박적인 심리’는 생명이 존재하기위해서 가장 필요한 심리적 기재일 수가 있다.
물론 문제는 ‘정도의 차이’로 인해서 발생한다.
강박증이 발생하는 이유를 굳이 구분하자면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나뉜다.
생리적 원인으로 호르몬 계통의 문제는 그에 맞는 생화학적인 치료가 필요할 것인바, 심리적-사회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강박증에 대한 원인과 치료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 보자.
모든 강박증세에 대한 분석은 불가능하기에 대표적으로 현대사회에서 많이 발생하는 류의 강박증 증세에 대한 분석을 해자.
그것은 주로 ‘...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에 대한 강박증세이다.
이러한 류의 강박증세로 고통 받는 이들은 자신의 ‘조건’이 일정하게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에 의식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끊임없이 그것이 되 뇌여진다.
자... 그렇다면 왜? 그러한 강박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고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주로 그 강박증은 현대 사회의 구조 속에서 인간 개인에게 가해지는 압박과 스트레스에 의한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끊임없이 요구하고 세뇌한 특별한 자극들이 그들을 강박으로 몰아넣곤 한다.
한 사람이 인간과 생명에 대한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그 관계 속에서 얻어야할 풍요로움을 맛보기도 전에 ‘현대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끝없이 주입하는 특정한 개념과 이해의 고착... 또는 이에 대한 비합리적인 반발이 강박증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함정에 한번 빠진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어느 곳에 빠져있는 줄 알 수 있는 심리적 근거를 잃기 때문에 그 안에서 고통을 받는다.
운 좋게도 어느 특별한 순간의 통찰이나 그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조명해 줄 수 있는 스승을 만나기 전에는 그는 결코 그 끝없이 돌고도는 정신회로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한다.
‘스승’으로부터 이러한 강박증세의 있음을 이해 받는 방법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의 방법은 ‘직접적’이고 ‘사적인’ 방법이다.
자기 내면에 그러한 ‘강박의 사슬’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방법이다.
이는 주로 사적인 측면에서 내면에 ‘그런그런 문제가 있음’을 알도록 ‘통찰’을 이끌어 주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즉 개인의 강박증세는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지는 몰라도 ‘그러한 개인을 있게 하는 사회심리적인 지반’을 없애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흔한 비유로 이 수준의 ‘스승’들은 병이 있는 환자를 치유해 주는 수준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첫 번째 방법과 같은 ‘사적’이고도 ‘공적인’ 이해를 함께 공유하는 ‘통합적’인 방법이다.
자기 내면에 그러한 ‘강박적인 작용이 있음’의 문제만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가 어떠한 식으로 그에게 그러한 강박적인 반응을 유도했으며, 그것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자신의 사적인 이해를 넘어서서 한발 떨어져서 이해를 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러한 문제를 짚어 줄 수 있는 스승들은 흔한 비유로 ‘병이 생기기 전에 환자를 없애는’ 명의이다.
첫 번째 강박증 치료의 방법의 한계는 그러한 치료를 받은 본인이 그 치료를 낫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 직접적인 치료를 받은 이외의 다른 부류의 강박증세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자신이 사사받은 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건넬 수 있는 역량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두 번째 강박증 치료의 방법은 첫 번 째 방법이 지나치는 문제까지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번 째 방법은 첫 번째 방법과 같이 단순히 스스로의 내면에 그러한 ‘강박증세가 있다’는 것만을 ‘통찰’하게 해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인류와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그 자신을 그 정중심에 위치 시킴으로 인해서 말 그대로 ‘자연’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모든 ‘불자연’한 이해와 관습을 극복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번째의 통찰에 이르도록 하는 길은 어렵고도 어렵지 않다. 자신의 ‘자아’를 인류와 자연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꾸준한 이해와 실천이면 된다.
관념적으로만 ‘인간과 자연과 나는 하나다’고 얘기하거나 그렇게 알고 있다고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로 그 바른 이해를 실천하는 것 까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잠깐’일 수도 있고 ‘오랜 기간’일수도 있지만, 이러한 이해 속에 집중한다면 특별한 자각 속에서 ‘나’를 테두리로 ‘인간과 자연’에 세워져 있던 벽이 허물어지면서 일순간 모든 것이 교통하는 순간을 맛보게 된다. 이는 굳이 표현하자면 ‘깨달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다른 표현으로 ‘올바로 자신을 세우는 것’ 혹은 ‘자신을 비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스스로를 얽어매며 고통을 주던 ‘사고의 고리’가 ‘편협한 자아’의 붕괴와 함께 사라지면서 무한한 자유를 맛보게 된다.
물론 이 ‘자유’ 속에서 그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즉 생명에 대한)... 끝없는 애착과 그 생명을 아끼고 보존하고자 하는 힘을 뿜어낸다. 예수가 그랬고, 석가가 그랬다.
이것이 바로 그들 현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세상의 문제를 해결한 길’이었고, ‘세상의 문제의 중심에 자신의 문제가 있음을 알아 나서서 움직이게끔 한 동인’이었다.
이러한 이해와 통찰에 다다르지 못하고 ‘마음을 비워라’ ‘모든 진실이 네 안에만 있다’고만 단지 끝없이 되풀이해서는 결코 ‘개인의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음의 사실에 아랑곳 않고 느긋하게 ‘모든 진실이 네 안에 있다’고 얘기하는 이들의 그 ‘편협성’은 세상이 존재해 있는지 조차도 ‘올바로’ 모르는데, 그 세상위에 존재하는 그 자신... 거꾸로 표현하자면 그 자신 속에 들어있는 세상을 바로 알수 있겠는가?
(스스로 ‘세상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 ‘세상을 진실되게 아는 것’은 ‘질서를 지킨다’고 말로만 하는 사람과 ‘실지로 지키는 사람’과의 차이와 같다. 그 말로 현현되는 개념적 현실과 실재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실재’를 접하지 못하고 개념적 현실에만 빠져 있는 이들은 결코 이를 알 수 있는 근거를 얻지 못한다. )
그렇게 극단적인 유아론과 회의주의에 빠진 이들은 자신의 ‘개인성의 테두리’에 매몰되어서 그리 자신의 ‘증세’를 악화시키면서까지 그 사실 조차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여기며 스스로 세상을 품고 있다고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
당신은 혹시 ‘강박증’에 시달리는가?
그렇담 인간과 자연으로 자신의 자아를 확장시킴으로 인해서 자신의 편협한 자아를 분쇄하고 그 편협한 자아가 만들어 냈던 ‘집착’을 함께 날림으로 인해서 이제 자유로우라!
잘 못하면 자기기만으로 빠질 수 있는 ‘마음을 비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주문으로... 오히려 자신의 개인성을 강화시키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무지’ ‘무책임’ ‘무실천’을 부추겨서 결과적으로 더더욱 스스로의 개인성을 강화시키고 자아의 분쇄할 수 있는 길을 막았던 그 잘 못된 이해의 첫 걸음을 되돌리라!
그 뒤돌아 걸어서 보는 첫 순간에 그대는 예상치 않았던 것을 보게 될 것이니...
뭐 아님 말구 ^^;
댓글목록
말구말고 초구님의 댓글
말구말고 초구 아이피 (121.♡.146.225) 작성일
뭐 아님 말구 ^^;
아닌것 같으니 걱정마드라구
명님의 댓글
명 아이피 (203.♡.145.114) 작성일
석가와 예수는 세상을 문제의 시각으로 보지 않았죠,,
있는 그대로 온전한 우주, 그 자체로 보았어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세상의 온전함을 모르는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설교한 것입니다.
마을님의 댓글
마을 아이피 (211.♡.31.2) 작성일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가 쉴 틈이 없겠네요. 혹시 불면증.. 생각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던데, 그 것의 주인이 되기 전까지는...
나무님의 댓글
나무 아이피 (122.♡.145.62) 작성일
제목이 지금 제 증세랑 너무 흡사해도 클릭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로 제시한 방법이..
너무 관념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아서 조금은 실망스럽네요..
어디서 글을 옮긴것같은 의심이 드는건..
왠지 글에 쓰인 용어가 너무 일반적이고 학술적이어서
정말로 강박증세에 있는 사람에게 이론적인 정보만 제공할뿐
글쓴이의 진심은 보이지않는것같아요..
자연과 하나가 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강박관념에서 벗어날수 있을까요..
직장에서 월급도 밀리고, 돈한푼 없고, 나이는 먹어가는데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제가 이글대로라면
그 나쁜 사장도 나도 다 하나다 뭐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기에게 거짓으로 체면을 거는거 뭐 그런건가요..
글쓴이는 만약 윗글을 본인이 쓰신거라면, 좀더 구체적인
방법을 써주셧으면 좋겠구요..
어디서 옮긴거라면 출처를 밝혀주는게 좋을듯..
지나가다가 제목보고 클릭했는데...
정말 강박관념에 시달린 저로서는 아무리 읽어도 막연하게만 느껴지네요..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91.75) 작성일
싸돌아다니는 처지??? 이다 보니 댓글이 늦었습니다.
우선 제가 가진 능력의 한계가 분명이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답해드리지 못할 수 있음에 우선 양해를 구합니다.
위의 내용이 '관념적'으로 보이고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은 어느정도는 적절합니다.
왜냐하만 '인간과 자연'을 진지하게 이해하고 그에게로 자신의 자아를 확장시키는 노력은
본인 스스로의 집중적인 관심과 실천을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에 대해 관심갖지 않고 실천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당연히 관념적인 표현으로 밖에 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저에 대해서 날카로운 독설을 퍼붓는 분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것은 제가 그것을 '잘하고 있다'며 님에게 훈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길'이 있음을 다만 담담히 말씀 올리는 것이기에 제가 님에게 '충고'하는 것이 아님의 관점에서 '덤덤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제 홈페이지는 http://howcan.or.kr 인데, 관련한 글들이나 제가 제시하는 관점을 파악하시면 조금 더 분명히 이해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머릿속으로만 숙고하는 것하고 실제로 움직이면서 겪는 것하고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사회적 약자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몸을 섞으면서 활동을 하면서(가령 장애인 시설에 가서 일을 돕는다던지...) 님은 그 전에 느꼈던 것과 전혀 다른 관점의 이해를 접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시설 가서 활동을 하고도 그 활동이 줄수 있는 의미를 충분히 수렴하지 못해서 '나도 해봤는데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식의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기는 한데...
정말로 님이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맑은 정신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를 노력하신다면 하루 하루 그러한 활동을 하면서 숙고를 할 수록 스스로 걸려들어있는 함정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를 빠져나갈 용기를 얻으리라는 생각입니다.
기존의 사고의 관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곳의 상당수의 분들의 입장과 같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공'이다.'라는 관점을 취할 수도 있지만...
'세상은 모든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이다'라는 관점을 취할수도 있습니다.
두 관점이 상극이지만 서로 밀접히 통합니다.
하지만 전자의 방법은 극단적인 회의주의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동반합니다.(문제는 그 사고의 관점 자체가 그것을 인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그러나 후자는 따스한 사랑의 감정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동반시킵니다.
저는 어떤 식의 삶의 방식이 옳다고 선생님께 말씀 올릴수 없습니다.
그것은 선생님 스스로 택하실 방법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두번째(후자)의 방법에 선생님이 관심을 갖고 싶으시다면,
그에 따른 노력을 하시고 이해를 다듬으셔야 할 것입니다.
도법스님의 생명평화결사 홈페이지의 글 중에서도 좋은 글이 많이 있으니 참고 하시고요.
떠도는 입장이고 인터넷 쓸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충분히 숙고하여 답변을 올리지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부적절한 저의 이해를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1234y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