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정좌 .독서.자동.정체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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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규 (211.♡.35.238) 댓글 1건 조회 5,899회 작성일 06-11-09 08:24본문
정심.정좌.독서.자동.정체기공
(正心正坐讀書自動正體氣功)
2006. 11. 3 이동규
holydog@hanmail.net
필자는 한 일년 반 동안 필자에게 저절로 일어난 기공[=자동기공(自動氣功)]을 수련해오고 있다. 자동기공이란 저절로 몸이 움직이면서 기공이 수련되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오래 전 부터 기공에 관심이 있었고, 선원(仙院) 등에서 수련했으나 기체험에는 실패했다. ‘○○슬기’란 단체에서 겨우 기를 체험하기는 했으나 너무 미약하여 흥미를 잃어버린 후부터 아예 기공 쪽은 관심을 끄고 오직 명상 쪽에만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다가 해오(解悟)라고 하는 헛깨달음의 함정에 빠져 10년을 허송한 후 다시 간화선(看話禪) 수행자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참선이 별 진전이 없어 잠시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되어 있었던 2005년 6월의 어느 날, 필자는 마음의 어떤 바람[원망(願望)]도 다 비워버린 채 그냥 참선하는 자세로 한가로이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다. 필자는 독서할 때는 꼭 이런 자세로 한다. 이렇게 하면 정신도 맑아지고, 오래 독서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이렇게 독서에만 열중하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청하지도 않은 선물이 찾아왔다. 그것이 바로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자동기공(自動氣功)이었다.
처음에는 미미한 목운동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기공현상인줄은 이미 알고 있었고, 기공에는 이미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던 터인지라 약간은 귀찮은 생각도 들어서 가능하면 머리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다시 독서에만 열중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자세를 바로 잡고 책을 읽으려고 하면 몇 줄을 못 읽고 다시 목운동이 시작되는지라 점차 기공이 일어나는 대로 맡겨버리는 때가 많아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필자의 독서 시간은 운기(運氣) 반(半) 독서 반(半)에서 점점 전적으로 운기만 하는 쪽으로 진전되어갔다.
자동기공은 목운동만 거의 6개월 가까이 지루하게 계속되었는데, 운동의 양상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진전되어져 가는 것이었다. 통증이 느껴져 잘 안 돌아가는 부위는 살살 우회(迂廻)를 하더라도 끈질기게 운동을 시켜가서는 마침내는 그 부위가 매끄럽게 돌아가도록 만들고야 말았다. 필자가 결정적으로 이 운동에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은 이것이 쾌변(快便)을 유도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면서 부터였다.
변비는 필자가 수십 년 간에 걸쳐서 수시로 겪어온 고약한 고질병이었다. 한 25년 전에는 그 때문에 생긴 치질을 한방(韓方) 수술로 제거한 바도 있었으나,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못하다 보니 다시 재발하여 수시로 고통을 겪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기공으로 목운동을 하면서부터는 쾌변을 유도하는 법을 저절로 터득하게 되어 전혀 힘을 안 주고도 남김없이 배설되는 신통한 쾌감을 맛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완전 배변을 하고나면 단번에 배가 홀쭉해지고 식욕도 돌게 되는데, 이런 묘미는 안 겪어본 사람은 절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거야 말로 웬 떡인가? 변비로 고생깨나 해본 사람은 단지 이 효과만으로도 이 기공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필자가 저절로 찾아온 이 기공을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6개월이 지나자 앉아서[=좌공, 坐功] 목운동만 시키던 것이 팔, 척추, 내장운동으로까지 발전하다가, 1년 정도 지나자 서서하는[=입공, 立功] 전신운동으로 발전 되었다. 입공도 발을 고정시킨 입공에서부터 발을 옮기면서 하는 유연한 운동 -태극권과 유사함- 으로 발전되었다. 기공수련 중 내가 하는 일이란 단지 이 기공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고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나는 이 운동이 대체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가만히 지켜본 결과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공은 몸의 기혈순환(氣血循環)을 촉진시킨다. 기혈 순환이 정상화 되면 호르몬 등 대사 작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면서 서서히 몸이 정상화되기 시작한다. 즉 숙변의 배출 등 정화작용과 함께 면역기능이 향상되면서 병소(病巢)들이 치유 내지는 축소․소실되어져 간다.(필자의 경우는 발바닥에 자리 잡고 있던 아주 커다란 티눈 덩어리와 항문 안쪽의 치질 덩어리가 점점 축소되어가고 있음) 우리의 신체는 기혈만 잘 유통되면 본래 병이 발생할 수 없게 되어있다. 기혈만 잘 유통되면 원천적으로 질병에 강한 체질이 되며, 반대로 기혈 순환이 막히면 독소가 적체되고, 면역력이 약해져서 질병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모르고 단지 대증요법(對症療法)만 써서는 병을 근치할 수 없으며, 특히 화학약품은 그 독성 때문에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상의 지식은 기공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게 되는, 살아있는 나의 몸이 가르쳐주는 그야말로 산지식들이다.
이제 이 기공에 흥미를 느끼는 분들을 위해 자동기공을 일으키는 법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우선 필자가 이 기공법의 이름을 이렇게 길게 명명(命名)한 것부터 설명하기로 하겠다. 필자가 이 기공법의 이름을 이렇게 명명한 것은 이 이름의 뜻만 잘 이해하게 되면 누구든지 기공이 쉽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즉 이 긴 이름 속에 이 기공법의 모든 비밀을 다 담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름에 대한 해설이 이 기공법 해설의 전부이다. 독자 제현께서는 이를 잘 유념하고 아래 기공법명(氣功法名)에 대한 해설을 잘 읽어주시기 바란다. 앞으로 편의상 이름을 줄여 부를 필요가 있다면 ‘독서기공’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1. 정심(正心) : 욕심 없는 마음,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 필자는 그 당시 “기공을 배워 유명해지고 싶다.”, “기공을 배워 돈을 벌어야겠다.”, “기공을 배워 건강해야겠다.”, “기공을 배워 민족을 살려야겠다.”, “깨달음을 얻겠다.”는 등의 마음이 전혀 없었다. 독자제현께서는 필자가 그 어떤 욕심도 없이 다만 책의 재미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 이 기공이 찾아온 것임을 꼭 유념해주시기 바란다. 욕심은 비우려고 해서는 비우기가 어렵다. 욕심을 비우는 한 방법이 바로 그냥 책의 재미에 빠지는 것이다. 책의 종류도 같은 값이면 마음을 관하는 데 관한 것이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필자의 생각일 뿐이니 크게 괘념치 마시기 바란다.
필자는 이 기공이 그냥 영문 모르게, 값없이 찾아왔고, 해보니 확실히 좋아서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소개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다만 중개자일 뿐 일단 기공이 일어나기만 하면 그 후의 일은 기(氣)와 당사자 사이의 일이 된다. 그러므로 누구든 이 글에 믿음이 생겨서 기공을 해보고 싶으면 권하는 대로 한번 해보고, 관심이 없으면 안 하면 된다. 필자는 이 일로 인해 감사도 비난도 받고 싶지 않은 입장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달마대사 같은 분이 기공을 가르친 까닭은 오직 참선(參禪) 공부에 그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혈이 잘 유통되지 않으면 병이 오고, 병이 오면 참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달마대사는 어디까지나 참선을 잘 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서 기공을 가르치셨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 그 자체를 탐구하는 공부[=참선, 위빠싸나 등]는 하지 않고, 기공을 닦아 무엇을 이루겠다면서 밀고 나가다보면, 어느새 마음의 창조물인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좇아가는 사도(邪道)로 빠질 가능성이 많다. 달마의 기공에 연원을 둔 무술의 고수들이 하는 짓들을 보라. 서로 천하제일고수(天下第一高手)가 되겠다는 욕망,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쓸데없는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으로 그 근골(筋骨)을 쇠진(衰盡)하게 했을 뿐이다. 이것이 대체 누구에게 무슨 득이 되겠는가?
참된 수도(修道)는 마음 그 자체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지 자신의 욕망이 반영된 목표를 설정하고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길로 접어든 자는 조금만 능력이 생기면 아만(我慢)만 높아져서 알량한 기공능력으로 그만 교주(敎主) 행세를 하려 든다. 필자는 이런 자들이 중생을 기만(欺瞞)하는 업을 짓다가 나중에는 제 병 닦음도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는 예를 적잖게 보았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기공 지도자 중에도 이런 자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기공을 닦아 무엇을 이루겠다는 마음은 애당초 먹지 않는 게 좋다. 그냥 좋게 여겨져서 해보고 싶으면 해보라. 그러나 엉뚱한 마음일랑은 먹지 말기 바란다.
2. 정좌(正坐) : 허리를 바르게 펴고 편하게 앉으면 된다. 명상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엉덩이가 편하도록 뭘 좀 받치고 앉아 있으면 오래 있어도 괜찮다. 이 정좌의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바로 이 자세가 기공을 발생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지도 모른다.
3. 독서(讀書) : 앞에서 말했듯이 독서의 재미에 빠지는 것도 마음을 비우는 한 방법이다. 되도록이면 마음공부에 관한 책을 권하고 싶다.
4. 자동(自動) : 이 기공은 저절로 일어난다. 호흡을 조정한다든지, 동작을 유도한다든지,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은 결코 진정한 자동기공이 아니다. 특별한 호흡법, 상념의 집중, 또는 특별한 방법 등을 동원하여 기공을 유도하는 것은 엄청난 부작용의 위험이 있으므로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 이런 수련법은 마음 그 자체를 보지 못하게 하고, 마음의 창조물을 좇아가게 함으로써 사도(邪道)로 빠지게 할 위험성이 다분하다. 그러므로 모든 부자연스런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건강에 좋다는 단전호흡과 요가조차도 사람에 따라서는 치명적 해를 입힐 수가 있다.
이 기공은 전(全)자동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몸 상태에 따른 맞춤운동이다. 그러므로 무리란 전혀 있을 수 없다. 원하는 자는 그저 정좌하여 독서에만 열중하면 된다. 움직임이 일어나면 오히려 기공을 거부하고 독서로 돌아가라. 그리하여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움직임이 일어나면 못이긴 척하고 움직이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라. 어떤 기대나 상상도 보태지 말라. 그냥 방관자가 되라. 기가 알아서 하도록 놓아두라.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되 다만 방해만 하지 말라.
자랑도 하지 말고 한동안 비밀리에 혼자서 즐기라. 기가 그대 몸에다 하는 작업을 탐구하라. 그리하여 정말 좋은 것이 느껴져서 “이 좋은 것을 나 혼자 알기에는 너무 아깝다.”라는 정도가 되거든 그때 다른 사람에게 전해도 좋다. 그대가 값없이 받았으니 값없이 주되 돈도 받지 말고, 스승이 되려고도 하지 말라. 그렇게 하다가는 십중팔구 자신의 욕망에 속아 넘어가서 반드시 후회할 짓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참 나’를 찾아가는 참 공부에 입문하기를 권한다. 참 공부란 마음 밖에서 마음속으로 들어온 어떤 우상(偶像)도 좇지 않고, 오직 마음으로써 마음 그 자체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 구별은 대단히 중요하다. 외부로부터 들어온 지식, 신념체계, 교리(敎理)로는 나를 진정으로 알 수가 없다. 그것은 결국은 상념(想念)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다. 상념은 내 마음의 창조물이지 나 자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류에 대한 ‘학습’으로는 세뇌는 될지언정 나를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참 나’는 이런 창조물들을 생산해내는 마음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마음 그 자체를 모르면 나를 알 수 없다. 마음 그 자체를 탐구하는 대표적인 공부에는 ‘위빠싸나’와 ‘간화선(看話禪)’이 있다. 부디 이런 방면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좋은 스승을 만나 참된 공부 하시기를 권한다.
5. 정체(正體) : 왜곡되어 있는 몸을 바르게 해준다는 뜻으로 기공의 잠정적 효과를 말한다. 이 기공을 끝까지 하면 어디까지 가는 것인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것이 기혈유통을 촉진하고, 적체되어 있는 독소를 배출해줌으로써 자연치유력을 높인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6. 기공(氣功) :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다. 하여튼 알 수 없는 기가 내게 무언가를 하게 하는 것이다. 아무런 욕망 없이 일어난 자동기공은 일단 육체의 왜곡을 바로잡고, 조화로운 상태로 이끌어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이상의 효능은 필자도 모르는 바이니 앞선 분이 계시면 부디 일러주시기 바란다. 【끝】
댓글목록
아리랑님의 댓글
아리랑 아이피 (222.♡.195.136) 작성일
님이 하는 기공은 님에게 맞는 지도 모르지만 모든 것은 인연이 됨으로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하나 둘 혈이 풀리며 그 사람에 맞는 수련법과 참된 공부가 있는 것입니다.
님이 고집하시는 위빠사나와 간화선이 최상의 공부 방법임은 님에게 어울리겠지만 모든이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라 봅니다.
우린 누구나 기공의 모습으로 걷고 이야기하고 잠을 자고 있습니다.
모든이들이 사이비를 탓하고 그릇됨을 말하지만
그속에서 길을 가는 것이 우리네 모습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나무라지 마라 우리가 살아온 길이 아닌가
늙은이를 비웃지마라 어차피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닌가
님의 따듯함과 평화로움이 가득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