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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로 대지를 밟고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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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121.♡.233.196) 댓글 2건 조회 4,620회 작성일 07-06-2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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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채우고 높아지려는 세계관’이 철저히 붕괴되지 않으면...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인간과 환경에 파국적인 결과를 불러일으켜 질 것이라는 것은

이제 자명하다.


하지만 기존의 ‘삶-사회’의 관성이 한순간에 버려지고 바꿔 질리는 만무한 것은

인간의 [욕망과 아집]이 교묘하게 일상에 침투하여 그 [사회적 존재의 기반]을 공고히

만들어내고, 다시 그 [기반]이 각기의 인간의 [욕망과 아집]을 강화해 오는 순환작용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된 세계를 꿈꾸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 ‘욕망과 아집의 연쇄고리’를

끊고, 각자의 능동적인 주체성을 최대화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발견하고 현실화

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길을 열어야 한다.


문제는 내 자신부터 아직 그 ‘욕망과 아집의 기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세계에 발생되는 상황, 인간의 성향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욕망과 아집’을 좀 더 면밀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서기 위해서

내가 속해 있던 ‘욕망과 아집의 사회적 기반과 관계’를 떠나 이리 유랑의 길을 나선

상황이다.


물론 (동양철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 하듯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문 앞 한 발 짝을 나설 필요가 없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철학적 존재성]

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사회적이고 실존적인 위치]를 확인해 보고 싶은 것임

으로 현재의 나를 짜 맞춘 ‘구체적 현실’에 대해서 보다 면밀히 경험해보기 위해서 이리

헤매고 있는 것이다.


매일 대하던 [사람]과 [조직]과 [건물]과 [편리]를 벗어나 떠돌아다니는 결과

[관계의 단절]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서 매일 매일 새로운 ‘하루’를 맞으며,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야영지와 새로운 화장실과, 새로운 먹 꺼리를 찾아 헤매이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그 와중에, 그간 내가 누렸던 기존의 ‘관계’와 ‘상황’ 속에서 당연히 여겼던

‘일상’의 실체를 보다 면밀히 숙고할 기회가 생긴다.


그 ‘일상’은 ‘안락, 지지, 보호, 권위, 편리’ 등이 ‘나’를 중심으로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개념

이다. 그 ‘일상’은 늘상 ‘하나라도 더 갖고 높아지려는 욕망’ 이 ‘자본’과 ‘권력’의 힘을 바탕

으로 ‘(인위적)인간위계관계’의 작용 속에서 교묘하게 얽히고설킨 개념이다.

가뜩이나 그 ‘일상’의 하위 구성요소인 ‘하나라도 더 갖고 높아지려는 욕망’은

열등감- 우열감을 통한 심리적 상-벌의 작용과 맞물려져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욕망 하게 만드는’ [전체주의] [집합주의] 사회의 욕망구조를

충실하게 반영한다.


우리는 '낙오‘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손에 쥐어질 수 있는 무엇‘을

먼저 빼앗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며, 그 노력의 결과를 획득한 후에는 우쭐한 권위에 취해

서 그렇지 못한 타인을 내려다보곤 한다. 그 사회적 중력(일상)에 휩쓸린 결과로 우리는

머리위에 별이 떠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체 대지에 코를 박고 살아가는 것을

최선이라고 여긴다.


이렇기 때문에도 우리가 이러한 ‘일상’에 작용하는 사회적인 관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 사회적 영향력의 부조리한 것을 걷어내어, 현재를 지키고 후손들의 미래와 환경을 보호

하려는 노력자체가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노력과 정확히 연결된다.


‘불쌍하다’고 불리우는 사람에게 ‘시혜적’으로 뭔가를 배풀려고 해온 ‘착한 사람들’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는 ‘이웃’과 ‘후손’과 ‘인류’와 ‘환경’을 위해서 부러 힘과 시간을 들이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그것을 지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노력이 충분히 겸허하고 순수하다면,

[전체주의 욕망구조(하나라도 더 갖고 높아지려고 욕망되어지는) 사회]의 중력에 무릅쓰고

[개인의 주체와 자유]를 달성하여 당당히 자신의 발로 대지를 밟고 서고자 하는 노력 자체

가 세계를 위하는 길이고, 인류를 위하는 길이며, 환경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유랑의 경험을 통해서 ‘내 자신의 행복 속에 세상의 행복이 있고, 세상의 행복

속에 내 자신의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내 자신이 보다 면밀히 경험하기를 바라며...

그리고 ‘당신’ 역시 당신의 일상 속에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 길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 참고로 이러한 ‘자기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 ‘비우고 낮추려는 노력’이

‘깨달음’이라는 존재적 성찰‘만’을 위해 집중되어 있고, 결과적으로 자기집착과 아집에 기반

해 있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물론 이는 깨닫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이 모두 그러한 이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을 세계와 연결시키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의지와 힘을 세계와 합치

시키려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부당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만큼 세상의 그것을 위해

서 노력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단순한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만 ‘비우고 낮추려는 노력’을 하는 이들의 ‘노력’이

‘또 하나의 추가된 욕망’의 다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댓글목록

무정님의 댓글

무정 아이피 (121.♡.180.22) 작성일

풍선을 보고 왜 하늘에 떠 있느냐고 물어도, 풍선은 그 이유를 말할수 없소.

그냥 그렇게 된것이니, 하늘에서 내려오라고 재촉해봤자 그것은 풍선이 소화할만한 충고가 아니요.

바람들어간 허파에 피식~하고 바람이 빠져야만 비로소 내려오는것이요.

제 발을 땅에 못붙이고 떠 있는것도 똑똑한것은 아니지만

그런 풍선보고 내려오라고 하는 자도 그리 영리하지는 않소.

그 땅이 언제나 단단할지는 참으로 모르는 일이거든

근데 이것이 그러오. 이것도 하나의 장면이라 참 향기롭소.

그러나님의 댓글

그러나 아이피 (152.♡.132.11) 작성일

세상과우주와 대상과의 모든 심리적 사회적 연관성으로부터 나홀로 설 수 있으면 온전한 본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나한테 스스로 조건화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우면 나의 본래의 역할을 온전히 이행하게 되지요.
그렇게 되기전에 하는 모든 유위 행은 거짓이며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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