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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7. 산청모임(삶의 참된 풍요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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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름가지 (117.♡.178.162) 댓글 0건 조회 9,104회 작성일 18-07-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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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 미워하는 것도 거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누군가 좋아하는 것도 거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랑과 미움' 그 이면에 있는 거부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를 좋아할 때면 늘 따라붙었던 거부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늘 그 두려움을 '결핍, 상처'라 이름붙이고, 그 다음 수순은 환경과 부모를 탓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얻지 못하는 것은 결핍탓이고, 그 결핍은 환경과 부모로부터 주어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좋아하더라도 내것으로 소유한다는 것이 없을 때(감정을 감정자체로 바라볼 때), 또 누군가 미워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을 때, 그 두려움은 그저 두려움일 뿐, 결핍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을까!, 그 두려움에 더이상 결핍때문이야하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 얼마전 식은땀을 흘리며 거부에 대한 두려움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두려움으로 인식될 뿐 그것이 더이상 '결핍과 상처'로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 얻을 대상이 있을 때, 집착이 있을 때, 그 두려움은 결핍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한달에 한번 이렇게 볼 수 있어 감사하고, 오랜만에 뵙게 되어 반갑고,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고, 힘듬과 괴로움이 많았다면 그것 또한 듣고 나눌 수 있음이 참 좋은, 지금은 경전이 아닌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음 공부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되는 도, 깨달음, 영원한 진리, 이런 것들이 따로 있는게 아니고, 오랜만에 만나 잘 지냈냐고, 많이 힘들었구나!하면서 공감하는 한마디,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도, 진리 이런 거창한 말들에 의해 일상과는 거리가 먼, 무언가 특별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이렇게 이원적이고, 실상과 거리가 먼 무엇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언어는 개념적이고 관념적이라 실상에 가 닿을 수 없는, 그렇더라도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그로인해 실상이 언어에 의해 갇혀 버리는데, 이 삶 자체에 눈뜨면 언어에 갇히지 않고, 그 공허한 개념에 물들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지금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모양과 차이가 있지만, 한 사람으로 관계속에서 살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우리가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고, 우리의 의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태어난, 이런 환경, 이런 모습을 원하지 않은, 그저 내던져진 존재라는. 이런 존재로 살아갈 때 이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이 삶이 주어졌고, 언젠가는 죽게될텐데, 이왕 태어나서 살아가는 삶, 제대로 한번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주어진 것들이 참 많습니다. 누리며 살것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자연, 계절, 이 눈부신 햇살, 선물처럼 주어지는 오늘 아침같은 날씨. 삶이 우리에게 허락한 것들이 참 많은데, 감사, 풍요, 사랑, 가슴벅찬 감동, 좌절, 고통, 상실, 아픔, 언제 끝날지 모르는 힘겨움, 이런 기쁨과 고통의 측면이 있는데, 희한한 건, 제가 볼 때, 고통, 좌절, 힘겨움은 없고 저에게는 오직 눈부신 감사, 풍요, 사랑으로 가득해 보입니다. 한번밖에 없는 삶, 우리에게 본래 주어져 있고, 결코 사라지거나 없어진 적이 없는, 생명이 우리에게 준 감사와 행복과 풍요와 충만, 원래 주어진 것인데 보지도 못하고 가면 아깝지 않습니까? 여기 본래 있는데, 보지 못하면 찾아야 되고, 무엇인가 해야하는 것이 됩니다. 여기 있는데, 내가 못봤을 뿐인데, '없다'고 단정지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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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으려고 그토록 애를 쓸때 사실 모두가 적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내 정성을 몰라주는 대상은 '적'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를 위한 친절이 아니라, 상대에게 사랑을 바라는 친절이기에 상대에게 감지됩니다. 그리고 상대는 이런 나를 멀리합니다. 그러니 저는 증오를 품습니다.이게 '의존과 적대'가 형성되는 과정이고, 그 밑바탕에는 해결되지 않는 유아적 욕구, 사랑받고, 맘껏 어리광부리고 싶은 그 충족되지 않는 의존적 욕구가 존재합니다. 저에겐 지난 시간 제게 찾아온 지옥같은 고통이 그 결핍을 떨쳐버리게 도와주었습니다. 고통이 제게 직접 말해주었습니다. 그것은 취할만한 것이 아니라고....이 유아적 욕구를 완전히 끊어버릴 때, 그것은 곧 부모(가족)로부터의 독립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의존과 적대'라는 테두리의 청산이기도 합니다. 또 상대에 더이상 의존하지 않기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게되고, 거기에는 어떤 강렬한 에너지가 담기게 됩니다.

 



●'삶의 참된 풍요로움'

 이 삶을 정말 넉넉하게 살아갈 수있는 방법, 물질이 많으면 좋지만, 물질이 진정 나를 채울 수 없습니다. 이풍요를 찾고 나면 다시는 메마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참된 것,진정한 것'은 어떤 상태와는 상관없습니다. 이것을 굳이 표현하자면 존재입니다. 눈이 어떤 상태, 밖의 대상에 가 있으면 상황이 나쁘게 돌아가면 불행하게 되는데, 눈이 자기 안으로 향해 있으면 밖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행복해 집니다. 그 진실에 대한 눈뜸, 이건 설명이 안되는데, 그냥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됩니다. 이건 참으로 극적인데, 저는 무얼해도 행복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렸고, 마치 어린 아이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무얼 알았는지, 무얼 깨달았는지 몰랐습니다. 그때 몽땅 다 바뀌어버렸고, 그 한번 채워진 충만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나쁘게 돌아가더라도 이 충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금 이순간 밖에 없습니다. 과거를 경험할 수 있습니까? 지금이라는 것도 따로 없는데 언어를 사용하니까 그렇습니다. 개념화될 수 없는 오직 '지금'밖에 없습니다. 과거라는 것도 생각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고, 이 생각도 지금 경험가능한 것입니다. 자유, 만족, 기쁨은 언제나 지금밖에 없습니다. 미래에 이루어지겠지하며 바라는것은 생각의 허구에 속은 것입니다. 생각의 매트릭스에 속으면 마치 그것이 진짜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때 온갖 방법을 동원하게 되고 힘들어집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지금 이순간에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빛과 어둠이 함께 있습니다. 밝음과 어둠이 항상 함께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우리 내면을 보면,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고 성공만 추구하는 삶, 그것 자체가 실패입니다. 그러나 실패를 받아들이면 실패는 더이상 실패가 아니고, 실패를 깊이 받아들임으로 그것으로부터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그 실패를 통해 더이상 붙잡을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풍요의 바다속에 있습니다. 이게 가장 큰 진실입니다. 따라서 풍요를 따로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지금밖에 없습니다. 지금 내게 오는 것은 나와 상관없이 찾아 옵니다. 무너지고 초라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좋은 것을 원하는데, 그런 바람과는 상관없이 찾아 옵니다. 삶은 언제나 지금 이순간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 오는 것은 오직 좋은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만족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진실입니다. 좋은 것, 나쁜 것이 올라올지라도, 범사에 감사하면 진실로 감사해보면, 만트라처럼 '감사하다'를 반복해보면, 진짜 감사가되고, 그러면서 '나'가 사라지고, 그것은 지금 일어난 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고, 그때 판단이 사라지고, 감사도 사라지고, 그것자체가 됩니다. 마음이 감사로 돌아선, 이 질적인 변화(변성), 내게 다가오는 것이 그 무엇이든 감사가 됩니다. 긍정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게 긍정입니다. 부정적인 것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긍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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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는 생각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고 났더니 관계에 어려움이 없어졌어요.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관계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별로 문제시되지 않습니다. 사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내 행동에 특별한 의도와 목적이 없어지고 행동이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사랑받습니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때, 이때 최선은 그순간순간 모든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 무너질 때 있는 그대로 무너지고, 게으를 때 있는 그대로 게으른게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지금 이것 아닌 다른 것을 바라기에 결핍과 고통이 찾아옵니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온전히 그것 자체가 되면, 절대고독, 절대의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실상, 우리는 삶의 넘실거리는 풍요속에 이미 살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모양에 빠져 취하고 버리기에 결핍이 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분별하고 이름붙이는 학습을 해 왔는데, 이런 이해가 오면 형상과 모양에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이 '나'가 없으면 잘날 필요도 없고 그냥 편안합니다. 실재가 무엇입니까? '지금'입니다. 또한 지금 나타나는 것은 금방 변합니다. 이것은 붙잡을 수 없습니다. 나타나고 드러나기위해서는 나타나고 드러나지 않는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감각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소리, 이것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침묵이 있어야 합니다. 이소리는 금방 사라집니다. 우리가 늘 감각하지 못하는 고요와 침묵은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나타난 것 '소리'에만 관심을 둡니다. 내게 올라온 것에 최선을 다해 살면 이 나타난 모습 이전의 실상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나'가 개입하기에 좋고 나쁨으로 분별하게 됩니다. 내게 어떤 것이 오든 함께 옵니다. 높고 낮은 것 이게 하나라는 것을 알고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않으면 저절로 드러나는게 풍요입니다. 사람들은 체험, 뇌압이 큰만큼 체험, 황홀경이 올 수 있고, 그것은 곧 사라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꽉 붙잡으려 듭니다. 그러나 평범한 것이 좋습니다. 삶이 재미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재미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재미있습니다. 이전에 저는 권태, 게으름의 대가였습니다. 계절앓이를 하고, 늘 떠나야 했는데, 제가 변하고 나선 그냥 돌부처처럼 앉아만 있어도 재미있습니다. 인간은 갖가지 오락거리를 만들어 내는데, 이 존재의 즐거움보다는 못합니다. 이 진실, 왜 재미있을까요? 그것은 딱 하나, 분별심 하나가 내려진 것입니다. 버리고 취하는 마음 하나가 사라졌을 뿐입니다. 이 충만, 사라지지 않는 충만, 그냥 존재하면 됩니다. 이게 너무 초라하니까 저리로 찾아가는데 사실, 저것을 추구하기에 지금 있는 이것이 초라한 것이 됩니다. 무너지면 다시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무너질 때 끝까지 무너져 보는 것, 이것이 자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한번의 전환, 지금 이순간 이것밖에 없는데, 분별 모양에 빠져 있다가, 취하고 버리는 것을 그만두면, 모양에 빠졌던 것에서 모양 이전, 파도만 바라보다 파도이전, 있는 그대로 존재하다보면 파도가 곧 무한의 바다라는 자각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모양에 묶이지 않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두번째 전환이 옵니다. 미세하게 남은 '나', 전체가 '나'라는 작은 것에 갇혀 있는데, 이렇게 만나가다 보면 나가 없다는 진실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죽고 살고할 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풍요의 바다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메마른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착각했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미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 일상, 내게 올라오는 이것속에 있다는 것을 아는, 그래서 취하고 버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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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직장생활을 하며 거의 매일 떨면서 출근을 했었습니다. 오늘은 또 무슨 사건이 일어날까?, 난 또 어떤 분노를 터뜨리게 될까하는 두려움....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가 보기 싫어 조금 힘들긴 하지만, 나머지는 대체로 좋습니다. 주변의 관계가 만족스럽고, 나를 좋아해주는 몇몇 아이들도 있습니다. 수업에 최선을 다하고, 또 내 나름의 수업내용을 마련해가는데서 오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탐구하고 조금씩 알아가는 가슴설레는 그 과정도 있습니다.



<야단법석>


○회사 경기가 좋지 않습니다. 폐업할 위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다 많은 일을 해야되고 회사의 사정을 보면 제가 힘들어 해야 맞는데,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고, 내가 지금 내게온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진정한 풍요, 내면의 깨어남이 오면 이것은 존재의 모습이고, 밖의 상태와는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밖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내 안이 편안하게 됩니다. 열림이 있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본래 열려있습니다. 우리 앞에 열린 문이 있습니다. 이게 풍요, 자유, 행복, 진리의 문입니다. 그런데 닫혀 있다고 착각하기에 몸부림치고, 그렇게 몸부림치다가 어느순간 문득 턱 숨쉬어지는 존재의 문이 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린 문은 곧 자기자신인데, 그게 왜 닫힌 듯이 여겨지냐면, 지금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 다른 모습의 나가 되려 하기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되려하는 몸부림, 그 몸부림이 숨을 더욱 막히게 합니다. 이게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비로소 당신 자신을 만났습니다. 당신은 칭찬받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려고 애써왔고, 그런 상황중에는 지금 있는 자신이 못마땅한데, 어느 순간 그 모습,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방안에 머리카락 하나 있는 것을 못견디고, 그것을 치워야 하는데 너무 더럽게 여겨지고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그러면서 모든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랑받기 위해, 사랑받고 싶어 살찌면 안된다는, 그때부터 밥을 거부하게 되고, 대신 사탕을 먹게되는, 어른이 되어도 밥은 못먹고 사탕을 빨고 있는 자신이 너무 싫고, 결혼 해서도 아이들이 자기를 닮아 밥을 먹지 않는, 그 모든게 마음에 들지 않고,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지하는 절규, 외침, 그때 언니가 '그게 너야!!!"하는 그 외침에, 그 말이 쑤욱 가슴으로 들어가는, 눈뜸, 이게 바로 열림입니다. 이순간부터, 이 한번의 눈뜸, 이게 어느순간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 옵니다. 그 작은 열림이 오면 그 다음부터는 계속 열립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다시 옛날로 돌아간듯하고, 다시 고통스러워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압니다. 괴로워하지만, 거기에 함몰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진실과 하나되면, 즉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고보면, 이상하게 주변 상황에 물들지 않습니다. 세상은 망해가는데, 그래서 내가 긴장하고 걱정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걱정이 안되는, 이게 예전의 기억,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도리'의 기억, 그런 기억으로보면 내가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주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자신이 자각하기 이전에 '나'가 붙어 평생을 나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 어떤 형태로 다른 이해가 와서 숨을 한번 쉬게 됩니다. '이것만 없으면 하는, 죽여버리고 싶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그 길만 걸어온 내가 이런 초라한 나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순간 이해할 수 없게 인정의 순간이 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살아온 삶을 문득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삶이 풀려나가게 되는데, 그렇더라도 그것은 오래된 습으로 인해 다시 괴로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성장이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으면 이해가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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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데, 빗소리와 함께 부드러우면서도 에너지가 절제된 낮게낮게 으르렁거리는 대기의 불안정한 소릴 듣습니다. 새벽녘 낮은 저음, 그러면서도 맑은 '으르렁 그르렁'거리는 창을 흔들고 내 몸도 흔드는 그 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또 하루종일 방에 할 일없이 누웠는데 시원한 바람이 내 팔뚝의 잔털을 쓸고 갑니다. 그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쓸림이 참 좋습니다. 세상에 누릴 것이 많다는 말, 공감합니다~.



●'나', 삶의 전반을 토대짓는 것, 생각, 감정의 주체, 이게 진짜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모든 삶의 중심으로 여기는, 이 나 때문에 탄생과 죽음이 생기는데, 나라는 생각, 관념, 무게, 존재감, 축적된 기억, 이미지, 이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진 상태를 상상해 봅시다. 그런 상태에서 당신은 누구입니까? 남자와 여자, 나이가 어떻고 성격이 이러저러 하고 고향은 어디고 하는 이게 모두가 기억입니다. 나는 기억의 집합이고, 이 모든 밖으로부터 입력된 것, 개인적, 사회적으로 학습된 기억이 다 제거되면 남는건 몸뚱아리고 이것은 무엇이다고 규정될 수 없습니다. 이런 기억이 제거된 몸에선 그냥 무엇인가가 일어날 뿐이고, 나라는 무게감은 없을 것입니다. 나라는 개념자체가 없어지고, 나와 분리된 너라는 것도 없고, 어떤 동일시도 없는 상태입니다. 지금 이순간, 모든 것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데, 마치 내가 있고 너가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냥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우리는 자기신체를 전부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거울이 없다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데, 우리는 우리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안다는 것은 어떤 이미지에 대한 앎이고, 있지도 않는 것을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나로 규정하고, 형체화시킵니다. 이 '컵'이 존재합니까? 내가 보지 않으면 이 컵은 있습니까? 보지 못하면 없습니다. 형태와 색은 눈으로 보고, 촉감이 있는데, 촉감이 없는 사람이 만지면 그 촉감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마치 우리에게 실재하는 것처럼 나타난 감각의 조합일 뿐입니다. 우리의 오감이 없다면 이 컵도 없습니다. 따뜻하다는 촉감, 이 촉감이라는 감각이 없다면 따뜻하다는 감각이 있겠습니까? 이 세상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그것을 내가 인식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뒤집어 집니다. 오감이 존재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육체도 오감의 작동으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내가 본다'인데, 그것 이전에 이미 '봄'이 일어납니다. 그런 다음에 '내가 본다'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이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 이 육체가 아닙니다. 이 감각기관을 작동하게 하는 것은 생명력입니다. 세계의 나타남은, 이 세상은 감각기관의 조합이고, 이 감각기관을 작동하게 하는 것은 의식이니, 의식이 없으면 감각할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지금밖에 없습니다. '찰나'의 연속, 그 실체가 없는 '찰나'가 연속되는 영상뿐인데, 그게 실체가 되는, 그 착각, 내가 누구입니까, 하늘을 보면 하늘이 나고, 모든 것에 내가 있고, 나는 어떤 형상도 없는 그게 나입니다. 이게 이해의 전환인데, 그래서 인식자가 없으면 세계, 우주도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한번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온갖 생각이 일어나고, 그게 힘들어 다른 것을 찾는데, 다른 것을 찾는 그것을 차단해 버리면 그냥 생각속에 있게되고 그 생각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보게됩니다. 그러면서 알게됩니다. 이와같이, 당신은 재미있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것은 지금 삶이 재미없고, 지겹고, 지루하고 공허하다는 것인데, 그것을 만나보십시오. 그 재미없고 무료한 것속에 있어 보십시오. 그 파도를 보게되면 무한한 바다를 보게 됩니다. 지금 올라오는 것을 경험하지 않으면 다음의 것도 오지 않습니다. 왜 재미가 없냐면 지금 올라온 것을 경험하지 않기에 재미가 없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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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육체의 눈으로 대상을 봅니다. 그것이 '봄', 그러고 나서 '내가 본다'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러니 '내가 본다'에서 '나'는 그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의식의 자기표현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의식이 육체의 눈으로 이 육체를 보면서 이 몸이 나다는 동일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의식의 자기 표현인 '나'가 육체로 한정지어진 '나'로 축소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강의 더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모두들 건강관리 잘 하셔서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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