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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같은 그러나 고마운 내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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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루시오 (119.♡.124.87) 댓글 0건 조회 7,124회 작성일 15-06-0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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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IMF가 터지기 전까진 중소기업 사장이셨기에, 어려서의 난 물질적인 부유함에
부족한 것을 모르고 자랐었다. 아버지의 사회적 직책으로 인해 나는 어딜가든 주변 어른들이 굽신굽신대는
그 모습에 기고만장하던 나의 성격이 기억난다. 어려서의 난 할 말은 다 하고 다녔고,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내 주변 애들은 다 때리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내 아버지의 회사가 무너지고, 찢어지게 가난한 20년간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눈치밥을 먹으며 친척집들에 맡겨지고, 난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며, 의기양양하던 아동기에 비해
나의 청소년기는 제 할 말을 하지 못하였고, 늘 남의 눈치를 보는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성격은 청년기인 '지금'의 내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얼마전, 새벽에 미 귀가자 출동이 걸렸고 나를 비롯하여 후임3명이 출동차량에 올랐다.
관행적으로 지휘관이 운전을 하면, 최고참이 지휘관 옆 좌석에 타고 나머지 후임 3명은 뒷 자석에 타야 하는데
내 맞후임이 나보다 먼저 옆 좌석에 타버렸고, 나와 밑에 후임2명은 어벙한 표정으로 뒷 자석에 타고
출동을 나갔다.
 
난 속으로 '저 새끼가. 맞후임이란 새끼가 저딴 행동을 하나? 이따 족쳐버려야지.' 그리고 출동을 다녀와서
맞후임에게 한 마디 하려던 난 결국 족쳐버리지 못했다. 나의 성격이 워낙 소극적에다 소심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날 새벽에 잠을 들지 못했다. '저 새끼가 맞선임인 날 무시하나?' 이 생각에 화 딱지가 나서 잠을 설쳤다.
 
머리론 물론 알고 있다. 내 멋대로의 생각으로 판단할 뿐이라고...난 그냥 화만 내주면 되는데...이걸
알고 있는데도 날 부정하는 행동이 올라오길래, 이걸 알고도 그냥 ' 날 저항'함을 허용해주었다.
결국 예상대로 그 날 밤을 새 버렸다. 나의 분노를 허용해주지 않으니, 어디 힘들어서 내가 살 수가 있나...
 
다음 날, 내 맞후임과 같이 근무를 들어가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그래도 부대 왕고참급인데. 오늘
말해야지. 니가 어젠 실수한거라고. ' 근데, 아무리 말을 하려고 해도 맞후임에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가슴은 쿵쿵뛰기 시작하고, 난 내 맞후임 눈치나 보고 있었다. 그래서 드뎌 저절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이런 병신같은 성격이 나다. 내가 왕고참이고 나발이고 걍 무시 당할란다. 좆같은...' 하고
그 녀석에게 따질려던 맘을 접는 순간...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맘의 평화가 다시 찾아와주었다.
늘 아는 내용이지만...
 
남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난데~ 내가 왕고참인데~따위를 놓기 싫어도 놓고, 말 하지 못하여 억울하고 열받는
날 수용하고, 말 못하는 날 수용(포기)해보았다. 그 속에 천국이 있었다. 감사했다. 봉식이할매 형이
예전에 내 게시글에 달아준 댓글의 표현대로, 난 그 순간 천국 문 앞에 있는 도깨비를 물리쳤다. 그리고
더이상 후임이 앞좌석에 앉는게 문제가 아니었고, 그제서야 저절로 맞후임에게 말할 수 있었다. 그것도 웃으면서...
 
'야이 시베리안같은 새캬. 이제 내가 앞좌석에 타도 될까?^^' 이 말에 맞후임은
 
'아,ㅋㅋ 어제 김주환 수경님이 천천히 걸어오시길래 앞 좌석에 탈 생각이 없어보였습니다.ㅋㅋ
앞 좌석에 타셔야죠. 담에도 천천히 오심 제가 앞 좌석에 탈겁니다. 낄낄' 대는 귀여운 내 맞후임..^^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억울하냐?주환아. 그럼 억울해해라. 만지면 곯아서 아픈 여드름처럼, 아프단건
살아있단 증거다. 그 순간 아프단건, 아프지만 지나면 행복하단 소리다.
오직 지금 이 순간 감사하다!
 
남에게 잘 말하지 못해서 끙끙 앓는단건, 당장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기 이전에
그 에너지를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바로 내 성격이라고...그래서 이 성격이
과거엔 참 병신같았고, 저주스러웠고, 고치고 싶었지만 이젠 아니다. 이런 내 성격에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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