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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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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211.♡.228.63) 댓글 9건 조회 5,558회 작성일 07-03-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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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경전싸이트에 잡설을 늘어 놓는 것에 대해서 상당수의 분들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우선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이곳 싸이트 만큼 제 '실천의지'???를 다듬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몇몇 분들은 이곳에서 제가 뭔가를 강요하고 세뇌작업 하려고 ^^' 잡글을 늘어 놓는다고 여기고 있으신 듯 합니다.
하지만 이곳 만큼 제 '이해'를 다듬는데 여러분야에서 자극을 주는 곳이 없지요
사람들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때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좀 낫지 않겠느냐'는 충고의 말을 들으면서...
혹은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뭔가를 감추고 회피하려는 심리를 보면서 나름대로의
'실천의지'를 다지곤 합니다.(저는 '이해'와 '실천'이 대체로 맞아 떨어지는 사람이라서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에 몸이 움직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곳에 널려진 저의 자취는 '말'이 라기 보다는 저의 움직임에 가깝습니다.)
이곳 게시판에서 말씀을 나누다 보면,
가장 많이 저를 오해하시는 분들이 하는 말씀이 제가 여러분들의 생각을 바꾸게 하려고 뭔가를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지만,
저는 다만 인간의 '관계'와'마음의 작용'을 보면 '이러 이러한 것이 적당하지 않는가'하고 '원론적'으로 제시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관계'의 문제를 구구 절절히 써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애초에 이곳의 분들에게 어떤 사안을 강요하려 했을라 치면 '당신들 한심한 사람이군요. '이렇게 하시요'라는 두줄짜리 짧은 글만 도배를 했겠지요.
각자는 각자의 삶이 있겠지요.
각자는 각자의 운명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나서서 여러분의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예수' 스타일의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어떤 현실을 '알리고' '제안'하는 바울형 사람일 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제가 이런 사람이니 '이해해 주십시요'하고 하는 변명조의 말이 아닙니다.
제가 배낭하나 매고 돌아다니면서 초등학교에 가서 [인간사랑자연사랑 캠페인]을 하고 다니는 것 자체가 그런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의 삶이... 제 밥벌이만 하는 사람의 삶보다 위대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편견'일 수 있죠.
하지만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부족하면 할 수록 인간과 자연의 삶이 황폐해진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발동되는 순간 '내가 배고프고 아픈 것을 싫어하는 만큼 다른 이의 그것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반사적 자아'의 개념이 생성됩니다.
물론 이것도 '윤리'나 '도덕'의 문제는 아닙니다.
단지 '관계'와 '작용'의 문제이지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다 위하고 사랑하며 살수는 없겠지요.
그러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자세'만이 '선'이라고는 할 수 없고...
그러한 준비가 안되어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이 그랬던 것 처럼 적당한 '때'가 되었을 때 '적당한 자극'을 받아서, 운명의 부름에 반응할 수 있는 이가 있을 것을 믿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이순간'까지 저를 잡아 먹을 듯이 달려들어도
갑자기 한 순간에 인간과 자연에 대한 포용력과 실천력이 생길수도 있고,
미묘한 정신작용의 결과에 의해서 먼 훗날에 그러한 반응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선악의 차원을 떠나서...
단지 제 자신이 '그것이 좋아서' 그에 관심을 갖고 살고 있는 만큼...
'그러한 사람'들이 더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움직일 뿐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 심판받아야하는지요.
=> 물론 이에 대해서 '너는 노장자 비판하지 않느냐?'는 전혀 말도 안되는 반박을 하시는 분이 있겠지만, 제가 노장자 비판한 글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쓴 글들과 이해들을 편견에 사로잡힌 관점에서
'너는 어떠한 주장을 하고 있구나'하고 일반화 시키지 마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제 정신인 아닌 사람이 쓴 점을 늘 염두에 두시고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쓴 글로 인해서 분란이 있을 필요가 없는데,
필요없는 반발이 지속되고 있어서 한말씀 올렸습니다.
뭐... 그러한 '분란'도 자연스러운 '관계의 작용'인지 모르겠지만...

댓글목록

하이트님의 댓글

하이트 아이피 (211.♡.32.174) 작성일

비난 했다는 말은 한  적이 없고요, 그 뷴들을 끌어 넣을  글들이 아니란 얘기였죠.
격이 맞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님이 인용할 수있는 범위는 아주 후하게 쳐 드려도,
철학 정도의 인용정도가 맞아요.
정치와 준 정치적인 범주의 말씀에 자꾸 흐름이 엉뚱해서 ,....그런 뜻입니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63) 작성일

이제보니 님은 좀 어리신 분 같군요.
아마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주장하는 말이나 표현과 경험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가 모든 사람의 수준에 맞춰서 얘기를 할 능력이 없어서
님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얘기를 할 수 없었던 점은 양해바랍니다.

하지만 깊은 철학이나 논리, 직관까지도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님이 스스로도 모르게 가졌던 몇가지 편견만 버리고 제 글을 응시하신다면
님이 주장한 바의 이야기와 관점이 다르게 제 얘기가 전개되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한발 물러서서 보시던지 뒤돌아 보시던지...
여지껏 보시던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보실 기회를 가져주시길...
제가 님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음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이트님의 댓글

하이트 아이피 (210.♡.89.12) 작성일

많이 어리죠.님 보단.  ....정신적 연하로 보이네요.
앞으로 잘 응시하고,물러서서 멀찍히 볼테니  제대로 써 봐요.
괜시리 보는 사람 머리에 쥐 나게 하지 않는 그런 글을 보여봐요.
보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님의 주장에도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는
그런 사실도 좀 인정하는 자세가 아쉽군요.
님의 취지를 인정하다가도,그러한 무리함'과 과장된 표현 등에 항시
문제가 따른다는 사실도 좀 인정토록 해요.
사실은 스스로도 아닌 줄을 빤히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면이 많죠?
예로부터 운동'을 많이 하신 분들은 나중에 어디선가 다시 만나더군요. .짐작하시죠?
또,삐딱해 지네요. 자중,자중..
잘 보도록 하죠.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63) 작성일

말이 좀 통하려고 하는 것 같군요.

제 말이 그거예요. '무리함'과 '과장'이라...
그래요 저도 인간이다 보니 조심스럽지 못한 와중에 좀 과다한 표현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논점을 벗어나는 수준에서 그런 과장을 일삼지는 않고,
혹시나 그런 일이 있어서 상대방이 지적해준다면 그에 마땅히 수긍할 용의는 있습니다.

해와달님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였던 것 처럼 말이죠.

하지만 님은 저의 표현이 '무리하다'고 '과장이다'고 얘기만 할 뿐이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지 못해왔어요.

저는 이에 대해서 '구석 구석 잘 살펴보면 그것은 이렇게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설명을 할 것이다'고 설명을 했고요.

이에 대한 님의 반응은 '너의 글은 너무 길어서 다 볼 수가 없다. 하여간 장황하고 복잡한 너는 틀렸으니 어서 정신차려라'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님이 구경만 하고 지켜보지만 말고 나름대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필요할 때 마음껏 펼치는 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적극성을 가지신다면 다른 사람의 잡글에 댓글놀이 하는 시간보다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올린 후에 타인과 보다 친밀하게 교감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줍쨚은 이야기였습니다.

송재광님의 댓글

송재광 아이피 (125.♡.160.175) 작성일

두가지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현실은 어디까지인가? 의 문제.
매스컴과 지식으로 이루어진 현실 추상적 현실.
우리의 신체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구체적 현실.
현실은 압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아프리카소년의 굶주림이 누군가에겐 현실이고 누군가에겐 아닌데 그 차이는 그 지식이 누군가에겐 커다란 압력이 되고 누군가에겐 압력이 아니거든요.
그 압력의 크기는 굶주린 소년의 사진이나 그런 기사를 보았을 때 그 영상정보 문자정보를 수용자가 어덯게 해석하느냐와 그 정보전달매체를 수용자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둘째는... 그런 고통을 받는 사람 (같은 고통이든 다른 고통이든 ) 이 아주 많다는 겁니다.
우리가 자비를 느껴야 할 대상은 나부터 시작해서 무궁무진합니다.
삶은 감사이고 축복이지마는 동시에 한없는 슬픔이기도 하거든요. 부자든 빈자든 지자든 우자든요.
나의 행동을 필요로 하는 대상은 너무 많아서 딱히 누구하나에게 집중하기 힘듭니다. 제한된 나의 에너지를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도 골치아픕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나에게 누군가의 고통이 보여졋다는 것은 지금 그를 도우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 맹자 곡속장에 소대신 양을 제물로 바치라고 햇다는 이야기가 잇습니다.
소는 눈에 보여 불쌍하고 양은 눈에 안보이니 안 불쌍한 겁니다.
소를 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양의 고통을 수반하는데요. 꼭 이렇지는 않더라도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은 누군가의 고통을 증가시키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많이 잇거든요.
이때 고통의 감소를 위한 나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  그 기준이 나의 체험이냐 아니면 지식이냐도 그렇고  그런것들이 참으로 우연적으로 결정된단 말입니다. 이 떼 그런 우연들을 다 신의 섭리로 봐야 할 것인가?
그 때 양혜왕에게 소가 보여진 것은 소를 구하라는.. 그대신 양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계시인가?
우연과 필연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매스미디어로 보여지는 현실..은 엄청 확대된 현실이거든요.
그런 현실속에서 우리 행동은 우연적으로 결정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통계적으로 결정된다고 할 수 잇습니다.
그 독립변수는 출판 문화 영화 교육 언론 등으로 얽힌 사회구조가 영향을 미치지요.
다시 우리의 현실을 결정짓은 압력의 문제를 보면 구조가 압력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결정된 압력이 개개인들에게 각자의 현실을 만들고요.
우리는 그런 현실속에서 각자의 현실을 살아내고 잇는 겁니다.
결론은 뭘까요?
우리는 그 생의 압력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아니 전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전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선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아무 생각도 안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진공의 현실을 항상 살아갈 필요가 잇습니다.
진공. 아무것도 없는 허의 현실.

송재광님의 댓글

송재광 아이피 (125.♡.160.175) 작성일

글이 중구난방이라 좀 덧붙입니다.
순간을 충실히 산다는 것은요.
순간순간 신의 계시를 받는 삶을 뜻합니다.
그것은 의지를 가지지 말란 뜻이 아닙니다.
계시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머리가 비어야 하는데 닫혀서 빈 게 아니라 열려서 비어야 합니다.
그럼 그때 그때 꼭 필요한 현실과 해답들이 저절로 펼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잇습니다.

하이트님의 댓글

하이트 아이피 (221.♡.64.9) 작성일

고정하시고 .

  사실 둥글이 님이 안 계시면 저는 이곳에서 거의 할 의견이 없었읍니다.

  뭐,특별하게 의견을 개진할 그런 내용이 없었거든요.

  물론 본인도 여러 부분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야 있지만,

  그저 그러그러한 내용에 -별 무리가 없어보이는- 따지고 들 이유를 느끼지 못했죠.

  사실, 님의 글의 내용은 거의 한 두가지 뿐이기에 끝까지 읽지 않아도 거의 알겠더군요.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요.

  제 입장은 없다입니다.

  워낙  우리사회에는 날고 뛰는 분들이 많아 , 거기에 덧붙여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언론매체만 뒤적여도  모든 지식과 의견과 상식의 홍수이던걸요.

  그걸 판단할 겨를도 부족하던데, 무슨 의견을 만들겠어요.이미 다 있던데.

  우리 그냥,여태 하던대로 댓글놀이나 계속 하십시다.

송재광님의 댓글

송재광 아이피 (125.♡.160.175) 작성일

정기교이후구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먼저 교감을 한 후에 뭘 구하든 간에 구하라는 것이죠
교감이란 것은 참 쉽고도 어려운 겁니다.
그건 존댓말쓰고 예의를 껌벅 차린다고 해서 거저 되는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을 써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솔직하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가  응축될 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존재는 커질대는 우주만큼 팽창을 하다가도 순식간에 먼지 한조각으로 응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존재가 응축될 때 응축된 먼지같은 존재들끼리 충돌할 때 교감이 잇습니다.
넓은 마음이 좁은 마음을 품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넓은 마음은 좁쌀같은 마음을 확인하며 자아도취할 뿐입니다.
좁은 마음은 넓은 마음속에서 이기적인 웃음을 지을 뿐입니다.
소립자하나만치 응축된 존재가 충돌할때 교감이 생깁니다.

둥글이님의 댓글

둥글이 아이피 (211.♡.228.63) 작성일

군더더기 없는 참 좋은 말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영적 직관을 억압하는 감각과
개개인이 '현대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자아가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인식하는데 방해하는 장애로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듭니다.

자신의 정신에서 이러한 '벽'만 걷어 낸다면...
그래서 자기의 자아를 인류와 자연으로 확대하는 길만 발견한다면 문제는 '순식간'에 해결될 것으로 생각됩니다.(이것은 세상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도움이 필요한)사람/환경 에게 어떠한 집중력을 발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대한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문제의 해결은 그 이후의 것이 되겠죠.)

그러한 '해결'은 특별히 어떤 대상에게 '몇시간 어떤 방법으로' 힘을 들여라는 방법으로 계시를 주는 식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으 아니라, 다만 자유로운 영혼이 세상사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자기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과정 속에서 '하나된 존재감'을 갖고 그러한 공감을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 자체에 존재하게되는 것이죠.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고민하는 것은

[우리는 각자가 각자의 현실속에서 각자의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기에...] 그 현실에 함부로 개입해서 그들의 사고를 바꿔낼 수는 없지만,
[인간의 영적 직관을 억압하는 감각]과 개개인이 [현대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자아]의 한계를 적절한 때에 그들에게 보여줄 때, 그들의 '세계와 하나된 공감'을 발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내부에 늘 그 진실은 움크리고 도사려 있었지만, '현대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 인식되지 않았떤 것이지요.

'현재' 각각의 사람들에게 가해져 있는 정신의... 삶의 압력은 각각다르다는 것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된 생명'을 인식할 수 없는 지경으로 이르렀다는 것에 대해서는 '현실'이 그러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에 '수긍'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미래'는 그것이 좀 더 바꿔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어 봅니다. 

물론 사사로운 욕심으로 그것을 바꿔내려고 했다가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뜻이 아닌 아버지 뜻대로 할 수 있게끔 제 자신을 비우고 낮추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겠죠.

하여간 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의 다양한 조언의 말씀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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